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미술생산자모임-미생모를 소개하기-에 앞서"한떨기 미생이..."

2014. 1. 27. 02:30Feature

[취재] 미술생산자모임-미생모를 소개하기 -에 앞서

 

한 떨기 미생이 한국 미술계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글_권기예

 

> 이 바닥이 원래 다 그렇게 해 (1)

내가 듣고 싶었던 미술의 이야기는

세상에 빌붙어 살며 홀로 때 묻지 않은 철없는 상상력을 자본과 맞교환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업을 똑똑하게 자본화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지만), 어떤 미술가의 처절하게 눈물겨운 삶의 이야기로 알게 모르게 가난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 그만둬 버리거나 차라리 유학을 가는 편이 낫다는 비관적인 결론이 아니라(그만한 각오가 필요할 만큼 척박하다는 이야기겠지만). 재능기부라는 말로 둔갑한 착취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따돌리기 위해 인맥을 동원하는 좁은 판의 폭력성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 기회씩이나 드렸는데 급여는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라는 윽박지름이 아니라. 무보수 저임금으로 일하는 후임을 불러다 놓고 “기특하다”며 노고를 치하하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되는 상황이 아니라. 내가 경험이 더 많으니 무조건 내가 옳다 그러니 알아서 기어라 하는 식의 권위 부림이 아니라. (~아니라 등등 지면상 생략) 이 모든 “이 바닥이 원래 다 그렇게 해”가 아니라.

내가 앞으로 하고자하는 일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현실(앞서 부정한 것들이 진짜 현실일 지도 모르겠으나), 구체적인 문제점, 문제의 정확한 지적, 문제를 개선 해 나갈 방향성, 개선을 위해 취해야 할 태도나 방법들에 대해 고민하며 제안하는 현실에 기반 한 상상들, 그 상상력이 힘을 발휘한 연구와 실천사례들 그에 대해 논의 되고 있는 사항들, 적어도 최소한의 삶이 유지 될 수 있는 조건 하에서의 납득 가능한 사명감을 발휘해 낸 사례들을 듣고 배우고 싶었다.

이와 관련한 긍정적인 실천 사례를 들자면 1998년 당시 광주비엔날레의 총감독이었던 최민 선생님을 부당 해임한 국가권력에 대항하여 관료적 행정과 미술이라는 전문 분야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보편화 된 언어로, 또 미술의 언어로 발화 하며 연대했던 1999년 광주 비엔날레 정상화를 위한 범미술 위원회,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부당해임처사에 맞서 법적으로 해임정지 효력을 받아 낸 전 문화예술위원장 김정헌 선생님의 출근투쟁 과 같은 사례들을 들어 볼 수 있겠다.

이 사례들처럼 앞으로 내가 살아낼 영역이 부딪히는 문제점과 그것들을 개선 해 나갈 의지를 생성해 줄 만한, 미술이라는 영역에 대한 자부심을 촉발시키는 전례들 그 사례들로 인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찾고 내 삶의 터전을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해 나가는 서로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해나가길 바라는 것은 너무 큰 바램일까? 작가의 윤리성과 작업의 윤리성과 작업의 질은 별개라고들 하지만 그 셋을 일치시키려 예민하게 각을 세우고 실천하는 사람들과의 삶을 상상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존경할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종종 미술계에서 사회에 요구하는 정의를 미술내부에서는 얼마나 구현 해 내고 있나? 하는 질문을 떨칠 수가 없다. (미술 내부의 개개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미술계”로 퉁 치는 것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개인의 한마디, 행동 하나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면서 보편적 가치를 재설정 해나가 듯, 미술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이들이 미술계의 보편적 가치를 설정 해 나갈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렇듯 미술계 또한 옳고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가치들과 인간의 기본권과 서로에 대한 존중들이 무색하게 여겨지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타인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며 남의 입장이나 기본권쯤은 요구하지 않으면 지켜 줄 필요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하는 것이 만연한, 이것이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되어버린 상태에 있는 영역인 것은 아닌지 재차 의심하게 하는 상황들을 거듭 경험하고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생산자모임 책자 (사진출처 : 미생모 페이스북 페이지)

