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3. 00:25ㆍFeature
축제가 사라진 자리의 사람들
1. 고양호수예술축제 최예지PD
당연한 얘기처럼, 지난 2년 간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예술축제들이 취소되었습니다. 첫 해는 무력했고, 올 해는 마치 거대한 희망고문 속에 있는 것도 같았지요. 특히 공공공간에서 열리는 축제는 더욱 취약했습니다. 재난은 가혹했고, 취소가 당연하다는 목소리는 더욱 매서웠습니다. 인디언밥은 취소된 축제 뒷편의 사람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축제기획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행 과정과 기획노동에 대해, 기획자로서의 삶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었고, 누구를 만나지 못했고, 무엇을 상실했는지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를 한 곳에 모아주던 축제가 사라진 자리에 어쩌면 새로운 연대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
인터뷰이 : 최예지
인터뷰어 : 김민수, 채민
정리, 글 : 김민수
국내 거리예술계에서 일하는 사람 가운데 고양호수예술축제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 2008년 시작되어 일산호수공원을 배경으로 진행되어온 고양호수예술축제는 여러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서울거리예술축제와 함께 매년 가을 거리예술계의 큰 축제로 역할을 해왔다. 특히 호수공원이 가진 풍광을 배경으로 그만의 매력을 가진 축제로 자리 잡아 왔다.
2019년엔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2020년엔 코로나19로 취소되기도 했지만, 2021년엔 축제의 영문명을 ‘Goyang Street Arts Festival’로 바꾸고, 5주 동안 ‘마주하는 우리’, ‘치유와 위로’, ‘극복하는 일상’ 등의 테마를 정해 한 달에 걸쳐 축제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관람객의 분산과 새로운 축제 장소 발굴을 지난해부터 준비해온 만큼 희망을 많이 걸기도 하였다.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정책이 연장됨에 따라 1-2주 차는 취소시키더라도 3-5주 차는 가능하지 않을까 믿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9월 14일 전체 취소를 결정하고 각 주 차별 주요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를 비대면 영상 콘텐츠 형태로 만드는 것으로 축제를 마무리 짓게 되었다. 듣기만 해도 속상한 과정 가운데 기획자들은 어떤 고군분투를 해왔을까? 최예지PD를 만나 짧은 공지사항 뒤에 가려진 과정들을 나누었다.
고양은 재단 직원이 호수예술축제를 쭉 끌고 가고, 기간이 임박했을 때 PD들이 계약직으로 붙는 형태죠?
네, 여기는 재단 직원과 4월에 합류한 PD가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면서, 중간 중간에 PD들을 뽑는 형태인 것 같더라고요. 저는 7월에 들어갔고요. 근데 들어가서 놀랐던 게, 제 첫 출근 날이 공식참가작 선정 PT 날이었어요. 그러니까 축제를 두 달 남긴 시점에서 이제야 선정을 하고 있던 거죠.
그리고 여기는 따로 공연팀/홍보팀/운영팀으로 나뉘어있지 않고, 축제 진행 상황에 따라 다 함께 나눠서 하는 구조였어요. 각자 담당하는 업무를 크게 나누긴 했는데 거의 고정되지 않다 보니 자주 담당자가 달라지고, 이게 취소 과정에까지 이어졌어요.
특히 계약직 PD들은 그룹웨어에 접근 권한이 없다 보니, 예산이 어떻게 책정됐고 어떤 기획안을 올렸는지 알지 못한 채로 일을 해야 했어요. 별도의 매뉴얼 없이 전임자인 계약직 직원들이 정리해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축제를 준비하는데, 갖고 있는 자료는 2019년부터의 자료고, 그해부터는 축제를 실행하지 못했다 보니 준비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었죠.
하나의 축제를 준비하는 팀으로서의 시스템과 매뉴얼의 부재로 고생을 많이 한 게 느껴지는데요, 내부의 분위기는 어땠는지도 궁금해요.
지역문화팀이 타팀과 비교해서 사업이 큰 데다 많고 대외적으로도 얽혀있어서 선호하는 편이 아니에요. 팀장님을 제외하곤 다 이 팀이 처음이고요. 그러다 보니 사업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요즘 같은 때에 축제를 어떻게 하냐, ‘예지씨, 열정을 좀 가라앉혀요’는 얘기를 많이 듣기도 했고요
저는 대학교 4학년 때 거리예술을 접하고 너무 좋아서, 그 이후에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자원활동가를 하면서 진로를 정한 거였거든요. 그래서 지난 3년 동안 거리예술 쪽에서 일하기 위해 노력을 해왔어요. 그리고 드디어 거리예술축제에서 일하게 됐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분위기가 이상한 거예요. 일도 진척이 많이 안 된 데다 작년에도 일하시고 이 분야를 잘 아시던 4월부터 일하시던 분은 퇴사하고...
