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마임축제_붉은 깃발 드높은 도깨비가 사는 나라

2009. 4. 10. 12:4207-08' 인디언밥

춘천마임축제_붉은 깃발 드높은 도깨비가 사는 나라

  • mei
  • 조회수 724 / 2008.06.09

주말의 오후. 소담한 도시에 안착했다. 생각 외로 북적이지 않는 거리에 서서 조급한 마음을 달래며 어디부터 찔러야할지 고민에 잠겼다. 관광객인 듯 보이는 사람의 뒤꽁무니를 따르기로 했다. 거리를 들어서자 아직 시작되지 않은 공연 준비에 열중인 스텝, 무대, 스피커, 웅성거리는 사람들이 맞아주었다. 길목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한적한 도시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긴장되고 분주한 일렁임이 전해졌다.

거리에 펼쳐진 예술가들의 몸짓을 하나, 둘 놓치지 않고 담아야겠다는 욕심에 더운 날의 아득해지는 정신을 깨워가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들어 온 입구에서 살짝 언덕이 나오나 싶더니 이거 웬걸 사람이 맨홀에 머리를 처박고 길바닥에 누워있는 것 아닌가. “아, 임팩트 제대로 강하다. 관객을 맞이하는 첫 눈길을 저런 퍼포먼스 하나로 끌다니.” 자세히 보기위해 가까이 다가섰다. “헛! 정말이지 이건, 사람이야 마네킹이야?” 다가가 머리를 박고 있는 그자를 본 순간 섬뜩하기까지 하더라. 그자는 다름 아닌 길 안내자인양 널브러진 안내판의 대체물이었다.

 

                                                    <▲ 맨홀에 널브러진 자>

 

그자의 안내에 따라 걸었다. 조그만 사거리 사이로 한창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로 빼곡했고, 이를 놓칠세라 사람들 틈사이로 들어갔다. 주변의 모든 것이 투명하게 비춰지는 경계사이로 사람과 그림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자의 몸짓. 말없이 누군가와의 접촉 없이 살아가는 일상에 둘러진 단절의 벽이 느껴졌다. 사람은 답답한 듯 보였지만 불현듯 아무렇지 않게 통신하고 먹고 마시더라. 내 앞에 놓여 진 경계 아닌 경계 속에 갈증이 느껴졌다.

 

                                          <▲일상의 벽_경계없는 예술센터>

 

여름을 연상케 하는 날씨와 함께 갈증을 느끼는 찰나, 드높은 태양과 펄럭이는 붉은 깃발이 손짓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그만 사거리로 내려가자 아이들, 가족, 연인, 외국인 너나 할 것 없이 겹겹이 빙 둘러싸고 있었다. 얼굴에 흰 칠을 한 사람과 네모난 박스를 뒤집어쓴 사람이 관객들 틈에서 뭔가 부탁하고 있었다. 마치 외계인인양, 자신들의 괴상한 모습을 담아 달라며 손을 내밀고 어색함을 친밀함으로 바꿔가는 놀라운 포섭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할까. 비닐과 아크릴 필름에 담긴 자신의 모습을 무대로 삼은 그 거리에 빙 둘러가며 전시까지 한 모습을 보면 그 능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 part1. Dada SounD (#1,#2,#3,#4), part2. Hi~☆_K.Y.P.P>

 

한 발짝 멀찍이 서서 그들의 행동을 지켜봤다. 비닐과 페인팅 도구만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감하는 아이디어를, 그것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걸어 다니는 거리에서 그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능력에 감탄했다. 거리공연 시간에 맞춰 재깍 찾아오지 않을 수 있고 재미없으면 우르르 일어서서 갈 수도 있는 일이다. 게다가 음악처럼 귀를 자극해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도 아니니 관객이나 예술가나 몰입하기 힘든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지나쳐온 거리공연들은 쉽게 만나고 쉽게 떠나기 위함을 준비한 거리다운 행위를 펼쳐보였다. 그래서 참 좋더라.

