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6. 03:14ㆍLetter
동네 이야기
2월이 지나면 제가 30년 넘게 살던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지 정확히 3년 반이 됩니다. 이 시간 동안 제 주위에는 예전과 다른 부류의 친구들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직장인 아니면 대학원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친구들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예술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연극인들이 대부분입니다. 당시 희곡을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극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정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고 있는 일의 지평선을 더 넓히는 것 정도로 여겼으니까요. 3년 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노는 동네의 판이 더 커질 것이라는 처음 기대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전 더 커진 세상이 아닌 완전히 다른 동네, 다른 세상인 대학로에 있을 뿐입니다.
대학로에는 동시에 여러 연극들이 올라갑니다. 혜화동 일번지 5기 동인들이 만든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아름다운 동행> 프로젝트가 올라가기도 하고, 유신 정권 시대를 향수하며 만든 <한강의 기적> 같은 연극이 무대에 오르려고 준비하기도 합니다. 세계에서 동시대적으로 주목받는 연출가의 공연이 수입되기도 하고, 아직 몇 개 안 되지만 이들 공연과 견주어 손색없는 것들이 공연되기도 합니다. 물론 상업적인 연극들도 여럿 있습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다양성이 보장되는 동네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특한 표현 양식을 갖는 공연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비교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아름다운 동행>과 <한강의 기적>이 다루고 있는 내용이 전혀 다를 지라도, 두 연극이 똑같이 신파처럼 관객의 감성에만 호소하는 연극이라면 어떻게 다양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주 다른 것이 같아져 버리는 순간이 올까봐 두렵습니다.
내일은 대학로에서 약속이 있는 날입니다. 도착하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장면을 대면하게 되겠군요. 한 자리에서 5년 넘게 복직 투쟁을 하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의 모습입니다. 저의 3년 반보다 훨씬 더 긴 시간입니다. 저는 3년 반 동안 아주 다양한 일들을 했는데, 이분들은 5년이 넘는 시간을 한가지만 생각하면서 지나오셨습니다. 이제는 잊혀질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이 찾아와서 혜화동 성당 지붕위에 올랐다고 하십니다. 이분들이 5년을 버텨낸 심정을 공감한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게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간 침묵하다가 이제야 입을 여는 대학로인들이 야속합니다. 용기있는 연극인들을 이런 식으로 흠잡는 제 자신이 못나 보이기도 합니다. 내일 만나는 비연극계 지인들에게 성당 지붕위 두 여인들의 이야기를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예전부터 분노했던 것처럼 설명할 것 같은 저의 모습이 벌써부터 눈에 그려집니다. 연극은 사람냄새나는 일, 또는 세상을 반영하는 무대라는 말들을 외치면서, 블랙박스만을 세상으로 착각하고 진짜 세계는 보지 못하는 연극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제 동네의 판은 지평선이 넓어지기는커녕, 더 작아져 버렸습니다. 블랙박스 속에만 있는 다른 세상입니다. 블랙박스를 진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한 걸음 내딛기 시작한 연극인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2013년 2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전강희
사진출처 : http://noleter.tistory.com/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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