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코미디캠프 2021: 어린 시절>

 

 

들어서며 : 어린 시절의 폭소 클럽

‘빠바밤~’하는 기타 연주가 일요일에 완결을 선언하고, 자고 일어나 지긋한 월요일을 맞을 생각에 괴로워한 적 있다면 여러분은 아마 저와 동년배라는 이야기일 겁니다. ‘밤바야~’라던지 ‘우리는 우비 삼남매’, ‘분위기 떨어지면 다시 돌아온다.’ 같은 유행어에 폭소하신 적 있으시잖아요. 폭소라고 하니까 폭소클럽이 생각나네요. 여러분은 폭소클럽이란 코미디 프로그램을 알거나 기억하시나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개그콘서트보다 폭소클럽을 더 열심히 챙겨보던 그런 아이였어요. 분명히 다 큰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스탠딩 코미디인데도 어린 저는 그게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특히 재밌던 이야기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해줬던 기억이 나네요. 그때부터였을까요. 친구들과 멀어지기 시작한 게.

 

글_임기택 

 

안녕하세요 저는 <코미디캠프 2021 : 어린 시절>의 리뷰를 쓰게 된 임기택입니다. 공연에서 배우분들이 대부분 이렇게 인사를 하면서 공연을 시작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한번 시작해봤습니다. 저는 작년에도 <코미디캠프 2020 : 틈>을 관람했습니다. 2020이 붙어있었지만 사실 이게 숫자가 바뀌면서 이어질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는데 어느새 2021을 달고 예매가 진행되길래 작년에 비해서 어떤 게 이어지고 어떤 게 달라졌을지 궁금해하면서 혜화로 향했어요. 극장에 들어서니까 작년에도 보았던 배우분들이 입구에서부터 계시는데 괜히 반갑다고 막 티를 내고 인사를 하고 그러기엔 민망해서 삐걱삐걱하면서 빈자리에 앉았습니다.

 

 

공연사진1. 촬영 이종우 제공 지금 아카이브

 

신강수 : 스타 되기와 팬 그만두기

 

곧 조명이 정리되고 첫 번째 배우인 신강수 배우가(이하 신) 나타났어요. 어둠 속에서 홀연히 나타난 신은 맞은편 어둠 속에 숨어있던 자신의 ‘팬’들을 소환하더라고요. 신의 장점은 뻔뻔하게 혹은 당당하게 밀어붙이는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기세라고 할까요. 조용히, 하지만 확실히 밀어붙이는 기세에 객석에 앉아있던 관객 중 2020년에 신촌극장에 있던 ‘팬’과 그렇지 않은 ‘일반인’의 구분은 공연 시작의 어색함과 함께 밀려 사라집니다. 어쩌면 팬과 일반인을 같은 위치로 변모시키는 이 작업은 마지막의 복선 같기도 하네요. 사실 복선이라고 할 것도 없이 신은 곧바로 팬클럽의 해체를 선언합니다. BTS가 아닌 무명 배우, 팔리지 않는 공연, 인정받지 못하는 타자. 어딘지 낯익은 이 모습이 사실은 우리 모습의 일부분이란 사실에 안타까움과 반발심이 일어나죠. 맞아요. 우리는 아이돌의 덕후일 순 있지만, 우리가 아이돌은 아니잖아요. 물론 우리를 좋아해 주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돌이 아니죠. 어떤 작품에도 한 명의 팬은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그 작품이 살아남아 계속 이어지는 것을 보장해주는 건 아니니까요. 이런 안타까운 사실을 뒤로하고 일단 신은 팬과 일반인들을 이끌고 어린 시절로 돌아갑니다. 어린 신은 친구들과 친해지고자 열심히 노력해요. 그런데 이 대목에서 신이 뺑코 이홍렬을 따라 콧구멍에 동전을 집어넣고, 개인기를 준비하면서 노력하는 동안 친구들은 신과 친구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아, 물론 신의 입장에서 하는 얘기니까 그럴 수 있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복되고 일방향적인 구애는 조금 가슴 한편이 짜르르해지죠. 우리도 비슷한 경험이 있잖아요. 처음 학교에 간 날,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반에 있던 친구들이 ‘우와아아’하면서 여러분에게 집중하고, 여유롭게 들어서는 여러분에게 무수한 악수의 요청이 쏟아지고 이러진 않았잖아요? 우리 모두 친구들과 ‘친구’가 되기 위해서 이것저것 친구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준비하고 노력하고 그랬잖아요. 그래서 신도 곧 수첩을 꺼냅니다. 69가지의 개인기가 적힌 수첩을 꺼내고 관객에게 다가가요. 이름도 묻고, 고향도 묻고, 인사도 하고, 개인기도 보여줍니다. 재밌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 개인기들을, 신은 열심히 펼쳐 보입니다. 할당된 시간 동안 5개도 채 못 보여주는데 69개씩이나 준비하는 열심은 단순한 극화로 보이진 않아요. 팬클럽도 해체하기로 한 마당에, 스타 되기를 그만두기로 한 마당에 신은 계속해서 개인기를 이어나갑니다. 이제 극장에는 스타가 아닌 배우와 팬이 아닌 일반인들만이 남았는데도요. 일반인들만이 남은 극장에서 신은 스타가 되어 살아남는 데 실패합니다. 하지만, 신은 이 실패를 교두보로 과거 자신의 팬이었던 관객들과 새로운 관계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꼭 스타여야만 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스타가 되지 않아도 친구는 남아있으니까요. 그래서 신은 기꺼이 팬클럽을 해체합니다.

