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20. 19:00ㆍReview
스위밍에서 끝내지 않고 한 번 더 스위밍이라고 하는:
호와호 단독공연 <물·해·말>
글 : 임승유
잘 안 보이네.
그럼 귀로 들으면 되지.
그럴 거면 뭐하러 공연장에 와. 음원으로 듣지.
뒷줄에서 들려오는 대화를 들었을 때 딸깍, 내 안에 질문의 불이 켜졌다. 나는 공연을 보러 온 건가, 들으러 온 건가? 사실 모호가 “Flowing in the rain. We might as well be swimming” 1) 이 부분을 노래할 때 나는 좀 얼어붙는다. 저 금속성의 다정한 목소리를 어떻게 할지 몰라서고, 왜 그런지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좋아서다. 그 뒤에 이어지는 “The first dive makes you relive”를 듣고서 이호의 목소리구나, 깨닫지만 이미 이호는 그 특유의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고 있었으며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음원으로 들을 때나 무대에서 들을 때나 매번 둘의 목소리에 매혹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나는 이 둘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질감을 이미 시2)를 통해 언어화 한 적 있고 지금은 호와호의 두 번째 앨범, 파고의 단독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에 와 있다. 무대와 관객석 사이에는 베일이 드리워져 있다. 아무래도 바로 호와호 무대와 대면하게 되지는 않을 모양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로는 좁은 길이 나 있고, 관객은 마중 나와 있는 봄로야3)를 따라 무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대를 연못으로 상상했는데, 그건 호와호의 앨범 ‘파고’와 이번 공연이 ‘물’로 차오르고 넘실대며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연못’을 떠올린 건 다와다 요코의 소설4)에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을 경유한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문장을 읽은 탓도 있다.
연못에 비친 하늘과 연못에 떠 있는 수련잎은 캔버스 위에서 접점을 갖지만, 실제로는 서로 닿지 않는다.(182)
물리적으로 마련된 공연장이 곧 무대는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곳에 도착하고서야 깨닫는다. 앞서 관객이 던졌던 “잘 안 보이네.”라는 탄식은 “어떻게 하면 잘 볼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어쩌면 공연을 잘 본다는 건 서로가 서로에게 잘 도착한다는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우리는 연못이라는 무대에 도착해 접점을 가질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연못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걷는 지연이 필요하다. 물론 눈을 감았다가 뜨면 바로 연못이 보이는 그런 장면 속에 있을 수도 있다. 이호와 모호는 관객과 아무 장막 없이 직접 대면할 수도 있었는데 그건 그들이 이번 공연에서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연못으로 난 길을 따라 걸으며 연못을 상상함으로써, 보고 듣기 전에 먼저 연못을 감각하는 것. 보폭이 만들어낸 진동이 먼저 도착해 연못의 ‘파고’를 건드리는 것. 한꺼번에는 아니고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들기를 호와호는 원했던 것 같다.
인위적인 붓질을 거친 후에 불가능해 보였던 수련과 하늘이 접점을 갖게 되듯, 마중과 베일을 장치 삼아 지연의 과정을 거친 후에, 그러니까 일종의 효과로서의 만남이라고 할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봄로야는 관객만 마중한 것이 아니라 호와호도 마중하고 있었다. 봄로야가 퍼포먼스를 끝내고 베일을 걷은 후에 이호를 향해 걸어가 어깨를 툭 건드렸을 때 그 공간에 있던 모두는 문득 무대에 도착했음을, 드디어 접점의 순간에 다다랐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마중 나온 이가 우리들에게 나눠준 건 소리, 빛, 텍스트, 몸짓이었는데 아마도 호와호가 한 덩어리로 보여줄 공연을 미리 파편적으로 제시해 물성 자체로 감각하는 과정을 겪게 했다고. 자연에 가장 가까운 악기인 코시차임을 흔들며 등장한 봄로야가 텍스트와 함께 빛을 나눠줬을 때, 빛을 받아든 나는 어느 순간 그걸 가방 속에 집어넣었다. 빛을 받아 든 그 순간은 관객인 나에게도 잠깐이나마 빛이 머물렀다는 사실, 그게 중요한 거였을 테니까. 나는 가방 속 빛을 만지작거리며 베일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낭독 공연을 바라보았다. 바라보면서 베일 너머에 있을 모호와 이호를 생각했다. 연못에 일렁이는 그림자처럼 생각하다가, 의자 위에 놓여 있던 다리를 하나씩 바닥으로 내려놓는 봄로야의 몸짓과 겹쳐 생각하기도 했다. 몸짓은 무슨 커다란 덩어리를 내려놓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스토리가 전개되는 영화 속 시공간을 디제시스라 한다. 디제시스에서 말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자막, 배경 음악을 감각할 수 없다. 이번 공연에서 베일 위로는 계속해서 배경에 해당할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관객 입장에서는 베일 안, 즉 디제시스에 존재하는 호와호에게 이 영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해되고, 이 영상 효과로 인해 호화호가 배경 속 배경으로 작용하는 듯이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베일은 장막처럼 완전히 막아주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베일 뒤에 있던 호화호가 영상을 볼 수는 없었더라도 감각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베일은 호와호와 관객을 서로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흐르는 영상을 통해 지각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할까. 그럴 때 베일은 거울을 넘어서는 거울, 끊임없이 유동하는 물과 다르지 않다는 것, 이 공연이 ‘물’로 시작하고 있다는 걸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호와호를 처음 만난 건 2023년이다. 봄이 막 시작되려는 3월이었지만 여전히 추워서 옷을 덕지덕지 껴입고 나갔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호, 이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나와 달랐다. 어떻게 다른지 구구절절 설명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나를 포장하기 위해 말을 골랐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 말을 꺼내 놓으면 그 말을 타고 말과 말이 파고처럼 이어졌다. 넘실댔다. 제주도에서 고사리를 채취하다가 길을 잃었다는 사람 이야기로 시작해 여성 고딕 서사까지 넘나들었다. 누군가 왜 우린 자꾸 웃을까요? 말을 꺼냈는데 아무도 그게 무슨 말인지 의아해하지 않고 K 장녀의 습성까지 이어졌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 만났을 때, 호와호는 ‘물’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물 자체가 아니라 ‘물성’에 대한 이야기에 가까웠다. 그 무렵 우린 서로의 작업을 넘나들며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고, 나는 서로의 만남에 대한 결과물로 ‘세 사람’이라는 시를 썼다. 시는 시적 화자의 목소리가 지배적인 장르라 어느 정도는 화자의 목소리가 폭력적으로 작용한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던 차에, 호와호를 만나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관계성을 지닌 시를 쓸 수 있었다. ‘그녀’로 지시되는 존재가 시 전체를 끌고 가는 방식이었다. 시 속에서 ‘그녀’는 ‘이호’였고,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이가 ‘모호’였으며 ‘나’는 그 둘의 주변 인물이었다. 내가 그러고 있는 동안 호와호는 ‘파고’를 작업하고 있었고, 앨범이 나왔으며 나는 목을 쭈욱 빼고 공연을 기다렸다.
