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08:19ㆍ07-08' 인디언밥
끊임없이 변화하되,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 - 김민정 + 안강현
- 글_미도리/사진_시원
- 조회수 1243 / 2007.12.21
“혹시 선생님들의 역사를 아세요? 과거에 무엇을 하셨는지. 대단한 분들이 정말 많죠. 근데 많이 변했어요. 저도 두려워요. 제가 이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제가 행여 깨어있지 못할 때 여러분들이 저의 목에 칼을 겨누고 있으셔야 해요. "네가 그 때 그 사람 맞냐' 하고. 그렇게 나를 꾸짖으셔야합니다." - 한 젊은 안무가의 인터뷰 中
얼마 전 한 젊은 안무가의 인터뷰 기사 끄트머리를 읽다가 나는 문득, 두려워졌다.
정신이 번쩍 드는 듯 했다. 그래,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 깨우치지 않는다면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지. 개인의 욕심이나 비뚤어진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는 이미 여러 차례 지켜봐온 터다. 그 속도가 나에게 관심 없는, 혹은 내가 경멸하는 ‘선생님 급’의 이야기가 아니라 점점 가까운 주변으로, 그리고 결국은 ‘나’에게로 좁혀져 온다면? 끔찍한 일이다. 내 주위의 누군가는 벌써 그렇게 변해가는 중이고, 변하지 않으려고 안간 힘을 쓰기도 하고, 이미 변했는데도 잘 모르거나, 심지어 변했는데도 변하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이 순간 씁쓸한 웃음과 한숨이 교차한다면, 오늘도 나는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가야할지 다시 돌아봐야만 하지 않을까.
독립무용, 연극, 연출, 영화, 다큐멘터리, 전시 등 이루 셀 수 없는 작업을 그야말로 ‘독립적’으로 이루어온 것은 물론, 음악까지 포괄하는 장르의 실험을 거듭하는 전방위 독립예술가 김민정. (플레이댄스그룹 당-당) 그리고 조소를 전공했지만, 비디오 아트, 퍼포먼스, 최근에는 무용 공연에 댄서로까지 참여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온 경계 없는 아티스트 안강현.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사람들, 선생님 급이다.
인터뷰 중간에 자연스레 제자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신이 선생님이라는 것을 어색해하는 것 같다. 부정적인 의미의 '선생님다운, 선생님 같은, 선생님이 가질 수 있는' 이미지를 의식적으로 지양하고 있구나, 싶다. 그렇게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구나.
역사
민정
난 정말 꿈이 100가지였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 애들 모아놓고 연극하고, 장희빈 놀이하고 연출하고 그랬다.
옆에 그릇 다 가져다놓고 효과음 소리 내면서 만화책 낭독 녹음도 하고. 집에서는 뒷받침을 안 해줬다. 무용, 특히 외국무용은 알지도 못하고. 그래서 혼자 타이즈 사가지고 선화예중 시험도 보고 그랬다. 하지만 시험장에는 벌써 중학교 이전부터 다들 발레를 배우던 아이들만 온 거다. 당연히 합격 될 리가 없지 않나.
우리 엄마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좀 무모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중학교 때는 신나게 놀았다. 선화예중에 다니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친구를 따라다니면서 나는 맨날 앉아서 구경만 했다. 그러면서 순서를 다 외웠다. 고등학교를 갔는데, 그 때부터 사회에 대해서, 대학의 기능에 대해서 생각을 했다. 좋은 대학을 가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공부로는 안 되니까 열심히 볼링을 배웠다. 특기생으로 연대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시 때가 되니까 정작 올해는 특기생을 뽑지 않는다더라.(웃음)
생각해보니 연극은 안 배워도 할 수 있는데 무용은 안 배우면 못 할 거 같더라. 그래서 어떤 돈 밝히는 선생님한테 가서 어느 정도 배웠는데, 입시 레슨비를 많이 내라고 해서 그만뒀다.