 

김은한 : 부조리와 실패를 넘어서 도달한

 

그리고 나면 김은한 배우(이하 김)가 무대에 나타납니다. 김의 코미디를 아주 범박하게 얘기해보자면 부조리극과 맞닿아 있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다른 인물로 분하거나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고, 불친절한 상징과 은유가 넘쳐나는데 관객들이 메타포를 하나하나 채 곱씹기도 전에 머리에 자라난 벚나무를 뽑고 계단을 빨리 오르는 사람이 됐다가 유체이탈을 감행합니다. 그래서 자칫 이것이 코미디가 맞는지 의심스럽기도 한데 웃깁니다. 그것도 부조리하게 진행되는 맥락이 웃긴 게 아니라 세세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웃음이 피어나요. 도대체 어제 죽은 친구는 누구고 오늘 아침에 연락한 친구는 누구며 죽은 친구를 들고 있는 친구는 또 누구인지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죽은 나에게 가서 제가 여기 있는 죽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부끄럽다.’고 말하는 순간의 가치 전복이나 지킬 앤 하이드의 ‘대결’ 넘버 장면처럼 김과 어린 김을 능숙하게 넘나드는 1인 배역 전환을 보는 관객은 참지 못하고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김의 코미디가 지엽적이라는 말도 아닙니다. 구두쇠 머리에 난 구멍과 비어있는 무덤, 티라노사우루스가 아닌 호랑이, 죽음을 깨닫는 귀신이 각각의 톱니바퀴로 돌아가면서 김의 코미디를 작동시키는 과정을 깨닫는 순간에는 여러분도 무릎을 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연장을 나서서 복기할 때나 가능한 깨달음이고 객석에 앉은 관객은 혼란스러운 채로 웃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웃기면서도 생각해보면 왜 웃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잘 모르겠지만 일단 웃고 보는 거죠(그만큼 재미가 있으시다는 거지). 그런데 김의 코미디가 변칙적으로 전개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사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건 어쨌든 이야기는 있다는 거잖아요? 차근차근 진행되는 서사에서 김은 어린 시절의 김과 마주해요. 어린 김과 마주한 김은 분명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서 우선은 다른 이야기들을 시작합니다. 운동이 싫은 아이엠 그라운드도 하고 갖가지 동물이 나오는 ‘이건 뭐’ 게임도 합니다. 이유를 명백하게 밝히고 시작하지만 왜 굳이 이런 게임을 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운 게임을 하다가 자연인 김도 다시 불러오고, 귀신 이야기까지 합니다. 정말, 다시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흐름이에요. 알 수 없지만 웃긴 이야기들을 끝마치고 나면 드디어 김은 패션쇼 사회를 앞두고 있는 금빛유치원생 김과 마주한 채 준비해온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어린 김의 시간의 상속자인 김은 어린 김의 실패를 알고 있어요. 그 뒤에 찾아올 더 많은 실패도 역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어린 김의 모든 시간을 물려받은 사람이니까요. 김과 어린 김의 차이점이라면 김은 실패를 지나온 사람이고, 어린 김은 실패를 앞두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김은 앞선 그 어떤 장면보다 부조리할 수 있지만 어린 김에게 실패 이후를 이야기합니다. 실패 이후에 있는 김, 실패를 거쳐 도달한 김을 아직 실패하지 않은 어린 김에게 이야기합니다. 신과 김이 공통의 어린 시절을 공유한 것도 아닐 텐데 둘의 서사에서 반복되는 실패를 포착하는 순간 새삼 이 공연에서 실패가 갖는 함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신에게 실패가 관계 혹은 성취에 대한 목표에서 관점의 변화를 일으키는 변곡점으로 작용한다면 김에게 실패는 이미 지나온 것들, 현재의 나를 구성해낸 요소로 작용하죠. 시간상으로는 실패의 시점을 앞으로 옮기지만 실패에 대한 관점은 오히려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래서 끝내 마지막까지 김은 대사 암기에 실패한 배우를 소환하고 코미디를 성공시켜요.