 

>> 미생 未生_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

이렇게 비관적으로만 보이는 판에서 애써 고민 끝에 만든 작업이나 의견들을 제안 할 필요나 있는 것일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고 스스로 체념하게 되었다. 오히려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내가 너무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그야말로 모범답안 같은 사회를 꿈꾸는 것은 아닐지. 스스로를 의심하는 등의 심리적 갈등에 혼돈의 줄타기를 할 때 즈음 그래도 더 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2013년 12월 17일 오후 7시 시청각에서의 미술생산자모임(이하 미생모)이었다. 여지껏 혼자 속앓이하며 골머리를 앓던 일들이 나만의 고민이 아니었구나 하며 그야말로 심신에 강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자신의 작업을 전개하고 생활자금을 마련하는 것만 해도 쪼들릴 판에 이 모임을 위해 없는 시간을 할애하며 작가, 큐레이터, 코디네이터, 테크니션, 인턴, 지킴이, 도슨트, 비평가, 학예사, 시간강사 등의 미술 생산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료를 준비하고 또 자리를 마련했을 초기 멤버들(10팀:18명)의 노고에 무한한 고마움을 느낀다.

처음 미생모의 모임명을 듣고는 바로 지금은 유료화 된 웹툰‘미생’의 현현을 떠올렸다. 모니터를 끌어안고 장그래씨와 나와의 삶을 일치시키며 울고 웃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아직 살아있지 못한 자들의 모임인가?’ 라고 씁쓸한 웃음을 짓게 되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모임명에 붙어있는 ‘생산’ 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폭력적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놈의 생산, 실적, 증명 덕에 무의미하고 무자비하게 많은 전시들을 생산 해 내야 하지 않았나? 평이한 의미에서 조금 벗어나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을 성찰적인 생산이라고 본다면 미술에 ‘생산’ 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이 조금 덜 불편하지 않나, 이 모임의 이름으로도 적절하지 않은가 싶다.

가만... 미생 결말이 해피엔딩이었던가?

 

▲지난 2011년 시작된 ‘자립음악생산자모임’ 의 로고 (출처 : 자립음악 홈페이지)

 

>>> 생산적인, 너무나 생산적인 (2)

이번 모임은 미술 내의 제도적인 문제점을 제시하고 나열하며 일련의 세부적인 문제 개선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고 공유하는 첫 번째 자리로 오후7시 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미생모의 발표자들은 미술씬에서 존재하는 문제점 10가지를 선정하여 이에 대해 조사하고 실제 사례를 찾아 인터뷰하고 정리한 것들을 토대로 짧게 요약한 발표들로 문제들을 가시화 해 주었다. 가시화 될 수 없었던 것들을 가시화 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인 것으로 볼 때 이 모임은 작업으로도 유효한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여기서 시각적인 부분을 좀 더 고려해 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당시 시청각의 뜨끈한 바닥면적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너나할 것 없이 거의 서로 몸을 맞대고 주저앉아서 진행되었다. 각 주제 당 주어진 시간은 짧았지만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유롭게 반응하고 의사표현하며 각자가 생각한 개선책을 제시하였으며 장내가 아수라장(?)이 될 정도의 뜨거운 해프닝도 더러 있었다. 아직 개선 될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 사안들이 있었고 그 와중에 일부 기대치 않게 문제가 개선되는 과정에 있는 실제 사례들이 발표 되어 격하게 반가웠다. 사례들을 굳이 나열 해 보자면 제대로 책정되지 않는 아티스트 피, 노동에 대한 보상도 제대로 된 현장경험도 보장받을 수 없는 인턴큐레이터, 취업률 이라는 잣대로 사라져가는 미술학과, 기금의 예산 항목 문제, 기금의 행정절차나 처리에 관련된 문제, 기금의 출처에 대한 의식 없이 기금을 신청하고 사용하는 문제들에 대한 고민, 등등 이다. 미생모 초기멤버들과 모임의 참여자들을 포함한 미생모는 앞으로 그 중 한 문제씩 꼬집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보자고 했다.

