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보이지만 괜찮아. 강선제+조문기

2009. 4. 10. 08:2007-08' 인디언밥

가벼워보이지만 괜찮아. 강선제+조문기

  • 글 미도리/사진 송추향
  • 조회수 1117 / 2007.10.12

바야흐로 때는 가을이건만, 이 놈의 비는 한여름 소나기처럼 망설임없이 쏟아진다. 비가 주룩 주룩 내리는 광화문.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이라는 밴드의 리더 ‘조까를로스’이자 일러스트 작가인 조문기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 부산의 문화잡지 ‘보일라’의 편집장 강선제는 조문기의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일부러 달려왔다.(진짜?) 내가 둘을 알게 된 것은 멀쩡한 소풍의 <도화골 음란 소녀 청이>(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07 참가작)작업을 통해서다. 난 두 사람이 굉장히 친한 줄 알았다. 그런데 뒷풀이 자리에서 문득, 자기들은 친하지 않단다. 웃지도 않고 진지하게 말하는 표정을 보고 뜨악해하다가 묘한 호기심에 발동이 걸린다. 친하지 않은 두 사람, 이 재미있는 작가들을 보고 움직이는 복덕방이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미술감독과 포스터디자이너의 관계로 작업까지 해놓고 ‘우린 친하지 않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이 두 사람. 이 두 사람의 관계, 그 무게는 과연 어느 만큼일까?


첫 만남, 첫 인상


선제: 아티스트 잭의 전시에서 처음 만났다. 처음에는 ‘보일라’에 실린 인터뷰만 봤다. 인터뷰는 내가 아닌 다른 기자가 했다. 문기 씨 작품이 좋다고 생각했다.

문기: 나는 내 그림이 실리기 전에도 홍대 앞에서 ‘보일라’를 많이 봐왔고,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보일라도 좀 가난한 쪽이지 않나.(웃음) 가난한 미술을 많이 다뤄서 관심이 갔다.

선제: 우린 부자 안 다룬다.(웃음)

미도리: 첫 인상이 어땠나.

선제: 뭐 저렇게 이상한 사람이 다 있나...

문기: 강선제씨가 ‘보일라’ 편집장인줄 몰랐다.

선제: 문기씨는 그림과 좀 달랐다. 그림만 봤을 때는 마초같이 생겼을 줄 알았다. 밴드 이름도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이잖나. 그리고 ‘이발사 시리즈’그림을 봤으니까 남성적이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외계인 이미지였다.

문기: 나는 ‘보일라’가 잡지니까 회사같은 느낌이라서,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줄 알았다. 편집장님이 멀리까지 오실 줄은 진짜 몰랐다. 오...잡지라고 하니까 대단해보여서.

미도리: 서로에게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므흣하게 웃는다) 아, 이성적으로 말고, 작업적으로.

선제: 문기씨 작업이 보일라에 실리는 순간. 보일라 기자가 조문기씨를 인터뷰하면서 너무 당황스러웠단다. 왜 까칠하게 대했나.

문기: 까칠하려고 까칠한게 아니라. 질문 중에 말하기 싫은 게 있더라구요. 대놓고 만났으면 잘 이야기했을텐데, 제가 또 ‘키보드 워리어’여가지고. (일동, 박장대소) 원래 사람 만나면 쪼는 편이예요. 노예 근성이 있어가지고. 그런데 안 보이니까, 생각을 좀 하니까 까칠하게 대했나봐요.

선제: 그런데 인터뷰는 너무 좋았다. 그림도 사람들이 너무 좋아해가지고, 한번 그림을 실었던 작가는 다시 안 싣는데 1월 특집호에 달력 그림으로 다시 연락해서 실었다. 이제까지 보일라에 실었던 작가 중에서 11명을 선정해서 달력으로 만든 적이 있는데, 그 때 사람들이 다 ‘조문기 조문기’노래를 불러서. ‘파도 시발새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미도리: 그 그림 유명하다. 네이버에 ‘조문기’치면 막 나온다.

선제: 그 그림의 포쓰가 너무 강해서, ‘도화골 음란 소녀 청이’(제작 멀쩡한 소풍)연출 이지영이 ‘파도 시발새끼’작가 소개시켜달라고 하도 졸라대서 작업도 같이 하게 된 거다.


강선제가 본 조문기, 조문기의 작업


미도리: 강선제 편집장은 수많은 작가들을 계속 매달 만나잖나. 조문기 그림이 어떤가.

