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대독립클럽'의 <미드나잇 퍼레이드> - 진짜 재밌는 걸 알려줄까?

2010. 9. 7. 16:34Review

'세대독립클럽'의 <미드나잇 퍼레이드>
 - 진짜 재밌는 걸 알려줄까?


 글_허김지숙





자정을 넘긴 시간 밖에서 밤을 지새워 본 사람, 생전 처음 본 사람과 밤을 공유해 본 사람, 느닷없이 원하는 곳으로 가 아침을 기다려본 사람 그리고 그 순간을 다시없을 밤으로 보내본 사람, 여기 지난밤을 그렇게 보낸 70여명의 젊은이들이 있다.

 

8월 22일의 눅진한 밤, 1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그 날의 지령은 간단했다.

「토요일 자정 홍대 스타벅스 옥상에서 모입니다.
  비치된 오브제(야광봉, 돗자리, 불꽃놀이, 카메라, 얌체공… 등)를 들고 
  서울 내 각 지역으로 흩어져 밤을 즐겁게 보냅니다. 」


이 신선한 제안은 플럭서스의 지시문 같았고, 현장의 군중들은 자유로운 플래시몹의 한 장면 같았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야외거리예술제 참가작 <세대독립클럽>의 ‘미드나잇 퍼레이드’는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시작은 순조롭지 못했다. 자정이 십분 지난 시간 부랴부랴 도착한 홍대역 근처 스타벅스 옥상엔 장소가 롯데시네마 옥상으로 변경되었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다시 롯데시네마에 도착하니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들이 보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고, 젊은 그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고층의 아래 펼쳐진 홍대의 야경을 보거나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제각각의 모습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야릇한 표정은 옥상의 분위기를 축제와 같은 미열로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고조된 분위기가 일순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사정은 이랬다. 원래 모임장소였던 스타벅스 건물 옥상의 대여 과정에서 장소를 약속했던 ‘기성세대’는 20여만원의 선금을 챙긴 채 당일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프린지측에서 급히 주선했던 롯데시네마에서도 한 시간을 못 버티고 쫓겨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건물 측에서는 철수 준비를 하는 와중에 경찰에 신고를 했고 작가 차지량씨는 경찰서까지 동행해야만 했다.

 

보석금을 내고 차지량씨가 돌아오자 퍼포먼스는 바로 재개에 들어갔다. 그동안 건물 근처와 버스정류장에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성이던 이들은 금새 다시 모여들었다. 시간은 이미 자정에서 많이 지나있었지만 흩어졌던 인원은 금새 다시 모여들었다.


원래 옥상에서 해야 했던 ‘그루핑’은 이동 버스 안에서 이뤄졌다. 각 활성지역이 제안되고 사람들은 자신이 제안한 지역 혹은 다른 사람이 제안했지만 이 밤을 보내고 싶은 지역을 선택하여 버스에서 내리게 된다. 밤새 가지고 놀 물건과 필요한 물건을 챙겨 각 그룹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다.

 

처음 이 퍼포먼스에 참여했을 때 나는 적잖이 어색해서 변두리에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다른 사람들이 야광봉을 가지고 팔찌를 만들거나 목걸이를 만들고 심지어 옷을 해 입을 때도 마치 구경이나 나온 사람처럼 겉돌고 있었다. 즐기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혼자 온 사람은 나뿐인가 보다 하고 주눅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동 버스에 몸을 싣자 나도 어딘가로 흩어져야만 했다. 이때, 옆 자리에 앉았던 ‘귀여운’ 여자분이 ‘혼자 오셨느냐’는 구원의 멘트를 날려주셨던 것이다. ‘라라피포’라는 밴드에서 건반을 맡고 있다는 이 여자분은 자기도 지인의 소개로 왔다며 나에게 친근히 말을 건네 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야광봉을 하나 나눠주었다. 야광봉을 발목 근처에 둘러 묶었다. 그때 마치 발사된 주먹을 되찾은 태권브이처럼 안정감을 되찾으며 비로소 나도 퍼포먼스의 일원임을 느끼기 시작했다.


