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10. 12:38ㆍ07-08' 인디언밥
로베르네집의 피리 부는 run baby run
- 김도히
- 조회수 763 / 2008.05.14
Chez Robert, electron libre
1999년 11월 1일 밤, 'KGB'라 불리는 세 명의 예술가는 프랑스 파리의 중심가인 리볼리가 59번지 건물을 점거(squat)하였다. 당시 금융회사와 프랑스 정부 공동 소유였던 그 건물은 폐쇄되고 방치되어 도시의 흉물이자 퇴락해가는 공간이었다. “퇴락하는 장소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예술가들이 창조하고, 거주하며 전시할 공간을 조성한다.”, “대안문화에 대한 정책을 실험한다.”라는 점거 목적 아래 모인 10명의 예술가들은 점거공간에서 각종 전시회, 퍼포먼스 등의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시민들에게 무료로 공개하는 등 새로운 문화공간을 조성,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Chez Robert, electron libre’, 즉 ‘로베르네 집’의 시작이었다.
당시 프랑스 언론은 이 사건을 ‘점거예술(squat+art)’이라고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하였고, 이 관심은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계, 정부의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로베르네 집은 연간 4만 명이 시설을 방문하며, 파리에서 세 번째로 방문자가 많은 현대예술시설로 성장한다.
서교동 365번지, 나는 이 건물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파리의 로베르네처럼 아뜰리에나 대안공간의 형태를 취하는 동시에 겔러리바 라는 이색공간으로 예술가들의 아지트노릇을 하는 곳이 홍대에도 존재한다. 그 시작과 운영은 파리의 로베르네와 다르지만, 예술로의 감각과 고집으로 사회와 상업의 바람을 견딤에는 일맥상통하니 바로 서교동 365번지의 로베르네집이다.
2000년대 초만 해도 서교동 365번지는 작업실 겸 자취방으로 빼곡하고 한적한 곳이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이곳은 친구를 찾고 예술을 즐김에 참으로 너그러웠고, 올망졸망한 예술바람만으로도 특이성을 가졌던 도심 속 산책로였다. 그런 이곳에 불어 닥친 2006년경의 부동산 폭풍은 휘청휘청 위태로운 충격이었고, 결국 로베르네집을 비롯한 몇 곳만이 남았다.
‘서교365’의 멤버였고, 로베르네집의 주인인 오윤주씨가 2003년 작업실을 오픈하면서 빠듯한 월세를 해결하려는 생각에 차와 맥주를 파는 바(bar)로 변모하게 된 이곳은, 이제는 신진 작가들을 위한 전시공간이자 홍대 앞 젊은 예술가들의 아지트가 됐다. 열 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지만 벽과 천장 등의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이곳에선 지난 5년 동안 50회 이상의 다양하고 실험적인 전시와 공연들이 열렸다.
로3의 오픈을 축하하며
예술가들의 아지트 노릇을 톡톡히 해온 로베르네집. 아쉽게도 얼마 전 이곳을 지키던 오윤주씨의 3층공간은 근처 연남동으로 옮겨졌다. 밤낮으로 계속되는 소음 때문에 더 이상 작업을 할 수 없음에서였고, 결국 서교동 365번지의 마지막 작업실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러나 홍대 앞의 예술 흔적을 지키려는 그녀의 고군분투는 보다 업그레이드 되었으니, 로베르네집은 사라지는 대신 작업실이었던 3층 공간마저 예술가들에게 내주게 된다. 2층의 전시작업과 더불어 3층에서는 음악, 연극 등의 다양한 공연들이 실현케 되었고, 음악디렉터와 연극디렉터가 상시 활동하면서 예술가들의 작업을 도울 것이라 한다. 그리고 여기 로3의 오픈을 축하하고자 로베르네집의 음악디렉터 오희정씨가 직접 나섰다.
로베르네집의 피리 부는 run baby run
사람들의 손에 들린 제각각의 카네이션이 떨어지는 빗방울보다 먼저 5월을 이야기하는 밤이었다. 도로 너머 거리를 빤히 바라보다 지하보도로 내려갔다. 거리가 흥청거리기 시작한 언제부턴가 초저녁에는 지하보도를 건너지 않게 되었다. 유흥([幽興:그윽한 흥취)은 사라지고, 유흥(遊興:흥겹게 놂)만 남은 이곳에서, 이제 다른 의미의 산책은 흔적마저 사라진 먼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지나칠수록 먹먹해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해선 알싸한 알코올과 소소한 예술이야기를 찾아 고래뱃속이라도 제 발로 들어가야 하는 것을.
매우 똑같거나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던 꼬마들처럼 오늘밤만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도 좋다는 동의일까. 가파른 계단을 오른 사람들이 웃는다.
오늘, 로베르네집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run baby run 이다. 서로 다른 밴드에서 기타리스트와 보컬로 활동하는 권zero와 오동자이지만 나란히 작업실을 쓰고, 술을 마시지 못해 외로운 밤을 독한 커피로 달래야 하는 닮음만으로 팀은 꾸려졌다. 전국 다방투어의 큰 뜻을 품은 그들의 시작이 로베르네집이니, 어쩌면 우린 정말 그들을 따라 전국을 따르는 꼬마가 될지도 모른다. 피리가 노래하기 시작한다.
'비에 젖은 거리가 부쩍 말수가 줄었다' 여긴 건 역시 착각이었나
창밖의 웅성거림과 내 사이로 음악이 흐른다. 초연한 통기타와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조화가 낯설거나 어렵지 않다. 오동자의 목소리가 끝없을 것 같던 소란을 잠식한다. 목소리를 위해 리듬과 소리는 존재하는 듯, 그들의 음악엔 경쟁이 없다.
‘인디뮤지션으로써 음악을 얼마나 싸게 팔아야 하나’라는 고민이 들리지만, 하는 이도 듣는 이도 일단은 웃는다. 우리는 지금 계산보다 마음이 우선인 곳에 있기에. 그러나 관계없는 사람들이 모이고, 통하는 곳, 얼마나 싸게 팔아야 하는가의 고민 없이도 음악을 할 수 있는 이곳이 과연 언제까지 존재할 수, 남아있을 수 있을까.
유흥가를 벗어나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어갔다는 예전의 흔적들을 찾아 우리는 또 어디로 가야 할지. 자본에 의해 변하는 홍대이지만 그들이 여전히 머물고 있음은 분명한데, 서교동 365번지를 잃은 그들을 우리는 찾아야 할까 숨겨줘야 할까.
Everybody needs somebody
우연하게도 우리는 서교동 365번지의 마지막 작업실이었던 곳에 모여, run baby run의 노래 Everybody needs somebody를 마지막으로 들었다. 더 이상 잃고 싶지 않은 마지막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노래, 그리고 귀 기울임.
이제 막 시작한 로3의 달림이 숨이 턱에 닿는 그곳에서도 멈추지 않기를, 천장에 매달린 미러볼이 9월이 되어도 멈추지 않기를(9월이면 로베르네집은 재계약을 하고, 계약금이 오를 경우 운영은 미지수가 된다), 회색 달이 더 이상 서교동 365번지의 아지트를 빼앗지 않기를. 모인 마음은 그 곳에서 노래했다.
보충설명
GALLERY BAR. 로베르네집
chezRobert.cyworld.com
홍대입구역5번출구, 스타벅스 맞은편 금은방 사이 골목길의 왼쪽2층 분홍색 간판.
* 전시 문의_오윤주 019-365-9132
* 음악 공연 문의_오희정 010-8226-5985
* 연극 공연 문의_이지영 010-3724-3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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