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축제가 사라진 자리의 사람들 3.과천축제 임현진 PD

2022. 2. 25. 16:42Feature

 

 

축제가 사라진 자리의 사람들

 

3. 축제기획자 임현진 PD

 

 

당연한 얘기처럼, 지난 2년 간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예술축제들이 취소되었습니다. 첫 해는 무력했고, 올 해는 마치 거대한 희망고문 속에 있는 것도 같았지요. 특히 공공공간에서 열리는 축제는 더욱 취약했습니다. 재난은 가혹했고, 취소가 당연하다는 목소리는 더욱 매서웠습니다. 

인디언밥은 취소된 축제 뒷편의 사람에게 집중하고자 합니다. 축제기획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진행 과정과 기획노동에 대해, 기획자로서의 삶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만들 수 있었고, 누구를 만나지 못했고, 무엇을 상실했는지 가늠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를 한 곳에 모아주던 축제가 사라진 자리에 어쩌면 새로운 연대가 있을지 모르니까요.

 

인터뷰이 : 임현진

인터뷰어 : 불나방

정리, 글 : 불나방

 

2021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는 어느 날, 무기력을 동반한 불안감을 온몸으로 맞으면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가 재난 앞에 돌파구를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어 대책 회의, 토론회, 포럼을 진행했고 축제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때때로 허무하게 붕괴되어 기약없는 약속이 난무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의 페이스북에 놀랄만한 소식을 발견했다. 지역에서 활발하던 축제 개최가 아예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유를 찾아보니 4차 추경예산 심사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분야 예산이 전액 삭감되어 축제 개최가 어렵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허탈감과 박탈감 그리고 어이없는 현실을 또 한 번 마주하자니 답답했다. 

예술에 대한 환대가 없어진 지금, 축제를 거부하는 현실을 마주하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할까? 방법은 여전히 잘 모르겠고, 어떻게 대처하는게 좋은건지 헷갈리는 순간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오뚜기처럼 일어설꺼야 라는 용기가 필요한 지금이다. 

사진1.코로나19관련 국내/행사 취소 상황 (출처: 한국거리예술협회)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독립기획자로 주로 공공공간에서 지역민과 만남을 이루며 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작품과 축제를 만들어요. 이전에는 해외 투어 공연도 많이 진행했었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해외 투어는 전혀 못하고있어요. 요새 저는 제 시기를 전환기라고 보고있어요. 기획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면 어떤 것을 변화시켜야 할까라는 고민을 좀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현재 전환기, 기획하는 방식의 변화 필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제가 작년에 진짜 많이 했던 말이 ‘축제 종말론’이에요.

이 축제의 시대는 갔다. 다 망할 거다. 예전처럼 축제를 생각하면 안된다.

라고 많이 말하고 다녔는데, 그 이유는 사실 축제가 종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에요. 현재 우리가 축제가 필요한 이유를 명확하게 가지지 못하면 너무 쉽게 사라지고, 공격을 받고 무너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성처럼 했던 축제 방식을 고수한다면 축제를 안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축제 취소되는 것을 봤을 때 더 밀도 있는 절대 취소될 수 없는 축제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에요. 축제 근육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기획부터 운영까지 어떤 바퀴로 굴러가야하는지 아는데, 그동안 자연스럽게 진행했던 것이 있었다면 이제는 더이상 너무 당연하게 접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도 방법은 잘 모르겠어요.

 

반복적으로 이야기해서 지겨울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 있어 조심스럽지만, 과천축제가 취소되는 과정에 관해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우선 2020년에 코로나 때 취소 얘기부터 시작해야 될 것 같아요. 2020년 9월로 예정되어 있었던 축제가 본격적으로 코로나 확산 이후인 8월 말에 취소[각주:1] 가 됐어요. 당시 취소 가능성에 대해서 예술가들과 미리 얘기한다거나 또는 취소를 염두에 두고 계약서를 작성한다거나 하는 과정을 전혀 거치지 못했어요. 

