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그럼에도 계속할 것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

2021. 8. 3. 09:56Feature

 

 

그럼에도 계속할 것

 

: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 프리뷰

 

글_김민수

 

여름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계절이다. 프린지(Fringe : 주변부)라는 단어도, 축제가 표방하는 ‘독립예술’의 의미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생경하지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24년간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매년 여름을 함께하며 여름을 대표하는 예술축제가 되었다. 특히 축제사무국이 예술가에게 공연을 의뢰하는 대신, 자유참가원칙 아래 모든 예술가가 심사받지 않고 작품을 올리는 이 축제는 그 특수성으로 인해 신진예술가의 등용문, 혹은 신작과 새로운 창작 과정의 발표 자리로 자리매김해왔다. 

 

올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가장 두드러진 점은 공간의 다변화다. 축제의 전성기와도 같던 홍대 앞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프린지는 상암월드컵경기장으로 향했다. 홍대 앞은 빠르게 상업화되고 있었고, 365일 중 연중 개방일이 40여 일에 달하는 공공의 유휴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전유하는 시도였다. 이후 문화비축기지로 이동하며 시민과의 접점을 넓히고 문화비축기지만의 공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2년을 지나 프린지는 올해 다시 마포구 서대문구의 예술 공간으로 돌아왔다. 밀집도 있는 관람 형태와 축제적인 에너지를 포기하고 축제를 잘게 쪼개가며 민간공간으로 향한 것은 왜였을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은 지난 3월 함께 축제를 만들어나갈 공간을 모집하면서 “우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예술축제를 꿈꾸고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작더라도 대면으로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자리를 계속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계속하는 것.’ 그들이 그럼에도 계속하고자 했던 공연은 어떤 것이었을까? 이를 위해 올해 참가작의 경향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사진1. 예술공간 의식주 (제공: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팬데믹을 거치며 – 공간에 대해

 

지난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엔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생활과 예술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올해는 팬데믹 시기를 통과하며 쌓아온 공간에 대한 상념들이 돋보인다. 그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는 주제는 ‘집’이다. ‘창작집단 유리’의 <우리의 집>은 그 대표적인 예시다. ‘안전한 집에만 머물러 달라’는 보건당국의 메시지에, 반대로 ‘안전한 집’을 가질 수 있는 사회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해 이 시대에 집이 갖는 의미에 대해 탐구하며, 다양한 가구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다룬다. 전자음악팀 ‘COMMA’는 <나의 사랑하는 집>이라는 공연을 통해 관객에게 직접 질문을 던진다. 집에 관한 설문을 현장에서 받아 이를 바탕으로 즉흥 작곡을 펼치는 인터랙티브 전자음악 공연이 진행될 예정이다.

강신우 작가는 장르를 ‘시간을 견디면서도 보지 못한 것들, 시간을 견디다가 나오게 된 것들’로 소개하며 집에 관한 퍼포먼스 작업을 펼친다. 관객들은 그가 팬데믹 상황 속, 집에서 하던 활동-라디오를 녹음하고 드로잉을 하는 등-을 나누며 예술가의 집이자 발표 공간인 ‘몸소리말조아라센터’에서 그의 활동을 관람하게 된다.‘창작집단 올’은 <비버의 꿈>을 통해 집을 짓기 위해 애쓰는 비버를 보며 집이 가진 의미와 다시 무너질 것을 알면서 예술노동을 이어가는 창작자 자신을 연결한다. 

팬데믹으로 인해 머물러야 하게 된 집과 달리, 극장은 전보다 닿기 어려워진 공간이 되었다. ‘극단 우아’는 <리허설을 리허설하다>를 통해 바이러스 때문에 관객이 오지 못하는 극장에서 공연을 지키는 배우의 이야기를 전한다. ‘소네트18’의 <넌펀저블씨어터>는 코로나 블루에 대해 다루며 함께할 수 있는 장소의 부재를 극장이라는 공간의 의미와 연결 지어 연극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이상하고 아름다운(것처럼 기대되기도 했던) 온라인 나라

 

