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셋? 연출가이셨어요? - 멀쩡한 소풍 지영+파랑캡슐 조혜연

서른셋? 연출가이셨어요? - 멀쩡한 소풍 지영+파랑캡슐 조혜연

  • 글_미도리/사진_시원
  • 조회수 1088 / 2007.08.27

멀쩡한 소풍. 파랑캡슐.

이름도 독특한 두 팀의 연출가들이 ‘움직이는 복덕방’ 오픈 기념 첫 손님으로 초대되었다.

둘은 그 전에 몇 번 만난 적은 있지만, 아직 서로에 대해 잘은 모른다. 하지만 그새 말을 텄다고 한다. 역시 동갑내기라 빠르다. 인터뷰 내내 ‘나랑 비슷하다’를 연발하는 두 사람.


공교롭게도 두사람이 처음으로 관객을 만난 작품이 작년과 올해에 걸쳐 똑같이 성장하는 과정에 놓여있다.

아마도 두 연출가 역시 함께 자라고 있지 않을까?


연출가로서 적지도 많지도 않은 나이, 서른 셋.

그러나, 결코 서른 셋으로는 보이지 않는 얼굴로, 흔히 떠올리는 일반적인 연출가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상큼한 포쓰를 내뿜는 지영과 혜연.

연습과 회의에 쫓기고 쫓겨 ‘움직이는 복덕방’ 의 역사적인 첫 인터뷰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어느 여름밤, 한줄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는 광화문의 어느 길가 포장마차에서 산낙지를 질겅 질겅 씹어먹으며 두 사람은 벼르고 별렀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첫 인상


지영: 나이가 같다는 걸 알고 반가웠다. 표정이 밝아서 호감을 가지게 됐다. 난 조혜연을 연출가라고 소개받기보다는 미술 쪽 일을 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조혜연이 화가처럼 보였다. 디자이너 같은 연출가구나...하고 생각했다. 난 사람들이 연기과로 오해를 많이 한다.


혜연: 난 지영을 처음 만났을 때 연출이 아닌 줄 알았다. 흔히 볼 수 있는 연출가의 이미지가 아니더라. 난 그 스테레오 타입의 연출가 이미지가 너무 싫다. 굉장히 쿨한 척  하고, 성별은 여자인데 스타일은 마초적이어야하고... 그 이미지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서 좋았다.


작업의 화두


지영:

주된 관심은 ‘소통’이다. <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이하 ‘어느 락커’)도 그랬는데, 이후 작업들도 대부분 ‘소통’에 포커스를 많이 맞추고 있는 것 같다. 연극 작업 외에 다른 작업도 계획을 하고 있는데 그것에 근간이 되는 나만의 화제는 ‘소통’ 이다. 사람이 살아가고 어떻게 만날 것인가. 사람을 어떻게 이해하고, 알아가고,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락커’도 주인공이 세상과 소통하려고 하는 그만의 방식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고, 연출로서 내가 ‘소통’이라는 나만의 화두를 풀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읽었던 거 같다. 그것의 연장선상으로 앞으로 작업을 해나가고 싶다. 전혀 다른 문화나 다른 인종, 직업, 다양한 ‘다른’지점의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 같이 산다는 것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혜연:

처절한 진짜 소통. 대화는 소통의 도구인데, 그 안에서 소통 이상의 소통을 갈망하게 된다. 고단한 삶 속에서, 얼마만큼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고, 풀어나가려고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난 약간 온건파, 내지는 평화주의자적인 성향이 있다. 누군가는 그러더라. 그것을 강요하는 것도 파쇼이고, 넌 어쩌면 그것들을 포장해서 또 다른 독재를 만들어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근데 그 얘기가 삐딱하지만 뇌리에 남는다. ‘내가 기다려주는 것도 소통이고, 침묵도 소통인데, 잘못된 방식으로 이해를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경계하기도 한다. 사람들 섭외할 때도, 창작집단이 맡은 포지션만을 하는 게 아니라, 저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왜 저 아이디어를 이야기 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공감을 불러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유기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까지이고, 얼마만큼 열망하는가. 같은 화두를 가지고 가야, 방향성이 같아야 서로의 성향이 달라도 원하는 작업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자가 있으면 그것을 읽어내는 관객도 있다. 작업자끼리 소통의 노력을 하지 않는데, 관객과 소통을 노력 할 수 있을까? 장르나 형식적인 화두 말고, 메시지 적인 화두가 훨씬 더 중요한데 각자의 장르에 가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관에 대한 화두가 분명하다면 그게 어떤 형식으로 펼쳐지든 도구에 불과한건데, 정체성에서 시작한 것들이 더 깊어지고 싶은 거다. 이런 고민을 새로운 형식, 실험으로 풀어내고 관객과 정면으로 만나고 싶다. 진짜로 관객들이 작품과 만나서 마음을 열 수 있으려면, 다 버리는 거다.