해외작 경우 이미 5월에 논의가 전면 중단됐었고 8월 말 축제 취소를 공지하던 때는 국내 작품 전부가 구체적인 공연료 및 공연 방식에 대해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었어요. 말만 오갔을 뿐 아직 계약된 상황이 아니니 행정적으로 풀 수 있는 방법이 없었어요. 계속 이렇게 진행되면 예술계 내  영향이 크다고 판단하여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죠. 

참여팀에게 요청했어요. 공연 풀 영상 또는 짧은 영상을 보내준다면 한 달 동안 과천축제 웹 페이지에서 스크리닝하는 방식으로 전환을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동안 논의되었던 공연료의 상응하는 금액을 계산하여 저작권료의 형태로 지급한다고 했죠. 그리고 지급했어요. 대외적으로 축제 측의 공식 입장은 기존 방식의 프로그램은 취소되지만 우리는 다른 형태의 축제인 온라인으로 전환하여 프로그램을 관람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저희가 몇몇 작품을 살펴보던 중 약 10개 정도가 코로나 시기에 예술에 대해 실험을 하는 기획 제작된 작품이 있었어요. 그 중에서 3개의 작품의 경우 취소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면 비대면으로 완벽하게 가능한 프로그램이라든지 전시 형태를 가지고 있는 프로그램들[각주:2]은 취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뚜렷했어요. 저희는 고민 끝에 일부분인 3개의 프로그램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을 했어요. 하지만 결국 화근이 됐어요. 

2021년,  축제 예산 의회 회의에서 축제 예산을 그대로 두고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거예요. 말하자면 그 말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뜻과 같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아주 예산이 다 삭감된 건 아니고 홈페이지 유지 관리비만 해당하는 500만 원이 책정됐어요.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비용이나 운영비가 전혀 없죠. 그나마 다행인 거는 축제 사업 자체가 과천문화재단으로 이관이 되었던 시점이어서 축제 담당하는 사람 자체가 아무도 없었던 것은 아니긴 했어요. 하지만 결국은 축제를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거죠.

 

방금 화근이 됐다고 말했는데, 구체적인 전후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2021년,  축제 예산 의회 회의에서 축제 예산을 그대로 두고 예산을 책정하지 않은 거예요. 그 말은 사업을 하지 말라는 뜻과 같거든요. 엄밀히 말하면 아주 예산이 다 삭감된 건 아니고 홈페이지 유지 관리비에 해당하는 500만원이 책정됐어요. 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비용이나 운영비가 전혀 없는거죠. 결국 축제를 만들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든거죠. 

  아무도 축제를 취소시킨 게 아닌 거예요. 마치 없던 일인 것처럼 그냥 두게 된 거죠.

그래서 과천문화재단 홈페이지나 과천축제 SNS 채널에 가서 보면 올해 과천축제가 어떻게 됐다는 메시지가 공식적으로 발신된 게 하나도 없어요. 왜냐하면 취소가 아니라 계획부터 안됐던 거니까요. 

 

사진2.과천축제 및 문화예술 삭감 관련 과천시대신문 보도 (제공: 임현진)

과천시의회 동영상 >  https://youtu.be/8J83KODCZDQ

이후 과천문화재단에서는 입장문을 밝혔는데 축제 예산만 삭감된 게 아니라 과천시 문화예술 지원사업의 예산도 거의 전액에 가까운 금액이 삭감됐어요.  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 사업을 할 수 있는 예산이 거의 없었던 거예요. 윗선에서는 추가 경정을 신청하여 예산을 받으라고 말하지만 매번 반려됐어죠.  5월엔 되지 않을까 6월에 되지 않을까 7월엔 되지 않을까 하다가 7월에도 안 되면 축제는 정말 못 하겠구나 인식하게 되었죠.