선제: 재치가 있고 재미있다. 너무 좋다.

미도리: 너무 간단하다. 음악은 들어봤나.

선제: 그렇다. 마찬가지로 재미있다. 난 재미있는 게 좋다.

문기: 제대로 잘 전달된 것 같다.


조문기가 본 강선제, 보일라


미도리: 조문기 작가는 ‘보일라’를 지켜보는 과정에서 더 애정이 생겼을 것 같은데, 어떤가.

문기: 처음에 보일라 나왔을 때 이게 얼마나 갈까 싶었다. 광고도 없고. 처음에는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이 만든줄 알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 수록 좀 의외의 것도 나오고. 부산에서 올라오는 건데, 유통망이 서울까지 확장되고 오래 운영하는 걸 보면 큰 조직이 아닐까 싶었다. 소소한 면들을 부각시키고, 신인 작가들을 다루는 것이 좋다. 그런 걸 미술세계에서 다루겠나. 어떻게 보면 가벼울 수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나와 맞는 것 같다. 나도 어느 정도 가벼운 것에 치중하는 편이라. 하위 문화도 많이 다루시고 하는 걸 보니까.

선제: 보일라는 소소한 하위문화를 다루고 스트리트 문화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뜰 것 같은 작가’를 인터뷰하는 잡지다. 보일라가 찍으면 뜬다.

문기: 근데 요즘 와서는 넘나드는 것 같다. 작년, 재작년부터는 미술계를 아우르는 것 같다. 메이저급 작가들도 다루고. 영화감독이 B급 제작사에 가서 어떠한 것도 구속받지 않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펼쳐나가다가 잘 되는 것처럼, 처음부터 단계를 차근 차근 밟아가는 작가들을 다루는 것 같아서 좋다.

미도리: 반면에 아쉬운 점은?

문기: 어쩔 수 없는 부분 인 것 같은데, 페이지가 적다. 그러다보니 내용상 짧아질 수 밖에 없다. 하다만 느낌도 나고. 의외의 기획들-달력 제작이라든지-이 재기발랄한 것 같다.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성이 있어서 좋다. 아쉬운 점은 잡지는 언론이고 매체인데, 중심이 조금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다양성으로 커버되는 것 같다. 오래된 잡지를 보면 어느 정도 틀을 갖추지 않나. 쓰던 사람들이 계속 쓰고, 역사나 특징도 이어지고.

선제: 벗어날 수 없는 아마추어리즘이 있다.

문기: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또 그게 매력이고...

선제: 문기씨 말이 맞다. 그리고 추구하는 바이다. 원하면 원하는대로 바꿔보고, 판형도 바꿔보고 실험도 하고 있다. 작가가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것처럼. ‘보일라’도 하나의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자기 작품 전시하는 것처럼 하나의 작품처럼. 맘에 안드는 작품이 매달 나오고 있다고 보면 된다.(웃음)



각자의 역사


문기: 난 평범하게 살았다. 서양화 전공하고. 군대 갔다오고. 학생때는 많이 소극적이었다.힘도 없고. 약해 보이고. 활동적인 걸 별로 안좋아했다.

선제: 밴드는 언제부터 했나.

문기: 제대하고 복학을 했는데, 복학생 남자가 둘 밖에 없으니까. 서양화과가 다 여자였다. 동생들이고, 잘 안 맞더라. 안 놀아주니까 관심 좀 받으려고 그 때부터 기타를 쳤다.

미도리: 탁월한 선택이다. 백프로 먹힌다.

문기: 근데 안 먹혔다. 멋있는 척해야하는데, 천성이 그게 잘 안되더라. 실력이 좀 되야 팝송도 때리고 그러는데 안 되는 거다. 컨셉이 그건 아니었다. 그래서 나혼자 하다보니까 밴드도 만들고, 다들 좋아하길래 그걸로 밀고 나갔다. 그 후로 학원 강사 등 알바를 하다가. 개그 사이트를 하나 만들었는데, 지구 코리아 엔터테인먼트라고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멤버 ‘몬테소리’가 프로그래머를 하고, 내가 혼자 다 음악을 올렸다. 음악의 가지 수가 많아지니까 아까워져서 2년전부터 밴드가 된거다. 영화 미술도 했다. 놀이동산에 입사해서 놀이기구 조형물도 만들었다. 영화작업은 감독 아니면 다 시다같은 느낌이 들어서 탈출했다.