팬데믹은 많은 이들을 집 안에 가두었지만, 그 안에서도 허락된 하나의 공간이 있었다. 바로 온라인 공간이었다. ‘온라인 공연이 대면 공연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같은 논의가 오갔고, 메타버스(가상세계)가 마치 사회·교육·문화 등의 새로운 대안이 되어줄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였다. 온라인 공간에 대한 프린지 예술가들의 시선은 어떠할까? 삼인칭시점은 영상 스트리밍 공연에서 연극적인 문법과 영화적인 문법이 깨지는 순간에 집중한다. 퍼포밍이 진행되는 공간 안에서 관객은 퍼포머를 눈앞에 두고 각자의 디바이스를 통해 공연의 실시간 스트리밍 영상을 보게 된다. <애매한 불편함2>는 이 아이러니에 집중하며 스트리밍의 기술적 한계인 레이턴시를 작중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아는 듯 모르는 듯’의 <나눠지지 않은 대화들>은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으로 만나 창작 과정을 진행해온 두 무용수의 작품이다. 소통 방식의 변화는 미끄러지는 대화와 오해를 넘어 공존의 의미에 대한 얘기로 이어진다. ‘파인더’는 <논벌쓰데이파티>라는 연극을 통해 SNS 속 과장된 행복과 현실과의 괴리를 적극적으로 다루며, ‘단담’은 보다 나아가 온라인 세계에서 가십으로 소비되는 죽음에 대한 무용 작품<R.I.P>를 올릴 예정이다. ‘이름이 없다’는 합동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를 현실 공간에서 대면하는듯한 연극<세 스트리머>를 선보인다.

‘아트워커스페이스’의 <역전 현실 프로젝트 – 이식과 이식>은 기술과 사람 사이의 소외를 다루기 위해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다. 기억의 코드화를 소재로 연극과 라이브 신디사이징, 설치 등이 결합한 작품이 펼쳐질 예정이다. ‘극단 52Hz’는 메타버스를 작품의 소재로 적극적으로 끌고 와 다시 집에 관해 얘기한다. 연극<모델하우스>는 가장 완벽한 집‘모데-라우스’를 통해 집을 넘어 대안 가족, 미래 가족에까지 닿는 이야기를 상상해보일 것이다.

 

사진2. 삼인칭시점 공연 사진(제공: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전시형 공연에서 퍼포먼스 전시까지 - 다원예술의 흐름 아래

 

팬데믹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이 되었지만 참가작의 주제는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시대 독립예술가들의 다양한 화두를 담는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은 늘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으며, 다원예술이라는 장르의 태동부터 현재까지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축제이기도 하다. 올해 축제의 가장 큰 경향 역시 전시와 공연의 경계를 해체하는 작품의 강세라고 할 수 있다. 전시형 공연, 퍼포먼스 전시, 전시 퍼포먼스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많은 창작자가 선택한 방식은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공간 내에서 관객들이 전시 보듯 관람하는 방식이었다. 객석과 무대의 구분은 약해지고, 자유롭게 각자의 속도에 맞춰 관람하며 작품 감상의 주도권이 관객에게 전이되는 방식을 많은 팀이 선택하였다.

‘류온과 임기택과’는 그 대표적인 예시다. 움직임의 전시화를 표방하며 무용이라기보다 일상적인 움직임을 긴 시간 동안 선보이는 퍼포머를 관람하는 작품<저  계 뭐야 그 계 뭐야 이 계 뭐야>는 일종의 움직임 리서치 전시에 가까운 형태가 된다. 상실이라는 키워드를 배우의 몸을 빌어 표현하는 ‘알리스’의 <상실의 전시> 역시 다섯 명의 퍼포머 사이를 이동하며 관람하는 전시형 퍼포먼스를 표방한다. 위에서 소개한 ‘창작집단 올’과 오브제와 함께 퍼포머가 전시되며 공간이 가진 요소를 감각하고 상호작용하는 ‘Hyph&(하이픈)’의 <공간 가늠자> 역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될 예정이다.

무용과 연극, 시각예술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이러한 경향을 가지고 비슷한 형태로 모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황유택 작가는 지난 해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ARS: 탈(脫)연극>을 기획하며 연극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그때 만난 예술가 등과 함께 ‘황유택, 채종혁, 신용희, 김일경’이라는 팀으로 <ini·tia·tive>라는 사운드 설치 작업을 펼친다. 이에 전시형 연극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연극성의 본질을 탐구하는 시도일 것이다.

‘퍼킨제 쉬프트 씨어터’는 <어둠이있어야빛이있잖아요아그렇다고둠과빛을막구분한다는건아니고오히려그반대로>를 통해 ‘퍼포먼스극’이라는 장르로 전시 형태에 가까운 공연을 펼친다. 작품은 경계에 대해 다루지만 다양한 창작자들이 모여 개념에 대해 논하는 창작과정이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태어남부터 죽음까지 생애주기를 다루며, 극장 곳곳에서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사이를 관객들이 돌아다니며 보는 ‘작은 인간’의 <작은 인간> 역시 공동창작 과정을 중요시한다.

‘콜렉티브 꼼’의 <꼬리풀기>와 ‘시도’의 <시도:방>은 전시형 퍼포먼스를 표방한다는 점, 기존 장르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 작가들의 수평적인 구조와 창작 과정을 중시한다는 점 등에서 위의 특징들을 갈무리한다. 두 작품은 각각 네 명의 작가가 움직임을 비롯한 퍼포먼스를 펼치며 관객과 예술가가 만나는 우연성, 창작자의 즉흥성 등에 초점을 맞추는 작품이 될 것이다.

