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아, 이토록 찌질한 노스탤지어여 - 파란노을2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2021. 4. 5. 17:15Review

 

 

아, 이토록 찌질한 노스탤지어여

 

파란노을 2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리뷰

 

김민수

 

지난달 불쑥, 세계적인 음악 커뮤니티인 ‘Rate Your Music1’(이하 RYM)발 소식이 국내 음악 팬들의 트위터 타임라인까지 넘어왔다. ‘파란노을’이라는 밴드가 1위에 올랐다며 모두가 놀라워하고 있었다, “파란노을이 뭐야 대단한 분들이지-”2하고 넘어가기엔 도무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심지어 최근 피치포크3에선 8.0이라는 높은 평점과 극찬에 가까운 리뷰를 받기까지 했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호기심으로 찾아 들어간 밴드캠프에서 발견한 것은, 대단히 훌륭한 신선함이 아닌, 이토록 찌질한 노스탤지어였다.

 

사진_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 커버

 

 

뭐 듣고 있어? 릴리 슈슈

 

본 앨범의 첫 트랙은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릴리 슈슈의 모든 것>의 대사로 시작한다. “뭐 듣고 있어? 릴리 슈슈” 라는 목소리가 기차 소리와 함께 줄어들면서 로파이한 드럼과 노이즈 가득한 기타 사운드, 피아노 아르페지오가 이어폰을 채운다. 이 앨범이 가리키는 방향은 어쩌면 이 짧은 10초 안에 모두 들어있는지 모른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은 어떤 영화인가. 아주 납작하게 얘기하자면, ‘릴리 슈슈’라는 음악가를 좋아하는 예민하고 연약하고 잔혹한 중학생들이 상처와 치유를 주고받는 작품이다. 성폭행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하기도 하고, 2ch같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중요하게 기능하는 등 2020년에 보기엔 쉽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카메라는 흔들리고 화질은 뿌옇고 작 중 ‘릴리 슈슈’가 말하는 ‘에테르’라는 개념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뜬구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왜 이 영화가 이렇게 중요하게 샘플링 된 걸까?

 

다시 파란노을의 앨범으로 돌아가 보자. 짧은 대화가 끝나고 기차 소리가 줄어들면서 커지는 음악은, 마치 화자가 어딘가로 떠나는 대신 릴리 슈슈로 대표되는 내면의 무언가로 침잠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그 세계는 지저분하다. 슈게이징 음악의 대표적인 표현양식이라고 할 수 있는 의도적인 기타노이즈를 차치하고도 보컬을 비롯한 사운드 전체가 뭉개져 있다. 이 가운데 가사는 온통 자학적이다. “만약 이 세상이 전부 누군가의 또 다른 꿈이었다면 언젠가 깨어나게 될 때 나는 지금과는 달라져 있을까”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세상]은 “나의 비참한 모습을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 나의 어리고 멍청했던 날들은 사라져줬으면”으로 이어진다. 그 가운데 “언젠가는 잘 될거야”같은 가사만 큰따옴표 안에 넣어놓는 것은 이 앨범이 말하는 ‘Nest Part of the Dream’이 ‘역겨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 너머의 어딘가를 가리킨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곡의 중반, 절정을 향해 달리기 직전 악기들이 빠지며 <릴리 슈슈의 모든 것>에서 따온 목소리가 다시 한번 등장한다. “네가 날 지켜줘”라며. 작품 속 화자는 일종의 구원을 바라고 있는 걸까?

 

사진_끝이별의 Musicbrainz

 

 

골방에서 흰천장을 바라보며

 

앞에서 파란노을을 밴드로 소개했지만, 파란노을의 라이브를 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인디 음악가들이 라이브 무대를 중심으로 인지도와 실력을 쌓아가고, 이를 바탕으로 앨범을 내는 것과 그의 활동 방식이 매우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원맨밴드로서 혼자 컴퓨터로 악기를 찍어가며 노래를 만드는데, 파란노을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기 전에 ‘끝이별(laststar)’이라는 이름으로 2018년에만 9장의 앨범을 창작하여 웹사이트들에 올리기 시작한다. 멜론이나 지니 같은 음원 사이트에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그의 디스코그라피는 MusicBrainz 같은 사이트에서 흔적만 찾아볼 수 있다. 한 장도 별점이 매겨져있지 않고, 한 편의 리뷰도 달리지 않는 동안 그는 100곡이 넘는 곡을 혼자 방구석에서 만들고 있었다. 

 

슈게이징 밴드에서 기타와 드럼 파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음악의 질감을 결정하는 노이즈 사운드와, 긴 러닝타임을 끌고 가며 만들어내는 기승전결이 장르의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동기에서 시작해 합주를 통해 앰비언스를 쌓고 곡을 변주해나가며 절정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전형적인 슈게이징 밴드의 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밴드의 작법 대신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3일에 한 곡의 꼴로 기타·베이스·드럼·피아노 등이 들어간 곡들을 꾸역꾸역 만들어냈다. 이 놀라운 작업량은 아주 묘한 방향으로 본 앨범에 묻어난다. 그것은 그의 ‘골방’ 정서다.

 

2번 트랙인 [변명]에서 그는 “성장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내 안의 작은 열등감은 점점 커져가”, “나의 목표는 점점 뚜렷해져 가지만 나의 목적은 점점 무의미해져 가네”라고 외친다. 스스로를 어린애라고 표현하며 다음 트랙인 [아날로그 센티멘탈리즘]을 통해 2000년대 초반의 풍경을 그리워하지만 “만약 이 모든 게 꿈이라면 다시는 깨고 싶지 않을 거야”라는 가사를 마지막으로 노래는 끝이 나고 알람 소리가 울린다. 경쾌한 인트로 뒤에는 다시 “늦은 밤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흰 천장과 그다음엔 혐오스런 나의 몸”을 노래한다. 