 

공연사진2. 촬영 이종우 제공 지금아카이브

 

안담 : 사회화, 꼭 해야만 하나요?

 

안담, 안담, 안담. 안똥이 아닌 안담(이하 안). 중간에 언뜻 언급되듯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요? 안은 말을 정말 잘합니다. 김의 코미디가 무분별해 보이는 파편들이 기관화되면서 구조의 힘으로 작동한다면 안의 코미디는 음성과 화법을 연료로 작동하는 것 같아요. <2020 코미디 캠프 : 틈>에 이어서 여전히 연예인처럼 등장하는 안은 가장 철저하게 전형적인 스탠딩 코미디의 형식을 따릅니다. 아까 들으셔서 아시겠지만 신은 관객들과 직접 이야기를 해요.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관객 중에 팬을 소환하자마자 해체 선언을 한단 말이죠. 그래서 팬이었던 관객들은 팬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나는데, 그러면서 팬이 아니었던 일반인 관객들조차도 일반인의 자리에서 조금 벗어납니다. 이 사람들은 오히려 팬 쪽으로 조금 더 가까워져요. 그러니까 단순히 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조금 특별한 관계가 된 거죠. 김은 어땠나요? 김은 관객들과 직접적으로 이야기도 잘 하지 않아요. 김은 어린 김이랑 이야기하고, 죽은 친구와 이야기하고, 관객과 이야기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무대 위에 자신과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김의 무대가 진행되는 동안 관객들은 무대 앞에서 보는 게 아니라 전시관 너머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습니다. 그런데 안은 그냥 관객들에게 이야기해요. 신처럼 특별히 무슨 상황을 가정하지도 않고, 김처럼 어떤 인물을 적극적으로 소환하지도 않아요. 그냥 자기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대신에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에 웃긴 구석이 어디 있겠냐는 듯한 능청스러움과 스스로도 웃음을 참을 수 없는 이 이야기에 어떻게 안 웃을 수 있겠냐는 듯한 능청스러움을 번갈아 가며 늘어놓아요. 그래서 관객들은 신과 김의 무대와는 또 다른 위치에서 안의 이야기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런데 능청스럽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풀어서 그렇지 사실 안의 이야기는 상당히 짧은 호흡으로 진행이 됩니다. 분명히 웃음이 나타나는 부분과 웃음에 도달하기까지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부분이 구분되는데 그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부분이 지루하지 않도록 간결한 호흡으로 이으면서 급박해지지는 않게 능청을 견지해요. 다시, 안은 이런 태도로 이야기합니다. 나는 지금 엄청 웃긴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뿐이라고요. 그렇게 하나의 이야기가 웃음으로 매듭지어지면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빠른 호흡으로 재빨리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관객들은 언제 이야기가 전환됐는지도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또 금세 차곡차곡 쌓이는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이야기가 맹목적으로 웃음을 위해서만 기능하다 소진되는 건 아니에요. 웃음의 여운처럼 이야기의 잔상을 차근차근 쌓아갑니다. 반복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타나는 어린 안은 분명히 사회화가 되지 않은 ‘특별한’ 아이입니다. 사회화가 안 된 부모와 함께 지리산에서 스님을 이웃 삼아 자라고 예쁘게 놀림받는 연습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이상한 소리만 내요. 시간이 지나 안은 결국 사회화에 성공하고 수치심을 학습하는데 이번에는 오히려 수치심 때문에 기껏 청소 도우미를 불러놓고도 본인이 청소를 먼저 끝내는 어른이 됩니다. 그러고도 청소 도우미에게 보낸 문자에 사소한 오타를 부끄러워해요. 수치심을 모르는 안과 수치심을 너무 알게 된 안의 모습에서 다시 사회화에 ‘실패’한 모습이 보이네요. 그러면 안은 이 실패를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실패를 딛고 일어설까요? 아니면 실패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까요? 실패에 허덕이는 안에게 지하철의 꼬마 아가씨가 나타납니다. 안은 꼬마 아가씨의 가르침을 빌려 이렇게 얘기해요. 그래도 괜찮지 않냐고, ‘물론 그러면(성공하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실패하더라도)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또 아니지 않냐고’요. 이렇게 안은 실패를 가볍게 흘려요. 실패는 이제 별 일 아닌 게 돼요. 자기소개로 내 고향의 봄을 부르는 유치원생이면 어때요. 헤테로와 상호작용 하고 싶지 않은 퀴어면 어때요. 아침에 일어나서 똥꼬 깨끗이 닦았다면, 그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게 아니겠어요.