그리고 어떤 이상한 종교집단에 들어갔는데, 거기 있는 선생님이 나한테 한국무용을 하라고 했다. 나는 죽어도 현대무용 하고 싶은데. 그러다가 현대무용 수업을 몇 번 받고 그만뒀다. 전기 대학에서 한국무용과에 시험을 봤다가 떨어졌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는 현대무용 비디오를 사서 혼자서 내가 할 수 있는 동작은 다 따서 연습하고 작품을 짰다. 의상도 혼자 종로에 가서 구하고...그냥 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한성대 무용과에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러다보니 들어가서도 잘 적응을 못했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사실 이해가 안 갔다. 선생님 공연에 티켓 값 내라, 뭐 해라. 나는 무용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용계에서는 서로 알지도 못할 뿐더러. 분류가 심하고. 내가 ‘댄스 플레이’라고 하면 연극이야 무용이야 규정하려고 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모르는 것 같다.
강현
난 어렸을 때 종이인형 만들고 인형 옷 갈아입히기를 좋아했다.
어머니가 패션디자이너의 꿈이 있으셨는데 이루지 못하시면서, 꿈이 나한테 전이됐다. 매일 인형 옷을 그리고 입히고...그러면서 어렴풋이 난 나중에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동화책을 만들었다.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할아버지가 나 어렸을 때, 내가 국문과 갈 줄 알았다고 얼마 전에 그러시더라. 또 어렸을 때 나도 애들 모아서 연극하고 노는 거 좋아했다. ‘네로 25시’하면 난 네로 역할하고, 백조 가족하면 아빠하고, 난 남자 역할을 주로 했다.
그런데 아파트에 사는 소꿉친구가 발레를 했었다. 그 친구 따라서 발레를 배웠다. 그러다가 예고에서 강사를 하시는 선생님 한 분이 조소를 해보라고 권해주셔서 시작하게 됐다. 나는 항상 남들이 하는 만큼보다 더 해야 따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간을 더 들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남들이 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됐는데, 가서는 수화연구동아리에서 수화로 연극하고. 움직이는 걸 좋아해서 재즈댄스 오래 배우고, 암벽타기도 하고, 말도 타고, 정말 여러 가지로 꾸준히 운동했다.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해소가 되니까 안에 쌓이는 게 별로 없어서 좋았다.
유학을 가려고 했는데, 넣는 학교마다 다 떨어졌다. 그래서 맨날 산만 타고 아무것도 안하고, 몽골 여행가고 그랬다. 대학교에 다니면서 조각하시는 선생님들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많았다. 과거에 그 분들의 작품은 굉장히 훌륭했지만, 대부분이 현재까지 그 상태로 정체되어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설악산에 갔는데, 이제 ‘생각은 그만하고 작업을 하자’고 결심을 했다. 2-3개월동안 새로 포트폴리오 작업을 다 해서 새로 도전하고, 유학을 떠나게 됐다.
고민
미도리
전에 안강현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전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화이트큐브 안에 갇혀 있는 것에 대한 압박과 고민을 나눈 적이 있었다. 김민정도 마찬가지로 극장 안에 갇히는 것에 대해 항상 경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현
이번에 내가 참여한 <EYE>라는 공연을 안무한 친구는 원래 미술을 전공했다. 나랑 같은 학교에서 회화를 공부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에 갔다. 대학교 때는 별로 잘 몰랐는데 얘기를 많이 하다보니, 통하는 점이 많았다. 건축으로 비유하면 미술계, 혹은 무용계라는 집이 너무 견고해서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다는 고민들을 나누곤 한다.
유학 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느낀 건데, “내가 다른 장르의 작업을 하거나, 조금이라도 틀에서 벗어난 작업을 할라치면 네가 지금 이럴 때냐. 네가 이 세계를 잘 몰라서 그러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제도권에서는 차곡차곡 밟아나가야 하는 ‘단계’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올해 초에 ‘대안 공간 미끌’에서 개인전을 했다.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려고 생각만 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갤러리 안에서 뭔가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뭘 해봐야 알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전시에서 비디오를 만들었는데 노래하고 춤추고, 라이브 퍼포먼스도 하고 그랬다. 전에 다른 전시를 할 때는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그 때는 내 상태가 그랬고, 내가 보여 주는 게 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개인전을 보고 어떤 선배가 너의 용기가 참 보기 좋았다는 말을 했다. 난 어이가 없었다. 그게 왜 용기인지... ‘용기’라는 말은 모두가 꺼려하고 조심스러워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지 않나.
내가 나온 대학교는 오십년이 넘도록 여자교수가 한 명도 없었다. 이것은 견고하지도 않은 집인 것이다.
