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4. 22. 09:50ㆍFeature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아홉 번째 기록
“마음속의 종을 울려주세요”
글| 이현수(목요일 오후 한시 배우)
*들어가는 말
안녕하세요? 저는 강말금이 아니고 이현수입니다.
‘고재경의 판토마임 워크숍 제4기’ 16명의 참가자 중 한 명이에요.
워크숍 동료인 말금 씨가 이번 주에는 어디에 간다고 저에게 기록을 부탁했습니다.
4월 12일에 프린지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마임 워크숍에 대해 적어볼까 합니다.
그런데 강말금 씨는 어디에 간 걸까요.
몸풀기
둥글게 서서 ‘(종이)컵차기’를 했다. 계속 해봐도 7개를 넘기지 못해서 나중엔 ‘컵치기’로(손으로) 룰을 바꿔야 했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고 웃고 떠들며 시작의 문을 열었다.
1부
이 날, 가장 많이 나온 단어는 아마도 ‘점’이라는 말일 것 같다.
“정확한 점! 점 찍고~ 전환! 점 찍고~ 전환! .... 정확한 점!
점! 점! 점! 점! 점 다 어디 갔어요.”
한 점을 기준점으로 네 개의 임의의 점을 상상해 본다. 머리 위/ 배꼽 아래쪽/ 오른쪽/ 왼쪽
그 점들을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연습한다. 각 방위의 점들과 기준점을 왔다 갔다 하며 손으로 직선을 그린다. 사선도 연습하고 양손도 연습한다.
‘이걸 왜 하는 것일까? 궁금해, 흠... 하다보면 알게 되겠지...? 질문을 할까 말까...’
이 궁금증은 다음 연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풀렸다.
“공간을 인식하세요. 나가는 방향, 힘, 공간... 휘어지지 않게 정확히..
막연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임의의 선이 있잖아요. 임의의 선!
공간 인식, 공간 인식...정확한 점에서... 선! 선!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느껴야죠!!
임의의 점을 느끼고 있어야죠. 공간을 느끼세요.
밖에서 볼 때 똑같은 점을 찍어주면 선이 살아있어요.
축 안에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각 방위의 점들을 몸으로 익혔다는 ‘전제’하에 우리는 다음 연습으로 넘어간다. 손이 네 개의 방위 중 어느 한 점을 찍는다. 이 점이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도록 유의 하면서, 이 점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를 이리 저리 움직여본다. 꼬아보기도 하고 최대한 펴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공중에 네 개의 못이 박혀있고 이 못들 중 하나를 잡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보는 것 같다고 할까. 이때 네 개의 못 점을 연결한 선을 공간의 축으로 느낀다.
기준점과 상·하/좌·우/앞·뒤의 예
(지와카 씨의 그림을 활용함)
“무조건 움직이는 게 아니고...
임의의 점이지만 인식하라는 거에요.
그러면 느낌이 달라져요. 그게 습관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잘 안되면 (처음에 했던) 기본적인 것을 계속 연습하세요.
공간 인식하시고 내가 어느 방향으로 뻗어야 하는지...
상! 하! 좌! 우! 사선...
보여야 되요. 기억하고 있어야 되요.
보이지 않지만 임의의 선이 있어요.
자꾸 움직여서 몸이 기억하게 만들어야 해요.
딱 보여야 해요.”
신체가 공간 안에서 어떻게 움직임을 그리는지 익혀가는 과정일까. 그림을 그릴 때, 흰 도화지 위에 십자 모양의 축을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사물을 놓고, 풍경을 놓듯... 보이지 않는 공간의 축 위에 움직이는 신체가 다양한 그림을 그린다. 찰칵, 찰칵... 그때 몸이 그리는 점, 선, 면, 양감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보이지는 않지만 공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열심히 하시는데 안타깝네요. 손(고정 점)이 자꾸 따라가요.... 정지 포인트도 중요해요.”
그러나 역시 점들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는 전제일 뿐이어서, 고정된 점으로 찍은 그 점이 몸을 따라 자꾸만 움직인다. 다른 점을 찍었다가 다시 그 점을 찍으려고 하면 전혀 다른 곳을 찍고 있다.
‘(손으로 찍은 고정된 점을 째려보며) 점, 거기 가만히 있어 줄래?’
‘(고정된 점을 찾아 더듬더듬 거리며) 점, 어디 간거니...’
