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1. 25. 17:17ㆍReview
2010한국마임 극장공연 리뷰
「감옥」 첫번째 이야기
이야기꾼의 책공연 - 이야기가 있는 마임 "할아버지의 바닷속 집"
마린보이 - 나홀로 서커스
박이정화 - 사랑 쓰다
이슬길 - 몸짓시극1 '아름다움 안에서 함께 걷기를...'
글_ 조원석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너머 또 하루 저물 땐 ~ ”
“ 여보세요?”
“ 동이니? 나야 원석이.”
“ 웬일이야?”
“ 연극보자고, 마임공연인데, 나 그거 보고 리뷰 써야 하거든. 그런데 네가 마임 하잖아. 좀 도와달라고.”
“ 나 지금은 마임 안 해.”
“ 그래? 몰랐어. 그래도 좀 도와줘. 나, 마임은 깡통이거든.”
“ 알았어. 시간이랑 장소는 문자로 보내줘. 나 지금 바쁘거든.”
“ 그래, 고맙다. 오래간만에 만나네.”
“ 응. 이제 끊어.”
동이는 다시 교정을 보고 있던 원고로 눈을 돌렸다.
「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감옥이었다. 창살이 있는 지하방. 화장실에는 낮에도 빛이 전혀 들지 않는다. 낮에도 인공의 빛이 필요한 곳. 나는 이곳을 감옥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간수이자, 죄수가 되었다.... 」
‘감옥’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동이는 ‘감옥’이라는 단어에서 아늑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곧 비밀이 되었다. 다른 사람에게 들키면 안 되는 일종의 범죄 같았다.
우석레퍼토리극장 앞, 원석과 동이가 만났다. 둘은, 둘 다 잠바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눈인사를 나눴다. 악수는 하지 않았다.
“어떻게 지냈니?” 원석은 동이의 눈을 보았다.
“글쎄? 별로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동이는 원석의 얼굴을 보았다.
“여전하네.”
“뭐가?”
“ 자신한테는 관심 없는 듯이 사는 것.”
“ 너도 내가 필요해서 날 불렀잖아.”
“ 맞다. 나 정말 마임은 깡통이다. 네가 좀 따줘야겠다.”
“ 글쎄.. 나한테 병따개가 있다면...”
“ 너 마임 했었잖아.”
“ 지금은 안 해.”
“ 왜?”
“ 나중에 알게 되겠지.”
극장 안은 모기가 많았다. <이야기꾼의 책공연>에서 할아버지가 헤엄을 칠 때 모기들은 극장 안을 헤엄쳤다. <마린보이>가 저글링을 하다 부러 실수를 하고 머리를 긁적일 때 원석은 손등을 긁었다. <사랑 쓰다>의 배우가 허공에 손을 뻗어 온 몸으로 사랑을 쓸 때 원석은 허공에 손을 뻗어 <모기 쫒다>를 썼다. <이슬길>에서 배우가 무대 위에 낙엽을 뿌릴 때 원석은 모기 물린 자리에 침을 발랐다.
“ 공연 어땠어? 난 마린보이가 제일 재밌더라.” 원석은 관객의 반응을 생각했다.
“ 관객의 반응이 좋아서 더 재미있었어. 아무래도 대중성은 무시할 수 없나봐. 나 역시, 넌 어때?” “ 난 다 재미있었어.” 동이는 공연을 보기 전과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 다 재미있었다고? 너 요즘 우울하냐? 평소에 재미있는 일이 그렇게 없어?” 원석은 딱한 표정을 지었다.
“ 저기 모자 쓰고 주차 단속하는 아저씨도 재미있겠다. 넌.”
“ 응, 재미있어.” 동이는 무표정보다 더 재미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가?” 원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 아저씨잖아. 주차 아주머니는 한 번도 본적이 없어. 그래서 재미있어.”
“ 좀 진지해지자. 나 이 걸로 리뷰 써야 돼. 이게 내 유일한 생계야.” 원석은 전쟁터를 나가는 병사의 표정으로 동이의 두 어깨를 쥐었다.
“ 알았어. 어깨 좀 놔. 아프다. 그래, 뭐가 궁금한데.”
“ 그냥, 네 생각. 넌 그래도 마임을 했었잖아. 그러니까... 뭐 랄까. 나와는 다른 생각을 했을 것 아냐.”