관객과 진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기초로 해서 각 장르의 작업자들이 서로의 방식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만큼 서로를 깊숙이 들여다보는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공감각적 감성 잔혹극 ‘초대’에 대하여


지영:

초대는 여러 번 이야기했다시피 나에게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기회가 닿았더라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고 생각했다. 즐거웠고, 흥미로웠고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조혜연이 나와 취향이 비슷한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동시대의 누가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고,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하구나, 할 수 있구나’ 발견했다. 좋았던 것은 가옥, 주택을 사용했다는 점이었다. 극 전체의 주택이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 지하, 1층, 2층, 3층 옥상까지 다채롭게 다른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참여했던 아티스트들이 30명이 넘는데, 모두 용감하고 매우 놀랍다고 생각했다. 무용, 연극, 음악, 미술,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거대한 하나의 집을 전체적으로 공연의 형태로 만들어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그러한 시도가 질적인 면에서 의미 없이 느껴졌다든지 겉만 있고, 시도는 있었으나 알맹이가 없었다면 욕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용물이 튼실하고 많이 준비했고, 예술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되어있다는 것 때문에 재미있었다. 미로처럼 큰 집을 돌아다니면서 랜덤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것, 관객으로서 경험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 방의 순서를 재배치하고 마음에 드는 공간에 오래 머무를 수도 있고, 일련의 체험이 끝난 후에, 막이 열리고, 관객처럼 숨어있던 퍼포머들이 포착되는 순간들이 매우 좋았다. 그래픽이 어울리는 작품이었고, 타이틀처럼 공감각적인 것을 잘 구현했다고 생각했다. 타이틀만 있고 내용이 없는 작품은 참 싫어하는데, ‘공감각적 잔혹 감성극’이라는 이름이 연상시키는 이미지에 대해 이미 이름값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해에 했던 수많은 작품 중에서 가장 나의 감수성을 건드렸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기호의 문제일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유기적으로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아쉬웠던 점은 연기다. 주인공이 그런 작품에 맞는 연기를 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초대는 공연 같지 않은 설정이 매력적이었다. 문이 열리면 스모그가 나오고, 그것 자체가 내가 원래 있는 현실의 상황과 차단되는 것이다. 문을 열고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는 순간 ‘다르다’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준비가 되는 것이다. 다른 것을 체험하는 강렬한 예감을 하고 다양한 요소들에 맞는 퍼포먼스가 나올 거고... 여러 가지 기대가 있을 것이다. 관객이 정말 관객인 것처럼 느껴지게, 무작위로 착출되서 극이 자연스럽게 이어져가는 폼을 유지했다면 사람들이 더 재미있고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일부 배우들이 몹시 연기해서, 튀는 경향이 있었다. 연기 자체로 봐서 못했다 잘했다가 아니라, 작품의 성격을 설사 이해했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원래 했던 연기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각각의 방이 나눠졌을 때, 각각의 체험이 모두 소중했다. 하지만 독립성을 가지고 있는 것 외에 각각의 독립적인 성격이 좀 더 가시적으로 드러냈더라면 관객으로서 내가 만드는 스토리텔링이 다양하게 가능했을 것 같다. 각각의 관객들이 비현실적인 공간에 들어와서 내가 움직이면서 극도 같이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매체들과 다양한 방들이 조금 더 유기적이었으면 좋겠다. 조금만. 너무 많이 보이면 유치할 수 있으니까. 또 하나는 공연기간이 짧아서 아쉬웠다. 관객 참여를 요구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다양한 관객을 만나면 더 발전해나가고 더 다양한 것을 실현해볼 수 있었을 텐데 그 부분이 아쉽다.