우리 지역사회의 공동의 소유물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면 축제가 이렇게 모든 사실에 대해서 함구하고 가만히 있을 수 있었을까[각주:3]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축제 내부 인력을 보면  축제를 실제로 기획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이 활동하고 있는 것과 행정기관에 소속되어 담당 업무가 축제인 것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 둘의 역할이 같이 공존해서 같이 가야 해요.  이번 과정을 보면서 축제의 리더십이 없어졌다는 것은 균형이 깨졌다는 것을 좀 반증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2021년에 축제 취소를 제가 직접 겪었다기보다는 도리어 축제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이 상황을 살펴보게 됐어요. 1998년부터 과천축제를 보면서 자랐어요. “누가 그게 왜 네 거야”라고 말하면 “그거 내 거야, 왜냐면 내가 축제를 보면서 자랐고 그것이 나에게 미친 영향들,  내가 거기에 부었던 애정들 그리고 함께 관여했던 모든 일을 생각하면 나는 그 축제의 이해관계자라고말할 수 있어" 라고 말이죠. 지금 2021년에 과천축제를 말한다면 관계자가 아닌 지역민의 입장에서 얘기하는 것에 더 가까워요.

 

사건 이후 SNS에 여러 활동들을 했던데, 특히 의원에서 메세지를 보내기도 하고요. 어떻게 진행하게 되었나요. 

 

축제 예산 및 과천문화재단 사업비 예산이 삭감되면서 과천의 예술가들이 많이 분개했어요. 그래서 이들이 모여 '그렇게 하면 안된다'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과천문화예술연대>가 만들어졌어요. 예술연대가 정치적 메세지를 던졌다면 저는 제가 시민으로서 어떻게 보면 의원들이 우리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니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순진한 상상을 하며 글을 썼죠.“저희 나쁜 사람 아니에요.”  같은 맥락으로 시작을 했어요.

“우리가 하는 예술 그렇게 가벼운 거 아니에요, 이거 우리 밥그릇이 되지도 않는 것인데 그런데도 내가 여기서 축제를 하고 싶은 이유는 우리 마을에 문화예술이 있어 해요. 내가 그걸 보고 자랐고 문화예술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믿어요. 우리 대화 좀 해요. 의원님이 알고 계시는 거랑 달라요.작년에 쓴 예산을  빌미 삼아 축제를 하지도 못할 건데 예산을 책정하면 안 된다는 얘기를 하는 것은 너무 무책임해요." 같은 메시지의 내용이었죠. 거의 편지처럼 썼어요.

연대 측에서 인터넷 카페인 <과천사랑>에 올리자고 얘기했고 글이 올라갔어요. 하지만 카페의 회원분들은 저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어요. 제 글이 익명으로 “과천에 사는 누군가의 이웃의 글입니다” 라고 올라갔는데 엄청난 댓글이 달렸어요. 대부분이 내용은 “이 시기에 문화예술이 말이 되냐, 뭐 작년에도 공연도 안 했는데 돈 줬다, 밥그릇 싸움 딴 데 가서 하세요.” 같은 댓글이 달렸어요.  엄청난 비난이죠. 지금 제가 말한 것보다 훨씬 더 비난의 어조로 달렸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분명 각오는 했지만 그래도 이 메시지를 진짜 전달해야 할 곳은 거기야 라고 생각을 하고 게재하는 것을 동의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댓글이 달리는 거 보니까 너무 상처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제가 그 편지를 썼던 대상인 시의원도 페이스북에 댓글을 달았어요. '싸우자' 같은 식의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그 댓글을 보고 저는 내가 심리적으로 감당을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그 사람을 차단했어요. 주변에 문화예술인분들이 도리어 저에게 달린 댓글 보고 분개를 해서 서로 댓글로 엄청나게 싸움을 하기도 했어요. ‘졌지만 잘 싸웠다’를 하고 싶었는데 졌고 잘 싸우지도 못했다고 결론이 난 것 같아요.