그녀는 모호를 알았고 모호는 즐거운 나의 집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그 모호다.
그녀는 모호가 모자챙 들어올리는 방법을 무척이나 좋아했으며 한번은 어떻게 들어올리는지 설명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한번 더 해보라고 했을 때 모호는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몰랐고
그냥 구운 은행을 집어먹는 수 밖에. 모호가
시를 도대체 어떻게 완성하는 겁니까 물어봐서 글쎄요 문장이 다음 문장을 데려오는 것 같아요 말했다가 우와 문장이 문장을 데려온대 그렇지 멜로디가 다음 멜로디를 데려오는 거지 우리는 와르르 웃었다. 이후로 ....
임승유 시인 『생명력 전개』 일부 발췌
공연의 진행과 이 글의 진행이 동시에 이뤄졌다면 좋았겠지만 그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공연은 시작했다가 끝났고 그렇지만 공연이 있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며 공연의 기억은 내 몸에 남아 있다. 내가 관객석에 앉아 있었을 때 공연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예를 들면 베일 뒤에서도 호와호가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었는지, 베일이 걷힌 후부터 그랬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영상이 흐르고 음악이 흐르고 연못 위에 그림자가 일렁이듯이 호와호의 실루엣이 있었다는 기억은 있다. 베일이 걷히고 세트 리스트에 따라 공연이 이어졌고, 중간중간 이호와 모호가 말을 주고받았다는 기억, 이 공연이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앨범이 나왔을 때부터 반복해서 들었던 슬픈 라, 내 친구는 어디에 있나, Bodies Of Water, 길, 차를 마시자 그리고 파고까지 나는 듣고 싶은 걸 다 들었다. 모호와 이호가 차를 마시자를 부를 때는 울컥 마음이 쏟아지는 듯해서 아찔하기도 했다.
내가 여기 적어놓은 노래 순서와 호와호 공연 세트리스트는 일치하지 않는다. 어느 때고 다시 공연이 시작된다면 그때의 세트 리스트는 또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호와호에게 여전히 기다리는 건 다음 공연이다. 그들이 ‘Bodies of Water’의 구절을 읊조릴 때, 스위밍에서 끝내지 않고 한 번 더 스위밍이라고 하는 것처럼 이번 공연이 다음 공연으로 이어지기를. 그들의 목소리가 경계를 넘어 흘러넘치기를.
1) Bodies of Water 2)임승유, 「세 사람」, 『생명력 전개』, 문학동네, 2024. 3)봄로야 Bomroya는 이번 공연에서 직접 쓴 텍스트와 호와호의 노랫말을 낭독하고 퍼포먼스를 하는 공연의 주체이자, 관객과 호와호가 만나는 순간을 연결하는 매개자이기도 했다. 4)다와다 요코, 정수윤 옮김, 『지구에 아로 새겨진』, 은행나무, 2022. p.182 |
[필자소개]
임승유
시인. 2011년 「계속 웃어라」 외 4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 『그 밖의 어떤 것』,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 『생명력 전개』가 있음.
호와호 단독공연 <물, 해, 말 𝑚𝑢𝑙, ℎ𝑎𝑒, 𝑚𝑎𝑙> ✤ 일시 | 2024년 11월 23일 토요일 저녁 7시 ✤ 장소 | 무대륙 (합정동 357-7, 지하 1층 공연장) @Mudaeruk ✤ 공연시간 | 90분 ✤ 함께 만든 이들 프로듀서 | 남하나(불나방) @mariposa_xax 낭독과 퍼포먼스 | 봄로야 @bom_roya 디자인과 영상 | 정혜진 @handandface 음향 엔지니어 | 유상용 @_yusangyong, 차의강 @chauigang 무대감독 | 정다혜 @fromtodaytonothing 조명감독 | 최인정 @trickyneko 공연 영상 기록 | 홍한나 @hannathing 의상 도움 | 허유 @lamb_atelier, 오팔 @opalseoul.kr 장소 도움 | 무대륙 @mudaeruk 모든 음악 | 호와호 글 | 이호, 봄로야 시 | W. H. 오든(Wystan Hugh Auden) <장례식 블루스(Funeral Blues)> 발췌 퍼포먼스 도움 | 관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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