혜연:

작년에 어느 부분까지는 최선을 다했지만 경험부족부터 자본의 부족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을 만나면서 공동창작의 기운으로 정말 깊숙이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실험도 부족했고 아쉬운 부분이 많아서 올해 보완하려는 생각이다. 각본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얼마만큼 열어놓아야, 배우로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한 인물로서 자연스럽게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다. 공간을 움직이는 주체성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산을 해야만 짜릿하고 뒤통수를 치는 공간 이동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다른 장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모여 진정으로 소통해서 관객이 체험하는 과정까지 고스란히 소통할 수 있는 과정을 만들어나가면서 작년의 한계를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번에는 부제가 생겼다. ‘천 가지 숨바꼭질’이라고. 부제가 우리의 에너지를 지배하고 있고, 공동창작 과정에서 얼마만큼 더 긴밀하게 가져갈 수 있을까. 내가 상상하는 이상향에는 여전히 못 미칠 거라고 느낀다. 왜냐하면 얼마만큼까지 서로 진정 들여다보면서 소통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은 인간적인 관계에서 올수도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 두렵다. 잘못해서 작년만도 못할 수도 있는 거고. 작년에 한번 했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기도 하고, 아마 ‘어느 락커’도 이번에 그런 과정을 겪었을 거다.



펑크락 뮤지컬 ‘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에 대하여


혜연:

작가는 홍대 앞 문화와 인디 밴드 씬에 대해서 깊은 이해가 있었고 자연스럽게 화두를 가져갈 수 있는 당위성이 있었다면, 연출을 한 지영은 ‘어느 락커-’를 바라보는 시선, 그 중에서도 ‘펑크락’이라고 하는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궁금하다. 뮤지컬, 1인극 형식에 대한 연출가의 시선과 작가의 시선이 어디까지인지 궁금했다. 연출가 지영이 바라보는 작품, 무대화하기까지의 마인드, 앞으로 지영이 만들어나갈 연출로서의 세계관이 궁금하다.


지영:

주인공이 세상을 대면하는 용기, 똘기가 마음에 들었다. 구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었고, 실제 사건(MBC 음악캠프 방송사고)에 대한 지점의 동의가 있었다. 처음 작품은 ‘뮤지컬이다’라는 것을 떠나서, 그 사건에 대해서 친구 같은 사람들이 겪은 일에 대한 반감, 분노, 비주류 예술가에 대한 비판적인 사고방식에 적극적으로 동의했고,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매력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작품을 써나가는 과정을 면밀히 봐왔고, 의견을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쓸 때부터 어떻게 연출 해야겠다 생각하고 발전시켰다.

구체적인 측면에서도 많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 과정에서 작가의 생각을 많이 알았고, 호흡이 잘 맞았다. 창조적인 에너지가 잘 만들어졌고, 합의가 잘 되었다. 형식적인 실험을 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연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하는 바를 잘 표현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를 생각했다. 주인공이 펑크 락을 하니까 당연히 음악이 펑크 락이 되어야한다. 내용과 주제가 형식을 부른 거다. 작곡하는 과정 중에서는 작품을 연출할 방향을 제시하면서 펑크 락이지만 극은 극이니까 극적인 흐름을 설명하고 작업해나갔다. 작곡가가 처음 작업하는데도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극의 진행이 주로 독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계속 말과 노래만 이어진다면 몹시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나는 연출이니까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이면까지도 고민해야했다. 작년에는 뮤지컬과 콘서트가 혼재된 분위기가 있었다. 올해는 되도록이면 콘서트처럼 만들려고 했고, 저렴한 제작비로 특별한 효과를 만들어내려면 영상이 적합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작가와 나누면서, 작품을 함께 만들어나갈 작곡가, 영상감독, 사진작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게 되었다. 일단 작가가 살아있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다. 주인공이 세상과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것, 상황을 재현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무대 앞의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려고 했다. 한 명의 배우와 관객 사이에 어떻게 소통이 일어날 수 있을까.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왜 들어줘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해야 했다. 그러면서 작가가 쓴 첫 머리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주인공의 전사를 확실하게 드러내주었다. 올해 새로 수정된 대본을 보고 새로운 기분으로 재해석하는 과정도 있었고, 영상감독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그리고 나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 락 음악을 좋아했다. 홍대 앞 놀이터에 정자가 있던 시절에 주로 많이 놀았는데, 음악 하는 사람도 많이 보고, 미술 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어느 락커’를 통해 두루두루 좋아하던 락 음악 중에 펑크를 진지하게 고민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혜연:

내가 생각하기에 이 공연의 매력은 진짜 콘서트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모놀로그가 굉장히 위험한 형식이라고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어느 락커’를 보기 위해 소극장에 들어가는데, 뭔가 착각이 드는 거다. 보통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는 소극장에 들어 갈 때의 마음가짐이 있다. 좌석이나, 분위기나. 그런데 극장에 들어가면서부터 콘서트장같은 느낌이 확 들었다. 무대 위에 서있는 사람이 진짜 락커인지 배우인지 착각이 들었다. 그 자체가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그 매력을 한껏 올해 더 강화했기 때문에, 배우를 알고 보는데도 감정이입이 됐다. 형식적으로 선택한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발휘되었다. 난 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콘서트의 매력을 잘 알고 있다. 연극과 콘서트는 관객을 흡수하는 매력이 다르다. 그런데 연극을 보러왔는데 콘서트가 진행되니까 관극 마인드 자체가 변형되었다.

진짜 콘서트 형식을 빌리고, 모놀로그를 하면서 믿게 되어 버렸다. 작년하고 올해 비교하면 작년에는 왜 저렇게 펑크 락커를 옹호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올해는 그 부분이 노골적으로 설명되지 않았는데, 구체적인 변화가 어느 지점에서 일어났는지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훨씬 더 설득력 있고, 더 진실 되게 느껴졌다. 작년에는 사건을 표현하는 부분이 분리된 느낌이었는데 올해는 단지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펑크락커의 일상으로 잘 드러나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그리고 영상도 많이 정리가 되었다. 코믹한 부분, 영상 기법에서 오는 재미들이 그 펑크 락커의 일상과 잘 만나져서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느낌으로 잘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


 

다양한 장르 예술가들과의 작업 과정


지영:

‘어느 락커’같은 경우는 작가가 있고, 대본의 내용과 연출적인 입장이 만나면서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였지만, 방식자체는 연극을 하는 작업과는 다르지 않았다. 방식 자체가 파격적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 같은 경우는, 전형적인 연출 작업을 했다. 과정 자체가 다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상, 사진, 음악... 연출적인 컨셉이 있었으니까 이 작업에 맞는 사람들을 작가와 함께 섭외할 수 있었다. 그것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연출이 기본 컨셉을 처음부터 잡아줘야 한다. 작업자들을 만날 때 자료를 다 조사해가지고 갔다. ‘초대’ 같은 경우는 30명이 넘는 작가들이 참여했는데, 연출의 역할이 뭘까 궁금하다.


혜연:

나는 평화주의자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뇌리를 찌르는 한 사람의 말은 ‘너는 평화주의자를 가장한 파쇼를 꿈꾸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이다. 연출가는 조율자, 조직가라고 생각한다. 꿈꾸는 것중에 하나는 내가 그렇게 싫어한 대표적 연출가가 되보고 싶은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그렇게 한다면 어떨까. 현재까지는 그건 아니다. 이 컵이 빨간색이 되어야 할 거라는 마음을 먹지만, 말은 안한다. 너무 다행히도 사람들이 이것을 빨간색이라고 지칭 할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여러 가지 토론을 하고, 의견이 진행되다보면 내가 설득될 때도 있다. 굵은 방향은 지키지만, 계속 수정을 한다. 이렇게 수정하다가 내가 최종적으로 가야할 지점에 못 가면 어떡하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쨌든 가더라. 그래서 어떻게 보면 자신감이 있다. 어쨌든 난 선장인데, 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때까지 나를 방치하면 안 된다. 그래서 내가 질러야할 시점이 어딘가 생각한다. 평화주의자가 되려면 상처를 최대한 덜 줘야하는 강박이 있다. 시점, 상처를 안주는 방법, 상처를 안 받는 방법까지 생각해야한다. 나 아주 여린 사람이다.