 

                                         <▼시민길놀이>

                                         

그들의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있을 무렵, 외곽에서 들려오는 북, 징, 꽹과리, 장구 소리가 내 촉수에 잡혔다. 내 귀에 발을 맡기고 점점 다가오는 소리를 따라 걸었다. 바다 속 여행 채비를 마친 아이들의 꽁무니를 간신히 따라 잡았다. 초등학생쯤 보이는 아이들이 긴 열로 이어져 길놀이를 하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악기 삼아 두드려가며 명동을 한 바퀴 돌려는 모양이었다. 고사리 손으로 두드려가며 길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흥겨웠다. 아이들을 따라가다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 이리저리 비집고 다녔다. 초행길에 혼자 너무 헤매고 다녀 혹 길을 잃을까 두려움에 몸 사리며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는데 벤치에 아저씨가 누워있었다. 역시나 마임축제를 알리는 마네킹이 누워 자신의 온몸을 이용해 길 안내를 해줬다. 좀 전 만났던 마네킹과는 다르게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할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괴상한 광경에 슬슬 빠져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한 숨 돌리고 인포센터에서 집어든 안내문을 따라 주제공연장으로 이동했다. 이미 몰려든 사람들로 앞자리는 만석이었다. 아수라장 최고의 하이라이트였다. M백화점에서 브라운5번가를(대략 홍대정문에서 홍대입구역 5번 출구와 맞먹는 거리) 가로지르는 길목을 무대삼아 물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길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과 시민들이 들어서고 춘천버스가 사람들의 길 안내를 맡았다. “얘들아~” 쩌렁 쩌렁한 마임축제의 로고송이 울려 퍼지며 물난장이 시작되었다.

 

                                                         <▼주제공연>

 

버스에서 등장한 분이 비를 뿌리며 거리에 물꼬를 트더니 키다리 삐에로 오빠들이 나와 물위를 걸으며 사람들을 맞아주고, 언덕길에 공중곡예사들이 물 속 길 안내를 펼쳤다. 물길 속 불을 뿜으며 시작된 대만 팀의 북 퍼포먼스와 사자놀음에 곧이어 돛단배가 언덕을 거슬러 올라오더니 물을 뿜어내며 배 속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M백화점 벽면 공중퍼포먼스_서스펜즈>

 

 

 

                                                    <▲주제공연_물난장>

 

명동을 가로지르는 길에 물을 뒤덮자, 너나할 것 없이 물속에 뛰어들었다. 엄마자궁 속에서 헤엄쳐 다니던 시절을 기억하는 듯 물속을 헤집고 다니는 사람들의 표정은 활기찼다. 젊은 친구들도, 엄마랑 손잡고 나온 아이들도, 아이랑 손잡고 나온 엄마아빠도, 마실 나온 할머니할아버지도 시원한 물줄기 속을 마다치 않았다. 즐겁고 행복한 일에 어른아이 가리지 않듯, 다들 한 물속에서 한 마음이 되자 한결같이 개운한 표정이었다.

마을 잔치에 빠질 수 없는 줄다리기와 깃발싸움으로 축제의 열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풍물패의 장단에 흥은 더욱 고조되고 꼬리에 꼬리를 문 사람들로 큰 길 가득 메워지더니 한껏 놀음판이 벌어졌다. 특별한 동작은 필요가 없었다. 빙 둘러싸다 뛰다 달리다 웃다 흔들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지치기는커녕 펄쩍펄쩍 살아났다. 경쾌한 음이 사라지고 고요해지자 아쉬움이 역력한 무수한 인파들이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춘천 한 복판이 어느새 물 반, 고기 반으로 가득 찬 그야말로 아水라장이 되어 있더라.

 

                                        <▲대동놀이>

 

뭉툭한 것이 잔뜩 모난, 예쁘지도 않은 모습이 썩 걸 맞는 춘천인지 마임인지 하는 도깨비가 밤도 아닌 낮에 물속을 활개 치며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 혼이 쏙 빠진 채 꿈인지 생신지, 정신을 차려보니 기차 안이었다.

 

 

 

보충설명

2008 춘천마임축제(5/23~6/1)
-5월25일(일) 거리개막난장 아!水라장
브라운 5번가, M백화점 앞, 명동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