[리뷰] 우리가 우리가 될 때에 : <독산 여러분>리뷰

 

 

우리가 우리가 될 때에

 

 

코끼리들이 웃는다 <독산 여러분>리뷰 @독산 3동 일대

 

김민수

 

평범한 주택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난다. 까만 헤드폰을 끼고 있는 그들은 그곳이 낯선지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주변을 바라본다. 헤드폰 안에서 무슨 얘기가 나오는지 고개를 까딱거리기도, 작게 웃기도 하는 그들은 이내 걷기 시작한다. 영문을 모르는 주민들이 되려 그들을 신기하게 보게 될 즈음 공연은 시작한다. 

 

 

사진출처_코끼리들이 웃는다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독산 여러분>은 독산동이라는 도시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장소특정형, 이동형 거리극 작품이다. 작품은 오래된 벽화를 함께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배우는 벽화를 통해 독산동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한다. 그리고 그 앞을 지나치는 자동차를 가리키며 저 커다란 움직이는 쇳덩이들이 곧 이 작품에서 함께 감상할 것들이라고 안내한다. 거리를 함께 걸으며 도시를 감상하는 낯선 형식에 맞춘, 일종의 작중 배경 설명이자 관람 방법 안내인 셈이다. 

 

이러한 작법은 코끼리들이 웃는다에게 낯선 시도는 아니다. <서촌 오디세이>를 비롯하여 전에 활용된 적 있던 방식으로, 한 명의 배우가 가이드가 되어 관객에게 말을 걸고, 때로 택배기사, 환경미화원, 생선장수, 미용실 손님, 별(!)에 이르기까지 역할을 바꿔가며 관객을 이끌어간다. 그 안에서 관객은 도시의 역사를 관찰하게 되고, 익숙한 동네는 낯선 공간이 되어 마치 세련된 투어리즘 같은 감각을 얻게 된다.

 

사진출처_코끼리들이 웃는다

 

 

관객들과 별빛시장으로 들어가며 작품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것은 시장 상인을 비롯한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다. 다 팔리면 7시에, 안 팔리면 9시에 퇴근하는 생선 가게의 일상부터, 야채 가게 사장님이 왜 품목을 야채로 바꿨는지, 계모임을 하며 각종 취미활동을 함께하는 상인회 분들의 트로트 사랑까지 듣고 나면 그 이야기들이 우리 일상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그 가운데 삽입되는 건 시장 내에 자주 보이는 중국 식료품 가게들과 어떻게 중국 동포들이 여기 자리 잡게 되었는지 같은 목소리다. 정육점에선 그곳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직원이 열심히 일하고 살아간다는 랩을 직접 선보이기도 한다.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 앞에서 이 시장의 변천사까지 듣고 나면, 또 중국식당 사장님에게 젤리 하나씩을 얻어먹고 나면 이 동네가 교통의 편리성을 중심으로 원주민과 중국인 동포, 외지에서 온 노동자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는 걸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독산 여러분>의 탁월함은 이때 드러난다. 열심히 일하는 청년으로서 생선 가게 사장님과 정육점 직원이, 동네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과 여가를 보내는 데에서 상인회 어머님들과 사거리의 중국인 할아버지들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 직접적인 이야기 없이도 받아들여진다. 그것은 동시에 관객들과도 동질감을 형성하는 ‘일상의 힘’ 같은 것이다. 배제적인 시선 혹은 시혜적인 관점도 없이 작은 에피소드들을 지나치다보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되어간다.

 

 

사진출처_코끼리들이 웃는다

 

시장을 지나쳐 언덕을 오르면 작품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과거로 향한다. 동네와 이질적인 하얀 옷을 입고 지나가는 ‘금천우리동네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사계’와 함께 관객들은 어느덧 과거로 가있다. 곳곳에 봉제 작업장들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가와 봉제소는 무대이자 주인공이 되어, 7-80년대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경하여 쪽방촌에 살며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위장 취업하여 노동해방을 꿈꾸는, 그리고 조용필과 이용 중에 누가 최고냐는 질문에 송창식 좋지 않냐고 답하는 청년-여공들의 이야기가 이제는 장년이 된 당사자의 목소리로 드러난다. 

