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8월 레터] 인디언밥 사용법2

2013. 8. 21. 04:52Letter

 

인디언밥 사용법2

- 착한 것과 시니컬한 것, 사이의 모순과 긴장감

 

지난 달 편지에서 말씀 드렸듯이, 인디언밥 편집인들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 시선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번 심한 두통에 시달렸습니다. 아무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였나 봅니다. 스스로가 부과한 것이니 힘들었다고 하소연할 수 도 없지요. 말하기 부끄러운 결론이지만, 우리는 편집인들도, 필진들도 착하다라는 다른 이들에게 내보이기 민망한 답을 찾아냈습니다. 그리고 정말 부족한 점이 시니컬한 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인디언밥 관계자들이 오프라인에서도 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온라인상에서 저희는 착해질 수밖에 없는 약점 같은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독립잡지나 웹진도 마찬가지겠지만, 저희도 필자에게 그 노력에 맞는 대가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관심과 마음만으로도 한없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또 예술가들이 동료이기도 하다 보니, 전 작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뿌듯한 마음이 앞섭니다. 그러다보면 마냥 착해지기만 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은 흐린 눈과 맹한 머리를 만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니컬해져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도윤희, 보인다기 보다는 차라리 들리는, 2008

하지만, 며칠이 지나고 보니, 꼭 모두에게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페에서 얼굴을 맞대고, 또는 SNS로 설전을 벌이며 날들을 흘려보내던 중, ‘착하면서 시니컬해지자라는 모토가 나왔습니다. 억지스럽게 들릴만한 여지가 있지만, 착한 필자에게는 단호함을, 시니컬한 필자에게는 윤리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과한 예술에게는 시니컬해지고 덜한 예술에게는 관대해지자입니다. ‘과한 것덜한 것을 결정하는 이 상반된 행위 사이에는 수많은 괄호와, 느낌표와, 물음표가 있습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시니컬한지, 착한지가 결정될 것입니다. 이 사이에서 누군가는 진정성을, 영민함을, 폭력성을 느끼겠지요. 예술작품에 이론이나 평론이라는 을 더해 의미를 생산해 내는 일은 때로는 작품보다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도 합니다. 원래 말이라는 것이 시끄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인디언밥이 하고 싶은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를, 작은 소리로 라도 들을 수 있도록 채널을 열어두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지난번과 이번의 편지는 독자들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스스로에게(편집인들과 필진들에게) 보내는 것이 되었습니다. 착하면서 시니컬해집시다.

 

 

2013년 8월

독립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전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