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정현 <길> ‘벽돌 가면 씨, 당신의 몸은 무엇을 찾아서 길을 나섰던 것입니까?’


김정현 <길>

글_이현수




검은 고무바닥의 무대,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백열전구가 선비의 갓을 쓰고 있다.

나는 포스트 극장의 딱딱한 의자에 기대어 앉아 공연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객석 구석에서 공연자 등장. 의자를 붙잡고, 의자를 밀면서 백열전구 쪽으로 간다.

공연자는 척추가 휘었고 얼굴에는 벽돌 같이 붉은 가면을 썼다. 휜 척추, 벽돌 가면.

고무바닥의 저항. 벽돌 가면은 의자를 밀어 고무바닥의 저항을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등 아래 의자를 놓고 객석을 등지고 앉은 벽돌 가면. 숨을 쉰다.

입은 가면 안에서 숨을 쉬고 몸은 바깥을 향해 숨을 쉰다.






벽돌 가면은 의자에서 천천히 엉덩이를 떼어 사선으로 걸어 나아간다.

의자로부터 멀어질수록 척추가 서서히 펴진다. 다 펴진 척추가 직립하여 움직인다.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는 듯, 엇갈리고 꼬이고 주저앉고 다시 일어난다.

흰 연기가 춤을 추듯이. 바람 부는 하늘에서 나부끼는 연이 춤을 추듯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멈출 듯 끊임없다. 휘청거리면서도 의지가 느껴지는 움직임.






벽돌 가면은 의자로 돌아와 의자에 앉는다. 의자를 돌려 몸을 객석 쪽으로 향한다.

얼굴을 긁는다. 긁는 소리. 그르륵 그르륵. 가면을 벗고 싶은 듯. 떼어내고 싶은 듯.

벽돌 가면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 조명이 없는 무대 뒤로 간다. 그르륵 그르륵.

백열 전구 아래 의자는 이쪽에서 묵묵히 그 소리를 지켜보고 있다. 묵묵 묵묵.





의자로 돌아온 벽돌 가면. 의자에 목이 끼인다. 의자의 의지.

머리를 데리고 다니는 의자. 머리를 따라 몸도 끌려 다닌다.

의지는 몸에게 있는 게 아니라 의자에게 있다. 의지의 의자.

의자에서 머리가 빠져나온다. 이제는 벽돌 가면의 팔이 의자의 다리에 붙잡힌다.

팔을 데리고 다니는 의자. 팔을 따라 몸도 끌려 다닌다. 의자는 몸을 팽개친다.









몸이 던진다. 의자를. 더 이상 못 견디겠다는 듯. 몸이 의자를 팽개친다.

몸의 의지. 하지만 이 의지는 이내 의자에게 다가가는 의지가 된다.

의자에 의지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듯. 의자를 끌어안는다. 운다.

얼굴은 가면 안에서 울고 몸은 바깥을 향해 운다. 의자는 눈물을 맞는다.





천천히 의자에 의지하고 의자를 앞세워 몸이 무대 오른쪽으로 나아간다.

벽돌 가면은 의자에 의지하고 의자는 몸이 의자에게 주는 힘에 밀려 나아간다.

끌려가고 끌려온다. 무엇이 이끄는 것이고 무엇이 이끌려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의자인지 몸인지. 몸인지 의자인지. 포스트 극장의 붉은 벽돌에 부딪힌 의자. 멈춤.

의자에 앉은 몸은 이제 의자와 벽에 기댄다. 의자에 몸을 의지하고 벽에 머리를 의지한다.






무대의 다른 곳은 어둡다. 의자와 벽, 벽돌 가면만이 어슴푸레한 빛 속에 있다.

몸이 쉰다. 감정이 쉰다. 몸을 쉬게 하고 감정을 쉬게 한다. 휴식.

몸이 숨을 쉰다. 의자와 함께, 붉은 벽과 함께.... 서서히 어두워지다가 완전한 어둠.


관객의 박수. 나도 박수를 친다. 다시 불이 켜진다. 가면을 벗은 공연자가 인사를 한다.

공연자는 가면을 벗어 의자에 올려놓았다. 가장 마지막에는 의자와 가면만 남는다.

다시 박수. 암전 그리고 객석등이 켜진다. 나의 엉덩이에는 딱딱하게 굳은살이 배겼다.



-

춤이나 음악에 대해서 글과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때로는 참 난감하다.

시를 피상적이고 임의적으로 분석하는 경우와 비슷해질까 두려운 것인지도.

님은 조국을 상징하고 은쟁반은 조국의 광명을 상징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춤이나 음악, 혹은 시에 대한 것은 그 ‘느낌’이 먼저인 것 같다.

이건 이건가 저건 저건가 생각하기 전에 그 안으로 푹 빠져 들어가는 것이 먼저 같다.

작품을 받아들이는 감각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 느낌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래서 오늘 본 김정현의 <길>에 대한 글은 공연 내용을 따라가면서 나름대로 떠올렸던

느낌들을 몸짓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옮겨 놓아 보았다. 글로 푼 <길>이라고나 할까.