특히 축제가 한 달 반밖에 안 남아서 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다들 지켜만 보는 분위기였어요. 이전 자료들을 찾아보면서 운영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을 세워놓을 수는 있잖아요. 근데 다들 의지가 없어서 저 혼자 애쓰고 있는 거죠. 애초부터 할 생각이 없었던 것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요. 작년에도 취소가 됐었으니까 계약까지는 열심히 했지만, 그 뒤로는 어차피 거리두기도 연장될 것 같으니 다른 계약직 직원들도 함께 동화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취소까지의 의사결정 과정도 여쭙고 싶어요.
의사 결정 권한이 계약직 PD들에게는 아예 없다고 보시면 돼요. 담당자님이 팀장님이랑 얘기하고 팀장님이 또 시청이랑 얘기를 했겠죠. 하지만 그런 내용은 밑으로 절대 떨어지지 않고, 간략화된 결과만 내려오는 거죠. 사실 실무자로서는 다른 방안으로 안 가고 취소할 거면 빨리 취소를 해서 피해를 줄여야 하는 상황인데, 또 시청에서는 실적이 없으니까 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어요. 근데 대책은 없고.
그럼 시청에서는 오히려 축제를 진행하자는 의견이었나요?
네, 문제는 거리두기 4단계에 맞춰서 할 수 있는 대책이 없는 거였어요. 축제가 3주도 안 남은 시점에서 그냥 취소밖에 답이 없는 거죠. 그런데 저는 사실 영상으로든 공연장으로 들어가든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재단은 공연장이 있으니까 로비에서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들 의지가 없으니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주말에 대관이 다 잡혀있다면 평일에라도 하면 되고, 이것도 어렵다고 하면 영상도 생각했는데, 공연 송출도 아닌 하이라이트 영상을 제작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처음엔 공연 영상이 어려우면 인터뷰 영상이라도 담고 싶었어요. 우리가 축제는 못 했지만, 이런 팀들과 어떤 작품을 보여주려 했고, 어떤 노력을 했는지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했어요. 결과적으론 그냥 공연단체들에게 작품 영상을 받아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죠. 저는 그게 왜 하이라이트 영상인지도 모르겠고, 아티스트마다 영상 스타일도 다를 텐데 이걸 그냥 모아서 내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는 거예요. 하지만 어쨌든 업무 지시를 받았으니 지난주부터 편집한 영상을 올리고 있어요.
축제 예고 영상이 되어야 했던 게, 축제는 취소되고 하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나가고 있는 거군요.
네 사실상 팀 소개 영상이죠. 내가 가서 인터뷰 영상을 찍어올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하고 싶었는데, 다들 축제가 취소된 마당에 ‘쉽게 가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어요. 계약직 직원들 가운데 거리예술이 좋아서 온 친구들이 거의 없거든요. 일련의 과정 때문에 다들 반응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같은 식이고, 나중에는 저만 너무 혼자 화내고 있으니까 제가 약간 유별나다는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게 심적으로 힘들었어요.
축제 취소 이후에 공연 관련된 정산은 어떻게 되었나요
보통 축제 몇 개월 전에 취소일 경우 얼마, 며칠 전에 취소일 경우 얼마로 계약서에 적잖아요. 근데 올해 저희는 그렇게 안 하고 공정표라는 걸 써서 계약 날짜로부터 공연일 까지 주 차별로 준비 단계 / 실행 단계 / 연습 단계 / 리허설 / 셋업 / 공연 등으로 기준을 잡았어요. 그리고 중간에 취소가 됐을 때 취소를 통보한 날짜를 기준으로 그 해당하는 단계에 맞는 퍼센티지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했어요.
실비 보상 방식은 공연단체가 돈을 지급한 것에 대해 증빙을 하면 퍼센티지 상관없이 돈을 지급하는 건데, 그게 사실상 증빙이 어렵잖아요. 사전 제작 외에는 대개 단체들이 공연료를 받아서 지급하는 방식이니까.
그런데 막상 저희가 정산 자료를 만들어서 계약부서에 넘겼더니 인정이 안 된다는 거예요. 작품 준비나 실행에 대한 증빙자료를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요구하는 거죠. 양쪽 다 이런 적이 처음인 건 알겠는데, 계약서 작성 당시에만 해도 대략적으로라도 얘기해줬으면 미리 공연단체에게 전달했을 텐데 갑자기 이제 와서 그러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사진도 주차 별로 다른 사진들을 넣었는데 “인원이 안 맞는다”, “옷이 똑같다”라고 하는데, 옷이 똑같을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리고 그건 주려고 하는 거잖아요.
맞아요, 우리가 어떻게든 공연료를 주려고 만든 제도인데…. 계약 부서를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에요. 어쨌든 감사를 생각해야 하고 지적이 나왔을 때 답변 할 수 있어야 하니까 이해는 하는데, 너무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는 거죠. 결과적으론 담당자님이 계약담당자와 감사부서를 한데 모아 토론을 해서 처음에 말한 공정표의 방식으로 잘 해결이 됐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예술가들도 정산 과정에서의 문서 업무와 절차로 인해 스트레스가 많았을 거예요.