연출이라는 작업,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


지영:

지금은 팀에 소속이 되어있고, 팀에 작가들이 있기 때문에, 팀에 속해있는 이상 맞춰주고 싶고, 내 마음대로 갈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내 개인적인 취향이 있다. 어떤 작품을 연출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부조리 쪽이나 표현주의 작품을 좋아한다. 헤롤드핀터나 사무엘베게트, 이오네스코, 스트린드 베리히, 앞으로 그런 작품도 연출해보고 싶다. 그렇다하더라도 난 기본적으로 호기심이 많고, 주어진 텍스트 안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기 때문에 다양한 작업을 재미있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연출 했을 때, 어떻게 하면 작가가 깜짝 놀라게 연출할 수 있을까. 내용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연출로서 생각하는 것 같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주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얼마나 나랑 맞는 부분이 있는가.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지점들을 찾아주고, 그것이 잘 드러날 수 있는 방법이라면, 그것이 어떤 장르로 규정되지 않더라도... 그래서 하이브리드가 나오는 것 같다. ‘어느 락커’에서 다큐멘터리를 실험하고 싶어서 다큐멘터리를 쓴 게 아니다.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다. 내용이 형식을 부른 거다. 형식적인 실험을 하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문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삶에서 얻어졌던 경험이나 예술적인 취향들이 장면 곳곳에 나오는 것 같다. 앞으로도 개인적으로 사진작업을 하고 싶다. 공동작업으로는 연극. 극으로서는 연극도 재미있지만, 다큐멘터리 작업도 관심이 있다.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내가 직접 만나는 사람들과 얘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 공동작업을 할 때, 이 사람이 뭘 잘하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본다. 난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본다. 이상하게 단점은 잘 안 보인다. 그리고 좋은 점은 못 참고 꼭 얘기를 해준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내 말을 안 믿는다. 그런 얘기를 안 들어 봤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내가 매력적으로 느끼는 그 사람의 지점과 내가 원하는 지점을 매칭 하는 것 같다. 장점이 작품에 잘 수용되면 좋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방식은, 같이 작업하는 사람을 기술자로 만드는 것이다. 진짜 미련한 짓인 것 같다.

 

혜연:

힘들지만 연극경험이 없는 작가를 섭외했던 이유가 사실은 거기에 있다. 매너리즘에 빠져서 자기 스스로를 기술자로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사람들과 작업을 하면 나도 연출로서 조율자나 조직가가 되기 힘들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있다. 소통이 힘들더라도, 작업의 방식이 연극을 몰라서 힘들더라도, 작가를 만나서 서로의 화두를 던지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그래서 스텝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아티스트라고 부른다. 모두가 작가니까. 어려움이 있지만,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가기에 적합한 방법이다.


지영:

연출적인 재미가 있다. 뭐냐면, 연출적인 컨셉을 정해주고 아웃라인을 정해주고 기본적인 걸 공유한 다음에 믿고 맡겼는데, 그 사람이 만들어온 게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지만 더 잘했고, 더 재밌고, 훨씬 훌륭하다. 그런데 많은 연출가들은 그 재미를 모르는 것 같다.


혜연:

그렇게 하면 연출의 위치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영:

그런데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모두가 다 창조적이고 아티스트 같은데, 나만 아티스트가 아닌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너무 다 창조적이니까. 오히려 그 모든 걸 포괄하고 있는 나는 아티스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가끔.


혜연: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초대가 끝나면 연출 작업을 한동안 늦추고 싶다. 예전에 내가 가졌던 뮤지션으로서의 마인드도 다시 끌어내보고, 나도 이것저것 관심이 많아서 워크샵도 많이 받으러 다니고 한다. 내가 무대 위에서 퍼포머로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욕구가 안 풀린 부분이 있어서 그것에 대한 실험을 끊임없이 이어가고 싶다.

