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12월 레터]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2013. 12. 5. 00:27Letter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인디언밥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눈치를 챈 분들도 있겠지만, 11월 글에서부터 특정한(?) 로고가 기사의 하단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올해 인디언밥은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기금을 받았습니다. 보조사업비라는 명목으로 다원예술 분야에서 지원의 대상자가 되었지요. 말나온 김에 액수도 밝히겠습니다. 1000만원입니다. 크다면 클 수도, 작다면 작을 수도 있겠지요.

 

▲11월 기사부터 올라간 문화예술위원회의 로고

 

작년 이맘때즈음 인디언밥은 "젊은 공연예술가들을 위한 발굴 및 연구" 를 하겠다고 사업지원신청을 하였습니다. 기대없이 낸 페이퍼라 떨어질 줄 알았는데, 덜컥 붙었습니다. 붙고나니까 어쩌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공연예술가에 대한 연구는 그 중요성에 비해 한 번도 적절히 실행된 적이 없었으니까요. 혹은 그간 꾸준히 해온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에 대한 믿음일지도 몰라,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님말고)

하여 그간 독립적인 기금으로 운용해오던, 인디언밥은 올해 공공기금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까놓고 말하면, 그전까지의 인디언밥의 예산도 역시나 공적기금의 뿌리를 갖고 있겠죠. 돌이켜보면, 예술계에서 우리가 수행하는 일들에 대한 지불은 - 관객으로부터 오는 돈을 제외하고는 - 대체로 혹은 거의 공적인 재원처를 두고 있으니까요.

어쨌든 보조사업비를 쪼개 한해 동안 젊은 예술가들을 연구했고 인터뷰를 했으며, 세미나와 워크샵을 거쳐 이제 편집 및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기대가 됩니다) 사업비를 빼고 나머지는 웹진운영비로 충당을 했습니다. 실제로 사업 교부금은 하반기에 받았는데, 여기서 인디언밥의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말로 풀자면 이런 것들이지요. 기금을 받았으니, 공공에 합당한 뭔가를, 해야 하나? 혹은 한다면 어떻게? 그런데 공공이란 무엇인가? 혹은 누구인가?

공공-에 대한 공공-연한 고민이 인디언밥을 전전-긍긍하게 만들었습니다. 줄기차게 독립과 자생을 외쳐놓고는 그것의 수혜자가 되었다는 모순적-태도 때문일까요. 아마도 그보다는 공적조달로 인해 인디언밥의 커진 파이를 어떻게 나눠줘야 할까? -하는 질문이 더 생산적이겠지요.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파이가 커진 건 딱히 아닙니다. 공적기금을 받은 예술단체가 갑자기 세계명작을 쏟아내거나, 예술제도를 바꾸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이란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의 한 장면

 

여하튼, 인디언밥은 그 전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공공성과 확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이를 수행하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독자수를 늘리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고, 매끈하게 방명록이나 독자게시판을 단장하면 되는 거지요. 아마도 제일 쉬운 것이 SNS의 시도입니다. (그런 이유로 트위터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페이스북도 시도할 예정)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늘 그러하듯, 시간은 흐르고(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독립예술, 다원예술, 젊은예술 -을 생전 보지도 않는, 저 너머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가. 어디까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공성이고 확장성인가. 그 둘은 당최 어디서 오는가. 그리하여 든 생각은...

우리 주변이나 잘 챙기자

 

...였습니다. 주제를 잘 파악하고, 앞가림을 잘하자는 것이었지요. 여기까지 생각이 뻗치니 부담은 덜 했고, 힘은 더 났습니다. 그러면서 더불어 궁금해진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 옆에는 누가 있을까. 친구? 동료? 무엇보다, 이러한 단어가 심히 낯설었습니다. 그간 고군분투와 독고다이를 왔다갔다 하다보니 ‘아무도’ 사귀지 못한 것은 아닌가. 웹진이 시작되었던 6년 전, 그때는 정말 주변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기성예술과 거리를 둬야만 했던 시기라 더더욱 그러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친구' 와 '동료' 의 의미를 따져본다면 예술가와 관객을 포함해서, 독립-다원-젊은 예술씬 안으로 들어온, 가난하고 힘없는 그러니까 성장(혹은 생존)하고 있는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속에는 이제 막 시작된 예술웹진을 비롯한 매체와 새로운 실험실, 창작센터, 대안공간 등등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를 잘, 챙기지 않으면 결국 왕따가 됩니다. 요새 인디언밥은 왕따가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한편으론 인디언밥이 '비평' 사이트였기 때문에 ‘절친’ 을 만드는 게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요. 하루아침에 제도-친화적이 된다거나, 사교성이 급증할리는 없겠지만, 주변에 누가 있는지를 생각하고, 동료를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인디언밥의 집은 indienbob.tistory.com 입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일까요.

 

▲책, 『공공성』 (PUBLIC-공공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 아르코북스)(미메시스, 2008)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출간된 <공공성>(2008)이라는 책에서 보면, ‘공공성’ 이라는 개념은 본래 미학적인 입장을 갖기 보다는, 사회적 과정을 통해 ‘공공적인 것’ 으로 형성된다고 합니다. 인디언밥의 집은 실 소유주가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곳을 예술적인 소통의 공간으로 애용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주변의 인정과 응원을 통해 공공성을 획득해나가고 확장성 또한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2013년, 마지막 달의 주제는 '친구' 입니다. 인디언밥의 주변 매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비평의 선배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영원한 친구인 젊은-예술가의 공연도 챙겨보았습니다.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혼자만 놀다보니 어느덧 희미해져버린 개성도, 변별력도, 고유성도 되찾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리하였습니다. 공적지원의 좋은 점은 이처럼, 미안함과 불편함을 유발시켜 본질을 일깨운다는 점이 아닐까요. 이 레터는 인디언밥이 친구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그들에게도 부디 인디언밥이 친구이기를 바랍니다.

 

2013년 12월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정진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