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 컬렉션 No. 1 : '홍대에서 넓은 미술관 광장으로 나오다'

2009. 5. 8. 06:58Review

지난 25일 합정역에서 백남준 아트센터로 가는 셔틀버스를 탔다. ‘오버뮤직’이라고 하는 명을 달고 넓은 미술관이 홍대의 실험 뮤지션들을 갑작스레 소환했다. 그들의 아지트를 고스란히 옮겨 와 공연하도록 하루 살림의 장소를 내준 것. 개인적으로는 아트센터가 대절한 차를 타고 이날은 홍대가 목적지가 아닌 출발지로 조금 다른 노선을 따르고 있었다.

합정역과 홍대입구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표현 갤러리 요기가에서 라이브 즉흥 실험음악 연주회 ‘불가사리’의 불가사의한 공연을 익숙하게 마주했던 사람이라면 이번 공연 역시 그다지 큰 의미가 주어지진 않는다. 적어도 낯설기보단 친숙한 문체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불가사리는 사토 유키에에 의해 집단보다는 장으로서 정체불분명의 아티스트를 부르는 소집령이 내려진 가운데, 그에 반응한 장르를 가리지 않는 다양한 실험의 욕구들이 분출되는 사운드의 텃밭이 되어 왔다. 다만 이번에는 그들이 밤의 어두컴컴한 지하 아지트에서 벌건 형광등의 대낮 풍경에 당도한 것이 다를 뿐. 몇 가지 흥미로운 메뉴들을 불규칙하게 조합한 가운데.

본격적으로 트랙이 7까지 있는 첫 번째 컬렉션을 소개해 본다. 다만 이번에는 약간은 해부식의 공정을 통해 그들과의 만남을 처음인 듯 기록해 본다. 그래야 1집의 신선한 느낌이 전달되지 않을까 하는 적당한 트릭을 생각하며.



01. 10(있다 itta & 마르키도 Marqido) : 퍼포먼스 사운드 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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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키도’가 하나의 배경을 구축하고 있었다면, 이러한 영역에 살금살금 조심스레 다가가 건드려 보는 건 ‘있다’의 몫이었다. 소리의 시지각적인 범위를 상정케 하는 건 ‘있다’가 그 소리의 영역에 부딪치려는 찰나에서 시작됐다.

마치 그녀는 연기를 하듯 퍼포먼스를 만들어 갔다. 달랑거리는 악기를 관객들 가까이 갖다 대 소리의 에너지를 확장하기도 했고, 소리 영역 안에 자신의 숨을 불어넣고, 장난감 같은 악기를 갑작스레 불어 댔다. 새 소리 같은 돌발적인 그녀의 소리는 일상의 삽입으로 볼 수 있었고, 곧 연주에 현실이 마주하는 것이었다. 일상의 우연한 감각을 일깨우는 듯한 음악은 더 이상 일상과 멀지 않다는 걸 보여 주는 변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증거물 같다.

전체적으로 이 둘의 연주는 사운드에 의해 촉발되고 부가되는 퍼포먼스와 사운드의 만남으로도 설명이 될 것이다.



02. 조영민 JO Young Min : 영적 고양의 싱잉 보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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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민은 마치 약사발 같은 모양새의 싱잉 보울의 가를 봉으로 어루만지듯 쓰다듬는다. 여기에 전자 음향이 기본적으로 소리를 냈다. 폭과 높이가 다른 전체적인 크기에 따라 악기들은 높고 낮은 다른 소리들의 잔상을 남기고 있었다. 소리들은 종잡을 수 없다. 그리고 익숙하지 않고 자꾸 귀를 빗겨 나가기도 했다. 이는 당연히 이 연주에서 실행의 요소가 강하고 즉시성이 내포되기 때문이다. 악기의 조정은 정확해야 하지만, 특히나 조심스레 다루는 건 연주 이후에 벌어지는 시간차를 갖기 때문에 잔상에 대한 반향이 후차적이기 때문이다. 이 안에 동양적인 뭔가의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됐는데, 그 안에서 시끄럽지 않은 뭔가 웅혼하거나 산사의 아침 같은 그윽한 향이 공감각적 연상 작용을 벌이기 때문이다.



03. 안젤라 로버츠 Angela ROBERTS & 스캇 구프 Scott GOFF : 다차원적 판타지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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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로는 반주를 맞추는 격이었고, 랩톱은 거의 많은 부분의 연주를 이끌어 가고 실험되었다. 무슨 펜 마우스 같은 것으로 화면을 보며 일종의 마우스 패드 같은 곳에 두 점을 찍었고, ‘두두두’하는 그르렁거리는 소리들이 생겨져 나왔다. 마치 그 노이즈 사운드는 어둠 속 공간에 있던 괴생물체들이 우르르 뛰쳐나와 존재의 지저귐을 낸다고 할까, 어떤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간간히 손에 또 하나의 작은 장비를 들고 움직인다. 이는 그가 wii 컨트롤러를 개조하여 만든 것이다. 이는 일종의 피드백 효과를 가지고서 소리가 행위에 따라 즉각적으로 어떻게 형성되는지 물리적 실체로서의 소리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그 지점은 흥미를 준다. 첼로는 더 이상 아름답기보다 이 소음과도 같은 독특한 음질에 맞춰 자신을 겸허하게 비워 존재감을 획득하고 있었다.