정말 우리가 너무 진짜 순진했어요. 대화하면 될 줄 알았다는 거예요. 하지만 이와 같은 방식이 우리만의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선배들이 정치적 행동을 했을 때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었는데 저는 투쟁적인 방식으로 대처하는 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든요.



또, 메시지 말고도 <과천문화예술연대>에서의 본인 활동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선언문을 작성해서 온라인에 공유하거나 퍼포먼스 형태로 축제를 돌려달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했어요. 언론에는 그간의 내용을 정리한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하고요. 특히 언론에서 다뤄질 수 있게 인터뷰라든지 글을 써서 기고도 하고요.  또 다르게는 방송에도 참여해 필요한 의견을 내는 정도였어요. 저는 사실 그 일들에서 아주 중심에 있지는 않았어요.

사진3.과천시 마을기업(별별극장) 예산 삭감에 대한 시위 (제공: 임현진)

 

비슷한 경험으로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탤런트 이광기씨를 예술 감독으로 선임하고 축제의 방향이 예술성과는 멀어진다고 느꼈을 때, 예술가들과 크게 반대를 하고 긴 저항을 했었어요. 필요했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무언가를 변화시키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을 계속 여러 번 겪는 것이 좀 힘들었어요. 다같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목소리를 높이다가 어느 순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혼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번에도 그 일을 겪었던 느낌이 또다시 살아나는 거예요.

 

너무 두렵더라고요. 문화예술이 가볍고 쉬운 것으로 여겨지는 일을 또 겪다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구나라는 그런 생각이 들어서 두려웠던 것도 같아요. 

 

연대 안에서 직접적으로 활동하는 것보다는 과천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바깥에 알리는 일을 했어요.  주로 페이스북에서 상황 전달하고 사람들이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들었어요. 주변의 의견을 받아서 외부에도 이와 같은 의견이 있다고 연대측에 전달하기도 했죠. 그리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위원회(이하 아르코 소위원회)에 제보를 했어요. 특정 시의원이 의회에서 발언했던 내용 중 문화예술인을 예산만을 노리는 도둑들인 것처럼 굉장히 무시하고 비아냥을 했던 발언이 녹화된 내용의 유튜브 영상을  근거로 지금 문화예술이 지역 사회안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고 그 앞에는 시의원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죠. 

이후 소위원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홈페이지에 이 사안에 대한 입장문을 밝혀줬어요. 고마웠고 위로를 많이 받았어요. 밖에서 누군가는 공감해 주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죠. 과천 지역 카페에서 댓글로 얻어맞은 걸 여기서 약간 토닥토닥해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사진4.현장 소통위원회 입장문 전문 (제공: 임현진)

입장문 전문보기 > https://sotong.arko.or.kr/communication/contents/notice.do?mode=view&idx=0c06e3963dd24f6a85d5bfeb91d4488d¤tPage=1&searchValue=

 

아르코 현장소통 홈페이지

 

sotong.arko.or.kr

 

과천의 문화예술 이름으로 삭감된 예산을 다 합쳐보니까 9억이 삭감됐더라고요. 여기서 또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해서 <과천문화예술연대>에 소속되어 있기도 한 ‘별별극장’과 함께 기획을 했어요. “만약 우리한테 9억이 생긴다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 를 상상해보는 퍼실리테이션 워크숍을 했어요.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다 같이 모여 그룹별로 토론도 해보고 같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회의도 하고  발표도 해봤죠. 생각보다 재미있었어요. 그래서 뭔가 없어진 것을 탓하기보다 우리한테 필요한 게 뭐였는지를 상상하는 계기로 삼으려는 원동력으로요. 우리는 피켓 들고 싸워서 하는 거에서 못 이길 것 같으면 우리 스타일대로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는 시도를 했었어요.