이런 과정을 통해 느낀 건 사업에 대한 이해나 전문성을 가진 실무자가 축제 사무국에 없다는 거였어요. 계약직 PD들이 11개월까지는 일할 수 있는데, 그 이상이 되면 재계약을 다시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기획인력에 전문성이 없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계약직 직원은 매번 바뀌고, 아는 사람은 없고, 반복되는 거죠.
예지PD가 너무 애쓴 게 느껴지는데요, 어떤 걸 지키고 싶어서 이렇게까지 노력했는지 묻고 싶어요.
예술가와 관련된 것들은 다 지키고 싶었어요. 저는 여기에서 일하기 전부터 예술가분들의 정말 공연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느꼈거든요. 특히 다른 데에선 어떻게 해서든 하는데, 우리는 할 생각이 없으니까 취소가 됐다고도 느꼈어요. 메타버스를 구축해서 영상을 송출하든 다양한 방법을 꿈꿨는데 쉽지 않았죠.
그리고 위의 과정들을 거치면서 계약금조차 보장이 안 되는 게 많이 느껴졌어요. 이 지경이 되도록 다들 뭐 했나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요즘은 좀 약간 사명감이 생긴 것 같아요. 이 업계를 지켜야 하겠다는 사명감이요. 우리나라는 공적 자원 외에는 예술가들이 살아날 방법이 거의 없잖아요. 그나마 미술 쪽은 작품 판매라도 가능한데 공연 쪽은 무대 올라가는 거 아니면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메세나 쪽에 관심도 갖게 되고 예술가들이 살아남을 길을 모색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을 해요.
너무 바빠서 정신없었을 것 같은데, 혹시 심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동료들끼리 서로를 돌보는 게 가능하다고 느꼈나요?
축제팀 안에서는 없던 것 같고, 저희 팀의 다른 사업하는 친구들이랑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티스트분들과 얘기를 하면서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저는 너무 죄송한데 오히려 저한테 수고 많았다고 위로를 해주시니까…내가 뭐가 한 게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솔직히 내년에 다시 와서 잘해보고 싶어요. 물론 지금 고양에선 11개월 밖에 일을 못 한다고 하니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축제가 왜 좋아요?
뭐 뻔한 얘기지만 일상의 공간에서 비일상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떤 공간에서 그때의 추억이 떠오르는 게 너무 좋아요. 최근에 광화문을 지나가는데 서울거리예술축제 할 즈음인데 싶고, 어디에서 뭘 했는지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이게 거리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축제가 가진 힘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제가 자기 소개할 때 하는 말이 항상 있는데요, “문화예술은 사람들의 추억이 될 때 큰 힘이 되어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안에서 즐거움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문화예술 기획자란 사람들에게 그 첫걸음을 선사하는 사람으로서 중요한 업무를 담당합니다”라고 얘기하거든요. 특히 공연장에서보다 일상의 공간에 예술이 들어갔을 때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전공도 그렇고 거리예술을 만나기 전까지 예술들이 다 실내 안에만 이루어지는 줄 알았는데 이걸 거리에서 마주쳤을 때의 느낌은 정말 신선했거든요. 어쩌자고 이렇게 사랑에 빠져가지고. 내가 진짜.
“어쩌자고 이렇게 사랑에 빠져가지고”라는 말엔 웃음기가 가득하였지만 그만큼 헛헛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녀는 사회초년생으로서 처음 합류한 축제 사무국에서의 당혹스러운 경험을 풀어내며 자주 흥분하며 속상함을 토로하였다. 그것은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화 같아 보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도 우린 한참을 시의원 출마와 문체부 장관에의 야욕을 나누었다. 농담처럼 주고받는 얘기들엔 어떤 설움이 묻어있는 것도 같았다. 이해할 수 없는, 폭력적인 세상을 헤쳐나가며 받은 답답함의 산물일 것이다. 문득 본 인터뷰 시리즈의 시작을 그녀와 함께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적고 싶다. 그녀가 가진 커다란 사랑에서, 그 무력함과 속상함에서 시작해 다른 기획자들의 목소리를 엮고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최예지와 김민수
최예지
장르 가리지 않고 문화예술 전분야를 좋아하는 사람. 보고 싶은 게 있으면 전국 가리지 않고 다닌다.
우연히 접한 거리예술에 첫 눈에 반해 그 순간 진로를 결정했고, 현재는 거리예술축제에서 일하고 있다.
좋아하는 걸 남들에게 공유하고 싶어하고, 조금이나마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싶은 사람
김민수
거리예술을 비롯한 공연예술축제를 만듭니다. 가끔은 음악가로도 불립니다. 인디언밥, 민수민정, 밤의 소요, 블루프린트, 스튜디오1992와 같은 소속과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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