선제:  첫 개인전은 언제였나.

문기:  작년에 했다. ‘대안공간 미끌’에서.

선제:  그럼 졸업하고 한참 뒤에 첫 개인전을 한 거다.

문기:  작가활동을 안하려고 했다. 집 사정도 그렇고 여건이 안 됐다. 미디어나, 트렌드 쪽으로 빠질까, 영화를 좋아하니까 영화 쪽에 취업을 할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만 그렇지 현실은 그게 아니더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아니었다. 차라리 아티스트가 되어서 뭘 만들던지 해야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선제: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은 언제 시작했나.

문기:  학교 다닐 때. 이름만 짓고 활동은 안했다. 2005년에 첫 밴드 공연을 하고, 2006년에 첫 개인전을 했다. 데뷔 한지 얼마 안 됐다.

선제:  역시!!! 보일라는 막 데뷔하려는 작가를 인터뷰 한 거다. 지금 일민미술관에서 데뷔한거다. 보일라는 그렇다!

문기:  저 분이 아주 훌륭한 분이다.

문기: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은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에서 따온 것이다.

선제: 모든게 패러디 인생이야. 번쩍하는 신인들이 가끔씩 눈에 띄는데, 작년에 조문기씨가 그랬다.



선제:  부산대를 다녔는데, 전국에서 가장 물가가 싼 대학로가 부산대 근처다. 대학문화가 척박했고, 부산대 근처에 문화를 한다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데, 너무 상업적이었다. 부산대 앞을 홍대 앞이나 대학로처럼 문화적인 공간으로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체인지’라는 잡지가 있었다. 그 팀에 들어가서 3년정도 작업하다가 졸업과 동시에 이 작업은 학생들과 해서는 답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잡지를 폐간하고, 내가 개인적으로 ‘보일라’를 시작한거다. 그 외에는 역사가 별로 없다.


작업의 화두


문기:  나는 내 작업을 봤을 때, 우선은 재밌어야 한다. 이게 카툰인지. 만화인지. 개념 자체도 없이 그냥 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다음은 그냥 느낌. 봐서 재밌거나, 느낌이 좋거나. 둘 중의 하나를 하고, 그 다음 얘기는 나중에 생각하는... 얼핏 봐서 재미있게 지나가도 나는 내 작업이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그 뒤의 이야기는 봐도 좋고, 안 봐도 그만이고. 그런 식의 작업을 기본 개념으로 삼는 작업을 추구한다. 소재는 남자들이 갖는 호기심이나 사회에서 억눌린 아이러니를 찾으려고 한다. 그런데 오해의 소지가 있으니까 재미있게 풀어내려고 하는거다.

선제:  마초가 아니기 때문에 마초를 비웃으려고 마초를 대상화해서 소재로 삼는거다.

문기:  마초가 안 좋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남자는 남자다워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어려서부터 많다. 남자들이 놀아야 하는 건 축구라는 등. 난 공놀이 진짜 싫어한다. 어렸을 때부터 싸움 잘하고 그런 애들이 실권이지 않나. 성격이 진짜 달라지는거다. 사람이 마초같아서 마초가 아니라, 권력이나 돈이 마초가 되는거다. 논란을 받으면서 작업하는게 원래 작가지만. 소극적이라서 위트를 많이 사용하는거 같다. 밴드는 더 가볍다. 그  순간에 즐기는 걸 많이 생각한다. 음반을 낼 생각이 없어서 낼 줄 몰랐다. 음악은 소재 자체는 비슷한데, 푸는 방법이 다른 것 뿐이다. 너무 비슷해서 나름의 개성을 잃을까봐 조금 걱정된다. 둘이 같이 있을 때 시너지가 나기는 하는데. 그림 그리는 조문기와 음악하는 조까를로스 사이에는 벽을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미도리: 이런 화두를 계속 쭉 가져갈 건가.

문기: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화두도 머물 생각은 없다. 지금은 이 상태가 재밌으니까. 그냥 소재에 불과하다. 유머와 재미를 추구하는 거기 때문에 소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미도리:  일반적인 계기 말고, 개인적인 계기가 궁금하다.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문기:  왜, 내가 성폭행이라도 당했을 것 같나?(모두 폭소) 내가 비리비리하니까, 자기가 약하다고 생각하고 노예근성을 가지고 알아서 기는 점이 있다. 어려서부터 남들한테 의지해야지 편하고, 말하는 걸 곧이 곧대로 믿고, 리드당하고, 맞고, 하라는 대로만 하고, 부모님 뜻대로...(웃음)

미도리: 끊임없이 마초와 마초가 아닌 내가 싸우는 과정인가.