민정
나의 한 작품을 보고, 어떤 사람이 리뷰를 썼다. 그런데 맨 마지막에 ‘이것은 무용이 아니다’라고 적혀있었다. 그럼 그것은 연극인가? 무용과 연극의 기준은 무엇인가. 왜 그것을 나눠야하는가. 난 무용을 하지만, 늘 다원예술부문에서 지원을 받아 공연한다. 최소한의 양심이다. 학습의 결과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정적이다.
대한민국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너무 불쌍한 일이고 비참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난 춤을 가르칠 때 무엇을 가르칠지가 가장 어렵다. 그에 비해 예술가 부모를 가진 예술가는 확실히 다르다. 좀 더 열려있고, 그 자체가 자연스럽다.
관객과의 관계
강현
한국에서는 늘 ‘미술작업에는 마무리가 중요하다’고 가르쳤는데, 외국 애들은 “예술이 끝이 있어?” 라는 질문을 한다. 물론 거기도 허접한 애들 많다. 여기랑 다를 게 없다.
유럽은 시간이 느리게 가고, 안 변한다. 그런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모든 예술 중에서는 미술이 가장 가까이 가기 어려운 것 같다. 영국에서는 전쟁 중에 언제 다 터질지도 모르는데, 미술관에 있는 작품들을 다 거리에 내놓고 전시를 하고, 음악회를 열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고 했다고 한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것이 아니면 예술이 아니다. 라는 관념이 있는 것 같다. 마그리트나 모네 전은 안 본 사람이 없고, 너무 흔해졌다.
민정
난 개인적으로 얼마 전에 끝낸 ‘몽유록_꿈속을 거닐다’ 공연에서 처음으로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오히려 연습시간에 집중하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작업자들과의 교감에 중심을 두었다. 그동안 해왔던 작품에서는 관객 참여와 소통에 굉장히 비중을 두었는데, 대부분 One way 같은 느낌이었다. 이번 공연을 하면서, 난해한 것을 하나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관객을 보면서 너무 흥미로웠다. 관객 나름대로 작동하는 상상력과 에너지가 느껴졌다. 진짜 재미가 무엇인가? 웃기는 것만이 재미있는 것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 관심을 가지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교육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다양한 공연을 보고, 실망하더라도 다른 것을 또 접하고, 반복하다보면 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들이 다소 어려운 공연을 접하더라도 그런 상태를 느끼고 행복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강현
우리 엄마는 이번 <EYE> 공연을 보러 오시기 전에, 친구 분들에게 돌리시겠다면서 설명서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내가 쓰다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일장 연설을 하셨다. (웃음) “다 몰라도 예술가는 알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셨다.
민정
멋진 어머니시다. 맞는 말씀이다.
강현
그런데 엄마 친구 중 한 분은 ‘나는 너무 잘 이해가 되었다’면서 이런 저런 장면들을 이야기하시고, 재미있게 보셨다고 했다. 엄마 말씀이 “갸가 원래 똑똑하다 아이가. 어렸을 때 6학년 10반 반장도 하고.” (웃음)
민정
욕망은 있는데 젊은 시절을 즐기지 못한 분들이 있다. 그런 엄마 친구 분들만 관객으로 잡아도 큰 성과가 되겠다.
강현
덕분에 내 전시를 보고 용기가 대단하다고 했던 선배에게 핀잔을 들었다. 비도 오는데 정장 입은 엄마 친구 분들이 너무 많이 오셔서, 관람객이 좁은 공간에 다 못 들어오고 하니까 ‘정작 봐야하는 사람들이 못 봤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정작 봐야하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 나는 정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민정
당신에 대한 부러움이 있고, 욕망이 있어서 그런 거다. 우리 엄마는 아직도 나한테 TV나 영화는 언제 하냐고 물어보신다. 유명해지는 것이 목표라고 생각한다. 우리 엄마는 이해를 못하신다. ‘나는 저 사람들과는 직업이 다르다’면서 항상 이야기하고 싸우곤 한다. 난 ‘뮈토스’라는 극단에 있는데, 실험적인 연극을 하는 집단이다. 배우 한 명이 어머니가 공연을 보러 오셨다가는, ‘다시는 네 공연을 보러 오지 않겠다’며 선언을 하셨단다.(웃음)
강현
다른 사람의 시선, 친구들의 몰이해를 모두 신경 쓸 수는 없지만 힘이 빠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양한 관객이 많아지다 보면 인디가 주류가 될 수도 있다.