 

여름방학 시즌에는 별별극장에서 초등학교 1, 2년 학생이 기획하는 축제 캠프를 했어요. “축제가 뭐야? 축제 외에 축제 본 적 있어? 축제 가면 뭐 있어? 너희는 축제가 어떤 느낌이야? “ 와 같은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같이 작당 모의를 해보는 프로그램이었어요.아이들이 <엉뚱하게 떠오르는 축제>였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게 기억에 남아요. 해상 과학을 경험할 수 있는 테마파크를 만들어서 축제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고 축제 날짜를 논의하면서는 축제 날짜는 우리 생일마다 돌아가면서 하자는 얘기들도 있었어요. 다시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시민들이랑 같이 상상을 하면서 도리어 “그래 우리가 이래서 축제하는 거였어” 같은 확신과 확인을 좀 얻었던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는 축제하진 못했지만 축제를 못 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좀 다른 상상들이 있기도 했었죠.

 

 

사진5.축제가 사라지고 하게 되었던 일들: 우당탕 어린이 축제 공작단 (제공: 임현진)
사진6.축제가 사라지고 하게 되었던 일들: 마을 유튜브 '과천 문화에술 머선129?' (제공: 임현진)

 

일 년 동안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네요. 자기 회복성도 있는 것 같고 임현진 피디만의 에너지를 채우는 법,  번아웃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는 방법이 있나요?

 

안 해봤던 일을 하는 게 좀 좋은 환기가 됐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주어지는 쉼을 생각해보면 낯선 환경에 놓이게 됐을 때 “나 이런 거 볼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을  발견할 수 있는 휴식이 있었던 것 같은데 현재는 못하고 있으니 일상에서 어떻게 그걸 찾아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코로나 초반에는 모든 게 다 취소되고 막 난리가 났을 때는 미친 듯이 공부를 했어요. 온갖 자료를 다 찾아서 전부 필요가 없어 보이는 자료들까지도 일단 다 번역해 보고 그걸 공유하려고 되게 애썼죠. 어떻게든 내가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것도 중요하고 이런 얘기도 있어요.” 같은 전달자 역할을 이미 하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니 가지고 있던 강박을 좀 내려놓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은 약간은 안해봤던 일을 하면서 이런 것도 재밌네, 이런 것도 가능하네, 나는 이거 옛날에는 못했는데 지금은 할 수 있네. 같은 혹은 나 이런 거 진짜 싫어하네 다시는 이런 거 하지 말아야지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난 시간 생각을 하면서 뭔가 회복과 비슷한 일들이었던 것 같아요.

 

저와는 다르게 밖으로 에너지를 분출하네요. 대단해요. 동력을 동료 기획자도 영향을 주고받을 것 같은데, 오랜 기간 축제에서 활동하면서 동료, 친구 기획자들도 많을 것 같아요. 코로나 상황에서 그들과의 스킨십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한국에 메뚜기 그룹이 있어요. 예전에 프리랜서라고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게 되기 전에 스스로를 메뚜기 뛴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봄, 가을 축제 이렇게 메뚜기 뛰면서 일을 하는 거죠. 그래서 ‘메뚜기들’이라는 카톡방이 하나 있는데 안산에서부터 만났던 스태프와 같이 “메뚜기들 잘 지내” 같은 정도의 대화를 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한 번은 모여서 서로에 대해 안부를 물으며 우리끼리 놀고 얘기하는 자리를 만들기도 했어요. 언젠가 부터는 약간 메뚜기 경험을 먼저 시작한 사람으로서 모종의 책임감이 생기더라고요. “건강한 메뚜기가 돼야 해. 여러분 같은 얘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또 코로나가 터져버리니까 이 메뚜기들은 어떻게 하나 이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죠. 

