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스물아홉 도시싱글녀의 '마야데렌 감상법'


<미디어극장 아이공 특별 기획전: 댄스필름의 창시자 마야데렌과 오마주展>


스물아홉 도시 싱글녀의

마야 데렌 감상법

                    
                    마야 데렌이 들려주는 여섯 편의 꿈, "열쇠는 네 안에 있어"


|허김지숙


 

Meshes Of The Afternoon 1 (Maya Deren, 1943)


목요일 오후 두 시 이십 분, 미디어극장 아이공에 갔다. 공교롭게도 평일 오후 마야 데렌 오마주 섹션3’의 관람객은 단 한 명이었다. 텅 빈 극장에 불이 꺼졌다. 한기가 도는 스크린에 고딕체의 자막과 함께 흑백화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러닝타임 115. 졸려웠다. 아니 곤혹스러웠다. 8편의 단편 필름, 이해가 부족한 탓일까, 감상을 나눌 일면식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순간을 쓸쓸하다 라고 적는다면 지나친 감상일 것이다.

극장을 들어설 때 가지고 갔던 물음 그대로, 댄스 필름이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춤을 이용한 작품도 있었고, 이미지와 음악이 주된 작품도 있었다. 서사를 품은 작품도, 서사를 무시한 작품도, 서사를 아예 숨겨버린 작품도 있었다. 2010년 드라마의 세계에 살고 있는 도시 싱글녀는 감상 내내 그 안에 담겨진 이야기의 고리를 찾고자 애면글면했다. 과연 그게 옳은 감상법이었을까, 감상이라는 것에 옳고 그른 것이 있는 것일까, 아무도 지키지 않는 극장 카운터를 지나 좁은 골목을 빠져나올 때까지 물음들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건 지난 밤 꿈, 같은 것

비스듬한 미인
, 담배를 든 마야 데렌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헐리우드가 립스틱에 쓰는 비용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I make pictures for what Hollywood spend on lipstick)” 


마야 데렌의 이 말은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겐 더 이상 선동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우리들은 알고 있다. 마야 데렌의 작품을 보고 인상적인 코멘트를 하는 것만큼이나 2010 FW 샤넬 모델이 선보인 신상 립스틱 컬러가 무엇인지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마야 데렌의 이름은 혹시 다음 소개팅 자리에서 만날 지도 모를 독립영화 감독 앞에서 수준 맞는 대화를 이끌기 위한 교양 정도가 적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속물적인 생각이 들더란 말이다. 그러나 다시 만난 마야 데렌은 저 저급한 생각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자신의 입 속에서 열쇠를 꺼내는 <오후의 올가미>의 한 장면은 분명 마음을 잡아 끄는 무언가가 있었다.

 

 



'마야 데렌 섹션
1’은 마야 데렌의 댄스필름과 초현실주의 영화 6편을 빨리 만들어진 순서대로 상영했다. 첫 번째 작품은 <오후의 올가미>였다. <오후의 올가미>1940년대 초 그녀의 아버지에게 물려받는 16mm 볼렉스로 촬영되었다. 그녀는 연출뿐 아니라 직접 필름에 출연하여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의 세계로 직접 인도한다. 가녀린 팔에 들린 꽃 한 송이, 그리고 떨어진 꽃으로 다가가는 검은 팔의 그림자, 흑백 필름만이 보여줄 수 있는 무채색의 농담이 인상적인 시작이었다. <오후의 올가미>의 첫 장면이다.