04. 사토 유키에 SATO Yukie : 소리를 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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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유키에는 다른 작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넓은 소리의 영역을 다루고 있음이 한 눈에 드러났다. 그만큼 변동이나 무정형의, 무질서의 소리들을 창출해 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사운드 장비의 스위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고서 관객과 함께 동시적으로 온갖 소리들의 균열을 목격한다. 그 위에 플랫 없는 작은 기타를 올리고 현 위에 모든 장난감 같은 소도구들을 올려 노이즈를 이끌어 낸다.

처음 기계를 확인시키는 차원이라면 다음은 거기에 더해 장비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것이다. 전자가 전자음의 다양한 영역의 무규칙적 조합을 거의 무의식적임에도 많은 부분의 소리를 일정한 방식으로 보여준다면 후자는 조금 더 살아 있는 조우를 통한 매질의 고유한 특성들을 드러내는 재미있는 유희와 같은 만남이다. 그리고 앞서 소리가 이전 행위가 끝나고 남는 파동과 함께 다음 행위가 이뤄져 거의 강박이나 빠른 발산과도 같이 음악을 다뤘다면, 다음은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앞으로 튕겨져 나오는 단말마의 외침들과 같다.



05. 이한주 LEE Han Joo & 마이클 오클리 Michael OAKLEY : 말을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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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클리의 루프 스테이션의 소리가 전체적인 지배를 형성한다. 나중에는 기타를 연주하는데, 거기에 이한주의 드럼의 연주가 일치된다. 이한주는 각종 악기를 다루는데 피리를 불기도 하고 간간이 노이즈 사운드에 정확한 지점을 호기롭게 파고든다.

그러다가 오클리가 피리 같은 걸 윙윙거리는 소리를 스스로 제한이었던 듯 벗어났고, 미리 약속했듯 둘의 얼굴이 마주하는 순간 격렬한 연주의 파고가 일었다. 무작정 치고 두드리며 둘은 있는 힘껏 그저 달린다. 앞을 잠깐의 예비 장식인양 가벼운 전주쯤으로 제치고. 그래서 한결 연주는 더 홀가분했다.



06. 김영진 KIM Young Jin : 기타로 유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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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은 조용히 기타 위에서 놀았다. 그의 기타는 여러 주법을 통해 소리를 만들어갔는데, 사토 유키에의 온갖 사물들의 진열장이 되고 마찰로 소리를 일으키는 것처럼 그는 튕기고 손을 양옆의 범위로 왔다 갔다 조몰락거리며 차분하면서도 현란한 솜씨를 선보였다. 연륜도 묻어났고 깔끔했다.



07. 이봉교 LEE Bong Gyo & All Musician & Audience : 리더 장구의 지칠 줄 모르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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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교의 장구에 모두가 합세했다. 결론적으로 장구의 힘은 컸다. 마지막에 자리를 미술관 을 왔다 갔다 하며 관전했는데, 마지막 연주는 두 공간을 옮겨가서 마무리했다. 이봉교는 신이 났고 멈추기는 힘들었다. 여기에는 어떤 축제와 같은 흥이 연주의 느린 듯한 끊이지 않는 고유의 리듬 체계와 맞물리는 어떤 지점에서의 고유한 흥이 있는 것에 부합됐다. 모든 걸 두들겨 대며 그득 메우는 소리들의 집합은 완전히 하나의 지점을 향해 있었고, 모두가 흥겹게 됐다.


에필로그 : 노이즈 사운드 계열의 음악 맛보기

아마 백남준 가장 많은 박수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안겨 준 날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사물놀이라면 더 가야 했고 사운드 잔치였다면 이 정도로서도 좋았다. 다른 것들이 소리가 크고 균열적이고 분절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것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철저한 연주 행위에 가깝다. 클래식 장르와도 같은 것이다.

특히 안젤라 로버츠과 스캇 구프, 두 사람의 작품은 다른 작품에 비해 가닥을 잡기가 힘들다. 전체적으로 이날 연주에서 노이즈의 공명은 한 음에서 다른 음으로의 도약은 자유로움과 실험 질서의 창출이지만 그럼에도 납득하기 이전에 그 하나의 영역에 단속되기 쉽다는 걸 자각하게 된다. 음의 강한 자장 안에 있는 대신 전체적인 구조가 파열음의 자취로만 남는 것이다. 오히려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이들의 미세한 차이와 구조를 맛볼 필요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대중음악의 대척점에 있는 클래식의 질서에서 벗어난 실험의 맥을 여전히 계속해서 잇는 어떤 음악의 체계 안에서 조금 더 폭넓게 이들의 연주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 불가사리 홈페이지 :
http://www.bulgasari.com/

* 표현 갤러리 요기가 : http://yogiga.com/tt

* 백남준 아트센터 블로그 : http://blog.naver.com/njpartcenter


필자소개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분야 자유기고가, 現다원예술 비평풀(daospace.net)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