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 <투 올드 힙합키드>, <두 개의 선> - 오춘기를 응원하며

 

오춘기를 응원하며

2012 인디다큐 페스티벌 <투 올드 힙합키드>, <두 개의 선>

 

글_반디

 

 

 

봄이 오나 봅니다. 햇살이 따사로워지는가 싶더니 목련과 벚꽃도 봉오리를 터뜨리고, 친구들은 하나 둘씩 결혼을 하네요. 동창의 결혼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다들 번듯한 직장에서 건실한 구성원으로 일하고 있더군요. 20대 초반에 독립영화를 만난 후 영화와 대책 없는 사랑에 빠지며 보편적인 삶과는 한 걸음씩 멀어진 저와는 조금 먼 듯한 그들의 삶입니다만, 내심 듬직한 남편을 가지게 된 친구가 부럽고, 4대 보험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어떤 견고한 틀을 가지게 된 삶이 더 안정적일 것 같아서 말이지요.

 

하지만 실상 대화를 나눠보면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은 그게 아니고, 꿈꿨던 삶은 그게 아니고, 명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뭔가 이건 아닌 것 같은 삶들 투성이더군요. 결혼을 하면, 좋은 직장에 다니면 지금보다 행복해지리라 생각하는 건, 대학에 가기만 하면 절로 날씬해지고 남자친구가 거저 생길 것만 같았던 것처럼 어쩌면 현실 도피에 대한 달콤한 환상이 아닐지 의심해 봅니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채 그저 대학에 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던 10대 때처럼, 우리의 20대는 결혼과 취직을 향한 직진, 직진, 직진만으로 점철되어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과연 정말 내 것인지 말이지요.

 

인디다큐페스티발2012에서 상영된 <투 올드 힙합키드> <두 개의 선>에는 저처럼 보편적이라 여겨지는 삶에 대해 의문을 품는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학교 나와 좋은 직장 갖고 너무 늦지 않게 좋은 배우자를 만나 자식()을 낳고 사는, 흔히들 말하는 평범한 삶이 내 것은 아님을 알게 된 젊은이들이지요.

 

<투 올드 힙합키드>(2011, 연출 정대건)는 제목에서 쉽게 유추해볼 수 있듯이 꿈만 먹고 살기에는 나이가 들어버린 현실 속의 젊은이들이 힙합에 바치는 소박한 세레나데입니다. 어릴 적 인터넷으로 알게 되거나, 작업하며 알게 되어 함께 프리스타일 랩을 하고 힙합음악을 만들던 이들이 어느덧 20대 중반이 되어 각자의 방식으로 힙합을 사랑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들이 지금 모두 힙합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유명 회계법인의 회계사가 되었거나, 공학 박사과정을 밟거나, 공무원 준비를 하는, 더 이상 힙합 음악을 하고있지는 않은 사람이 되거나, 언더그라운드에서 유명인이 되어 힙합 앨범을 내고 프리스타일 랩 배틀에서 1등을 하는 등 끊임없이 힙합 음악을 하는사람이 되었지요.

 

같은 것을 사랑해서 형제처럼 지냈던 동무들이 평범한 삶을 위해 현실과 타협(?)한 것에 대해, 꿋꿋이 힙합의 길을 걷는 이들은 의외로 아무런 아쉬운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랩을 하고 앨범을 내야만 힙합을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힙합은 음악장르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 자체를 이르기도 한다고, 다른 업종에서 일하더라도 치사하지 않게 실력으로 승부하는 힙합정신을 갖고 살면 되는 것이라 말합니다. 지금은 겉으로 보기에는 많이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이들이 되어버렸습니다만, 어쨌든 그들은 여전히 힙합을 사랑하고 랩을 사랑하는 동무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과시라도 하듯, 정대건 감독의 주최 하에 투 올드 힙합 키드라는 제목의 무대를 만들어 냅니다. 함께 만든 음악으로 랩을 하고, 사정상 무대에 오르지 못하더라도 객석에서 그 순간을 힘껏 즐겨냅니다.

 

['투 올드 힙합 키드' 무대 위 (사진 = 배급사 시네마 달 홈페이지)]

 

삶과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힘껏 고민하고, 한번 선택한 것은 기막히게 해내는 그들 앞에서, ‘열정이 어린 날의 치기라고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나요? 어느 기업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그래서 훌륭한 경제활동인구가 못되었다고 해서 그들이 철없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그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가요?

 

힙합음악에서 (하필) 영화로 발길을 돌린 감독도 마찬가지입니다. 왠지 주변 친구들처럼 살았더라면 지금쯤 그럴듯한 직함을 갖고 있을 것 같은 그는, 정말 하필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도 하필,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알려져 영화 종사자들의 빈곤한 삶이 널리 알려지던 그 즈음 말이지요. 잊을만하면 등장해 영화 속에서 깨알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감독의 어머니는 10년만 영화를 해보겠다는 감독에게 랩을 하듯 라임(rhyme)을 섞어 말합니다. “괴팍하고() 외롭고(), 힘들고(), 배고프고()! 아들아, 니가 가고자 하는 길은 사고(四苦)니라!” 하지만 어머니, 제가 영화 언저리를 좀 기웃거려봐서 아는데, 첫 장편이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두 번이나(서울독립영화제, 인디다큐페스티벌)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드님은 정말 멋드러진 영화인이 되는 사고(事故)를 쳐버릴지도 모른다구요!

