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다큐<용산> - 사라지는 매개자로서의 영화

 

2012 인디다큐 페스티벌 - 용산 특별전

사라지는 매개자로서의 영화

- 문정현 감독의 다큐멘터리 <용산>

                                     글_흑점

갈 곳 없는 철거민이 망루에 올라갔다. 그날 새벽에 경찰 특공대의 진압이 시작되었다. 진압 작전 중에 솟아오른 원인모를 불길은 5명의 철거민과 경찰 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발화의 원인은 끝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고, 법원은 화염병 때문이라며 철거민의 유죄로 판결 지었다. 이른바 ‘용산 참사’라고 부르는 사건.

용산 참사 당시 현장에는 경찰의 채증용 카메라를 비롯하여, 몇몇 인터넷 방송국의 카메라들이 현장을 찍고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정작 망루 내부를 찍은 영상은 없었다. 즉 화재의 원인을 밝힐 수 있는 망루 내부는 용산 참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이지만 우리에게 공백으로 남아있다. 그 순간을 아는 사람은 이미 죽었기 때문이다. 결국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들 역시 이 공백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

이번 2012 인디다큐 페스티벌에서 마련된 용산 특별전 섹션에서는 총 6편의 작품이 상영되었다. 이 작품들은 각자의 다른 접근법으로 용산참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즉 위에서 말한 공백을 어떻게 떠안느냐에 따라서 영화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 공백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습들을 다루거나(<용산 337가지로 표현하기>, <남일당 이야기>), 혹은 공백을 추적해 들어가면서 용산 참사와 재개발 문제를 드러내기(<두 개의 문>, <마이 스윗 홈- 국가는 폭력이다>). 혹은 그 둘을 절충하거나(<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문정현 감독의 <용산>은 매우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한다. <용산>은 용산참사의 발화원인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한국사회에서 재개발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날 그곳에서 사람 6명이 죽었다는 사실 그 자체에서 ‘출발’한다. 용산 참사를 암시하는 불길을 보여준 후에, 감독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내뱉는다. “항상 그랬다. 또 사람이 죽었다. 용산에서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집을 잃고 쫓겨난 철거민들이 무리한 경찰의 진압에 죽임을 당했다.”

이후에 영화는 한국 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용산 참사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장면은 91년 열사정국 당시 집회 현장에서 열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울부짖는 문익환 목사의 모습이다. 그런 다음에 감독은 87년 6월 이한열 열사를, 그리고 80년 광주를 영화에 불러들인다. 즉 이 영화는 용산 참사를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들의 맥락에 위치 지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 죽음들의 차이는 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다르다. 91년, 87년, 그리고 80년의 죽음은 수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일으켰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루어냈다. 그러나 용산 참사의 경우는 달랐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한 촛불집회가 있었던 이듬해에 일어난 용산참사는 이명박 정권이 퇴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2008년 광우병 시위로 거리를 가득 메웠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했다. 그리고 잔혹한 재개발 정책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심지어 용산참사 당시 진압 책임자였던 김석기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도 나왔다.

왜 사람들은 이 억울한 죽음을 외면하는가?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영화에서 이 질문의 주요 수신자는 ‘386 세대’이다. 왜 그들은 지난 91년이나 87년 6월, 80년 광주에 대해서는 그토록 분노했으면서 지금 용산 참사에 대해서는 이다지 무심하게 외면하는가? 감독은 한때 열혈 운동권이었던 자신의 누나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번번이 돌아오는 것은 “관심이 없다”는 싸늘한 대답과 “어쩔 수 없는 현실일 뿐이야”라며 체념과 자조 섞인 말 뿐이다.

사실 <용산>은 용산참사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용산 참사, 혹은 국가 폭력에 의한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영화는 계속해서 그 죽음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을 비춘다. 용산 참사 현장 바로 옆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열사 추모제 현장에서 그들의 사진을 보는 사람들. 용산 참사 유가족의 절규를 가로막고 있는 경찰들. 때때로 그들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지만, 대부분은 냉담하다.

