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된다' - 고재경의 「선Ⅲ」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된다'

고재경의 「선Ⅲ」





글_ 이현수

 

 

 

 

1. 팜플렛: 광대의 표정



자신의 얼굴 사진이 실린 잡지를 얼굴에 대고는 실제 얼굴을 가리고 사진을 찍었다.

잡지 속의 얼굴은 환하게 웃고 있는데 잡지 뒤의 얼굴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잡지의 얼굴과 광대의 몸이 하나로 연결되도록 교묘하게 사진을 찍었다.

만약 광대가 ‘수많은 표정 뒤로 진짜 얼굴을 감춘 이’라면 감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2. 제목: 선線 Ш

'고재경의 마임워크숍' 시간에 배웠다.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된다’고.
점 하나하나를 볼 때는 잘 보이지 않지만

각각의 점과 점들을 연결하면 한 줄기 선이 된다. 선들이 된다.

가까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멀리서 보면 보이기도 하듯이,

좀 뒤로 가서 점과 점을 연결하고 보면 그 흐름이 보일지도 모른다.

손금처럼 그려지는 선들을 보다보면 자신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른다.


 

 

3. 극장: 우석 레퍼토리 소극장


마임극의 끝, 에필로그 부분을 먼저 얘기하자면,

작은 극장의 무대 위에 쭈그리고 앉은 한 사람이 있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 광인 같기도 하고.

동네에서 놀림을 받으면서도 웃고 있는 바보 같기도 하고.

전철에서 뻔뻔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 걸인 같기도 하고.

사람 몸에 붙어서 간질이면서 좋아라하는 벌레 같기도 하고.

제 몸에 붙은 벼룩을 잡으며 놀고 있는 개 같기도 하고.


 

그는 누구일까?
확실한 건 이 모든 역할을 그가 자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확실한 건 그가 광대라고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느라
이 사람의 모습과 저 사람의 모습을 비추느라

어린 시절의 모습과 어른의 모습을 비추느라

꿈꾸는 모습과 혼돈스러워 하는 모습을 비추느라

스스로를 너덜너덜한 넝마로 만들 수밖에 없는 이.

그러나 그의 내면과 그의 육체에서는 힘이 느껴진다.


 

넝마를 입은 광대의 모습을 보고 우리는 웃는다.
그 모습이 우리의 모습인 줄도 모르고 웃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관객을 보면서 광대는 다시 웃기도 한다.

그리고 또 웃고 있는 광대의 모습을 보고 거울처럼 관객은 웃는다.

극장은 서로 서로 웃음을 주고 받는 밝고 명랑한 공간인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여 던지는 비웃음의 공간인가?

아니면 밝은 웃음 뒤로 씁쓸한 현실을 목격하는 진실의 공간인가?


 

 


4. 무대: 우리들의 자화상



그럼 광대가 보여준 거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았을까?

이 작품은 구체적인 묘사라기보다는 정서 혹은 심리에 가깝다.

그래서 더욱더 본 것도 느낀 것도 저마다 다를 것 같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듣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우선 나에게 물어보며 하나하나 더듬어 보자.


 


침묵 속에서
흔들흔들 거리는 만신창이가 된 사람의 뒷모습.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물론 이것은 연출자가 의도한 의상 컨셉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한 갈망과 집착이 있다.

객석을 향해서 두 눈을 부라리고 두 팔을 휘저으며 갈망의 대상에 가까이 가려한다.

갈망하는 것이 돈이나 기름진 음식이라고 상상해 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연인이나 환상적인 장난감이라고 상상해 보기도 한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것들일까. 혹은 못하게 막는 것들이 있는 것일까.

이 갈망을 향한 몸짓을 가로막는 힘이 뒤에서 이 사람을 잡아끌고 있다.

아름다운 갈망이든 추한 갈망이든

욕망에는 그것을 채우지 못하게 하는 어떤 저항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듯이

팽팽한 고무줄에 묶인 사람처럼 이 사람은 튕겨져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물론 이 팽팽함은 배우가 서로 다른 방향의 힘을 잘 조절한데서 오는 긴장감이다.)