 

 

 





상수역에서 내려 한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걸어가는 도중에 우리 그룹은 가벼운 농담과 동지의식으로 묶이고 있었다. 서로에 대해 궁금해 하기 시작했고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다. 챙겨온 돗자리를 깔고 촛불을 켜자 분위기는 한층 더 편안해졌다. 시낭송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고, 진실게임을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진행은 즉흥적으로 이것에서 저것으로 옮겨갔다. 그래도 문제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문제는 ‘어떻게’ ‘즐겁게’ ‘모이고’ ‘놀 것인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 지급된 만천원의 돈(우리 세대의 상징적 금액 88만원을 참여인원의 수로 나눈 금액)으로 우리는 밤을 보낼 스낵과 음료를 샀고, 마침 참여한 밴드 ‘킥스카치’는 기타연주와 노래를 들려주었고, 현재 하고 있는 ‘미드나잇 퍼레이드’에 대한 비판적 토론도 이어졌고, 동 터오는 한강변을 향해 폭죽도 마음껏 터트렸다.







같은 시간 대학로, 숙대-이태원, 동대문, 청담동 등 8개 활성지역으로 이동한 그룹들은 각각의 시간을 보냈다. 이태원으로 이동하던 그룹은 효창공원으로 들어가 ‘놀래키기’ ‘링 던지기’등의 동심의 게임을 하고, 동대문 그룹은 챙겨간 돗자리와 구입한 악세서리로 드레스를 만들어 즉석 패션쇼를 하는 등 인상적인 ‘놀이’를 했다고 한다.


 






 

 

 

 

 









 

‘미드나잇 퍼레이드’는 <세대독립클럽>이 기존세대의 정의를 거부하고 ‘주제적 세대’로서 자립의 선택을 보여주는 행동과 사례를 제시하겠다는 프로젝트이다. 이 작업은 <세대독립클럽>이 보여줬던 ‘CHAT_TING‘, ‘GROUPING : DJ=YOU’등 이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여기서 현 젊은 세대는 ‘은둔하는 세대’로 규정된다. 이들은 온·오프의 ‘채팅’을 통해 ‘번개’를 하고, 이를 통한 ‘그루핑’은 형성과 해체를 탐구하며, 나아가 ‘퍼레이드’는 이렇게 형성된 그룹의 이동, 행동, 시선, 방향성을 쫓고 실험한다.

 

이 퍼포먼스가 인상적인 지점은 바로 즉흥과 자율에 있다. 강제되지 않은 군중이 각자의 기대와 생각을 가지고 모여들어 그 자리에서 결정한 무엇인가를 한다는 즉흥성에서 우리는 ‘세대’의 심중을 관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초반에 장소 문제로 좌절된 혹은 포기된 오프닝은 진행의 실패라기보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의 즉흥성에 있어서 퍼포먼스의 오프닝으로는 더 합당한 시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편, 퍼포먼스가 진행되기 위해 규정지어졌던 가이드라인은 백지상태인 참여자들에게는 하나의 정해진 틀로서 존재하는 아이러니도 내포한다. 활성지역의 선택이 서울 내라는 것, 정해진 금액 안에서 활동(혹은 반대로 금액을 다 소모해야만 한다는 강박) 해야 한다는 것, 그룹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 등 조건이 한정될수록 즉흥과 자율은 규제받게 된다. 또한 각자 ‘주체적’ 대중으로 참여한 이 퍼포먼스가 그룹으로 묶여지며 그룹 내의 적극적인 참여자가 존재하는 반면 그 그룹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시하지 않는 참여자도 존재하게 된다. 이는 또다시 세대라는 이름으로 묶여 개개인의 생각을 엿볼 수 없는 형태가 되며 기존의 세대(대중)와 큰 변별력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의도와 한계가 분명한 이 퍼포먼스가 지닌 힘은 실로 희망적이다. 70여명의 젊은이들이 각자 자신의 세대와 의도를 탐구하기 위해 그 밤을 그대로 보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진정한 즐거움인지 찾으려고 노력했다. ‘은둔형 외톨이’인 우리들이 밖으로 나왔고 낯선 이의 손을 잡았으며 소통하려고 한걸음 내딛었다.