‘(고정된 점 의식하느라 뻣뻣해진 다른 부위들) ...(점점점)’
고정된 점들이 만든 축, 그 선들은 무한대로 뻗어나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주 작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무한대의 공간 속에서 나의 몸이 작아지는 상상도 해 보고 작은 상자 같은 공간 속에 나의 몸이 꽉 차는 상상도 해 본다. 커지고 작아지고...
‘(정신을 차리고) 근데 지금은 손바닥 안의 점 하나를 고정하는 것도 안 되는군, 흠흠’
“계속 하세요....
하다보면 느껴져요. 집중하시고.”
2부
여러 시간에 걸쳐 연습했던 ‘줄 잡아당기기’의 응용이다. 줄 끝에 있는 아주 무거운 무언가를 잡아당겨보는 연습이다. 좌우/ 등 뒤/ 위/ 아래/
바다에 던진 그물을 잡아 당겨보자. 커다란 물고기가 잡힌 것일까? 그 물고기의 저항에 버금가는 힘으로 잡아당기기 위해 나의 신체는 그 놈의 힘의 방향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때 머리, 어깨, 가슴, 골반이 차례차례 움직이면서 줄이 잡아당겨진다.
“필름 돌아갈 때 ‘촤라라’ 돌아가잖아요? ‘쑥’ 지나가면 모르죠. 왜 천천히 연습 하냐면 급하게 하면 넘어가게 되요. 세분화 시키면 아무리 빨라져도 똑같이 나올 수 있죠. 야구할 때도 이것만 (기본 동작) 시킨다면서요. 천 번, 만 번 시킨대요. 정확히, 천천히 하세요.”
몸의 분리를 했던 까닭이다. 한 순간에 끝나버리는 동작일지라도 초고속카메라로 세분화시켜 보여주듯이 펼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몸과 움직임의 ‘펼침’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더 생생하게 만들어 준다.
에구에구... 그런데 몸을 분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이 놈의 몸이 지독히도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느낀다. 트랜스포머처럼 하나 하나 분리해본 다음에 다시 합체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번에는 땅에서 무거운 무언가를 잡아 올리는 연습을 해보자. 원리는 같다. 물체의 중력 때문에 생기는 무게(힘)와 내가 끌어당기는 힘 사이의 팽팽한 긴장. 그 사이의 상반된 방향성. 몸이 하나하나 펼쳐지며 줄은 잡아당겨진다. 줄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도록 재빨리 줄을 옮겨 잡아야 한다. 자칫하다가는 그 줄에 내가 빨려 들어갈지 모르니까.
“룰을 지켜주세요. 머리, 어깨, 가슴, 골반의 순서 정확하게... 하지만 부드럽게...
원리를 알면 응용이 가능하다는 거에요”
고재경 씨는 종종 말한다. ‘원리를 알고 몸이 이해하는 것이 먼저’라고... ‘응용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그 원리를 계속 연습하다보면 얼마든지 응용도 가능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이 생겨난다고.
“(머리)위에 큰 종이 있어요. 종을 치면 울리잖아요? 울림까지 몸으로 표현해 주세요. 뎅그렁~ ... 마음 속의 종을 울려주세요. 청각! 소리가 없어도 들리게 해야죠.”
커다란 종을 치는 종지기. 밧줄을 잡아당겨 종을 칠 때는 몸이 구부러진다. 종을 치기가 무섭게 밧줄을 잡고 있던 내 손을 잡아당기는 ‘위’. 구부러졌던 몸은 다시 펴지면서 몸이 들어 올려 진다. 물론 실제로 들어 올려 지는 것은 아니고 그런 느낌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을 표현한다. 종소리의 메아리처럼 매달린 우리의 몸도 메아리를 그린다. 흔들흔들... 소리가 보이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종지기가 되었다. 그때 각자는 어떤 종을 치고 있었을까? 연습 때는 내 종 치느라 바빴지만 지금은 다른 이들의 종이 어떤 소리를 내고 있었을지 궁금해진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심정으로 울리는 종이었을지 궁금해진다. 문득 ‘저마다 이 워크샵에 참가하는 나름대로의 동기와 이유들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뛰어난 테크닉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시간 동안 각자의 종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어우러져 화음을 만들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궁금해진다. 여전히 살짝은 추운 연습실의 공기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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