작품에서 그녀는 연속적인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시간과 공간은 겹쳐지고 반복된다. 그 시공은 같은 층위에 존재하지는 않으며 그것은 마치 지난밤 꿈처럼 자유롭게 형태를 바꿔가며 변주되기 시작한다. , 열쇠, , 축음기, 내려진 수화기, 거울, 그리고 거울의 얼굴을 가진 남자. 검은 옷을 입은 누군가의 뒷모습. 작품의 전면에 배치된 이러한 인상적인 오브제들은 자칫 모아지지 않고 각각의 상징성을 따라가기에 난감하다. 그것들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도대체 그것들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쫓아가기에 너무 숨가쁜 것이다. 그러나 이성에 의한 해석, 그 조바심은 작품이 진행될수록 서서히 사라져간다. 작품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앞에 산발적으로 느껴졌던 상징들은 온전히 제자리를 찾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꿈의 자동기술은 다음 작품
<뭍에서>에서도 계속된다. 무의미해 보이는 행동들과 급작스런 공간의 변화는 또다시 당혹감을 안겨주지만 좀더 명확해진 그 안의 여성욕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상반신은 뭍에 그리고 하반신은 물에, 욕망=물의 클리쉐가 아니더라도 <오후의 올가미>에 잠깐 등장했던 깨진 거울 속의 물과 <뭍에서>에서 보여지는 바다는 통일성을 보여주며 그것은 다른 아닌, 마야 데렌의 자의식 곧 여성으로서의 강한 무의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카메라를 위한 안무 연구>에서부터는 무엇보다 몸이 주요한 대상이 되는 작업이 시작된다. 전작들의 알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또는 이성의 잣대로 분해 불가능한 몸(무의식)의 일면을 보여줬다면 이번의 은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역동하고 있었다. 이 짧은 필름은 후에 <폭력에 대한 명상>에 대한 전조처럼 보여진다. 또한 댄스 필름의 첫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변형시간의 의례>에서 몸의 향연은 한걸음 더 나아가며 연속적인 주제 시간공간의 표현 또한 계속된다. 이 작품은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받아 연출했다고 하는데 그녀의 유작 <밤의 눈> <디바인 호스맨:아이티의 살아있는 신들>이 또한 신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그녀가 신화라는 서사의 원형을 비선형적 기술(
記述)을 택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작품들을 보며 많은 생각과 함께 생각보다 강한 느낌이 떠올랐다. 불안과 혼란, 부유하는 공기와 육체의 아름다움. <밤의 눈>에서 완성된 움직임들과 음악, 흑백필름의 장면들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그 안에 우리가 쉽게 잡아낼 수 있는 ‘이야기’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작품은 그 자체로 다른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대로 보며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만약 마야 데렌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44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또 어떤 작품을 보여줬을지 안타깝기만 했다.



 

At Land (Maya Deren, 1944) 



해석하려 하지 말아요



그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15분 동안의 백일몽이었다.


간밤의 꿈에 상식적인 기준을 가져다 아무리 그럴듯한 해몽을 덧붙인다 하더라도 그것은 꿈일뿐 현실의 손아귀에 무언가를 쥐어주진 않는다. 다만 그 꿈을 꾸기 위해 우리는 밤마다 잠들지 않던가. 때로는 악몽일수도 있고 때로는 황홀한 꿈일수도 있겠지만 밤마다 펼쳐지는 무의식의 선물은 의도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신비의 영역이다. 그러니 그녀가 선물하는 15분간 백일몽은 결코 분해하려하거나 해석하려 들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오마쥬 섹션, 마야 데렌의 작품들을 보고 다시 팜플렛을 펼치니 오마쥬 섹션의 작품, 작품들이 얼마나 그 자신만의 색깔로 채색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되었다. 특히, 한국 감독들의 작품이 어떠했던가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그 현란함과 주제에 있어 마음에 들지 않던 <오 사랑스런 처녀>의 경우, 마야 데렌의 주제의식과 형식을 가장 잘 소화해내고 있다고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저 같은 형식의 비슷한 분위기를 내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녀의 실험정신을 이어받은 작품이었다. 되돌아보건데, 작품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임산부, 태아를 다뤘다는 점이 내 안의 불편함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2010
한국의 봄은 또다시 여성의 몸에 대해 타자의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했다. ‘출산장려책을 내세우며 낙태 근절을 강요하는 사회. 이런 현실에서 마야 데렌이 베갯머리에서 들려주는 여섯 편의 꿈은 스스로의 무의식을 들여다보라고 그 몸으로 표현하라고, 열쇠는 네 안에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소개팅에서 만날지 못 만날지도 모를 어떤 남자, 혹은 나보다 내 몸을 더 깊이 탐구했다고 믿는 헤어진 전 남친, 그들에게 있어 보이려는 수작이 아닌 감상. 스물 아홉 도시 싱글녀는 , 스스로 느낄 뿐.