문기: 내가 그렇지 못하니까 동경 반...부정 반. 융합적인 마초다. 근데 밴드 새로 들어온 친구가 밥 먹을 때 반주를 하더라. 술도 잘 마신다. 화끈해가지고. 난 술도 못 마시고 담배도 못 피는데. 그래서 이 새끼 마초라고. 우리 밴드는 마초가 들어오면 안 되는데. 마초가 들어오면 음악의 내용이 진짜가 되는 거라고. 그런 식으로 욕을 했다. (웃음)



선제:  난 작업의 화두를 이야기하기는 많이 지났다고 생각을 한다. 목표는 보일라 100호를 찍는 것 밖에 없다. 하고 싶은 거, 놀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참아가며 하던 시기는 지나갔고, 이제 좀 편해져서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잠깐 접을 줄 아는 여유도 있지만, 마음 속의 목표는 100호를 내는거다. 이제 59호가 나온다. 그 전까지는 원천적인 고민은 할 필요가 없고, 그리고 잡지라는 게 나 혼자 하는 작업이 아니라 문기씨 같은 작가나 아님 또 다른 작가를 만나면 이 작가가 나중에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고 또 이런 작가를 만들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조금이라도 이 작가들에게 도움이 되고싶다. 이걸 유지해서 보일라가 100호까지 가면, 그 다음에야 돈 벌어서 집도 사고...그럴 수 있는 다른 목표가 생길 것 같다. 그냥 이게 끝이다. 이게 나의 20대 목표였다. 전시 기획은 초대를 하거나, 연결을 해 주는 역할인거다. 전시기획도 하는데. 본업은 아니다. 재미있어서 하는거다. 다리 놓아주는건 좋다. 작가가 부산까지 내려오는 비용, 도움이 될만한 재정적인 여건이 안되면 기본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전시를 하는 것은 안 좋다고 생각한다. 조건이나 여건이 되면, 좋은 일이기 때문에 기회가 되면 부산에 내려오면 좋지 않을까. 지원을 해준다면. 기회되고 돈주면 할거죠?

문기:  아우, 절을 하지. 그냥 절을 해. (웃음)

선제:  잡지는 돈이 안 드는 일이 아니다. 일정액의 돈이 항상 들어간다. 그래서 돈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민감하다. 내가 다리가 되어서 돈있는 사람에게 작가를 공짜로 이용당하게 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내가 돈 있는 사람에게 직접 벌어다주는 역할까지 할 수 없으면 안한다.


먹고 살기의 문제


선제: 디자인회사를 운영해서 그 돈으로 보일라도 만들고 생활도 한다.

문기: 영어책이나 사보 삽화도 그리고, 놀이동산 조형물도 만든다. 돈 받는 일은 기본적으로 맞춰준다. 그림 스타일 이런 거 없다. 삽화는 돈이 많이 안 된다. 거의 조형물을 많이 하고. 인형 작업이나 디자인도 하고. 뮤직비디오 작업도 한다.

 


두 사람의 첫 작업


미도리:  ‘도화골 음란 소녀 청이’ 아트웍-포스터 작업으로 두 분이 처음으로 만났다. 어땠나.

문기:  그냥 강제로...상황이 안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스텝들 다 데리고 와서...(웃음)

선제:  작가랑 연출이랑 다같이 만났다. 여자들이 떼거지로 와서 ‘해주셔야 돼요’ 하니까. 안할 수가 없었을 거다.

문기:  컨셉이 내가 추구하는 거랑 많이 닮았다. 보여지는 것은 다를 수 있는데, 작품이 맘에 안들면 안 했을 거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게 했다.

미도리:  포스터가 호평을 받았다. 다들 이 작가 누구냐고 물어봤다.

문기:  그런데 왜 일이 안 오나.

미도리:  기다려봐라. 작업과정은 어땠나.

선제:  그냥 알아서 하라고 했다.

문기: 대본 주고, 대충 그려가지고 넘기고. 그리고 또 대충 생각해서... 바로 완성본을 넘기고. 쉽게 작업했다. 이 작품이...포스터로 좀 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선제: 낚였어. 낚였어. 많이 낚였다.