 

그런데, 진짜 사고는 <두 개의 선>(2011, 연출 지민)의 주인공들이 치고 맙니다.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하지 않는 비혼(非婚) 동거 커플 지민과 철에게, 아이가 덜컥 들어선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주는 굴레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던 커플에게, 요즘 사람들처럼 혼수부터 준비된 결혼을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요. 부쩍 가정을 꾸리고픈 욕망이 커진 저에게 지민과 철 커플은 무시할 수도 그렇다고 쉽게 빼낼 수도 없는 어금니 사이에 낀 옥수수 낱알 껍질 같은 고민거리를 안겨주었습니다. 나이가 찼으니, 혹은 아이가 생겼으니 결혼을 하는 것이 정말 당연한 것일까요? 시자 들어간 시금치는 쳐다보기도 싫고 남편은 결국 남의 편이더라는 여자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저는 정말 결혼이 두렵지 않은 것일까요? 결혼은, 정말 해야 하는 건가요?

 

지민과 철 커플은 주변의 결혼한 커플들이 보통 사는 것처럼 살기가 싫다고 합니다. 실제 부부관계보다 결혼 생활 유지에 더 치명적인 위협요소가 되는 서로의 가족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명절증후군이라는 이름으로 주기적으로 드러나 어느덧 사회 현상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그런 결혼생활에 대한 거부도 다 아이가 없을 때나 누릴 수 있는 자유였습니다. 지민과 철은 어느 나라보다 부모의 혼인형태에 대해 강한 편견을 적용하는 우리나라에서, 그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 때문에 아이에게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부담을 태어나기 전부터 주어버리는 게 아닐지 고민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버지 혹은 어머니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내본 지민과 철은 둘 다 아이에게 평범한 가정을 주고 싶기도 했던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결국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고, 아이에게는 지민의 () 주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갓난아이에게 선천적인 병이 있어 큰 수술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지요. 정부에서 선천적 기형아의 수술비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혼인신고를 한 부모의 아래에 출생신고가 된 아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출생신고를 했고, 아이가 평생 자신의 이름에 대해 설명하며 살아야 할 짐을 덜어주기 위해 철의 성()을 줍니다. 그들은 수술실 밖에서 발을 동동 구른 순간부터 부모가 되었고, 아이를 중심으로 지민과 철의 가족은 의식적인 결혼이 없이도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오랜 기간의 고민과 투쟁이 아픈 아이로 인해 덧없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엄마, 아이, 아빠 (사진 = 네이버 영화 두 개의 선)] 

 

하지만 <두 개의 선>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집부리던 그들이 결국 결혼을 했다, 가 아닙니다.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만든 사회, 그리고 그 아래 개인의 무기력입니다. 철은 상대도 없이 져버린 느낌이라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하긴 그럴 만도 합니다. 제도와 편견이 만들어낸 결혼이라면 나이가 찼거나 아이가 생겨서 한 결혼과 다를 바가 없으니까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할 기회조차 없이,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삶으로의 직진 신호밖에 없는 일방 통행 길만 있는 것이니까요.

 

언젠가 한 심리학 수업에서 자기소개를 할 때 출신 학교나 가족 관계, 소속 집단 등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모두 제하고 말할 수 있는지를 질문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 참 힘든 일이더군요. 나를 규정하는 건 내 학교 이름이 아니고, 삼남매의 둘째라는 형제관계가 아닌데도 말이지요. 언제부터 우리는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학점을 따듯 취득한 사회적 지위로만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인생의 기반이 된다던 20대를 마무리해가는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얼마나 고민하고 사는 걸까요? 나만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던 꿈 많던 우리들은, 결국 일반적인 관념의 범주 속에 살아가는 데에 안도하고 마는 걸까요? 그 안도감은 우리가 선택한 것인가요?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지 않나요?

 

그런 의미에서 <투 올드 힙합 키드> <두 개의 선>의 모든 출연진, 그리고 두 연출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결국 그들이 직진 신호를 받고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못하게 되더라도, 그들은 갈림길에서 좌우를 살필 줄은 알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친척 어른들의 질문 세례를 상상하며 지레 몸서리가 쳐지는 20대 중후반의 사람이라면 함께 박수를 쳐 봅시다. 당연하다 여겨지는 것을 의심하며 서른 즈음에 잠깐 머물러 봅시다. 우리들의 오춘기를 껴안아봅시다.

 

 

글_반디

과거를 사랑하고 현재를 만끽하며 미래를 낙관하는 여인. 성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