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몸’이 ‘말’ 해주는 여행담" <이이무로나오키 마임컴퍼니_'Follow the arrows'>

 

‘나는 배우다’ 라는 주제로 개최된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이 막이 내렸다. ‘피지컬 씨어터’라, 연극과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생소한 장르일 테고, 공연을 즐겨보는 이들에게도 그리 쉬운 장르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름’ 만 어려울 뿐, 내용은 우리에게 친숙하기 그지없다. 말 섞기 싫은 사람에게 귀찮은 손짓만으로 소통을 끝내고, 소중한 사람에게 말보다 더한 표정으로 애원하는 우리들 모습처럼.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의 총집합,  <Follow the arrows>



 폐막작으로 공연된 이이무로 나오키 마임 컴퍼니의 <Follow the arrows> 역시, 말 그대로, 화살표를 따라가다 보면, 가리킴이 시작되고, 머물고, 끝나는, 말이 ‘필요 없는’, 작품이다. 마임에서부터, 무용 그리고 신체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언어적 표현을 아우르는, 그리하여 인간의 무대 위 표현이 얼마나 특이하고도 일상적인지 공연을 통해 깨닫게 된다.

 


 시작을 여는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가방을 든 남자의 등장과 이리저리 바쁘게 무대를 움직이는 여럿의 배우들. 그들의 움직임은 서로 교차되고, 중첩되며,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들이 가지고 나오는 손수건, 모자, 지도 등의 오브제들은 순간순간 주인을 바꾸며, 변하는 상황을 이어받는다. 지도를 펼쳐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손수건을 빠뜨리기도 하고, 이리저리 상대방과 부딪치기도 하고, 어리둥절 전 상황을 떠올리기도 한다. 바쁜 출근시간의 정류장인지, 여행을 앞둔 대합실의 풍경인지 아리송하다. 다만 이러한 풍경 속에서 관객들도 분주하고 들뜨게 된다.

 

 무작정 떠나는 여행인지, 출근인지 모르는 호기심이 지속되면서, 여기저기서 ‘하얀’ 색의 화살표들이 등장한다. 화살표라는 기호의 자극은 우리에게 ‘지시’ 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화살표를 따라 움직이는 ‘배우’ 들을 확인하게끔 해 준다. 무대 위 배우들은 화살표를 따라 달음박질하고,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려고 애쓰지만, 그 갈팡질팡 서두르는 모습이 오히려 희극적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희극성은 공연 내내 지속되는데, 세련되고 아름다운 동작은 아니지만 익숙하고 투박한 움직임으로 관객의 공감을 산다. 일상적인 오브제들과 명시적인 상징물 또한 강렬한 메시지 대신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그런 와중에 방황하는 인간에 대한 안타까움이 부각된다.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든 이의 개인적 ‘방황’은 끊임없이 현실 속에서 공회전한다. 자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모르는 모습과 방향은 명확하게 알지만 이를 말없이 따르는 ‘다수’ 의 순응적인 모습에서 답답함이 복합적으로 다가온다. 눈 앞에서 방향 ‘표시’ 는 여기저기 존재하지만, 확신이 없는 인간의 모습. 이를 벗어나려고 해도 급하게 막아서는 장벽들. 말이 없이 진행되는 공연이기에 이러한 ‘방황’ 의 심리는 점점 더 강해진다. 작품의 제목이 역설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화살표 방향으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왜 가야하는가? 혹은 가지 말아야 하는가?


 작품은 표면적으로 그들은 어디로 움직이는가, 에 대해서 묻고 있지만, 무대 위에서 보여지는 것은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며, 그 안에는 그들이 왜 움직이는가? 무엇이 그들을 바삐 움직이게 하는가, 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어디’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화살표 방향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인간의 삶을 포착한다. 재미있게도, 모자를 쓰고 가방을 든 배우가 마주하게 되는 곳은 자신이 든 가방 속이다.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사람’ 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위안해 주는 ‘인형’ 이다.


