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하는 예술가가 돌아왔다 <Theater ZERO Opening Art Festival>

2009. 4. 10. 12:3007-08' 인디언밥

고뇌하는 예술가가 돌아왔다 <Theater ZERO Opening Art Festival>

  • 김도히
  • 조회수 794 / 2008.05.28

토요일의 홍대바닥은 늘 그렇다. 무성의한 웅성거림만 자욱하니 고작 앞사람뒤통수에 시야를 잃게 되고, 그 덕에 발길 닿는 곳이 어딘지 스스로에게 백번은 묻고 백번은 헤맨다. 얽히고설킨 홍대 앞 정의 없는 예술에 한 가닥 일조해보겠다고 나선 마음이 괜히 미워질 무렵, 땅이 울린다. 그리고 방향 잃은 사람들의 눈동자에도 초점이 생긴다.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어리둥절하지만 쫓아 나설 틈도 없이 울림은 내달린다. 희멀건 사막 저 편에서 휘몰아쳐오는 모래폭풍처럼 그렇게 내달린다. 그러나 분명히 목적은 있다.


주차장골목의 끝자락을 지키던 고뇌하는 예술가가 목을 매단지 어느새 4년이 지났다. 2004년 문을 닫기 이전까지 장르를 아우르는 3000여회의 공연으로 자칭타칭 한국을 대표하는 실험예술의 산실이라 불리어오던 씨어터제로. 무대와, 예술가들과, 시대와 소통하던 그 형태는 사라져야만했으나 공간을 메우던 움직임은 기억을 잃지 못하니 결국 고뇌하는 예술가는 머리를 잃은 채로라도 돌아오고 말았다.


<들소리 (야외 및 실내 타악) + 토마뷜르 (퍼포먼스)>

 

한 달간 진행될 “홍대 앞 대행진”의 시작은 3월 1일, 예전 씨어터제로 자리에서 시작된 들소리와 토마뷜르의 길놀이였다. 들소리의 타악은 지난 4년간 마를 대로 말라버린 씨어터제로의 그 흔적마저도 모조리 흔들어 남김없이 가져가겠다는 강한 주장이고, 토마뷜르의 퍼포먼스는 그동안 닫혀버린 사람들의 정신에 새로운 실험예술로 스며들겠다는 의미심장한 미소 같다.



 

어리둥절하거나 흥미롭거나 혹은 언짢아하는 가지각색의 반응들과 잠들어있던 마당을 건드리고 숨어있던 자아를 깨뜨리는 움직임. 이 낯설지만 끌리는 시선이 돌아온 씨어터제로의 증명이며, 그렇기에 오늘의 웅성거림은 참 반갑다.

 

주차장골목과 홍대놀이터를 지나 재개관을 기다리는 씨어터제로의 새 공간에 이르기까지 들소리와 토마뷜르는 냅다 뛰기도 뱅글뱅글 돌기도하였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사이를 가로지르면서도 정작 그들을 기웃거리거나 집적대지는 않는다. 새로운 예술정신을 마치 즐거운 놀이처럼 행하는 사람들, 그들의 놀이에는 강요도 동정도 없다. 관객을 찾음에 있어 자연스러운 스밈으로 관객 스스로가 발길을 옮기고 향하는 목적을 깨우칠 수 있도록 묵묵히 놀고 있으니, 그 고집이 이 시대의 실험예술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참았던 그 고집이 바로 오늘,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든다.


뒤이어 기다리는 이는 한국의 대표적 전위예술가로 평가받는 무세중이다.

씨어터제로가 실험예술의 맥을 이을 곳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그의 축원 굿 퍼포먼스.

 

<무세중 _ 축원 굿 퍼포먼스>

 

얼굴에 바르고 치장한 형형색색이 하얀 벽과 바닥에 부딪혀 눈부시게 튀어 오르면 연주되는 음악의 칼날이 그것을 자르고 나누니 모인 사람들의 축원 하나하나에 닿겠다는 뜻인가 한다. 엄숙과 격식 가운데에서도 즉흥과 자유가 존재하는 곳. 문득 들소리의 누군가가 목청을 뽑아 굿을 돕고, 전통의 틀에서 벗어난 전위 퍼포먼스는 심도 있고 미래지향적 이어야할 씨어터제로의 앞날을 예고한다.



