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원화성국제연극제- 두 남자 그리고 한 여자


2010 수원화성국제연극제 해외초청작
로드 알프레즈 설번츠 <두 남자 그리고 한 여자>


심연의 상상을 실현시키는 침대라는 수행적 공간

글_김민관




 



Intro : 수원화성국제연극제란...

 

2010 수원화성국제연극제는 ‘수원화성을 배경으로 수원일대에서 펼쳐지는 공연예술축제’로, 매년 8월 수원화성을 주변으로 한 장소 특정적인 거대 설치 연극들을 만날 수 있음은 가장 큰 매력 포인트가 된다.

연극이라고 하지만, 주로 관객과 호흡할 수 있는 움직임 위주의 다양한 형태를 띤 공연이 많고, 대표적인 수원의 예술축제이자 야외 공연은 무료로 진행되고, 실내 공연의 경우 주로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지는데 티켓 가격이 서울에 비해 저렴한 편이기도 해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들을 고루 무대로 불러오는,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가보지 못했지만, 2006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 본 축제인데, 특히 2007년은 「Transe Express」, 「Ton und Kirschen」, 「Circolando」 등의 세 작품이 인상적으로 남는, 기억에 남는 해이다. 무엇보다 수원 화성에서 맞는 어스름한 저녁의 선선한 공기와 은은한 불빛, 잔디밭 냄새에 스펙터클하거나 환영적인 야외 공연의 작품들이 입혀지는 기억은 몸에 묻어나는 추억으로 전이된다.

이번 년에 화성으로 돌아갔지만, 실내 작품으로 한 작품밖에 보지 못해 아쉬운 가운데, 이제 그 한 작품을 다뤄보기로 한다.

 








「두 남자 그리고 한 여자」 : 침대의 기능, 중간 영역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는 침대 위에서 출현한다. 침대는 일종의 몸을 누여 의식을 전이시키는 휴식의 장소이자 무의식을 펼쳐놓는 꿈의 통로이다. 무의식이 의식을 예측하지 못하는 상태로 매개하는 데서 꿈은 삶과 다시 만난다.

의식과 무의식의 접점에서 침대는 일상의 자장 바깥에서 일상을 들여다보게 하는, 다시 의식을 깨우는 장소가 된다. 침대가 주는 휴식은 곧 삶을 깨어나게 하는, 그리고 잠들게 하는 반복적 일상의 거점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이들이 펼치는 세계는 실재를 닮은 꿈의 가상성, 그것의 무한한 공간으로서 확장과 변신의 가능성을 상정하고, 다시 깨고 잠드는 삶에 대한 은유를 수반하며 사회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으로 돌아가는 휴식의 삶의 중간적 점검 형태를 동반한다.

곧 이곳은 중간적 경계 영역이다. 꿈과 현실의 경계, 일상과 사회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로서 침대는 온갖 수행의 공간이 된다.

 





구체적 현실을 표현하는 추상적 움직임

 

이들의 표현 방식은 무형의 몸짓으로 구체를 만드는 마임의 기본적 원리를 따르고 있지만, 마임 자체의 관성적 표현 양태처럼 인식될 만한 움직임을 만들지는 않는다. 단지 움직임은 일상을 떠올리게 하는 기제로서 적용될 뿐이다.

음료를 뽑고 기다란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 등은 소리의 과도한 흉내로 구현하는 식이다.

이들의 움직임은 구체적지만 사실은 또 하나의 추상이 된다. 구체적인 오브제를 생략하고, 움직임 속에 그것을 임재하게 함은 곧 실제적인 오브제를 직접 제시할 때 그것의 낯섦과 달리 오히려 더 사실적인 오브제로서 무대 위에 놓이게끔 만들게 된다.

 







오브제(침대)의 전환과 침대 구멍의 기능

 

처음 이들이 누운 침대는 병원에 대한 환유로 나타나는데, 무의식의 영역에서 한바탕 삶의 드라마를 찍은 이야기의 바탕은 꿈과 삶에 대한 은유로 나아가는 데 있다. 침대에 달린 바퀴를 통해 이들은 삶이 옮겨 다니는 모습을 드러낸다.

 

가령 침대를 자동차로 바꾸고, 문을 닫고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걸고 하는 형태적 유사성에 의한 환치, 각자의 침대에서 그것을 붙임으로써 결혼을 뜻하며 집을 상징하게 되는 환유와 제유의 병치가 이뤄지는 등 침대의 변신은 다양하다.

침대에는 침대 끄트머리에 가까이 구멍이 뚫려 있어 그 안에 사람이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이 구멍은 다락방의 어두침침한 터널을 헤치고 좁다란 계단을 올라갔던 다락방의 경로와 닮아 있고, 거기서 두 팔을 짚어 고개를 들면서 나옴이 옷을 입는 것과 유사한 형태를 만든다.

