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12:28ㆍ07-08' 인디언밥
오, 사랑스런 나의 빌 비올라!
- 김원준
- 조회수 816 / 2008.03.05
[7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미디어 평론상 공모 최우수상 수상작]
- 오, 사랑스런 나의 빌 비올라!
김 원준 (wwoz@naver.com)
빌 비올라Bill viola는 필름 대신에 비디오를 선택했다.
필름과 달리 비디오는 기록하는 자의 일상에 배치되어서 기록하고 싶은 그 어느 때라도 등장하여 작가가 말하고 싶은 바를 기록하게 한다.
비디오는 빌 비올라에게 있어 일기이자 자서전이다. 빌 비올라의 초기 작품인 <빨간 테입Rad tape>에는 커피의 표면 위로 비쳐지는 빌 비올라가 존재한다. 작가의 실체는 의도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으며 디제시스 바깥에 존재한다. 그의 실체는 마찬가지로 보여지지 않고 단지 소리로만 추측해 볼 따름인 동작을 하고 있다. 행동은 장난스럽다. 커피를 마시고 내려놓는 동작이 헛돌자 작품 속 사내는 소리 내어 키득키득 실소를 머금는다. 작품은 엄숙하지 않으며 커피 잔에 반영되는 빌 비올라는 장난기 넘치는 개구쟁이로 나타난다. 빌 비올라에게 개인적 기록인 작품은 사적 기록물이면서도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이 섞여있다. <빨간 테입>에서부터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액체’에 대한 관심은 이후의 작품에서도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던 그의 관심은 비디오를 통해서 자신을 지속적으로 기록해 나가면서 점점 더 확실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었다.
비디오는 그의 관심을 있는 그대로 호기심의 원형의 형태 그 자체로 드러낼 수 있게 한다. <패싱the passing>에서 흡사 자궁 속의 태아처럼 액체 속을 부유하는 인간이 그려진다. 연못으로, 오아시스로, 커피로, 페트 병 속의 생수로 등장했던 여러 액체들은 결국 인간이 최초로 맞닥뜨렸던 액체로 회귀한다. 빌 비올라는 액체에 대한 사적 역사를 다시 쓰면서 최초의 액체에 대해서 언급한다. 이것은 사적 기록이 가질 수 있는 원시적 욕망이다. 이미지 위를 뒤덮는 명확하게 음원을 알 수 없는 불명확한 사운드가 이미지 위를 부유한다. 짐승의 포효 같기도 하고 공장의 기계들이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하다. 이러한 불명확한 사운드가 원시적 욕망 위를 뒤덮는다.
<이주Migration>에서 줌인/줌아웃하는 비디오 카메라가 피사체를 결정한다. 피사체를 돋보이기 위해서 카메라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서 피사체가 종속적으로 결정된다. 줌아웃되는 동안 포커스가 변화하고 작품 속 인물이 명확해진다. 빌 비올라의 작품은 명확함과 불명확함의 사이를 넘나든다. 두 개의 개념의 경계는 순식간에 무너진다. 조명이 바뀌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자, 인물은 어느덧 배경에 녹아든다. 카메라는 줌인되기 시작하고 점점 인물이 불명확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물은 점차 프레임 바깥으로 밀려 나가고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은 아래로 뚝, 뚝 떨어지는 액체 방울이다. 숨을 내쉬고 들이쉼에 따라 오르내리는 배의 율동과 액체가 낙하하는 리듬감, 그리고 잔향을 남기면서 아주 천천히 소멸하는 종소리의 반복이라는 여러 개의 요소가 동시에 하나의 시공간 안에 섞여들면서 경이로움이 발생한다.
느리면서도 고요하고 침잠되어 있지만 조금씩 약동하는 리듬감은 그의 다른 작품 <성가Anthem>에서 볼 수 있는 팔뚝의 정맥의 미세한 움직임과 흡사하다. 대기 중에 내보인 심장은 수축과 이완을 세차게 반복하면서 움직이지만 그 심장에서 내 보낸 붉은 액체가 온 몸을 퍼져 나가면서 그 운동감은 줄어든다. 그러나 그 리듬만은 존속하고 있으며 정맥을 뚫고 피부 밖에서조차 볼 수 있다. 리듬은 경이로운 순간을 만든다. 이 순간은 극 영화에서 상황을 인위적으로 설정해서 포착한 것과 다른, 정말로 실재했던 순간이기 때문에 더욱 경이로워진다.
