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극단 청맥의 <overtones 당신은 어때?>

홍상수, 그리고 [overtones 당신은 어때?]

데자뷰

극단 청맥의 [overtones 당신은 어때?]를 보는 내내 입가엔 야릇한 미소가, 참지 못한 ‘킥킥’소리가 튀어나왔다. 한참을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웃고 있는 이 웃음과 미소가 왠지 익숙했던 것이다.

‘어디에서 이렇게 웃은 적이 있었는데.’

분명히 이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미소를 지었던 때가 있었다.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떠올랐다. 나는 [overtones]를 보기 전, 총 여덟 번 이런 기분으로 웃었다. 여덟, 8. 그것은 내가 본 홍상수 영화의 편수이다.



홍상수의 영화 vs [overtones]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하시는지? 그는 매우 짓궂은 사람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뭣한, 이해할 수도 없는, 그러나 누구나 가지고 있을 모습을 영화로 담아낸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며 웃는다. 그러나 그 웃음의 의미는 결코 개그콘써트를 보며 웃는 웃음의 그것과는 다르다. 만약에 그 웃음의 성분을 분석할 수 있다면 40%정도의 민망함과 30%가량의 공감, 20% 가량의 자기반성과 저렇게 살지 않겠다는 다짐, 그럼에도 10%정도는 ‘그래서 어쩌라고?’가 있을 것이다.

홍상수의 영화들이나 [overtones]나 대략난감하고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까놓고 보여준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홍상수의 영화들이 그랬듯이 [overtones]역시 공감과 민망함, 자기반성과 다짐을 하게 만들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홍상수의 영화는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배경으로 만든 드라마라는 점이고, [overtones]는 우리가 가진 눈으로는 볼 수 없지만 존재하고 있는 싸움을 여러 명의 ‘나’를 등장시켜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사랑하는 존 대신 돈을 택한 해리엇과 사랑하는 존을 택했지만 가난한 마가렛. 한 남자에 의해 얽혀 있지만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는 그녀들이 4년 만에 만났다. 겉으로는 반가운 척 하는 둘이지만 서로를 보자마자 극도의 질투와 시기, 비관, 자기합리화 등에 시달린다. 이러한 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해리엇 안에 있는 또 다른 해리엇들이, 마가렛 안에 있는 또 다른 마가렛이 등장한다. 그리 밝지 않은 무대 위, 모서리만 있는 상자들 속을 애벌레처럼 드나드는 또 다른 해리엇들과 마가렛들이 있다.

만약 우리들에게 제 2의 눈이 있다면, 그것이 오직 단 하나의 ‘나’로서 존재할 것이라 믿는 얄팍한 피부가죽 너머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이라면, 무수한 ‘나’들이 우글거리며 싸우고 있는 전쟁의 장면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나로 보이는 피부가죽 속에서 매순간 무수히 많은 내가 새로 생기고, 죽고, 이기고, 좀비가 되었다가, 되살아나는 모습을.




당신은 어때?

해리엇과 마가렛은 존을 만나러 가기로 한다. 해리엇은 존을 되찾기 위해, 마가렛은 해리엇에게 돈을 뜯어내기 위해. 극은 막을 내린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은 어때? 당신은 어때? 당신은 어때?

당신은 어떠냐고? 우리도 그렇게 산다. 해리엇처럼, 마가렛처럼. 수없이 많은 나와 싸우고 승리한 내가 잠시 가죽행세를 했다가 죽고 또 다른 내가 가죽이 된다. 그런데 그게 뭐? 어쩌라고? 그게 잘못됐단 거야? 홍상수의 영화를 보는 동안 낄낄거리며 웃다가 영화가 끝나면 문득 드는 물음이 밀려온다. 궁금해서 묻는 물음이라기보다 ‘이런 게 우리의 모습이잖아. 당신은 어때?’라는 비꼬는 듯한 물음에 대한 항변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이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 연극을 본 후에도 계속해서 살아나갈 나를 위해 생각을 해 본다. 어떤 게 진짜 ‘나’인지 혹은 옳은 ‘나’인지는 알 수 없다. 옳거나 진짜라고 여겨지는 ‘나’도 확고부동하진 않다. 해리엇이나 마가렛이 그랬던 것처럼 ‘나’는 끊임없이 싸울 것이고 누군가가 이겨 ‘나’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치열해질 것이다. 노력해야 한다. 먹은 음식 소화 잘 시키고 똥 잘 누는 건강한 ‘나’가 승리할 수 있도록, 그 ‘나’가 승리해 있을 동안에는 그 위장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극단 청맥 <Overtones 당신은 어때?>

연극 45min 8.15(토)-16(일) 17:00 소극장 예
원작 Alice Gerstenberg | 연출 문미영

헤리엇은 오래 전 친구였던 마가렛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마가렛이 오기 전 또 다른 자신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헤리엇에게 자신이 진짜이고, 헤리엇은 껍질에 불과하며, 죤과 결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감을 헤리엇에게 퍼붓는다. 반면 마가렛과 또 다른 그녀 메기는 현실의 고단함과 죤과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헤리엇에게 찾아가게 되는데….

2001년 창단된 극단 청맥은 당시 뮤지컬과 코미디가 주종을 이루고 있던 한국연극현실을 비판하고 정극의 중요성을 외치며 한국연극 발전에 작은 힘이 되기 위해 모였다.
http://club.cyworld.com/overtones

글 권냥
빵과자만들기, 맛집 찾아다니기, 영화보기를 즐겨하는 소년가슴의 처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