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밥 6월 레터] 축제하는 도시

2013. 6. 19. 19:53Letter

 

축제하는 도시

 

신흥우, 도시의 축제, 2012

 

지난달부터 도시에는 크고 작은 축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 중에는 의정부음악극축제’, ‘안산거리극축제’, ‘성미산축제처럼 도시나 마을 전체가 축제의 이름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달 한 학술대회가 극장 밖 공연을 주제로 열렸던 것을 보면, 극장이 아닌 공간에서 행해지는 공연을 얘기하는 것이 이제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주위의 예술가들도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기 위해서, 또는 예술을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극장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공연을 준비 중입니다.

 

제가 준비하는 공연은 올 가을 철거를 앞둔 어떤 시장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 이름은 시장이지만 이 건물은 원래 아파트였습니다. 1971년에 완공되었는데, 몇 년이 지나 중앙광장에 지붕을 올려 석탄을 거래하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철거를 앞둔 지금, 시장은 수명을 다해 한 두 개의 점포만 남아있지만, 2, 3층 주거 공간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연출하는 친구, 무대미술하는 친구와 함께 곧 사라질 저 공간을 기억하자, 또는 과거의 흔적을 되짚어 보자라는 취지로 공연준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술가라기보다 먹물에 가까운 사람인지라 먼저 도시 관련 책자들을 섭렵했습니다. 딱히 관련된 내용이 아닐지라도 융통성 없는 저는 무조건 끝까지 읽어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참...

 

그리고 셋이서, 또는 혼자서 그곳을 탐방했습니다. 그곳을 자주가다 보니, 공연이 주민들의 일상을 침범하는 것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개인적인 공간을 지나는 것을 최소화하여 1층 시장광장과 옥상을 중점으로 공연 계획을 세워나갔습니다. 미학적인 것과 윤리적인 것에 대한 더 진지한 고민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탐방과정에서 당연히 주민의 적대적인 시선을 느꼈지만, ‘좋은 의도’, ‘좋은 플랜을 잘 짜서 제시하면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준비한 서류를 들고서 막상 그들을 대면했을 때, 일은 쉽게 풀릴 수 없었습니다.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더 진지한 고민더 철저한 준비가 기본적으로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이루어졌으니까요. 모든 작업에 선행되었어야 했을 관계맺기라는 과정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주민들이 저희들에게 했던 말 중에 세상은 열정만가지고 사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갖춰라. 너희같은 부류가 제일 싫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희처럼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허가를 해주었더니, 떠들고, 주위를 더럽히는 등 피해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무시하는 시선을 느꼈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처럼 관계맺기가 간과되어 침입자같은 느낌을 주었나 봅니다.

 

결국, 공연은 취소하고,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단 하루의 전시회로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은 공연이 아닌 전시입니다. 하지만 끝없이 새로운 고민이 생깁니다. 우리가 숙고하지 않았던 윤리적인 측면에 대해서 이제야 생각해보게 됩니다. ‘윤리적인 것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은 책속에서만 머물러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미학적인 것이 윤리적인 것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가장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현장이 도시의 축제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축제가 한창인 지금, 이 글을 남깁니다.

 

2013년 6월

독립웹진 인디언밥 편집위원

전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