미디어극장 아이공 2010년 3월 특별 기획전
댄스필름의 창시자 마야데렌과 오마주展


Retrospective of Maya Deren,
the Mother of Dacne Film and Her Homages


주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소: 미디어극장 아이공
날짜: 2010년 3월  23일(화)~4월 24일(토)



마야 데렌 Maya Deren(1917 - 1961)

 마야데렌은 우르라이나의 수도 키예프(Kiev)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가족과 함께 옮겨오며 시라큐스 대학(Syracuse Univ.)의 YPSL(젊은 사회운동가 연맹)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긴 그녀는 사진작가로 잠시 활동하다가 안무가 케서린 던햄(Katherine Dunham)의 비서가 되어 던햄 댄스컴퍼니(Dunham Dance Company)에서 함께 일했는데, 이 경험은 그녀가 ‘댄스 필름’의 창시자로 거듭나기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 1940년대 초,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16mm 카메라로 마야데렌은 드디어 그녀의 가장 훌륭한 대표작인 <오후의 올가미 Meshes of the Afternoon>를 연출한다. 글쓰기, 연출을 넘어, 직접 출연, 퍼포먼스를 하였던 마야데렌은 실험적 아방가르드 필름연구로 그치지 않고 47년, 아이티로 건너가 민속 필름에 대한 연구로 그녀의 작업방향을 바꾸었다. 그녀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부두교 의식에 참여하며 부두교의 전통춤과 노래에 심취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1961년 44세의 젊은 나이에 뇌출혈로 인해 마야데렌이 사망하고 난 후, 그녀의 세 번째 남편 테이지 이토(Teiji It?)가 이 촬영분을 편집하여 영화 <디바인 호스맨 Divine Horseman>을 제작한다.

“나는 헐리우드가 립스틱에 쓰는 비용으로 영화를 만들어요. (I make my pictures for what Hollywood spends on lipstick)” 라고 말했던 마야데렌, 그녀는 진정한 아방가르드 댄스필름의 창시자이자 뉴 아메리칸 시네마(New American Cinema)의 선두주자였다. 그녀의 죽음 후, 86년, ‘아메리칸 필름 인스티튜트(American Film Institute)’는 ‘마야데렌상(Maya Deren Award)’을 제정하였다.



필자소개

허김지숙
자유기고가. 소설가 지망생. 
블로그 바로가기








  1. 초현실주의 영화 굉장히 좋아하고 댄스필름의 초기단계도 궁금하여, 마야데렌 보러 아이공 가고 싶었지만 못가서 아쉬웠는데, 이렇게 자상한 리뷰와, 유투브영상으로 확인 할 수 있어서 좋으네요. 하지만 이런 영화는 커다란 스크린 앞에서 멍때리며 보는게 제 맛인데...

    마야데렌의 작품이 더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시다면 유투브에서 'Maya Deren'으로 검색하시면 많이 나와요. 올린 영상들이 각 두편씩으로 나누어져 올라와 있는데, 구성상 하나씩만 올려 두었거든요.

    그리고, 아이공에서는 5월 27일부터 오노요코 기획전을 준비중이네요. 가 고 싶 다.

  2. 아름다운 영상들인걸요. 초현실주의 영화들이 단순히 속도감있는 전위성과 기성에 대한 반발을 넘어서 (예컨대 콕토나 브뉘엘이 그랬듯) 신화적 깊이와 견고함을 획득하기 위해서 몸부림치는 순간들을 연상하게 됩니다. 마야데렌의 경우에는, 욕구의 복권, 몸의 표현을 통해서 이를 성취했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것도 훨씬 간결한 표현을 통해서요... 그리고 덕분에 아이공을 알게 되어서 기쁩니다. 오노요코전 역시 탐나는 기획이네요.

  3. 안녕하세요!저는 영화과 학생인데요, 과제때문에 댄스필름에 대해서 더 알고싶은데 ㅜㅜ혹시 댄스필름에대해 자료 아시는게 있으시거나 ,,하시면
    duekdtp@nate.com 으로 자료 정보같은것좀,,알려주실수 있으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