 

혜연:

나는 정해진 작가의 작품을 연출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이번에는 텍스트도 내가 선택했고 각본화하는 것도 내가 들어가 있다면, 누군가가 화두를 던진 것을 내가 받아서 같이 살을 붙이는 작업도 해보고 싶다. 다른 것들에 대한 것을 더 실험해봐야 연출로 돌아 왔을 때 다른 경험을 더 얻어서 흡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영:

다른 포지션에서 있어봐야 연출이라는 위치가 어떤 것인지 재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우리 팀에 작가가 많지 않나. 나는 다른 작가들이 쓴 작품을 연출적으로 해석하고 구현하는 입장인데, 작가가 너무 재미있을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썼는데 다른 사람이 다르게 해석하고 연출하면, 그걸 보는 재미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물론 그런 것을 싫어하는 작가들도 있다. 그런데 내가 작가라면,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맘대로 해보세요. 사실 나는 이랬다. 이렇게 얘기하는 그런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혼자서 킥킥대고. 그걸 즐길 수 있는 작가가 좋은 작가인 것 같다. 같은 작품인데, 이 연출이 했을 때 이렇게 되고, 저 연출이 했을 때 저렇게 되고... 물론 영 바보같이 만들어놓으면 싫겠지만. 그런 경험도 해보고 싶다. 내가 작품을 썼는데, 우리 팀에 있는 다른 작가들이 연출을 한다면 어떻게 할 것 인가. 그런 것도 궁금하고.


혜연:

예전에는 연출의 욕구가 커서, 내가 음악으로 참여했던 극단이나 작업에 내가 왜 그렇게 반항을 했었나하는 순간이 기억 날 때가 있다. 그런데 나는 연출의 욕구를 너무나 갈망한 나머지 예민하게 굴었던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은 다시 연극의 프로덕션에서 작곡가의 위치로 간다면 조금 다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지영:

그런데 연출이라는 게 싫어질 때가 있다. 남한테 뭘 시켜야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내가 이 일이 적성에 맞는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연출이란 위치가 항상 조율만 할 수는 없다. 어떨 땐 결단을 내려야 되고, 어느 순간에는 ‘하세요’라고 말해야 되는 순간이 있다. 그걸 안하면 직무유기다. 학교에서나 극단에서는 연출과 스텝을 수직관계로 보지 않나. 난 아니다. 포지션으로 본다. 일의 성격이 그런 것이다. 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다. 때론 일을 시키기도 해야 될 뿐이다. 누구에게서 오는 권위인지도 모르겠고. 왜 내가 남한테 뭘 시켜야 되나. 왜 시키나.


팀 작업의 장점 vs 단점


혜연:

오늘도 친구들과 팀 작업의 세 가지 밸런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공동작업을 통해서 창출해 내야 될 것들, 개인의 화두를 통해서 창출해내야 할 것들, 그리고 먹고 살기 위해서 해야 될 현실적인 일들... 한창 신나게 작업하다가, 어떤 때 우울해지냐면 이 세 가지 작업의 밸런스의 큐대를 못 맞출 때. 뭔가 맞출 줄 알았고,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뭉쳤는데, 현실이 맞춰지지 않는 순간 갈등이 일어난다. 개인적 갈등은 결국 남한테 영향을 미치고, 또 다른 분쟁이 되기도 하고, 서로 위로해 줘야한다. 그 삼박자가 힘든 부분이지만, 모여 있어야만 힘이 되는 부분들을 놓칠 수가 없기 때문에, 힘들어도 모여서 얻을 수 있는 걸 알기 때문에 또 그 순간을 참고 격려하고 가는 것이다. 얼마만큼 작가 개인이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서로 길을 열어주면서도 공동작업을 영위하고, 또 밥도 먹고 술도 먹을 수 있는 환경까지를 만들 수 있을까.