앞서 나는 이 영화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했다. 즉 사람들이 왜 용산 참사를 외면하는가? 라는 질문. 그러나 이 질문은 치밀하지 못하다. 역사적 맥락이 완전히 다른 사건들을 한 맥락에 놓으면서 왜 이때는 분노했으면서 지금은 분노하지 않는가? 라고 묻는 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윽박지르는 것에 더 가깝다. 즉 왜 당신은 용산참사를 외면하나요? 라는 질문이 아니라, ‘여기서 억울한 죽음이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는가!’라며 윽박지르기. 영화 속에서 이 말의 수신자는 ‘386세대’이지만, 어쩌면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사건의 외부자에게 그 사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묻는 것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라, 진중한 무게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감독 자신의 성찰 때문이다. <용산>은 사적 다큐멘터리 양식을 취하고 있다. 즉 감독 개인의 시점에서 용산 참사를 비롯한 한국사회의 비극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영화 전반에 걸친 자기 고백적 내레이션을 통해서 감독 자신의 위치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내레이션을 통해서 감독은 용산 참사 당시에도 미리 소식을 들었지만, 자신은 물끄러미 인터넷을 보고 있었다고 얘기한다. 또한 용역 깡패들의 횡포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자신은 과연 저렇게 용감하게 맞설 수 있을지 자문한다. 결국 감독 자신도 용산 참사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음을 말하며 어중간한 위치에 있음을 고백한다. 즉 감독은 용산 참사 현장에서 열심히 싸우는 사람들(문정현 신부,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미술작가)과, 용산 참사를 외면하는 사람(386세대), 그 사이에 있다. 영화 속 감독의 자기 고백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많은 관객들 역시 이 위치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용산>에는 감독 본인의 자의식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그런데 영화 속에는 이렇게 의미화 되지 않는 이상한 장면이 몇 군데 들어가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용산 참사에 대해 활동하는 사람과 외부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것처럼, 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선 역시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용산 참사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 그런데 영화에는 이 두 가지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 이상한 시선이 들어있다. 영화의 첫 장면과 중간에는 열악한 화질의 카메라로 촬영된 철거촌의 풍경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 매우 이질적이고, 영화의 전체 내러티브와도 별 상관이 없다. 이 화면을 누가 찍었는지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을 통해서 이 시선의 주인이 누구인지 유추해 볼 수는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용역 깡패로 보이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화면이다. 그러나 이 시점 샷에는 리버스 샷이 없기 때문에 누가 이것을 찍고 있는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자세히 들어보면 몇 명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용역깡패를 조롱하면서 희희덕 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를 통해서 이 화면을 찍고 있는 사람이 철거민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찍고 있는 사람은 결코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마치 신체 없는 유령이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나는 이상한 시선의 주인이 바로 용산참사로 인해 죽은 철거민이라고 생각한다.

즉 <용산>은 이런 이상한 장면들을 통해서 죽은 철거민들을 영화 속에 소환한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영화 내에 이질적으로 틈입한다. 영화의 마지막에는 다시 용산 남일당 건물이 나온다. 용산 남일당 건물의 외벽을 보여주는데, 이상한 것은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마치 공중을 떠다니는 듯이 건물 외벽을 훑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령이 건물을 떠다니고 있는 듯이.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그렇게 용산 참사의 남은 재해를 보여주던 영화는 갑자기 마치 비디오 화면을 앞으로 감듯이 지금까지의 영화를 말 그대로 되감아버린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화의 장면들이 역순으로 마치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그 종착지에는 이글거리는 불길이 있고, 이때 영화의 사운드는 용산 참사 당시에 사람들의 절규를 들려준다. 즉 용산 참사에 대해 아무리 많은 말을 보태더라도 결국 우리는 2009년 1월 19일 용산에서 일어났던 그때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듯이 영화는 자신이 출발했던 그 사건으로 되돌아온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을 다시금 용산 참사와 대면시킨다. 내가 다큐멘터리 <용산>을 보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부정하는 이런 제스쳐를 통해서, 그리고 영화 내에 틈입하는 이상한 시선을 통해서, 관객들을 용산 참사 그 자체와 대면시킨다.

 

    필자_ 흑점

    소개_ 20대도 대학교도 올해에 졸업한다.

 

* 큐멘터리 <용산>: http://www.sidof.org/579

**  2012년 인디다큐페스티벌은 "용산특별전" 을 마련하여 용산에 관련된 6개의 다큐필름을 상영하였다.

 

  인디다큐페스티발 2012 - 

  Seoul Independent Documentary Film&Video Festival 2012

  일시: 2012년 3월 22일(목) ~ 3 28(수)

  장소: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주최: ()한국독립영화협회

  주관: 인디다큐페스티발2012 집행위원회

 

  국내 독립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제작자 발굴과 흐름을 주도해온 인디다큐페스티발은 실험, 진보, 대화 라는 슬로건으로, 사회적 발언과 미학적 성취를 위해 다큐멘터리 제작자, 연구자, 관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왔습니다인디다큐페스티발은 국내  독립 다큐멘터리의 부흥기를 만들어나가고자,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통해 관객과 독립다큐멘러리 제작자들에게 다가갈 것 입니다. (출처 : www.sidof.org 2012 인디다큐페스티벌 홈페이지)

 

  1. 여섯 명의 사람이 죽었다.
    묻고 답하는 시간 후에도 결국 남는 것은 그날의 절규 그 자체라는 것.

    용산참사에 대해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안에서 느끼고 보는 폭력과 밖에서 바라보는 폭력이라...
    생각할 거리를 많이 주는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