<천사의 문Angel's gate>는 결정적 순간에 대한 포착이 얼마나 감동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는 듯 하다. 타오르고 있던 촛불이 유령이 다녀간 듯 흔들리며 모두 꺼져 버린다. 혹은 매달려 있던 과일이 툭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이 순간들은 모두 결정적 순간이다. <패싱the passing>에서 물 위로 천천히 쓰러지는 탁자와 램프는 초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물체의 이동속도를 천천히 재현해 내는 것은 움직임의 과정을 전부 직시할 수 있기 때문에 전혀 낯선 경험이 된다. 밤의 어둠을 뚫고 지나가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섬광처럼 주변을 밝히는 순간, 밤의 어둠에 묻힌 사물의 윤곽이 드러난다. 수령이 오래된 늙은 나무들과 우거진 풀 섶, 오래된 이국적 정원이 일순간 펼쳐진다. 밤하늘에는 먼 옛날 다른 은하에서 빛나던 별들이 지구를 향해 보낸 빛들이 짧게 깜박이며 흔들린다. 대기의 움직임과 기온이 모두 느껴지는 듯 하다. 빌 비올라의 <패싱the passing>은 촉각적이다. 그의 비디오 작품은 영사기를 통해서 투영되면서도 손 끝에 따뜻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너울거리는 물의 흐름과 일렁이는 대기를 느끼게 한다. 어디에서 바람이 불어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그 너머를 바라보게 한다.
빌 비올라는 시각적 매체를 통해서 촉각적인 느낌을 전달해낸다. <빛과 열의 초상Chott el-Djerid (A Portrait in Light and Heat)>에서 신기루 같은 대기의 흔들림은 작품 내내 공감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흥미로웠던 것은 <빛과 열의 초상>을 보면서 공간을 오인했다는 점이다. 눈부시게 새하얀 모래가 펼쳐진 사막에 모래 바람이 휘몰아칠 때, 그것이 극지의 눈바람으로 보였고 뜨거운 증기의 흔들림은 차가운 기류의 흐름이라고 오해했다. 사막과 눈, 극도의 뜨거움과 차가움을 오인하면서 감각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영상 작품이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전달할 때 그것은 몇 가지로 제한되는 특징적 지표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지표의 의미가 서로 겹쳐지고 중복되는 영역 속에서 이미지는 전혀 다른 공간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불타오르는 사막과 살이 에이는 극지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작품 안에서 한 마리의 낙타가 유유자적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낙타는 두 공간의 균열을 비집고 나타났다. 낙타는 균열의 틈새에서 등장한다. 공간을 일관적인 곳으로 인식하려는 지각 체계를 전복하면서 공간은 뜨겁고 차가운 곳으로 나뉜다. 그 곳에서 결정적 순간과 우연적인 사건이 겹쳐지면서 공간은 확장된다.
공간의 확장은 빌 비올라의 비디오 작업에서 중요하다. 공간은 잔향으로 존재하는 사운드 <성가Anthem>에서의 그것처럼 이미지를 떠나서 존재하다도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지르는 동양 소녀의 입모양과 정확하게 일치되는 순간, 육체를 입고 이미지 안에 들어선다. 동기화되는 이미지를 얻은 사운드는 컷 포인트를 따라서 다시 비디오 작품 내를 부유하기 시작하고 또 다른 이미지의 동작의 리듬에 맞아 떨어지면서 또 다른 육체를 얻는다. 사운드는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면서 공간을 확장한다. 사운드 자체는 반복적으로 행해지지만 또한 그 음원을 밝힐 수 있는 일부분이 잘려 나가면서 공간을 확장시키는 힘을 얻는다. 영상과 소리의 힘은 분명 미지의 것, 밝혀지지 않은 것, 모호한 것, 어둠 속에 묻힌 것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밝혀진 것과 밝혀지지 않은 것의 경계 속에서 컵 속의 물은 조금씩 줄어든다. 비디오 작품 속에서 물은 컵 속에 담겨 있다가 그의 몸 속으로 이동하게 된다. 액체가 이동하게 되면서 액체의 공간은 가시적인 것에서 비가시적인 것으로 변화한다.
빌 비올라의 비디오는 필름과 달리 일상의 우연성과 찰나의 경이로움, 공간의 확장되는 순간의 경계를 포착한다. 그의 작업은 사적 에세이의 소재에 침잠되면서도 반면에 그러한 사적인 영역이 작가의 외부로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방향성을 내재하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비디오 기록사(1975년부터 1991년까지)와 함께 발전을 거듭해 나가는 빌 비올라에 대한 관찰은 사적 비디오가 가질 수 있는 ‘뉴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빌 비올라 작품 소개
http://www.nemaf.net/bbs/zboard.php?id=2007_retrospective
보충설명
제7회 서울 뉴미디어 페스티벌(네마프 neMaf)은 대안영상/미디어에 대한 새로운 담론 형성을 위해 제1회 대안영상/미디어 평론상을 제정하였습니다. 대안영상/미디어는 여성주의, 소수자, 비주류의 시각으로 새로운 형식을 추구하는 작품을 뜻합니다. 평론상을 통해 대안영상/미디어 작품을 비평할 차세대 비평가를 찾고자 하며, 쌍방향의 영상/미디어 환경을 새롭게 개척해 나가는 비평가 문화를 만들고자 합니다.
■ 평론상 주제
네마프 2007에서 소개한 모든 작가의 작가론 및 작품을 대상으로 함
장르론은 기존과는 다른 대안영상/미디어의 장르론이 가능
■ 심사위원
김소영(위원장 / 영화평론가), 서동진(위원 / 문화평론가),
권은선(위원 / 영화평론가), 조지혜(위원 / 전 언니네 대표)
■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
http://www.nemaf.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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