“ 아무래도 같지는 않겠지. 하지만 별 차이는 없어. 그냥 자기 몫이야. 공연이 잘 됐는지 안 됐는지는 배우가 제일 잘 알아.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난, 마임은 춤과 연극의 중간 쯤 되는 거라고 생각했어. 한마디로 얘기하면 이야기가 있는 춤이랄까?”
“ 잠깐, 그럴 듯해, 정말 그럴 듯해, 이,야,기,가 있는 춤. 이런 게 먹혀, 이렇게 간결하고 의미심장한 표현들이 대중에게는 먹힌단 말이지...흐흐.” 원석은 수첩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웃었다.
“ 그래 너도 많이 먹어. 이런 거 먹으면 배부르니?”
“ 응, 배불러. 야, 빨리 빨리 다음 얘기 해봐.”
“ 만일 마임이 이야기가 있는 춤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 쓰다>와 <이슬길>은 춤이 많이 강조 되었고, <이야기꾼의 책공연>은 이야기가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지. <마린보이>는 일종의 피에로 마임이라고 할 수 있는 데, 대중을 웃기는 것에 더 초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어. 쓸쓸함이나 슬픔 등 더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 내었다면 더 좋았을 거야. 감동도 더 배가 됐을 거고. 그런데 마임이 매력적인 건 관객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장르라는 거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봐야한다는 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면서 봐야 하고, 상상해야 돼. 그런데 가끔 이런 관객의 능동성을 떨어뜨리는 공연이 있어. <사랑 쓰다>의 경우는 이야기가 전혀 없이 행위만을 보여 줬기 때문에 관객이 상상력을 발휘할 즐거움이 없었고, <이슬길>같은 경우는 이야기를 상상하기가 너무 어려웠던 경우야. 두 공연은 시각적인 아름다움에 무게를 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지. 반대로 <마린보이>는 관객과의 무언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고, <이야기꾼의 책공연>은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일으켰지. 하지만 마임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에서 오는 재미가 더 컸다고 봐.”
“ 그럼 괜찮은 공연은 이야기와 춤이 적당히 잘 조화를 이룬 공연이겠네?”
“ 꼭 그렇지는 않아.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간다면 그건 개성이 없는 군대 같잖아. 그냥 과정이 묻어나오는 공연이면 좋겠어. 수많은 연습이 필요했을 것 같은 그런 연기를 볼 때 관객들도 몰입의 즐거움을 느낄 것 같아.”
동이는 ‘몰입’이라는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안 순간, 얼굴을 덮치는 열기를 느꼈다.
“ 나 이제 가봐야겠다.”
“ 어? 미안, 늦었지. 다음 토요일에도 부탁할게. 괜찮은 거지?”
“ 그래, 나도 오랜 간만에 조금은 더워진 것 같아 .”
밤이 깊었지만 동이는 깨어있었다.
「 항상 나는 나를 따라 다녔다. 간수인 나는 죄수인 나를 경멸했다. 그 경멸을 통해 간수인 나는 환멸(幻滅)을 느꼈다. 언뜻, 간수가 죄수 위에 군림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창살은 죄수로부터 간수를 보호하고 있었다. 호시탐탐 간수를 노리는 것, 그것은 죄수였다....... 」
동이는 눈을 뜨고 나서야 자신이 잠들었었다는 것을 알았다.
- 두번째 이야기 보러가기
2010 1026-1107 우석레퍼토리극장
1026-1027 프로그램
바닷물이 차오르는 마을에 사는 할아버지의 따뜻한 이야기
연출: 유홍영
출연: 김조민, 윤자영, 신지예
마린보이 - 나홀로 서커스
관객과 함께 웃고 즐기며 이루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서커스 쇼!
출연: 이성형
박이정화 - 사랑 쓰다
문득 '사랑'이라는 글자를 쓰면서 쓰디쓴 그 사랑의 맛을 생각해본다.
출연: 박이정화
이슬길 - 몸짓시극1 '아름다움 안에서 함께 걷기를...'
시(詩)와 몸짓의 이미지가 삶과 공연에, 공간과 시간에 함께 어울리는 몸짓시극
출연: 이두성
글쓴이 조원석은 서울 271번 버스 승객, 진로 마켓 손님, 이 현수의 남편. 상추를 키우는 정원사. 구피 열아홉마리를 키우는 어부. 도장 자격증이 있는 페인트공. 시나리오 '벽에 기대다'를 50만원에 팔고 남들한테 자랑하는 사람. "현실"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다가 말다가 하는 게으른 사람.
그 외에도 수많은 "나"가 있어 어떻게 소개해야 할 지 모르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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