문기: 일반 관객들이 어떤 정서가 있더라. 딱 봐서 자극적이게.

미도리:  주안점을 자극적인데 둔 건가?

문기: 그렇지도 않다. 포스터 같은 거 의뢰 오면 애매한 경우가 있다. 이번 작업은 컨셉이 딱 맞았지만, 사보 같은 경우는 어떤 상황에 그려야하는 데 그게 편한 상황이면...못 참겠더라. 그래도 왠만하면 일러스트는 일이니까 맞춰주는 편이다. 남을 따라할 수도 없지 않나.

선제: 색깔은 유지해야지. 돈 받고 하는 일이라도.

문기: 그런데 대놓고 ‘이렇게 하라’고 하니까.

선제: 그런 작업은 사실 하면 안 되는데 먹고 살아야 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는 거지. 난 진짜 하기 싫은 디자인 작업도 어쩔 수 없이 한다.

미도리: 공연은 마음에 들었나.

문기: 진짜 간만에 재미있는 공연을 봤다. 대본으로 봤을 때와 또 다른 즐거움이 있었다. 물 흐르듯이 장면이 이어지거나, 특히 인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자재로 바뀌는 부분에 재미가 있었다. 개그 콘서트 같은 트렌드와도 맞았던 것 같다.

선제:  작품 만들면서 지양한 점이 개그 콘서트 같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문기:  어차피 개그 콘서트 자체가 연극을 차용한거지 않나. 괜찮은 것 같다. 딱 봐서 개그콘서트 같으면 안 되겠지만 비틀 수 있게 하면 괜찮다. 포스터랑 잘 어울렸던 것 같다. 

미도리:  앞으로도 돈이 안 되도 작업하겠다는 건가? 재밌으니까?

선제:  이것은 내가 ‘멀쩡한 소풍’이라는 팀에 속해있기 때문에 단원으로서 부탁한거다. 사실 돈이 안 되면 부탁하면 안 된다.

문기:  돈이 안 되도, 흥미를 끌 수 있으면 괜찮다.

선제:  컨셉이 잘 맞았다.


좋아하는 것


미도리:  만화 좋아하나?

문기:  스타일은 60년대 만화. 복고풍 철인 28호, 아톰같은거 좋아한다. 용인 자연농원 스타일. 고대로 딴거다 내 작업이.(웃음) 일본 거 같으면서도. 현태준씨 작업처럼. 개발도산국이다보니까 창작기획력도 없고 어색하게 따라하다 보니까 기형적인 이상하게 나오는거...굉장히 존경하는 작가다.

선제:  나도 좋아한다.

문기:  만화는 다 좋아한다.

선제:  난 잡식이다. 보물섬 봤나?

문기:  봤다.  난 보물섬 부록을 더 좋아했다.


공동작업, 다른 예술가들과의 교류


문기:  난 일단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는다. 이번 전시‘야릇한 환대_일민미술관’에서 처음에는 이발소 부스를 전화박스만하게 만들어가지고 간판 돌아가게하려고 했다. 그런데 설치작가랑 개념 자체가 함께 잡히니까. 난 화두를 아예 넘겼다. 아무래도 스케일이 커지고, 추진력 같은 부분이 많은 도움이 됐다. 전시로서 내 작업을 같이 한 건 처음이다. 이번에 진짜 많이 느꼈고. 단체전이라고 해도 전에는 서로 피해만 안 갈 정도로만 하면 성공한 단체전인데. 이번에는 의외의 것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음악은 우선은 내가 해왔던게 아니니까 매일 배우는거다.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 특히 연주 부분에서. 할 때 마다 많이 다르다. 컨셉적으로는 내가 리드를 해야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연주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컨셉자가 되어야하는거다. 거의 원맨밴드라고 봐도 된다. 혼자 다 한다. 초반에는 악기까지 다 들고 다녔다. 애들 북, 수염... 현장에 와서 애들한테 수염붙여주고 선글래스 끼워주고 다 했다. 애들이 안 챙기니까. 차도 없는데 북도 다른 사람파트까지 다 들고 다녔다. 그러다보니까 너무 힘들더라. 공연횟수가 많아지니까. 이제는 알아서 하는 편이고, 어느 정도 선까지는 도움을 받는다. 애들도 이제 내 컨셉을 아니까. 멜로디혼하는 친구는 피아노만 20년 친 애다. 그래서 피아노를 못치게 한다. 너무 잘치면 돋보이니까 같이 밴드를 못한다. (웃음) 기교의 제한을 두는거다. 그 전에는 드러머를 곁다리로 두었다. 처음에는 돈 주고 배운 애들은 안 받는다고 했는데, 수염을 달고 싶어해가지고.(웃음) 프루츠 김은 명문대 작곡과 나온 애다. 그게 핸디캡이다. 걔는 즉흥연주가 가능하니까. 그런데 후루츠 김은 또 다른 자기 밴드가 있다. 클래식 밴드.