지영:

팀이 있다는 것은 재산인 것 같다. 이 모든 것이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고, 그래서 멀쩡한 소풍이 나한테는 매우 소중하다. 돈과도 바꿀 수 없다. 학교에서 선후배관계로 만났지만, 이렇게 함께 팀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이 운명이기도 하고, 어떤 팀이든지 오래가는 팀들이 갈등이 없어서 오래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밖에서 보기에는 하나의 팀 일수도 있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 있다는 것은 가족과 비슷한 것 같다. 가족이 함께 살다보면, 양보하고, 희생해야한다. 그걸 안 하려고 할 때 팀이 깨지는 것 같다. 그게 누구 한사람의 희생이 되거나 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느낀다. 한 발자국씩 물러설 수 있는 여유. 적극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마인드. 그런 성숙한 마음들을 같이 키워나갈 수 있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 과정 속에서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삶과 작품이 결코 유리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쓰레기 같은데 작품은 좋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내 예술관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보수적이고 답답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자기가 작품을 통해서 사람과 소통을 얘기하면서 작업방식은 폭력적이거나 독재적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평화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바로 내 옆에서 작업하고 있는 이 한사람의 인권도 존중해주지 못하면서 내가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나. 항상 그런 부분들을 고민을 많이 하고, 팀 안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공유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팀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이 같이 가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혜연:

이런 생각에 대한 정리가 서른 넘어서 되지 않았나? 난 이십대에는 그런 생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명료한 가능성에 대한 지점을 잘 못 찾았다. 서른이라서가 아니라 삶의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도 있고, 실패, 공백기도 있었고, 난 파랑캡슐이 첫 팀이 아니다. 긍정적으로 가다가 깨진 팀도 있고, 안 좋게 상처를 주면서 깨진 팀도 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나도 푹 쉬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예술가로서 살아남기에서 아직까지는 좌절도 있고, 상처도 있고, 하지 말아야 될 분쟁도 있고, 집에서든. 개인적으로든 팀에서든. 그래도 계속 긍정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만나고, 나도 그걸 받아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시 만들어내려고 했었던 과정들이 감사한 부분들이 있다. 앞으로도 아까 얘기했듯이 멀리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세 가지의 고민들을 한 사람은 해결 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은 해결 못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반 쯤 해결할 수도 있고 그렇다. 그 상황을 단번에, 한번에 해결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렇다면, 예를 들어서 무리하게 욕심을 내서 공동작업도 해야 하고, 작품에 퀄리티도 빨리 올려야 되고, 팀의 이미지도 빨리 좋게 해야 되고, 이런 것들에 대한 욕심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 길게 보고, 죽기 전에 한 작품만 제대로 해도, 너무 행복한 인생이 될 거라고 나는 확신한다.


지영:

팀이 소중하다. 예술가로서 가난하다는 것이 주는 메리트는 이것이다. 돈이 있어야지 밥을 먹는다. 배가 고픈데 뭐 상상하게 생겼나. 밥을 먹어야지. 그런데 내가 연극을 왜 하나, 이거 돈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아닌데 왜 하나? 했을 때 답이 뭐냐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 창조적인 아티스트들과 내가 만나고 우리가 힘을 합해서 뭔가 가치 있는 것을 창출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이다. 돈과 바꿀 수 없는 베네핏, 나만 누릴 수 있는 행복감이 있기 때문에 팀 작업을 하는 것 같다. 그게 없으면 왜 하나.


혜연:

내가 음악작업을 하다가 연극작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던 게, 평화주의를 실천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어서였다. 음악작업은 혼자 하는 순간이 많다. 나는 더군다나 작곡 쪽이고, 연주를 해도, 밴드를 해도, 네 명 정도 안에서 화합하는 반복적인 과정속에서 나의 공동작업 욕구를 다 못 풀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도 공동작업의 가장 종합된 지점이 극이라는 생각을 해왔고, 또 해봤기 때문에 다시 시작한 것 같다. 교수님들이 학회 만들어서 자기들끼리 뭐 하나 올리고, 밥그릇 차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하는 껍데기 모임 말고 진정한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혼자 작업하는 게 어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그 사람한테도 작업은 공동작업이 아니지만 분명히 공동의 무언가가 필요할거다. 그러다보니까 파랑캡슐도 작업실의 형태로, 공간이 꾸며진 것이다.

 

고민


혜연:

난 아직 현실과 예술을 구분하지 못한다. 내 안에 대한 표현하고 싶은 욕망들이 있는데 어디까지가 욕구분출이고, 어디부터가 소통을 위한 것일까 그 지점이 한번도 안 해왔던 고민이다.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그냥 표현하기 위해 달려왔는데, 요즘 들면서 현실의 감정 선이 어디까지고, 어디까지가 예술의 표현의 방식이고, 그런 고민에 많이 빠져있다.