 

공연사진3. 촬영 이종우 제공 지금아카이브

 

 

배선희 : 사무치게 실패해도 괜찮아

 

<코미디캠프 2021 : 어린 시절>에서 가장 궁금했던 부분 중 하나는 2020년에 비해 한 명 더 늘어난 출연진이었습니다. 2020년부터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던 배선희 배우(이하 배)가 이번에는 음악감독뿐 아니라 배우로도 직접 출연을 했거든요. 개인적으로 2020년의 코미디 캠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안이 신과 김을 본인의 무대 위로 불러들이고 정작 본인은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장면이었거든요. 어떤 음성 대사도 없이 진행되는 장면을 채우던 음악을 만든 분의 코미디는 어떨지 너무 궁금했습니다. 신과 김과 안의 무대를 거쳐 드디어 배의 무대 순서가 됐어요! 앞선 무대를 마친 안이 퇴장하고! 조명은 신비롭고 검푸른 색으로 바뀌고! 아마도 스태프인 것 같은 사람이 무대에 무려 마이크 스탠드를 설치하고! 의자에 앉더니? 조명이 기본색으로 바뀌고, 배가....코미디를 시작했습니다. 스태프인 줄 알았던 사람이 배였더라고요. 그렇게 허무하게 배의 코미디가 시작됐습니다. 어둠을 가르는 탑 조명도, 정적을 찢는 소리도, 흥겨운 춤도 없이요. 이미 한 번 범박해진 경험이 있으니 한 번 더 범박하게 얘기하자면 배의 코미디는 일종의 안티-허무개그였습니다. 뭔가 있을 것처럼 힘껏 꾸며내 놓고 정작 아무것도 아니거나 아무것도 없다는 빼기로 허를 찌르는 게 허무개그의 문법이라면 배의 코미디는 무엇이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기 어려운 지점에 능숙하게 무언가를 더하는 문법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빼거나 더하거나 관객들은 똑같이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허를 찔린 채 폭소를 내뿜습니다. 특히 더하는 박자감이 일품이더라고요. 원래 진행되던 이야기의 전체 템포는 유지하면서도 빠른 변박으로 개그를 더하고는 원래의 박자로 돌아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하던 이야기를 이어가고, 관객들은 빠른 박자만큼 빠르게 웃고 남은 웃음의 에너지만큼 더 배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4분의 4박자 곡 사이사이에 8분음표 혹은 16분음표 같은 코미디를 집어넣으면서 배는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어째서일까? 어째서일까? 너무 많이 좋아해서 사무치게 돼버린’ 음악에 대해서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배는 피아노 콩쿨에서는 부모님과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고(선생님의 커리어도 저버리고) 한 음도 치지 못하고 학교 가창 과제였던 ‘고향의 봄’은 끝끝내 고음을 부르지 못하고 엉엉 울고 맙니다. 네, 배마저도 어김없이 실패의 순간을 겪어요. 좋아하지만, 실패하고 실패한 배는 갑자기 모니터를 가져와 관객에게 인어공주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렸을 때 처음 인어공주를 보고 압도되어서 모든 대사와 노래를 다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봤다고요. 그래서 배가 보여주는 장면은, 빌린 비디오를 반납할 때까지 몇십 번을 돌려보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봤던 인어공주에서 가장 압도됐다던 장면은 정확하게 배의 장면과 겹칩니다. 