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2월 레터] 좋은 예술

2012. 12. 7. 09:04Letter

 

좋은 예술

 

언젠가 좋다, 와 좋아하다, 가 같은 말인지 다른 말인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에세이를 쓸 일이 있었습니다. 가치판단의 세 측면인 객관주의, 주관주의, 객관적 상대주의 개념들과 이를 연관시켜야 하는 과제였지요. 어렵사리 기억을 더듬어 설명해보자면 이렇습니다.

흔히 알 듯 아름답다, 라는 말은 사실판단이 아닌 가치판단에 해당하지요. 그리고 이때 가치는, 절대적인 사실과는 달리, 어디에 방점이 찍히느냐에 따라 그 빛깔을 달리 합니다. 예컨대 세계나 대상 및 작품에 방점이 찍힐 수도 있고(객관주의), 지각하는 인간 주체가 주목될 수도(주관주의), 둘 사이의 관계 자체가 부상할 수도(객관적 상대주의)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은 대상 안에 내재하는 것이라고 하는 객관주의와, 아름다움은 마음 안에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는 주관주의는 좋다, 와 좋아하다, 를 다른 것으로도, 같은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컨대 좋다, 라는 가치가 객관적으로 존재한다고 보는 객관주의는 좋아하다, 라는 개인적인 선호를 무시함으로써 좋다, 와 좋아하다, 가 일치하지 않는 일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거나, 좋다, 라는 객관적인 가치를 개인에게 강요함으로써 그 둘이 일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한편 좋아하다, 라는 개인적 선호에 방점을 찍는 주관주의는 결코 좋다, 라는 개념을 설명하지 못함으로써 양자의 불일치를, 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바로 좋은 것이라는 식의 극단적인 주장을 펼침으로써 양자의 일치를 표명합니다. 반면에 객관적 상대주의는 잠재력과 가능성의 측면에 주목함으로써 대상 안에 있는 것과 주관의 느낌 양자를 결합합니다. 말하자면 객관적 상대주의는 어떤 가치판단이 불일치할 때, 판단 주체가 처해 있는 객관적 조건에 의해서 그 같은 주관적 판단의 가능성 및 잠재력을 이해할 수 있다고, 그리하여 좋다, 와 좋아한다, 가 종국에는 서로 만날 수 있다고, 나아가 그 만남의 여정이 문화의 발전 과정으로까지 이어진다고 보고 있습니다.

과연 그리 간단치 않은 이 과제에 대한 저의 답은 이러했습니다.

“자신의 ‘좋음’을 실질적으로 ‘알게’ 하기 위해 개인의 삶 가운데 스스로를 끝없이 현현하고, 그리하여 결국 ‘좋아함’을 얻어내는 것, 그것이 바로 여전히 존재하는 ‘좋은 예술’의 울림이다.”

말하자면 좋아함이라는 것은 본디 좋음을 알아보는 데서부터 발생하며, 그러므로 둘은 응당 일치하는 것이라는 식의 엉성한 논변이었습니다. 어쨌든 그때의 저는, 주관적인 가치에 앞서 알아봐지기 위해 이미 놓여있는 좋음이라는 객관적 가치를 인정한 셈입니다. 그리고 저는 아직도 그러합니다. 다소 위험한 발언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예술’이라는 것이 있다고 믿고, 기다리고, 기대하며 저는 삽니다.

요즈음은 너도 나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사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혹은 다들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이 그러하듯 예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한 ‘좋은 예술’ 대신, 그저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예술’을 하겠다, 그리고 당신들은 부디 그것을 ‘좋아해 달라’ 고들 하지요.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느덧 좋아하다, 가 좋다, 보다 더 큰 폭력이 되었습니다. 그 좋아함의 외침들이 소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투명한 파문을 일으키며 모두를 한 물결로 넉넉히 안을 줄 알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좋음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좋음을 잃은 사람들은 외로워졌습니다. 그들은 좋지도 않은 예술 앞에서 지레 스스로의 무지를 탓하며 움츠러들거나, 좋음이 빠진, 좋음을 가장할 뿐인 허황된 담론들만을 그들만의 언어로 재생산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저는 예술을 마주할 때면 언제나 이 말을 주문처럼 붙듭니다. ‘진짜로 좋은 건 누가 봐도 좋아.’ 이 단단하고 간결한 문장은 세계나 대상의 객관적 좋음에 대한 믿음과, 그것을 알아보고 가슴 벅차게 약동할 나의 주관적 좋아함에 대한 믿음 양자를 동시에 내포합니다. 폭력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제 12월을 끝으로 저의 레터는 여러분께 작별의 인사를 보냅니다. 하고 싶었던 말은 언제나 오직 이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것을 하십시오, 부디. 그러나 또한, 좋은 것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언젠가 다시 만나는 날에, 그대들이 좋은 예술을 하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저 온 마음으로, 좋아하겠습니다.

 

2012년 12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사진=iamjung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