 

사진3. 민수민정 공연 사진 (제공: 서울프린지페스티벌)

 

 

‘뉴미디어’로 뭉뚱그려지던 시대를 지나, 전자 음악과 프로젝션 맵핑 공연의 강세

 

사진이 한때 미디어아트로 불렸다는 얘기는 흥미롭다. 미디어아트라는 것이 특수한 양식이 아닌 당대의 신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예술 양식을 통칭하는 표현이라는 걸 보여주는 예시이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가 올드 미디어가 되어 그만의 문법을 만들어가는 요즈음, 머지않아 올드미디어가 될 매체가 무엇일지 가늠하기에 프린지는 적합한 다원예술축제일 것이다.

올해 참가작 가운데엔 전자음악과 프로젝션 맵핑을 통한 영상 작업을 연결한 참여작이 두드러지게 보인다. ‘COMMA’는 즉흥성이 강한 전자음악을 통해 즉흥 작곡과 프로젝션 맵핑, 전시가 결합한 형태의 공연을 선보이며, ‘클라랜드’는 <Cosmic Festival>에서 프로젝션 맵핑과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광활한 우주를 표현하는 작업을 펼친다. 신디사이저를 활용한 사운드스케이프 위에 클라리넷 등 클래식 악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음악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민수민정’은 위의 팀 가운데 가장 밴드 사운드에 가까운 음악을 바탕으로 공연을 펼치며 프로젝션 맵핑과 설치작업이 동반될 예정이다. 올해는 <남겨진 것들을 사랑하기로 해>라는 제목으로 사운드 아트 및 오브제 전시와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AKZL’역시 설치작업과 프로젝션 맵핑, 음성을 활용한 사운드 아트, 그리고 행위예술까지 합쳐진 <인터-뷰>라는 작품을 발표할 예정이다. 타인과의 관계와 소속에 대한 고찰을 다룬다. ‘글리쳐스’는 <자가당착>을 통해 불편한 진실을 중심으로 인간의 모순적인 지점을 다룬다. 공간 전체와 마네킹 등 오브제를 맵핑해 전시하는 다원예술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예술적 자유를 위해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은 70여 팀의 독립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만큼 본 프리뷰는 축제의 아주 일부만을 조명할 수밖에 없었다. 지면의 한계로 다루지 못했지만, 페미니즘과 퀴어니스를 다루는 리플렉션·프로젝트 원스트·연극집단 공외·나희경·크리스탈 젬스 등의 작업과, 고전을 재해석한 곡두환영·창작공간 너희집·희희·휴찬·박웅·창작집단 지구 옆 동네·더블체크·창작집단 모닥,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해 다루는 무해, 예술집단 너테, 프로젝트 팀 유희, 극단 현 등 다양한 작품들을 축제에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시간이 1년 반 넘게 지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삶은 계속되었고,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직장에 나가 일을 하고, 사회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사람들을(온라인이든 안전한 공간에서든) 마주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도, 2020~2021년생 아이들이 태어나기도 하였다. 예술가들이 작품을 만드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직업적인 소명을 다하고, 자기표현 욕구를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는 일은, 마치 멈춘 것 같은 세상 속에서도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그럼에도 계속할 수 있게, 관객들과 안전하게 만날 수 있게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의 소명이었을 것이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은 수많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등에 업고 계속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예술적 자유를 위해서.

 

필자소개

김민수
: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인디언밥민수민정밤의 소요블루프린트스튜디오1992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21
The 24th Seoul Fringe Festival

• 

• 

• 

• 

• 

prev next

 

축제기간 : 08.04 ~ 08.29
축제장소 : 서울시 마포구, 서대문구 일대 민간문화예술공간 10곳
(1M SPACE, 몸소리말조아라 센터, 아트스페이스 블루스크린, 연희예술극장, 예술공간+의식주, 예술공간도화, 이너프라운지, 이행성 극장, 플랫폼 팜파, 플레이스막1)

자유참가팀 : 약 80여개 문화예술단체/개인 참가

 
기획프로그램 
기획전시 <프린지 블랙리스트를 말하다 2 : 친애하는 자유에게>
친환경 축제를 위해 ECO FRINGE WEEK
- 독립예술의 이슈와 현안을 살펴보는 <독립예술집담회 11th with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 <인류세에 대처하는 예술가이드> 워크숍
- 세 명만 모여도 포럼, 소규모 예술 수다 <올모스트프린지 : 마이크로포럼>
공연을 넘어선 예술적 소통 <관객과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