 

또 다른 한 축에서는 해외에 친한 프로듀서들과 관계에요. 국가마다 도시가 락다운되고 상황이 안좋아졌어요. 원래 빈번하게 만나고 대화하던 사이인데 만날 수가 없으니 2주에 한 번씩 줌으로 만났어요. 목적 없이요.  “너네 어때 요새 뭐 재밌어? 코로나 끝나면 뭐 하고 싶어” 와같은 얘기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만나서 했던 얘기 가운데 친구 하나가 “나 원래 프로듀싱하는 사람인데 지금 완전 언프로듀싱 하는 사람이야. 나 언프로듀서야” 라고 말을 했어요.  그게 너무 웃긴 거예요. '언-프로듀싱' 이라는 단어에 꽂혀 뭔가 해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메뚜기와 언프로듀싱이라는 단어가 합쳐서 ‘기획자를 위한 자기 배려의 시간’이라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언프로듀싱 워크숍>을 만들었어요. 제가 놀려고 만든건데 또 기획을 또 빡시게 한 셈이어서 주변에서 막 놀렸어요.  “아니 너는 쉬고 싶어서 이걸 기획했다면서 쉬고 싶은 기획을 이렇게 빡세게 짜냐” 놀림을 받았지만 워크숍은 재미있었고, 지금까지 한 6~7번 정도 했던 것 같아요.

사진7.창작자를 위한 언-프로듀싱 워크숍 (제공:임현진)

 

그리고 또 다른 활동으로 청년기획자 플랫폼에서 현진을 봤어요. 서울문화재단과 같이 진행하는 거버넌스의 또 하나의 형태인 것 같은데, 여기는 어떻게 참여하게 됐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이 되나요?

 

이것도 오지랖으로 시작했죠. ‘청년기획자 플랫폼’ 타이틀 자체에 당사자성을 가지고 있어 제가 해당이 된다고 생각해 들어가게 됐어요.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건 가입 설문인데 되게 흥미로웠어요. 청년기획자의 안부 묻는 타이폼으로 설계된 설문이었는데 그 설문이  막 하나하나 하다 보니까 플랫폼에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나에게 세뇌가 된 거에요. 그러면서 “그래 우리 청년 기획자들 연대해서 같이 성장하고 협업하자”와 같은 내용이 나에게 이미 체화가 돼 있었던거죠. 들어가 보니까 재미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의 또 기지를 발휘해서 엄청나게 수다를 떨고 오지랖을 부리고 하게 되었죠. 초반에 플랫폼에 가입 소개 글을 써서 올렸더니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주셔서 온라인 살롱을 한 번 했어요. 나는 그때 모든 사람이 다 한 번쯤 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근데 아니었던 거야. 확 낚여서 잘 낚였죠.

계속 같이 뭔가 재밌는 자리 있으면 가고 또 기록하는 일이 있으면 글도 좀 쓰고 하다가 2021년에는 오거나이저(청년기획자플랫폼 명칭) 활동을 하고 있죠

 

연말에 SNS 보니 이와 관련하여 결과공유회를 진행한 것을 보았어요. 기획자들의 일, 노동에 대해서 고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던데 현장의 반응과 그간의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청년기획자플랫폼[각주:4]에서 기획자 마켓을 컨셉으로 준비했던 자리였었어요.

기획자들이 굉장히 멋진 사람들이고 이렇게 기획이라는 노동이 있다는 걸 더 알리고 우리를 프로모션하는 자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마켓이라는 단어가 좀 한정적인 거에요. 그래서 페어라고 이름을 바꿔서 ‘기획자 페어’라는 타이틀로 진행을 했어요. 페어의 주요 내용은 가장 먼저 청년기획자 플랫폼이 어떤 화두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아카이빙을 했어요. 그리고 그 기반의 데이터들이 현 플랫폼의 구성원들뿐만이 아니라 생태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오픈 소스로 공유를 했죠.