민정
20대가 보기엔 우리가 주류일 수도 있다.(웃음)
다른 나라에서의 작업
강현
처음에 조소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흙이 좋았다. 세상을 촉촉하게 만들고 싶은 마음. 외국에 있을 때, 지역에서 생산되는 종이로 작업을 했다. 스위스에서는 지역 신문, 런던에서는 여왕 옷을 만들어서 입고 거리로 나갔다. 요들송도 부르고, 현지의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을 비디오로 기록했다. 그런데 그 때, 사람을 스치는 순간만이 나의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도 머물렀는데, 그 곳은 영국의 400년 식민지였다. 정말 흥했던 적이 한번도 없었던 나라다. 마약으로 찌든 사람들이 거리에 수도 없다. 내가 더블린에 산다고 하면 다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런데 그 만큼 재활 프로그램도 많다. 그러다가 그 거리에 있는 복지관 같은 건물에 방을 얻어서 들어가게 된 거다. 거기서 예술의 힘을 느꼈다. 많은 예술가들이 동참해서 마약을 퇴치하고 사람들을 갱생시켰다. 마약에 찌든 사람들의 자녀들을 데려와서 같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끊임없이 무언가 일을 찾게 하고, 함께 일을 해서 다른 생각 할 시간이 없게 만들었다. 그 시간들이 참 소중했고, 이후에도 내 작업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공동작업
미도리
공동작업에서 함께 원하는 지점까지 가는 과정에서 분명히 부족한 부분이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민정
기본적으로 연출이나 안무의 역할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작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제안할 때 기본적으로 그들은 내 생각을 100% 읽거나, 모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공동 작업자들이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나는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한다.
안무나 연출은 ‘결정’ 하거나 ‘지시’하는 사람이 아닌데, 때로 그런 것을 요구하는 스탭들이 있다. 이것은 ‘창작’과는 너무 다르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나 그런 과정은 창작이 아니다.
이제는 배우나 무용수와 작업 할 때, 그 사람이 하는 것이 100프로 다 마음에 든다.
스탭은 마음에 안 드는 경우가 있는데, 창의적이지 못하거나, 구태의연하게 작업하거나, 다른 사람과 컨셉을 공유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경우다. 실기, 실력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실기는 정말 뛰어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끝낸 ‘꿈속을 거닐다_몽유록’은 첫 공연을 보는데, 정말 다른 사람의 공연을 보는 느낌이었다. 난 정말 ‘관객’이었다. 사실 첫 공연 보고 조금 잤다. 사람들이 다 자기 맘대로 하고 있더라.(웃음) 옛날에는 약속과 다르게 움직이는 무용수나 배우를 보면서 뒤에서 욕하고 그랬다. 하지만, 이제 느낀다. 내가 상상하지 못한 걸 그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내가 선곡한 음악으로 리허설 했을 때는 물론 기승전결도 보이고 재미있었다. 공연장에서 즉흥 음악이 들어왔을 때, 사실은 지루해졌다. 하지만 신성아씨의 음악은 너무 새로웠다. 내가 선택한 것은 그저 평범한 것이었다. 배우와 무용수들도 모두 잠식당했다. (웃음) 그것이 산만한 것이든, 풍부해지는 것이든 상관없다.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영화를 하는 사람들, 음악을 하는 사람들, 각각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만들어낸 색깔이 훌륭한 것이었다. 우리가 하는 작업이 더 깊어지는 것을 원한다. 물론 처음 만나도 깊어질 수 있다. 이번에 영상을 맡은 조득수 씨 특기가 아무나 엮는 거다. 기금이 한정되어있으니 난 돈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데...(웃음) 공연에서 동양화를 그린 이소영씨도 조득수 씨 소개로 만나서 작업하게 되었다. (웃음) 여러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만나질 때, 어떤 스파크가 일어난다.
강현
‘Eye’는 각자의 역할로 만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유로웠다. 나도 미술 하는 안강현이 아니라, 그냥 작업자로 만난 것이다. 어려운 것은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속에 확실한 무엇인가가 없을 때이다. 그 때 그 때 이야기하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에게 있어 공동작업은, 일부러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시작하는 것인 것 같다.