 

 

Sakgayo 와 Katrin baumgaertner의 비디오아트는 공간에서 행해질 미디어아트의 가능성으로 심철종 예술감독의 퍼포먼스와 함께 이루어졌다.

 

 

<Sakgayo + Katrin baumgaertner_비디오 아트>

 

희번덕거리는 눈빛과 끊어질듯 이어지는 몸짓, 그 사이를 깜빡이는 불빛은 無의 대상을 향해 대화를 시도한다. 숨죽여도 들을 수 없는 말들. 한쪽 벽을 채우던 비디오아트는 다양성의 총체이고 소통의 혼란 같다. 일방적 소통을 시도하는 현시대의 예술을 이곳에서는 어떻게 해소할지, 지금의 답답함마저도 기대로바뀐다.

 


<투혼 (宇宙天王_ 현대음악 + On&Off 무용단-한창호_ 현대무용)>

 

프로젝트팀 투혼의 사이킥 정-중-동 사이클링. 현대무용과 현대음악이 합쳐지니 퉁퉁거리는 그들의 숨결에도 시대가 스며있다. 붉고 노란 조명아래 길게 뻗은 그림자와 공간을 건드리는 음악. 일상의 단순한 양면성을 껴안는 ON&OFF의 춤은 오락가락하는 宇宙天王의 음악위에서도 자유롭다. 때론 격렬하게 또 때론 숨죽이며 서로를 탐색하고 탐미한다. 이것이 소통이며, 소통이 가능한 작품만이 실험예술이란 이름을 획득할 수 있어야한다.




 

문득 씨어터제로의 상징을 떠올려본다. 시작을 의미하는 제로이지만 그 원은 한쪽이 뚫린 채이니, 이는 고인 전통과 떠도는 시대가 교류하고자함이다. 끊어진 원의 중심, 그 곳에 평온은 없다. 닥치는 대로 쓸고 사라진다는 사막의 모래폭풍마저도 그 중심은 고요하다지만, 씨어터제로의 중심은 그 무엇보다 불안하다. 아니, 불안해야만 한다. 아방가르드, 창작공연예술의 메카 등 씨어터제로를 설명해오던 무수한 단어들이 바로 불안한 소용돌이 속에서 피어난 결과이기에. 그 때문에 새로이 태어난 씨어터제로는 더욱 불안해져야 한다.


돌아온 실험예술의 산실을 증명하고, 앞으로의 작업을 예정하는 씨어터제로의 Opening Art Festival “홍대 앞 대행진”은 3월 한 달간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4년의 공백으로 생긴 염려를 긴장과 기대로 바꾸고, 유명무실의 홍대문화에 어떻게 새로운 물고를 틀 것인지. 새로운 시작을 예고하듯 하얗게 변한 씨어터제로가 한국 실험예술에만큼은 오색빛깔을 내어주길 바란다.

보충설명

<씨어터제로> Opening Art Festival “홍대 앞 대행진”

* 3월 1일(토)
무세중(축원 굿 퍼포먼스)
들소리(타악) + 토마뷜르(퍼포먼스)_야외공연
Sakgayo + Katrin baumgaertner(비디오아트)
宇宙天王(현대음악) + On&Off무용단-한창호(현대무용)

*3월 2일(일)
무나미(전위무용)/신용구(퍼포먼스)/들소리(타악)/토마뷜르(퍼포먼스)

*3월 7일(금) / 8일(토)
강태환(Free JAZZ-섹소폰)/유진규(마임)/김정은(현대무용)

*3월 9일(일)
세미나 <한국의 아방가르드 전위예술의 실태와 전망-씨어터제로를 중심으로>
발제자 - 무세중(전위행동예술가, 대동전위극단 대표)
토론자 - 유진규(춘천마임축제 예술감독)
채승훈(수원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김백기(KoPAS 대표)

*3월14일(금)
KoPAS(퍼포먼스)/손유정(한국무용)/민성희(성악-소프라노)/원일(국악-Free Music)

*3월15일(토)
KoPAS(퍼포먼스)/박창수(현대음악)/손유정(한국무용)
민성희(성악-소프라노)/원일(국악-Free Music)

*3월 21일(금) / 22일(토)
하재봉(ART Tango)/강정균(마임)/김종덕(한국무용)/국은미(현대무용)

*3월 28일(금) / 29일(토)
무세중 전위극 <知봐라, 돈놔라>/루멘판토마임 댄스씨어터(마임무용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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