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08:40ㆍ07-08' 인디언밥
<Sketch Book> 물레아트페스티벌 2007
- 시원
- 조회수 988 / 2008.02.28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아리랑티비가 선호하는 전통적 한국이미지를 한 쪽으로 제껴두고, 21세기 디지털 산업을 자랑하는 현대적 한국 이미지도 한 쪽으로 치우고 보면, 6-70년대부터 이어져 온 한국 서민들의 이미지라는 것이 있다. 아무렇게나 바른 시멘트, 굽부러진 골목길, 녹이 슨 철문, 외로운 가로등으로 묘사할 수 있는 그 낯익은 풍경. 여기서 좀 더 줌 인 하면 '영등포적 이미지'라는 게 있다. 위의 이미지에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와 묵묵한 등짝을 삽입하면 될까. 문래동은 그런 곳이다. 아직도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의아해진다. 높고 세련된 아파트 단지 뒤에 느닷없이 나타나는 문래동 철재촌의 풍경. 낮에는 커다란 기계가 시끄럽게 돌아가고, 밤이 되면 호러 영화의 도입부처럼 스산하다.
그러나 귀 기울여보면, 불 꺼진 문래동 철재촌 사이사이에서 작은 소리가 들린다. 작은 움직임도 느껴진다. 낡은 덕분에 싼, 문래동 공장 건물 위층에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그들의 작업과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10월 6일부터 11월 3일까지 열렸던 '물레아트페스티벌'은 문래동에 작업터를 가지고 있는 창작인들의 오픈스튜디오이자, 그들과 예술가 친구들이 모색하고있는 다양한 교류의 생생한 실험실이다.
본격적인 공연 프로그램이 가동된10월 27일 나는 문래동으로 향했다. 각기 다른 공간에서 나와 만났던 창작자들이 과연 그들의 공간에서는 어떤 작업을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을 안고.
<전시_삶의 틈새에서 피어나는 풍경>
물레아트페스티벌의 전시들은 예술이 삶의 시야를 어떻게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소박한 해답이라 느껴졌다. 작품은 결코 으리하거나 거만하지 않은 채 낡고 어두운 골목을 다시 보게 해주었고, 삶의 손때가 묻어있는 재료들로 탄생한 작품은 과거와 현재, 이곳과 저곳을 한꺼번에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했다. 삶과 예술이 평화롭게 어울리고 있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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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잃은 다섯 아기고양이를 기르는 일러스트 작가, 이소주. 평면적인 그의 작업은 불 꺼진 철재 공장 거리에서 새롭게 태어난다. 골목 구석구석 숨어 낮과는 또 다른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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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아시스 프로젝트 김윤환, 김강의 새로운 보금자리, LAB39. 그들은 여전히 한국형 스쾃에 대한 고민을 안고 예술로 거시기하는 그 날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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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B39의 옥상에는 프랑스 작가 장 미쉘의 설치 작업이 펼쳐진다. 철재 시장 주변에 버려져있는 폐기물을 모아 새로운 파고다(탑)를 쌓았다. 폐기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며, 문래동의 낮은 옥상에서 하얗게 빛난다.
<공연_창작자들 간의 자생적인 교류가 주는 싱싱한 에너지>
지하에 있는 춤공장은 그 흔한 거울도, 조명도, 음향 시설도 없는 연습실이자 공연장이다.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앉아 이리저리 돌아가며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을 보러온 사람들은 대부분 문래동 작가들의 지인들. 오랜만에 만나 반가워하다가도 공연이 시작되면 모두들 진지해졌다. 별 다른 배경이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은 독특한 미장센으로 다가와 인상적이었다. 비주얼슈터와 춤이 함께 한 공연을 보며 창작자들이 서로의 작업방식과 흐름을 이해하고, 소통하여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느껴졌다.
비디오아트와 즉흥 페인팅, 그리고 온앤오프의 춤이 만남.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복합적이고도 응축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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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무용단 활동을 하는 김정현의 춤. 시멘트 벽돌벽 한 가운데에서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애타게 소리내며 나, 나의 몸을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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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주는 땀과 묵묵함을 느낄 수 있었던 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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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벽에 밀가루를 불어 사랑 애(愛)를 드러나게 한 퍼포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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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터 위에 물감을 뿌리고, 그리고, 부는 즉흥페인팅은 하나의 시각적 작업이자 역동적인 퍼포먼스였다. 온앤오프의 움직임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칼라와 터치를 이용해 이미지를 완성해가는 작업. 창작인들의 자발적인 교류야말로 다원예술의 시작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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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Et aussi 무용단의 셀린과 김봉호의 결혼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서프라이즈가 이어졌다. 예술가들이 서로의 삶을 바라봐주고 축복해줄 수 있는 자리가 있음이 기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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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유명하지만 실속 없는 축제들에 나는 얼마나 여러 번 실망했던가. '물레아트페스티벌'은 홍보나 프로그램 구성들의 외적인 면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예술가들이 직접 그들의 삶과 작업의 터전에서 만들어낸 축제라는 점에서, 그들이 신뢰와 자발성을 가지고 교류하고 소통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들이 존재하고 있는 문래동이라는 환경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분 좋은 출발이 아니었나 싶다.
아울러 예술이란 여전히 황폐해진 환경과 녹슨 마음을 풍요롭게 다독여주는 힘을 지녔음을 다시금 확인했다. 창작자와 관객,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보충설명
<물레아트페스티벌 2007>
2007.10.06~2007.11.03
문래동 춤공장,LAB39 외 철재시장 주변
http://cafe.naver.com/mulla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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