구멍을 통해 침대라는 옷을 입고 공간을 통째로 들고 다니며 삶의 전반적인 변화를 눈앞에 나타낼 수 있고, 또한 실질적인 방의 문을 상정하며 공간이란 옷을 입는 동시에 의식의 트랜스를 만들어 내는 기제로 작용되는 것이다.

곧 침대가 자신의 의식을 맡기고 또 새롭게 펼쳐놓게 하는 장소라면 침대의 구멍은 다른 공간으로 건너갈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자아를 벗고 타자와의 만남을 수행케 하는 상징적 지점을 의미한다.

 





존재를 잠식하는 불안

 

남자의 허풍 섞인 표현 및 작업에 여자 역시 남자에게 적극적으로 몸을 던지고, 둘은 바다로 여행가고 연예하고 결혼에 이른다. 결혼은 앞서 말한 것처럼 두 침대를 붙이는 것으로 두 사람이 함께 사는 집의 거취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앞선 병원으로서, 정체된 삶의 죽음의 분위기가 감도는 공간에서 삶의 지루한 모습을 직시케 하는 어둠과 마주하게 한다.

이런 불안한 낌새는 두 남녀가 달콤한 애정행각을 벌이며 한없이 그 동물적 접촉의 감각에 유의하게 만들 때 문득 깨어나 입에서 오랏줄을 토해 놓는 남자의 모습에서 이미 짐작되는 바이다. 삶의 불안 요소는 악몽과 결부되고 현실의 이면을 상징하며 삶의 대척적인 죽음의 그림자와 또한 연결된다. 이 불안은 동시에 다른 공간에서 문득 깨어나는 여자의 입에서 나오는 종이로 전이된다.

무대란 이렇게 두 다른 층위를 하나의 층위로 연결 짓는 데 있어 존재 내지 신체 자체로써 시공간을 뛰어넘는 기제를 작동케 하는 초월이 작동된다. 상징은 무대 안에서 조명을 통해 시공간의 제약 없이 옮겨가거나 점프할 수 있고, 무한한 시공간을 거꾸로 상징케 만든다. 해석은 오히려 부차적으로 뒤따를 뿐이다.







 

모호함을 빚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

 

어쩌면 작품은 잠을 자게 된 이후 또 다른 인물의 출현과 주체적 삶의 영위가 나타나게 되는 데서 사실 두 개의 층위가 나뉘기보다 한 남자의 꿈에 펼쳐지는 달콤한 삶의 구가와 이후 점점 삶의 어두운 자락을 걸치는 것으로 나아가는 일장춘몽을 꾸다 깨어나는 것, 그 안에 삽입된 하나의 가상으로 현실이 제시된 것일 수도 있다. 또는 그의 꿈이 누군가에게 텔레파시를 불러일으키며 두 삶이 연결된 것일 수도 있다.

 

이 세 명이 위치한 침대는 삶의 부식된 자리로서, 삶의 지난한 반복의 경험을 추측케 한다면 한편 삶의 본래적 자리로서 삶을 방사하고 또 거두는 자리로 기능한다. 이는 처음이자 끝인 것이다. 문득 든 불안은 삶의 변화 속에 일상의 어느 한 자리 역시 끝남을 의미한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라면 그 전에 일상은 추억으로 압축되고, 다시 하나의 행복한 꿈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삶과 꿈의 경계 없음은 이 작품이 꿈의 실재와 실재로서 꿈을 오가면서 삶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제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이들이 비극의 절정에서 자살이라는 확 점프한, 그래서 오히려 코믹한 결말로 처리하는 것, 이것까지가 삶의 줄거리이자 꿈이라면 경적이 울리는 도시의 아침 풍광을 빚고 이들은 도로에서 침대라는 자동차로 다시 운전해 나아가는 도시인이 된다. 삶과 다른 층위를 띄우는 한바탕 꿈 안에 그렇게 삶과 또 다른 일상, 잊힌 추억으로서 삶, 풍자적 삶의 양태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모호함 가운데 구성상의 뒤섞임의 모호함이 이 작품의 추상적 상징성을 획득해 낸다.










2010 수원화성국제연극제
해외초청작
체코 Lord Alfred's servants
두 남자 그리고 한 여자
(Do you sleep with me?)
 
연출의도

이 작품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처음에는 어떤 환영으로 계속 되돌아오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침대에서 삶을 여행하는 한 여성의 눈에 띄는 영상. 그 영상은 무척이나 지독하게 나를 괴롭혔고 마침내 나는 그 것이 담배연기 사이로 사라지지 않도록, 현실로 가져와 전개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로 결정했다.
용기, 상당한 뻔뻔스러움 그리고 주로 장난기가 필요했다. 그 다음에 작품의 캐릭터, 두 남자 그리고 한 여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는 현실의 경계를 파괴했지만 주인공들이 심판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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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김민관
mikwa@naver.com
공연예술 프리랜서 기자 및 자유기고가
문화예술 분야에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현장을 쫓아다니며 기록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