사무치도록 인간과 인간 세계를 좋아하지만 그런 마음을 허락받지 못해 인간 세계로 가는 데 실패한 에리얼이 굴하지 않고 다시 좋아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 두 번이나 실패한 어린 시절의 배는 이 장면에서 뭐라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벅차오르고 에리얼이 실제로 자신에게 오는 것만 같았다고 고백해요. 그리고 배는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곡을 부릅니다. 노래 제목은 ‘혼자 좋아해도 괜찮아’. 아무 꾸밈없이 등장했던 처음처럼 실패 그다음을 이야기하는데도 어떤 수식이 없이 이렇게 적나라하게 이야기합니다. ‘혼자 좋아해도 괜찮아’라고요. 배가 실패를 다루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실패가 적용되는 길에서 옆길로 틀어버리거나 실패를 과거로 수습하고 다시 미래를 바라보거나 실패의 가치를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자신의 옆으로 불러 앉혀요. 그리고 계속해서 음악을 좋아하는 배의 옆에 불려진 실패는 덩치가 한없이 쪼그라듭니다. 배에게 어떤 의미와 영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담백하게 실패로만 존재해요. 언뜻 안과도 비슷해 보이지만 안의 대응이 ‘실패 좀 한들 뭐 어때?’라면 배의 대응은 ‘실패해도 나는 이게 계속 좋아.’인 거죠. 그런 배 옆에서 실패가 어떤 무력을 행사할 수 있겠어요. 사무치도록 좋다는데.

 

공연사진4. 촬영 이종우 제공 지금아카이브

 

 

나서면서 : 우리의 어린 시절은 끝이 없고 같은 실패를 반복한다

 

네 배우의 코미디를 리뷰하면서 ‘왜 이 코미디의 부제는 어린 시절이었는데 계속해서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사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인 것 같기도 해요. 어린 시절은 모든 면에서 경험치가 낮은 시절이잖아요? 그때 겪었던 실패는 대부분 살면서 처음 겪는 실패들이고, 그만큼 더 크게 남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그 실패의 시절과 지금이 단절됐느냐 하면 여전히 우리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잖아요. 일요일의 완결을 선언하던 기타 연주는 더 이상 들을 수 없게 됐어도 여전히 ‘월요일 좋아~’ 같은 노래에는 공감할 수 없는 어른이잖아요. 그러니 어린 시절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실패의 원형들을 처음, 그리고 계속 겪을 수밖에 없는 실패의 시절이기도 한 거죠. 그러고 보니까 어디까지가 어린 시절인지도 헷갈리네요. 내일에 비하면 오늘의 나도 어린 시절인 거 같고 다음 주말을 생각해보면 그때도 계속 어릴 것 같고, 여러분도 그렇지 않나요? 아마 그럴 테죠? 여전히 어린 시절일 여러분들은 앞으로도 겪을 실패를 어떻게 대할 예정인가요? 제 리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소개

임기택 
: 게으르게 움직이고 게으르게 씁니다.
꾸준히 움직이고 꾸준히 쓰려고 노력합니다. 

포스터1. 출처_지금아카이브 페이스북
포스터2. 출처_지금아카이브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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