참여했던 각 그룹의 퍼포먼스는 영상으로 제작되어 9월 17일부터 10월 13일까지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를 하게 된다. 진짜 재밌게 밤을 보내는 법 알고 싶다면 미술관으로 고고씽.

 

 




















2010.8.15. 0:00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야외거리예술제 참가작

2010.9.17-10.13 아르코미술관 기획 ‘이씨의출발 展’ 참가작

 


“ 젊은 나이의 한사람으로써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세대의 정의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사회의 다양한 성장과정을 경험하며 개인 스스로의 인식과 판단을 해 나갑니다. 기존체제의 관념에서 벗어나 세대 안, 각자의 에너지가 발휘되길 바랍니다. 하지만 때론 그것은 다른 방식으로 소모되곤 합니다. 익숙한 패턴을 이루며, 학습된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성장하고 있는 이 세대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문화의 발견이 필요하고 그것에 관한 인식과 담론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이 시대를 어떠한 성향을 갖고 있으며, 어떠한 태도를 취한 채 살고 있는지, 그에 따른 문화로 생성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지, 당사자로써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세대독립클럽’은 세대가 자립의 선택을 보여주는 행동의 시작이며 하나의 사례입니다. ”

 

<세대독립클럽>은 성장하는 세대의 커뮤니티로 출발하여, 스스로의 인식인 ‘자체발광’, 그것을 공통범위의 사람들과 네트워킹 할 수 있는 ‘번개’를 제안하고, ‘은둔하는 세대의 디지털캠프파이어’의 현장을 경험하였다. ‘CHAT_TING’은 ON/OFF-LINE에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어 ‘GROUPING : DJ=YOU’에서는 그룹의 형성과 해체를 통해 세대의 태도를 관찰-실험하며 독립적 행동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번 ‘미드나잇 퍼레이드’는 성장하는 세대가 움직이는 현상을 포착하여 그들의 존재감을 담아보려고 한다. 또한 시스템화 되어있는 도시라는 실제 공간에서 그들이 어디까지 이동할 것이며 어떤 행동을 하게 될 지, 시선은 어디를 향할지, 그 방향을 동세대 스스로가 쫓는다. 현제 진행형의 성장하는 세대의 확장과정을 실험한다.

 

*성장하는 세대는 기성세대가 정의했던 경제적관점의 88만원세대와 구시대적 아름다움으로 포장된 언어 청춘과 분별적으로 쓰고자 하는 키워드이다. 현재 진행형의 세대적 현상에 지나치게 그들의 의식을 학습하게 한 부분에 이의를 제기하며 세대독립클럽은 시작하였다. 키워드로써, 온전한 성향으로서 담론이 형성될 수 있는 사례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밤이 지나가고 있다. 자정, 막차를 놓친 사람들이 자리한 거리. 젊은이의 눈빛은 아직 또랑또랑하다. 성장하는 세대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든다. 그들은 어떤 그룹으로 묶일 수 있는가? 어떤 방법으로 어디로 이동하고 시간을 소비하는가? 늦은 밤, 그들은 이동한다.




http://club.cyworld.com/53890929123/25704073 

www.세대독립.com 











필자소개

허김지숙

한 줄 썼다 두 줄 지우는 소설가 지망생.

자유롭게 살겠다고 몇 년째 밤에만 일하는 올빼미 인생.

지식채널E만 보면 분노와 눈물로 5분간 롤러코스터를 타는 과잉감정증후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