 

지금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거처가 되곤 하는 독산동의 쪽방이 7-80년대 상경한 여공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이 작품에서 중요한 지점이 된다. 이 도시를 만들어온 사람들이 비슷한 곳에서 비슷한 꿈을 꾸며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작품은 그들을 ‘산업역군’ 혹은 ‘열악한 노동환경의 피해자’, ‘희생적인 어머니’와 같이 전형적이고 단편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엮어내는 것은 일상의 즐거움이다. 야유회에서 발표할 춤을 연습하고, 한때 엄청 날라리였다고 만날 고고장에 갔다며 자랑하는 모습들이 오히려 작가가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골목에 모여 태극권을 하는 중국인 동포들을 지나면 고고와 태극권 사이의 차이는 보잘 것 없어진다.

 

 

사진출처_코끼리들이 웃는다

 

이 글의 초반,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작품 속에서 관객은 도시를 관찰하며 투어리즘같은 감각을 얻게 된다고 썼다. 하지만 독산동은 관광지가 아닐뿐더러,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삶이 어떤 관망의 대상이 되는 것엔 윤리적인 책임이 따른다. 누군가의 삶을 미쟝센으로 쉽게 소비하는 것이 가진 ‘시선의 폭력성’ 때문이다. 

 

따라서 <독산 여러분>과 같은 로드씨어터 작품은 태생적으로 한계를 갖는다. 작품이 일상적 공간으로 들어가고 그 속에서 진행될수록 관객들은 실제 삶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이는 연극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에서 드러나는 상징적인 배경과는 윤리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작품의 매력이 곧 문제점이 되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더욱 놀랍고, 놀랍도록 티나지 않을 작은 성취를 보여준다. 그것은 내게 작품 내내 어떤 물음표로 따라다녔다. “도대체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과 언제 모든 협의를 진행하고 작품을 다 만든 것일까?” 공연을 함께 할 상인을 섭외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 장면을 끊고 다음 장면으로 전환되기 위한 대사를 맞은 편 가게 사장님이 멋쩍게 던져주는 모습을 보며, 고작 15초 즈음 지나치는 장면에 등장한 시민배우가 마지막에 다시 등장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을 보며 예술가가 가져왔을 어떤 태도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출처_코끼리들이 웃는다

 

작품은 쪽방촌의 옥상에 올라가 도시 전체를 바라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가파르고 좁고 어두운 계단을 지나 탁 트인 옥상에 오르면 그리 아름답다고만은 할 수 없는 동네의 풍경이 드러난다. 벽돌 따위를 얹어 지붕을 메꿔놓은 오래된 다세대 주택과, 멀리 새로 서고 있는 아파트와, 더 멀리 날아가는 비행기의 모습을 돌아본다, 공연은 끝이 나고 관객들은 돌아가지만 골목엔 참여한 시민 배우들이 잔뜩 서있다. 다시 노래가 흘러나온다.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연이 끝나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돌아가는 삶 속에서 동네는 머지않아 아파트 단지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은 멀리 떠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진심으로 듣고, 그 안에서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 무언가를 찾아내는 것은, 예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의미 있는 일일지 모른다. 그걸 사려 깊은 손으로 풀어내는 것이 사라지려는 무언가를 조금이나마 유예시킬 수 있을 거라 믿어본다. 서로를 향해 따뜻한 눈으로 박수를 보내며 우리가 조금 더, 우리가 되었다고 적는다. 

 

필자소개

김민수_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민수민정, 민필, 블루프린트, 스튜디오1992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사진출처_코끼리들이 웃는다

공연 정보

 

공연일시 : 2020.10.10.-11 14:00/17:00(60분 공연)

공연장소 : 독산 3동 일대 

주최 : 금천문화재단

제작 : 코끼리들이 웃는다

주관 : (사)서울시자치구문화재단연합회

후원 : 서울문화재단, N개의 서울, 금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