선제:  만나면 좋다. 잘하고 있는 작가들 보면 부럽고, 재능이 많은 작가를 봐도 부럽고. 저 작가들하고 큰 기획 같은 거 같이 하면 재밌겠다 생각한다. 욕심은 그렇다. 그런데 할 수 있는 일이 한계가 있으니까 당장은 어렵고,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

미도리:  창작의 욕구는 없나.

선제:  창작의 욕구는 오히려 작가들을 만나면 없어진다. ‘보일라’는 기본적으로 반한 사람들만 인터뷰를 하지 않나. ‘세상에 이런 작가가 있으니까 나같은 사람들은 안 해도 되는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

미도리: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나.

선제:  내가 미대생이었지 않나. 한국화 전공했는데, 미대생이었으니까 한계를 안다. 저런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우물을 팠기 때문이라는 걸 안다. 들고 판 거다.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그게 멋있다고 욕심난다고 따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야한다. 막연한 창작욕은 도움이 안 된다. 인쇄 디자인은 돈을 아끼려고 배웠다. 외주를 주면 돈이 많이 드니까 시작했는데 의외로 너무 쉬웠다. 나는 회화 위주의 작업보다는 뭔가 활용이 되는 어떤 것들을 하는 것이 내 체질에 맞는 것 같다. DIY가구를 만드는 것도 그렇고, 옷만드는 것도 그렇고 바로 실용적으로 생활에 쓸 수 있는것들을 흥미있어하지, 창작은 제대로 된걸 보는 즐거움 정도로 그치는 것 같다.

미도리:  진짜 의외다. 제대로 된 큰 기획은 무언가?

선제:  ‘보일라’에 참여했던 작가를 다 모아서 큰 전시를 한다거나, 재미있는 전시를 기획해서 기획에 맞는 작가를 모아서 전시를 한다거나. ‘보일라’가 문학, 음악, 그림 다 섞여있잖나. 그런 것들 다 모아서 특이한 장르로 전시를 한다거나. 그런거다. 아이디어는 많다. 그런데 이번에 연극작업하면서 느낀건데, 하나를 하면 하나를 포기해야하는게 맞다. 내가 보일라를 하면서 다른걸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결국 타격을 받는건 보일라다. 100호 가까이 되면 뭘 먹고 살건지 고민을 해 볼거다. 디자인은 안 하고 싶은지 오래됐다.

미도리:  100호 내면 폐간할건가.

선제:  자체적으로 굴러가게 하거나 하겠지. 월간지는 나와의 약속이다. 계간지 해도 상관없다. 그 때부터는 월간지가 아니어도 되는거다. 그럼 돈도 덜 들고, 다른 것도 할 수 있고.


작업의 고충


문기: 첫번째는 경제적인 거다. 창작적인 것도 고충이 있다. 작업 스타일이 쉽게 나온것처럼 보이려고 하다보니까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까 관객이 봤을때는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여야하는데 그러기가 힘들다. 그런것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다.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그렇게 안되더라. 그런면에서 힘들다. 어쩔 수 없는거다. 아무 생각 없이 해서 된 것도 좋지만, ‘뭘 해야겠다’해서 나온게 잘 안 나오는게 있고, 딱 봤을때 힘이 너무 들어가고. 잘 그리려고 노력한 흔적도 너무 나고. 그런거 고민하는게 힘들다. 날이갈수록 점점 더 심해진다. 뮤지션들도 그렇지만 1집이 제일 낫지 않나. 퀄리티는 더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만큼의 가벼움과 재치가 비슷한 급으로 나올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충분히 작품에 대한 퀄리티는 높일 수 있지만. 초반의 신선함이나 날스러움을 자꾸 잃어가는 것 같다. 원인을 알고 있으니까 어느정도는 다행인데. 그런건 제 삼자가 밝혀내는것이지 않나. 너무 섣부른건지는 몰라도 앨범 자켓도 디자인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가 그거다. 책임감이 있다. 1000장 찍어야되니까. (웃음)

선제:  난 항상 돈 걱정이다. 그것말고는 없다. 작가만나는 것도 즐겁지...뭐가 힘들겠나. 잡지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다. 이틀만에 끝낸다. 편집 속도 짱이다. 200페이지도 3일만에 다 한다. 진짜 돈 밖에 없다.