<길>. 인생을 흔히 길에 비유하곤 한다. 그래서일까? 공연이 다 끝난 후에는 누군가의 인생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 든다. 어느 선술집에서 백열전구 아래서 소주를 기울이며 들은 누군가의 살아온 이야기. 누구의 삶이든 저마다 걸어온 길만큼의 무게가 있고 그래서 조금은 숙연한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 작품에서 인생의 길이 어디에서 흘러 어디로 나아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관객 중 누군가는 리어카를 끄는 노인을 떠올릴 수도 있고 나비처럼 날고 싶었지만 휠체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한 소녀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몸을 자유롭게 쓰고 싶을수록 강한 구속을 느끼는 몸 쓰는 사람의 무게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공연자의 집중력과 진실한 태도는 공연자의 몸짓에 나의 감성을 함께 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런 집중 때문에라도 드는 아쉬움이 있다면 관객들에게 작품에 대한 힌트를 좀 더 주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움직임 자체만으로도 그 시간들은 반짝였지만 창작자가 주제를 갖고 만든 것인 만큼 구성 각각이 어떤 연결 고리를 갖는지 좀 더 빵가루를 흘려준다면 관객은 좀 더 적극적으로 상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창작자의 주제가 관객 각자의 삶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제들이라면 분명 관객은 작품 안에서 각자의 느낌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 길에서 만나고 헤어진다. 만남과 이별. 그 와중에 이 작품의 의자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함께인 것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사실은 늘 함께인 그것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 주는 무엇이 아닐까 싶었다. 이 공연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한 가지 질문을 창작자에게 보내고 있었다.

‘벽돌 가면 씨, 당신의 몸은 무엇을 찾아서 길을 나섰던 것입니까?’




* 보너스: 김정현의 <길>이 끝난 후 R-funkist의 <쑈!쑈!쑈!>가 이어졌다.

프린지 묶음 공연 중 이보다 더 대조적인 공연이 있을까?

공연자 수에서부터 음악, 조명, 춤의 기교에 이르기까지...


극단의 대조 가운데서^.^ 보았던 두 공연의 공통점이 있다면...

음악과 동작이 멈춘 순간 감지되는 공연자의 거친 숨소리, 그건

<길>에서도 <쑈!쑈!쑈!>에서도 느낄 수 있는 몸 쓰는 사람의 무게,

보이지 않는 시간들의 무수한 땀방울이었다.






김정현 <길>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0 참가작
8.24-25  포스트극장

작품의도
‘내 몸이 어떤 움직임을 갖고 있을까?’
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많은 정보들과 현대예술로서의 틀거리가 일면 유의미하긴 했지만
나의 옷은 아니라는 회의감에 빠져들곤 했었다.
그렇게 날몸과 마주했을 때 나는
들을 줄 아는 귀가 없었고, 볼 줄 아는 눈이 없었고
받아들일 줄 아는 가슴이 없는 불구였다.
몸은 투박하고 질박한데 나의 눈은 끊임없이 다른 무엇을 보려했다.
그러나
절뚝이면서도 굳이 내 몸에 안기고 싶었다.
척추와 피부가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서로를 수용해서 관계맺고 길들이는 과정을 최대한 담담히 몸에 담고자 한다.


김정현
imthinking@hanmail.net

춤과 언어와 사람 사이를 지나며 연출, 안무, 즉흥작업과 그외 무언가를 한다.
그룹<임프로드 바닥>과 종종 재미난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있다.
몽롱하게 꿈꾸며 갸우뚱 털털 가고 있다.


 

필자 소개

이현수.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





  1. 길을 가야해요. 그리고 그 떠나고 머무르는 몸에 길들여져야 했어요. 그래야 그 몸으로 슬픔을 품고 아픔을 이고지고 튕겨내고 안아가며 삶과 만날 수 있겠지요.
    한발짝 내딛는 일이 죽을 것 같은 아픔과 불안이지만 죽더라도 내딛고 싶은 것은 관성일까 본능일까 자만심일까요. 그 물음에 머리가 대답하기 전에 길을 나서야죠. 몸은 알고 있을테고 그를 따라요.

    -
    우리는 몸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몸 그 자체이다. 라는 글을 읽은 후로 가슴에 새겼어요.
    의자는 나의 척추이기도 해요. 척추가 바라보는 몸이 궁금했어요. 나는 강하지 못한 척추예요.
    그치만 비뚫게나마 서 있고 분노하면서도 춤을 출 수 있어요. 불안과 걱정과 분노와 슬픔이 뒤범벅되어 척추와 실컷 싸우고도 결국 나를 일으켜세워요. 척추가. 나는 몸을 세워요. 척추 하나하나.

    -
    타인의 슬픔의 크기를 재단할 수 있을까요.
    하찮은 슬픔은 응석이 되고 무거운 슬픔은 깊이가 되나요.
    나의 슬픔만큼 그보다 더한 슬픔이 당신의 가슴에 돌처럼 박혀 있겠지요.
    당신의 돌이 보여요. 내 돌도 보여요?
    보인다구요?
    고마워요.

  2. 아! 의자는 척추였군요. 척추에게 의지를 주었던 것이군요.
    댓글을 보고, 몸은 슬프지만 창작자는 행복하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