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음악극<인어공주> "목소리를 잃고 노래하다"

2009. 5. 25. 10:53Review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이야기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다. 의정부 음악극 축제에서 상연된 ‘인어공주’ 도 원작의 줄거리를 그대로 따른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더구나 그 알고 있는 이야기가 복잡한 사건이 있어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 아니라 처음과 결말이 한 눈에 들어오는 동화라면 흥미의 반감은 더 심할 것이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
<음악극 인어공주>, '재미'와 '기억'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


이 흥미의 반감을 해소하기 위해 이 연극은 음악을 사용한다. 노래와 타악기, 리듬이 있는 대사와 하늘거리는 천, 그리고 음악과 떨어질 수 없는 춤이 있다. 그리고 이국적인 일본 가부키의 분장에 어울리는 의상의 색과 디자인이 음악에 신비감을 더해 준다. 이 연극에는 새로운 의미의 전달이나 이성을 자극하는 충격과 놀라움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의 감소는커녕 오히려 관객의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다.

이야기로 시각과 청각을 사로잡는 것이 아니라 모양과 색, 소리로 사로잡는다. 눈에는 눈, 귀에는 귀의 방식이다. 이 단순한 방식이 ‘재미’와 ‘기억’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1. ‘재미’에 대한 새로운 관점


얼굴 근육에 긴장을 주는 '재미' vs 얼굴 근육을 풀어주는 '재미'

 ‘재미’있는 연극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재미’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대사가 재미있거나, 연기가 코믹하거나, 사건의 반전이 뜻밖이거나 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유는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재미있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연출자는 어떤 부분에서 관객이 웃을 것인가, 재미를 느낄 것인가를 짐작하면서 연출을 할 것이다. 분명 관객은 놀라거나, 웃거나, 화나거나, 슬퍼하거나 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꼭 재미있기 때문에 ‘재미’있는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름답기’ 때문에 ‘재미’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때의 재미는 감정이 밖으로 드러나는 재미는 아니다. 오히려 감정에 어떤 동요도 일어나지 않는 재미일 수 있다.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넋 놓을 수 있고, 대나무 숲속의 바람소리에도 넋 놓을 수 있다. 어쩌면 옅은 미소를 띤 얼굴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보다도 몰입이 강할 수 있다. 얼굴의 근육에 긴장을 주는 ‘재미’와는 다른 얼굴의 근육을 풀어주는 ‘재미’다.

이런 ‘재미’가 이 연극의 매력이다. 인어공주처럼 아름다운 색깔이 있고, 인어공주의 노래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있다. 매일 보는 노을이고, 매일 듣는 바람소리지만 넋 놓고 잠시 감상할 수 있는 ‘재미’가 있다.



 
2. ‘기억’에 대한 새로운 관점


'언어'로 기억하기 전에 '오감'으로 기억할 것

 ‘인어공주’ 이야기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야기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내용을 기억’한다는 것은 ‘언어로 기억’한다는 것이고, ‘언어로 기억’한다는 것은 ‘지식’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물론 인어공주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해서 박식하다는 소릴 듣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박식하다는 소릴 듣기 위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술작품은 공부하기 전에 감상이 먼저 따라야 한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기 전에, 음악가의 생애를 알기 전에, 작가가 어떻게 죽었는지를 알기 전에 감상을 통해 즐기는 것이 먼저다. ‘언어로 기억’하기 전에 ‘오감으로 기억’하는 것이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이다.


 음악극 ‘인어공주’는 내용으로 기억하고 있는 관객들에게 오감으로 기억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무대미술과 의상, 소품은 이야기를 시각화하고, 배우의 노래와 여러 악기들의 소리는 이야기를 청각화 한다. 단순한 이야기의 재현이 아니라 독창적인 이미지의 배치를 보여준다.


  피리 같은 악기를 들고 허공을 탁 치는 행위를 할 때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데 시각의 청각화인지, 청각의 시각화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공감각을 보여준다는 것은 확실하다. 북을 치면서 같은 동작으로 인형처럼 무대를 가로지르는 내레이션 배우 역시 시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고, 공중에 매달린 두 개의 하얀 천이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바람에 자연스럽게 하늘거리는데 마치 리듬을 눈에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이것 역시 귀로 사물을 보는 새로운 경험이다.




목소리는 잃었으나 노래는 잃지 않은, 다시 기억될 인어공주

음악극 ‘인어공주’에서 공감각이 많다고 느낀 것은 어쩌면 ‘인어공주’의 비극 때문 일지도 모른다. ‘인어공주’의 비극은 ‘함께 할 수 없음’에서 온다. 육지에 사는 왕자와 바다에 사는 인어공주는 태생적으로 이미 함께 살 수 없다. 다리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잃는 경우 역시 다리와 목소리가 함께 할 수 없다.

왕자는 목소리가 있는 인어공주와 목소리가 없는 인어공주를 다르다고 판단한다. 이것은 한 가지 감각만으로 사물을 판단하지 않는 다는 것을 말한다. 인어공주는 왕자를 죽여야만 인어로 돌아갈 수 있는데 결국 왕자를 죽이지 못한다. 왕자를 사랑하는 마음과 왕자를 죽이는 행위가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함께 할 수 없는’ 비극을 달래기 위해 이 연극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래를 잃은 인어공주를 위해 음악극을 준비한 것일 수도 있다. 목에서 나오는 것만이 노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 내레이션에서 연극은 인어공주가 구름이 되어 하늘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한다.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의 춤은 인어공주의 노래일 지도 모른다.


 이 연극을 통해 인어공주에 대한 기억이 바뀌었다. 줄거리의 내용으로 기억하는 인어공주가 아니라 노래를 부르는 인어공주로, 목소리는 잃었지만 노래는 잃어버리지 않은 인어공주로 기억될 것이다.       


인어공주-Mermaid Princess_일본, 이탈리아
제8회 의정부국제음악극축제 해외작품


디즈니의 만화영화로 잘 알려진 '인어공주'를 음악극으로 새롭게 각색한 작품으로 일본 전통 가곡과 이탈리아의 오페라 성악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어느 판타지 영화의 고대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요 인물 외에 원숭이, 할머니 등 동양의 설화에 등장할 법한 새로운 캐릭터를 볼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커다란 거울과 나무로 만든 미니멀한 무대는 인어공주가 처음으로 왕자와 사랑에 빠지는 바다와 처음으로 발을 디디게 되는 땅의 이미지를 모두 연상시킨다.

세타가야 퍼블릭 씨어터 (Setagaya public theater)
도쿄의 세타가야구에 위치한 공공 극장으로 대극장 코쿤과 소극장 트램을 가지고 있다. 극장의 초대 예술감독이었던 사토 마코토의 뜻에 따라, 일찍이 극장이 직접 작품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프로듀싱 씨어터를 지향했다. 세타가야에서 제작한 아시아 국가 간 협력 작품 성공으로 아시아의 공연계를 이끄는 혁신적인 극장 포지셔닝에 성공했으며, 공동제작의 범위를 유럽으로 확장하고 있다. 최근에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과 파트너쉽 관계를 맺고, 2개의 작품을 공동으로 제작한 바 있다.


필자소개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