미도리: 해결방안은 돈을 버는 거네.

선제: 돈을 버는 방법이 엇나가도 너무 엇나가서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광고를 딴다거나 하는 방법으로는 하기 힘들 것 같다. 애초에 목적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디에 스폰서를 받는다거나 하는것들도 어느 순간에 하기 시작하면 너무 힘들 것 같다. 광고 때문에 잡지를 제 날짜에 내야한다는 족쇄같은것처럼 느껴진다. 철이 없는거다. 그런데 고쳐지지 않는다. 디자인 회사는 철저히 프로근성을 가지고 상업적으로 운영한다. 그런데 보일라는 철저한 아마추어리즘이기 때문에 아마추어에 프로가 들어온다면 그 균형이 깨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광고가 안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불안정한거다. 광고를 내면 나와야 되는 시간이 있고, 여러 가지 걸리는 점이 있어서 애매하다.

 


행복한 순간


문기:  뭘 해서 결과물을 냈을 때는, 행복하다. 그런데 작업 전이라든지 작업을 꾸려나가야될때는 굉장히 억압되고 풀리지 않고 죽겠다. 하지만 뭐. 결과물이 나오고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뭘 해도 인정받을 수 있고, 고맙게 생각한다.

선제:  나는 그걸 알고 있다. 10년이 지나든 20년이 지나든, 보일라를 했던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불평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지금이 가장 좋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


선제:  보일라 잘하다가 재밌는 전시 기획 하고 싶다. 전시 기획이라기 보다는. 음악, 전시, 공연 다 섞인 기획.

문기:  내 작업에 대한 자리를 확실히 잡은 작가만 되도 좋겠다. 지금은 자리잡았다고 할 수 없다. 자리 잡은 작가로서 인정받으면, 다 이룬거라고 생각한다. 미술이나 음악이나. 자리잡은 순간, 그 때부터는 꿈이 달라지겠지만.(웃음)

선제:  30억 짜리 집 사고 그런게 꿈이 되는거 아닌가. 흐흐.

문기:  자리잡고 싶다. 자리잡은 예술가.


주제넘게도 두 사람의 관계, 그 무게의 진실을 파헤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인터뷰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작업에 대해 꽤나 진지한 부분까지 나누는 시간이 되었다. 건강한 아마추어리즘을 표방하는 보일라의 강선제, 가벼움의 미학을 추구하는 조문기. 그리고 조까를로스. 그래, 가벼워 보이지만 괜찮다. 그 가벼움은 진짜 가벼움이 아니므로. 최근에 들었던 한 작가의 좌우명이 떠오른다. ‘유머감각만이 우리를 구원할거야’ 괜히 어줍잖은 무게의 압박 따위는 훨훨 털어버린 채, 유머와 위트의 풍선에 몸을 싣고 세상이라는 구름 위를 가볍게 부유하는 강선제와 조문기의 모습을 떠올리니 풋-하고 웃음이 터진다. 덕분에 자연히 유쾌해진다.

보충설명

<전시> 무명씨 연출전 '야릇한 환대' - 광화문 일민미술관 <070914-071021>_참여작가 조까를로스 外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http://sossage.cyworld.com
<보일라> 커뮤니티 http://cafe.naver.com/voila

필자소개

미도리.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누군가의 표현을 따르면 예술가들의 ‘복덕방’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란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서로 소개시켜주고 꿍딱꿍딱 재미난 일벌이기를 좋아한다. ‘멀쩡한 소풍’이라는 팀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펑크락 뮤지컬<어느 락커의 바지 속 고백>을 썼다. ‘스윙댄스’라는 춤을 추고, 가르치기도 한다. 잡다하게 바쁘지만, 틈틈이 전공한 극작과 다양한 공연 등의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움직이는 작가이자 이동형 작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