 

예를 들어 ‘대화도구’라든지 ‘의사결정 과정’ 이라든지 우리가 온라인 채널에서 수없이 얘기했던 대화의 주요 꼭지를 가지고 살롱에서 주제를 나열해서 정리하거나 우리가 서로 신뢰하고 안전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만들었던 약속문과 같은 안전망 장치들을 다 오픈 소스로 공유하고 또 제가 아까 말한 언프로듀싱과 같은 프로그램을 <커뮤니티 기여전>이라고 불렀는데 이를 위한 공모전도 진행을 했어요. 주제는 공동체를 만들고 공동체의 자생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공모로 받았어요. 그 공모의 결과로 진행됐던 여러 가지 실험을 전시하기도 했고요. 

 

그중에 제가 발표했던 거는 ‘기여’라는 가치가 커뮤니티를 어떻게 유지해주는지, 이를 기반으로 프로젝트 설계를 어떻게 했는지 설명했어요. 공모전의 과정을 살펴보면 ‘동료 상호 심사’ 방식으로 프로그램 공모가 진행됐고, 기존의 방식과는 다르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나열하는 글을 올려야 해요.  먼저 그 글을 올리면 참여자들이 거기에다 막 피드백도 달려요. “이거 너무 재밌겠다. 이건 어때? 나는 이거 비슷한 거 아는데 이거 한번 봐봐”와 같은 댓글이  달리는 시기를 한 일주일 정도 거치고 나면 참여자가 사람들 의견을 모아서 다시 한번 정리하고 전달해요. 그리고  서로 상호평가를 해요. 게시판에 상호평가 해보자고 하면 평가 기준에 따라서 열심히 또 댓글을 막 달아요. “이건 이래서 좋고 이건 이렇게 살려야 될 것 같다” 같은 댓글을 다는 방법이 상호 심사의 과정이고 피드백이에요. 그리고 끝나면 서로 투표를 해서 결정을 해요. 어떤 것에 더 지원해주자 같은 결정을 하는 거죠.

상호 심사의 기준도 심사 기준 정하는 살롱을 열어서 우리한테 필요한 심사 기준이 뭔지 서로 얘기해보고 또 그걸 쪼개서 토론도 하고 문장으로도 바꿔보고 분류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심사 기준을 채택할 건지를 논의를 거치는데 이 과정 자체가 되게 축제 같았거든요. 우리한테 필요한 걸 직접 설계한다는 감각들인 거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심사할 때 서로 약속도 하고 모두가 실명으로 해요.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서 대화해야 해요. 이전에 “이 사람 누군데 나한테 댓글 달아”와 같은 불편함 없이 무조건 커뮤니티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지원할 수 있게 장치를 걸어뒀어요. 이 공모전만을 보고 여기에 응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신뢰가 쌓여 있는 상태에서는 상호라는게 성립이 되기 때문에 상호 심사까지도 가능할 수 있었어요. 이번에 심사제도에 문제가 있었떤 다원예술 리부트랑 달랐던 점은 리부트는 동 평가 동료 심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내 동료가 아니었던 거죠.

사진8.청년기획자플랫폼1111 &lt;거뮤니티 기여전&gt; (제공: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

 

다시 축제로 돌아와서 새로운 형식의 축제에 대해서 생각하거나 이런 축제가 좀 필요하다거나 아니면 내가 진짜 아까 말한 어떤 종말론에서 어떠한 방법들의 접근성에 대한 어떤 고민을 하는 지점들 이런 것들도 좀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해주세요.

 

지금까지 한 대화와 맥락이 이어서 생각하면 앞서 얘기했던 기여전이라는 프로젝트를 빌어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기여전에 선정돼서 한 일들도 재미있고 흥미로웠지만 사실 그 선정 과정 자체가 축제가 됐었거든요. 만나고 대화하고 여기에서 우리가 같이 토론하고 고민하는 과정들이요.

그래서 앞으로 숙제는 어떻게 되느냐고 질문을 한다면, 여전히 글래스턴베리와 같은 대규모의 응집된 경험을 하는 강렬하고 일시적인 순간들을 공유하는 축제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축제는 좀 더 과정부터가 축제인 거죠.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같이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일들이 쌓여서 그 끝이 축제가 되는 거예요.