 


잊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찾은 것일까. 팽팽한 긴장감은 사라지고,

바닥을 보던 눈은 점차 허공을 바라보며 행복에 차오른다.

나비를 쫓는 아이처럼, 마치 꿈을 꾸듯이,

찾고 있던 것들이 눈앞에 드러난 것처럼 맑고 밝은 표정.

행복한 시간은 진하고 깊고 촘촘한 것일까?

움직임은 추억의 시간이 되어 천천히 느릿느릿 흐르고 있다.
(물론 이 꿈꾸는 표정은 광대가 노력하는 표정이다. 역시나 꿈이란 것은 꿈일 뿐일까?
꿈꾸는 흉내를 내면서 꿈을 표현하면 꿈이 아닌 것이 아닐까.)

 



 


너무 짧기만 한 달콤한 꿈의 시간 사이로

전기 충격기에 맞은 것처럼 찾아오는 현실의 고통들.
아름다워서 계속 머물고 싶은 꿈과 충격의 발원지를 알 수 없는 아픔들,
그 사이를 오가며 이 사람은 혼돈을 느낀다. ‘뭐지?’, ‘왜 이렇지?’

달콤한 목소리의 배경음악 ‘호텔 캘리포니아’가 무심하게 흐르고 있다.

‘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방을 뺄 수는 있어도 한 번 들어오면 다시는 빠져나갈 수 없다‘는

‘웰컴투더호텔캘리포니아’와 함께 몸짓은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이 노래의 가사를 나중에 찾아보고 극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우문 하나를 던지고 있다.

너무 유명한 음악이 나올 때 극의 효과에는 더 좋을까, 안 좋을까?)





몸은 서서히 오므라들고
음악은 사그라지면서

마치 죽음에 다가가듯

몸은 수축하다가

희미해면서

멈춘다.

점.




(뭔가 시작되자마자 끝난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앞부분이 재밌었다는 것일 수도 있고 충분하지 않다는 것일 수도 있다.)

 



 

5. 객석: 꿈 깬 후



다시 마임극의 끝, 에필로그로 왔다.





광대는 마치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중앙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는다.

우리가 방금 본 것이 다른 누군가의 꿈이 아닐까 싶은 표정.



시인들이 은유하기를

인생은 한 편의 꿈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천상병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생은 ‘소풍’처럼 잠깐 왔다 가는 거라고.

그러기에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도 별일 아니라는 듯,

혹은 스스로를 조롱하듯 잠깐 꿈을 꾼 것일 뿐 이라는 듯,

광대는 너스레를 떤다.


 

 

6. 커튼콜: 광대의 얼굴


표정이라는 가면을 쓰지 않은 광대의 얼굴,

광대의 진짜 얼굴은 어떤 얼굴일까?

나는 그 얼굴이 슬픈 얼굴일 거라고 상상한다. 광대 자신은 이것을 모를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광대의 가면 뒤에 감춰진 광대라는 사람의 얼굴에 대한 나의 기대일 것이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서 ‘왜 그래야 하는데’하고 가벼운 조롱을 던지다가도

한편으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 우리들의 자화상을 바라보며

정말로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하고 물어보고 알고 싶어 하는 얼굴.

잃어버린 것을 꿈꾸고, 아름다운 곳을 꿈꾸기에

아파하는 얼굴, 슬퍼하는 얼굴일 거라고.


 

삶이라는 무대에서 광대는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 역할이다.
그래서 슬픈 얼굴을 가리고 표정을 쓰는 것이 아닐까.

역할에 잘 맞는 수많은, 표정이라는 가면을.

그 중에서도 특히 웃는 가면을.


 






2010 한국마임
고재경- 선Ⅲ
2010 1105-1106 우석레퍼토리극장

혼돈속의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아련한 기억속에 혼재하는 추억들
출연: 고재경

blog.naver.com/komimefest




필자소개

이현수. 춤추는 것을 좋아하고 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