혼자 하는 작업의 외로움을 느끼다가, 함께 하는 작업에 대한 욕구가 생기곤 한다. 가끔 협업이 아닌 ‘갑/을’의 관계로 만나서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
화두
민정
난 작품의도 쓰는 게 제일 싫다. 난 한번도 의도한 적 없다.
강현
작품의도라는 게 웃기다. 어차피 다 변할 건데. 난 사적인, 자신에 대한 출발이 어려웠다. 대부분 예술가의 사회적인 책임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나는 오히려 나한테 집중하는 일이 어렵다.
민정
누군가는 왜 내 작품에는 항상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나오냐 하고, 또 누군가는 내가 ‘한’에 대해서 내가 집착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난 개인에 대한 사적 담론은 흥미가 없었다. 그런데 항상 가지지 못한 자, 소외된 자의 이야기를 하게 되더라. <꿈속을 거닐다_몽유록>도 다 죽은 사람의 이야기이다. 13명의 출연자들이 모두 죽은 사람 역할이었다. 이야기 속에서 사랑도 결국은 권력에 대한 문제였다.
이제는 사회적인 책임은 없고, 그런 이야기를 잘 풀어내야 하는 게 내가 하고자 하는 것 인듯하다. 기본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지만 특별히 분단이나 역사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동시대 사람들의 정체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게 된다. 돈이 정체성이 되는 사회. 그 사회의 역할. 그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강현
나의 화두는 A에서 B로 가는 형태가 아니라, 아닌 것을 쳐 나가는 시기인 듯 하다.
난 대부분 경험을 통해서 어떤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나는 내가 ‘저렇게 작업하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모델이 되면 좋겠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민정
내가 질문을 하나 하겠다. 이 상태로 계속 살고 싶은가?
미도리
완전히 만족하느냐는 질문인가.
강현
지금 이상태가 뭔지 모르겠다.
미도리
어쨌든 달라지고 싶다.
민정
그런데 달라도 이것보다 더 나을 것 같지 않다.(웃음)
“용기를 내서 생각한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폴 발레리의 말을 생각한다. 우습지만 내 어렸을 때 꿈은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웃음) 난 당당하게 살고 싶다. 비굴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이 봤을 때, 여전히 ‘산만하구나’ 라고 할지라도 좋은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을 잃지 않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력, 나이, 세월이 그런 것들을 부패하게 한다. 나도 약간 두렵다.
강현
난 ‘잘 살고 싶다’는 말은 가끔 하는데, 잘 사는 게 가만히 있어도 되어지는 것도 있고. 굉장히 노력해야 가능한 것도 있다. 물론, 솔직하게 꾸려나가면서 살고 싶다.
민정
나를 새롭게 자극시켜줄 무언가가 없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세상에. 난 정체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사회로 편입되는 느낌이 있어서 싫다. 요즘 어린 친구들의 작업을 보면 너무 좋아서 쓰러진다. 그래서 두려움이 있다.
강현
호기심이 중요한 것 같다. 이번에 함께 작업한 친구가 어떤 무용 워크샵에 갔는데, 80세 할머니 무용수가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이 호기심이 너무 왕성하셨단다. 친구가 ‘선생님, 다 아시면서... 좀 가르쳐주세요!!!’ 하고 졸라도 “나도 모르겠는데-아유 저건 뭘까” 하셨단다. (웃음)
미도리
사랑스럽다.
민정
할아버지 할머니 거장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이 있다.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 나오는 할아버지 뮤지션들처럼.
조용히 떠올려본다.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 우리의 모습을. 아니, 가까운 사십대...오십대가 된 중년 여성의 모습을. 재미있게도 얼굴이나 몸은 좀 변했겠지만, 눈빛만은 그대로인 사람의 이미지가 그림처럼 떠오른다. 끊임없이 변화하되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늙지 않을 거라는 묘한 자신감이 든다. 그렇게, 긍정적인 자기 부정을 통해서 알차게 나이 들다보면 여유 있는 할머니 예술가가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변화하다보면, 세상도 조금은 변해있지 않을까.
보충설명
김민정은, 지난 11월 10일-11일 고양 아람누리 새라새 극장에서 Jam Performance <꿈 속을 거닐다 - 몽유록>의 대본을 쓰고 안무/연출했다.
홈페이지: http://www.innstage.com
안강현은, 지난 11월 27일-28일
블로그: http://laonowl.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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