이런 형태의 축제를 하고 싶은 이유는 축제기획자여서 좋은 이유를 들자면 축제 현장만이 좋은게  아닌 제작 과정이 힘들고 어렵지만 되게 재미있잖아요. 뭔가가 만들어지는 걸 지켜볼 수 있다는 그 감각이 정말 좋았던 건데 어쩌면 이걸 내가 혼자 쥐고 있으면 축제가 취소됐을 때 아쉬운 사람 나밖에 없겠다는 위기의식이 들었어요.  그래서 축제가 누구 한 명의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것이 되게 하는 그런 방식을 설계하고 싶어요. 아까 말하는 과정 자체가 축제가 되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관여시키는 것을 말이죠. 축제 기간 자체가 아주 길어질 수도 있는 거고, 작지만 되게 소중한 대화들이 쌓일 수 있도록 기획하는 방식의 축제가 더 의미를 찾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비대면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할 필요가 없이 이미 쌓아온 신뢰와 노력을 기반으로 이걸 어떻게 보여줄지의 방식을 함께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기에 맞는 안전한 방식으로 축제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우리는 아웃풋을 먼저 결정하고 그 아웃풋을 향해 달려가기 위한 노력을 하잖아요. 이 방법이 이젠  좀 지치더라고요 

 

이제 내년 약간 단기 중장기 어떤 계획들 준비하는 것들 그런 것들 좀 얘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사실은 인생을 한 번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내 눈앞에 보이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위주로 하고 싶은 방식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게  또 장점인 게 좋아하는 거 되게 솔직하거든요. 내가 좋아하는 방식을 해하지 않는 선에서 살고 있나 정도의 질문만 늘 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요.  “계속 너 이거 좋아? 좋아 그럼 해!” 같은 구조로 굴러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장기적인 계획은 2022년에 일단은 큰 목표는 없어요. 포항거리예술축제는 2021년에 지난 2년간의 기록을 모아서 선보였어요. 정말 행복하게 잘했던 것 같아요. 한번 잘 해놓고 나니까 더 욕심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올해는 축제를 잘하는 거, 이게 제일 먼저 생각나네요.

 

반짝반짝한 눈을 가진 현진을 보고 있자니 그녀의 생동감과 활력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이렇게 또 축제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무너지지 않고 또 다른 아이디어를 가지며 다시금 축제를 상상한다. 예전에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축제워크숍을 한창 진행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안다. 안전하지 않은 축제 상황 속에서도 조금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축제를 같이 지켜왔다. 우리는 또 축제를 지켜오겠지? 우리는 또 할 수 있겠지? 되묻는다. 축제를 정말 사랑하는 이들이 시련을 잘 털고 또 우리가 상상하는 축제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임현진과 불나방

임현진

독립프로듀서.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여러 축제, 예술단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공연을 하며 만난 세상을 이야기하고, 재미난 질문들을 찾아내기에 몰두한다.

불나방

프로N잡러, '불안'을 키워드로 개인의 서사를 수집하는 시각예술가이자 독립예술축제를 만드는 기획자, 인디언밥 편집위 등 이일 저일을 합니다. 실수와 오타를 반복하지만 예술계 안에서 글로 이미지로 기록하고자 합니다;)

  1. 2020과천축제 취소 안내 https://www.instagram.com/p/CFLdA7WpZE3/ [본문으로]
  2. 과천축제 기획프로그램:https://www.instagram.com/p/CFLdA7WpZE3/ [본문으로]
  3. [남정숙 칼럼] 코로나19를 핑계로 시민의 문화권리를 박탈하는 시∙도의원들은 낙선운동이 답이다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5415 [본문으로]
  4. 공식명칭 <청년기획자 11111>은 '남 일말고 내 일하자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청년기획자의 성장, 협업, 연대를 위한 커뮤니티 플랫폼이에요.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민관거버넌스의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로 청년예술청 공간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인디펜던트 워커를 지향하고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