지영:

서른세살에서 상반기가 지났다. 먹고 사는 문제, 남자친구 문제, 결혼의 문제, 현실적인 문제들. 앞으로 나의 연출적인 커리어나 예술적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것인가. 마음속에서는 난 아직도 이십대 초반인데, 이 사회에서 현실적으로 삼십대 중반이라는 타이틀을 단 사람으로서 사회적으로 내 자신에게 사회에 책임을 지고, 예술가로 살겠다고 결심을 했다면 내가 정말 예술가로서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아직 한다. 예술가가 뭘까. 앞으로 작업을 계속한다면, 예술가로서 남은 인생에 어떻게 삶의 계획을 짜야하는가에 대해서 아직도 유아기 적이지 않은가. 내 사고방식이나 생활 방식 자체가. 그런 것 때문에 안타까움과 더불어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시점인 것 같다. 작년만 해도 덜했는데 올해는 현실적인 문제가 작업과 연계되기 때문에. 특히 경제적인 문제는 피할 수가 없다.


최근 가장 행복했던 순간


지영: ‘어느 락커’가 드디어 개막을 하는 순간이었다.


혜연: 좋겠다! 나도 빨리 올려야지!!!


지영:

작년에는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해보고 싶은걸 충분히 실험해보진 못했다 아쉬움이 남는다면, 올해는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많이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연출가로서 장기공연을 처음 경험해보는 거니까. 우리가 정말 고생도 많이 하고, 힘을 합한 것이 드디어 개막을 했을 때 뭉클했다. 그리고 작업에 대해서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일 때,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축하해주고 그랬을 때. 그 순간 행복했던 것 같다.


혜연:

사무실 둥지를 틀 멤버를 찾았고, 멤버들이 어렵지만 실행에 옮겼고, 고생스러웠지만 꾸몄고, 그 때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지영: 아주 부러웠다. 집들이 갔을 때.


혜연: 아직 과제가 많지만, 그 과제가 시발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조금은 지친 얼굴로 소주 잔을 기울이던 두 사람은 동갑내기 연출가로서 겪고 느끼는 이런저런 고민들과 행복감을 나누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생기발랄한 표정과 목소리로 광화문 길 한복판을 덩달아 들뜨게 한다. 두 사람에게 숙제를 하나 냈다. 서로에게 주고 싶은 선물,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선물을 몰래 알려달라고. 늦은 인터뷰를 마치고, 여름비가 살포시 내리는 다음날 오후, 두 사람의 선물이 나의 핸드폰으로 배달되어왔다.

 

지영 = > 조혜연

놀라운 상상력을 주고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하는 파랑캡슐 알약, 먹어도 먹어도 안 줄어드는!!


조혜연 = > 지영

장미꽃 한 아름을 안겨주는 따뜻한 낭군.

멀쩡한 소풍의 지영, 파랑캡슐의 혜연. 각자의 선물 마음에 드십니까?

이 선물을 바탕으로 더욱 멋진 작업 계속하시기를,

또 멋진 작업 함께 하게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보충설명

멀쩡한 소풍은, 2006년 여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펑크락뮤지컬 ‘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을 선보인 후 올해 여름 대학로에서 약 한 달 간 새로운 모습으로 공연되었다. 파랑캡슐은 2006년 겨울 홍대 앞 복합문화공간 HUT에서 공감각적 감성 잔혹극 ‘초대’를 선보인 후 올해 가을 더욱 업그레이드된 모습으로 관객을 다시 만날 예정이다.

필자소개

※ 미도리는?
누군가의 표현을 따르면 예술가들의 ‘복덕방’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서로 소개시켜주고 꿍딱꿍딱 재미난 일벌이기를 좋아한다. ‘멀쩡한 소풍’이라는 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펑크락 뮤지컬<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을 썼다. ‘스윙댄스’라는 춤을 추고, 가르치기도 한다. 잡다하게 바쁘지만, 틈틈이 전공한 극작과 다양한 공연 등의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움직이는 작가이자 이동형 작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