 

 

지금이 2020년대가 맞소?

 

파란노을의 사운드를 분석하자면 My Bloody Valentine 등 90년대 슈게이징과 언니네이발관 등을 연상시키는 기타팝의 구성, J-Rock의 감수성 등을 래퍼런스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동아시아 포스트록의 경향이 리드미컬한 기타 연주와 박자를 쪼개고 비틀어 청각적 쾌감을 주는 매쓰록(Math rock)적인 방향이라는 것을 돌아보면, 파란노을의 지향점은 명백하게 과거를 향한다. 특히 패배자 의식을 고취하는 가사는 라디오헤드의 Creep와 같이 ‘루저 감성’을 정확히 조준한다. 아마추어리즘에 가까운 보컬 녹음과 믹싱까지 파란노을의 음악은 우리에게 익숙한 찌질함을 상기시킨다.

 

여기에서 그의 한계가 역설적으로 드러난다. “찐따무직백수모쏠아싸병신새끼”라는 가사를 직접 듣고 놀라서 가사를 확인하면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다. ‘병신’ 같은 단어는 G드래곤 이후 쓰지 않기로 세계적 협약이 되어있지 않은가!(※아니다) 많은 청자가 그가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여전히 00년대 초반의 감성과 표현력에 머물러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표현들이 락스타가 되고 싶은 패배자 정서를 보다 진실되게 드러내는 것은 왜일까? 그는 ‘스무 살의 청춘반란’이라며 기껏 발버둥치자마자 다시 [엑스트라 일대기]를 통해 스물한 살 이후 자신의 삶을 비참한 엑스트라로 묘사하고 풀이 죽지만,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애초에 그가 바랐던 것은 악몽 같은 지금의 삶이 밝아지는 것이 아닌, 꿈의 다음 장면을 향해 한 번에 도약하는 것이다. 그 도약은 (안타깝게도) 너무나 컨셉에 충실하고, 시대에 역행하며, 그래서 팬들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방식이 된다.

 

 

 

회피하는 태도와 도약

 

미성숙한 사람의 ‘숨고 싶은 마음’은 때로 양가적인 감정이 되곤 한다. 아무도 날 몰라주었으면 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아주었으면 하는 바람. 파란노을은 [흰천장] 등의 곡에서 달라진 게 없는 삶에 대해 한탄하면서 “지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귀찮은 것들은 전부 밖으로 던져버려. 저 밖의 세상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 이불 속에 처박혀 그대로 도망가” 같은 가사를 통해 그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회피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서는 사운드 적으로도 구현된다. 전반적으로 로파이,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사운드 가운데 보컬은 자꾸 멀리 도망가는데, 많은 포스트록/슈게이징 음악에서 보컬이 중요하지 않게 믹싱 되는 점을 참작하더라도 [격변의 시대]에서 두 목소리가 겹치는 지점 등은 의도적인 믹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삶의 고난은 회피하면서 꿈의 다음 장면으로 도약하길 바라는 화자의 바람은 예정된 끝을 향해 달려간다. [Chicken]에서 “기억해줘, 무언가의 마지막은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걸”을 되뇌고 [I Can Feel My Heart Touching You]로 끝나는 구성은 어쩌면 필연적일지 모른다. 그는 달콤한 위로를 전하는 대신 자살을 암시하는 ‘하늘 높이 저 멀리로’를 통해 도약한다. 

 

 

그리고 RYM 이후 다시 쓰는 서사

 

파란노을은 명확한 컨셉 앨범을 통해 방구석 음악가로서 믿을 수 없는 성취를 보였다. 그의 음악은 많은 이들의 노스탤지어를 사운드 적으로나 가사가 그리는 정서적으로나 불러일으켰다. 그 향수는 너무 찌질하고 못나서 부정하고 싶은 무언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피하게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매력을 갖고 있었다. 1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되려 조금이라도 짧아지면 이 감동이 줄어들 만큼 곡을 이끌어가는 편곡 능력은 그의 가장 큰 능력이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큰 호응을 얻으며 이 앨범은 새로운 서사를 얻게 되었다. 

 

유튜브의 댓글창을 보면 “찐따들의 자랑이 되어라 소년”이라든지, “님같은 분이 컴퓨터 하나로 음악을 만들고 그걸 내가 들을 수 있는 시대라는 게 감사하게 느껴질 따름임. 서로 아무 연고도 없지만, 또 다른 평행세계에서 같은 학교 동아리 밴드를 하고 있을지도 모를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아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해주세요. 우리는 어차피 인생에서 실패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싫어하는 일에 실패하는 대신 우리가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도록 합시다!” 같은 응원을 발견할 수 있다. 파란노을의 참을 수 없는 찌질함은 우리 모두는 아니더라도 많은 이들에게 필요한, 이해받고 싶은 감정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새롭고 훌륭하게 세련된 작품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무언가였을지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파란노을의 다음 앨범과 활동을 더욱 기대해본다.


1. 사용자가 음반이나 싱글, EP, 비디오 등에 점수를 매기거나 리뷰를 작성하는 메타데이터 웹 사이트. 힙스터들의 음악 커뮤니티처럼 여겨지며 밴드 사운드 기반 작업에 대한 수요가 높다.

2. 인터넷 밈 ‘NCT가 뭐야’에서 https://www.youtube.com/watch?v=k-vySk4nmqc

3. 시카고를 기반으로 한 음악 비평, 소식, 인터뷰 관련 인터넷 사이트. 인디 록을 비롯한 인디 뮤직 신과 언더그라운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필자소개

김민수_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서울프린지네트워크, 민수민정, 민필, 블루프린트, 스튜디오1992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