가방 속,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아' 


 방금 전까지 큐빅으로 남자를 막아섰던 배우들이, 인형의 관절을 하나씩 하나씩 잡고 움직일때, 그 섬세한 표현은 그전까지 거칠고 투박하게 움직였던 인간 육체의 모습과는 대비된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따뜻하게 위로를 건네는 존재로 느껴지는 것이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저 멀리의 존재가 아니라, 손에 들었던 가방 속에서 기다렸던 ‘자신’ 과의 만남. 인형은 다분하게 제시된 화살표 앞에 길 잃은 ‘인간’ 을 보듬어주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자아’ 를 상징하는 역설적 존재가 된다. 공연 내내 열심히 움직였던 인간의 몸이 맞닥뜨리는 장소와 대상이 의외의 것들이라는 설정이 다소 재미있고, 철학적이다. 실로 언어가 아닌 인간의 몸과 인형, 오브제들로 엮어낼 수 있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의미를 담보한 ‘언어’ 가 없기 때문에, 관객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느끼면 된다. 화살표를 보든,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을 보든, 그 배우를 보든, 반대 방향을 보든 제각기 해석에 있어서 자유롭다. 작품 세계가 무턱대고 열려있어서가 아니라, 무대 위의 체험이 우리의 모습을 기억나게 하고 자극하는 방식으로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관객인 우리들은 손이 지시하는 저 멀리를 응시한 게 아니라, 가리키는 손의 몸짓과 그 주체인 배우들을 응시했다. 콕콕 집어주는 방향과는 상관없이, 무언가를 가리키는 인간의 상황을, 차분하게 조망해볼 수 있다는 점이 돋보였다. 주체와 지시와 응시가 한데 어우러진 모습에서 철학자가 아닌 일반인의 모습, 해석이 아니라 실존이 드러났다. 


'몸의 말'...나에게로 떠나는 여행담

 인간은 여행자다. 목적지와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가야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혼자 가는 것에 걱정하고, 장애물에 대하여 고민거리들로 가득하다. 이러한 고민의 실타래들을 하나씩 풀려고 애쓰는 ‘몸의 말’ 을 공연에서 여실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담’ 인 셈이다. 그리고 여행자의 삶은 반복된다. 그래서인지 공연을 닫는 첫 장면의 반복이 더없이 반갑다. ‘여행자’ 라는 공감대가 우리 모두에게 심어진 이유에서일까.

 

 화살표라는 익숙한 상징과 이를 무의식적으로 따르는 인간의 행위를 반추하고, 그 앞에서  ‘여행’ 의 의미를 되새겨 준 공연 <Follow the arrows>. 몸이 이동하고, 끊임없이 생각이 따라붙는 여행의 신체반응적 경로를, 피지컬 씨어터 장르의 속성과 매치시켜, ‘좁은’ 무대 공간에서도 사유하게끔 해준,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Follow the Arrows(화살표 방향으로)

인생은 여행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화살표 방향으로>는 화살표를 따라갈 것인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를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여러 에피소드들을 보여준다. <화살표 방향으로>에서는 고도의 훈련된 움직임을 만날 수 있다. 5명의 배우가 디테일한 움직임과 환상의 하모니를 보여줄 때에는 탄성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또한, 함께 등장하는 인형의 움직임도 다른 등장인물의 움직임 못지 않게 디테일하여 진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이무로 나오키 마임 컴퍼니

마임배우 이이무로 나오키의 활동명이며, 자신이 대표를 맡는 집단명이기도 하다. 마임을 중심으로 한 표현 수법에 따르는 작품 만들기 위해, 이이무로 나오키+복수(複?)의 멤버로 활동 중.
오사카를 중심으로, 도쿄나 그 외의 지역, 해외에서도 무대 공연을 실시하고 있다. 스피드 넘치는 작품들은 한국 등 해외의 극장 공연?야외 공연 등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필자 | 정진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