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월 레터] 추위, 六寒一溫

2013. 1. 16. 13:17Letter

 

추위, 六寒一溫

 

이번 겨울은 제 안에 쌓여 있는 서른 네 번의 겨울 중에서 가장 추운 겨울입니다. 20대와 40대의 차이는 예측 불가능한 인생과 예측 가능한 인생의 차이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 사이에 있는 저의 시간도 여러 기억들이 하나하나 쌓이다보니 어떤 흔적 같은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이것들을 따라가 보면 다음에 오는 것이 무엇일지 쉽게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혜안이 생긴다는 예쁜 말로 일단은 포장해 놓기로 하지요. 하지만 예측 가능한 인생으로 나아가는 여정에 ‘날씨’라는 복병이 숨어있습니다. 특히 ‘추위’입니다. 지구의 역습-온난화는 이 고요한 여정에 큰 돌을 던져놓고 있습니다.

온난화는 역설적이게도 추운 겨울을 몰고 왔습니다.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져서 일본이 가라앉는다는 것만 생각해왔던 저에게, 빙하가 녹으면서 만들어내는 차가운 바람은 여간 당황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먼 옛날, 공룡이 멸종한 이유가 빙하기 때문이었다는 가설이 온몸으로 수긍이가는 겨울입니다. 포유류인 인간도 적응하지 못하는 날씨인데, 파충류는 오죽했을까요? 머지않아 빙하기의 도래로 인류도 멸종할지 모른다는 이상한 위기감이 생깁니다. 지구한테는 좋은 일이겠지만, 1세기-100년을 살다가고 싶은 저한테는 좀 위협적인 일입니다.

 

 

제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도, ‘세밑한파’, ‘꽃샘추위’, ‘삼한사온’ 같은 예쁜 말들이 남아있을까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이 말들을 나의 시대에 교과서에서나 보게 된다면 마음이 좀 아플 것 같습니다. 특히 ‘삼한사온(三寒四溫)’은 벌써부터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듭니다. ‘육한일온’, 올해 처음 들어보는 말이지만 벌써 낯설지 않은 단어입니다. 일주일 중 여섯 날은 춥고 단 하루만 따뜻하다는 뜻입니다. 실제로는 따뜻한 ‘단 하루’도 체감하는 기온은 여섯 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낮의 기온, 점심 먹을 때쯤에만 다른 날보다 햇빛이 조금 더 비치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저는 이 하루를 손꼽아 기다립니다. 추운 연습실에서도, 버스 정류장의 매서운 바람 속에서도 이 하루를 기다리며 힘을 냅니다. 따뜻한 햇살 한 줄기에 감동할 마음을 미리 갖고서 힘을 냅니다.

피부로 체감하는 온도도, 마음으로 재는 온도도, 사회적으로 느끼는 온도도 가장 낮은 이때에, 젊은 예술이 육한일온의 ‘일온’ 같은 존재로 다가오기를 희망해 봅니다. 여섯 날을 견디는 힘을 주는 하루처럼, 인생의 궂은 날들을 견디는 힘을 주는 존재로 우리 곁에 있어주기를 바랍니다. 100년의 가까운 시간을 흘러 보내고 난 후에는 ‘사온’같은 존재가 되어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때에는 젊은 예술이 아닌 보통명사 예술이 되어 있겠지요.

 

2013년 1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전강희


사진출처 : 박정은 (eshit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