슬며시 떠오르는 생각인데... 어딘가에 자본력을 기대지 않고서야 이런 솔까말을 할 수 있는 건가? 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을 모색 하는 것이 앞에서 열거한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핵심은 아닐까? 물론 그것만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2012년 5월 총파업 때부터 지난 1년 7개월가량의 기간 동안 준비한 미생모의 자료는 미생모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공유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자금조달 문제에 대한 고민도 미술생산자 모임의 자료집에 수록 되어있다. 이 자료집에서 앞에서 말한 반가웠던 개선사례를 한번 만나보시길 바란다. 현장은 녹음과 영상촬영으로 기록되었으며 모임 후 녹취작업을 마무리 중이라고 한다. 곧 참가자들의 발언과 우려, 제안이 담긴 현장에서의 기록들 또한 미생모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공개 할 예정이라고 하니 모임에 참가하지 못했던 분들은 이 자료를 통해 조금이나마 현장의 분위기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월 즈음에는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감성영역의 계량화라는 문제”(3)인 아티스트 피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정확한 일자는 미생모 페이스 북 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노려보며 기다리도록 하자. 미생모 페이스북 페이지는 자료 공유 뿐 아니라 메일, 트위터, 등 온라인으로 항상 의견을 받고 있으니 미술과 관련된 여러 가지 상황 제보나 모임의 제안, 응원, 연대를 바란다고 한다. 우리 함께 생산성을 높여보자.(4)

(상투적인 말 아니고 진지하다 궁서체다)

 

▲미술생산자모임 책자 (사진출처 : 미생모 페이스북 페이지)

 

>>>> 보수 보다 값진 청춘의 미래를 위한 투자(5)

내가 아직 초딩이었을 때. 잘못을 저질러놓고 몸만 빠져나가는 어른을 흉 보며 씩씩거리는 나를 달래던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는 어른은 그렇게 많지 않단다. 저 분도 마음속으로는 네게 미안해하고 있을 거야’라고. 그 땐 대~충 ‘저놈이 그런 생각조차 할 놈이 아니다.’ 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긴 하지만... 미안함은 마음에 담아놓는 것이 아니다. 영혼 없는 말로 대충 때우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간 미안했던 마음을 변화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영역이든 문제가 없는 영역은 없다. 허나 문제 상황을 인식하고 공유하며 잘못을 저질렀다면 인정하고 개선해 나갈 수 있는 성숙한 영역은 드물지 않나 싶다. 굳이 잘못을 했다거나 그에 대한 미안함이나 죄책감이 아니더라도 서로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로의 변화는 시급하다고 본다. 태도가 작업을 생산해 내는데 있어 형식을 도출하고 시각적인 외양을 설정하는 결정적인 기본요소라고 봤을 때 태도의 변화는 미술의 영역에 있어 불가피하다. 나는 한국의 미술계가 기본을 지키며 성장하는 영역이길 바라마지않는다.

이 정도로 충분치 않다면, 그래도 “‘이 판이 원래 그래’ 그 정도도 못 참니? 내가 어릴 땐 말이야...” 는 말로 운을 떼는 분들이 있다면, “보수보다 값진 미래를 위한 투자(청춘착취)”를 하실 적에 기분은 어떠셨는지, 생활은 어떠셨는지, 그리고 부모님께 용돈은 언제까지 받으셨는지 여쭙고 싶다. 마음이 짠하다... 이 질문은 당신들의 노고를 무효화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악순환을 끊어달라는 이야기다. 충분히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위치에 계신다고 생각한다.

고백컨대 지난해 나 역시도 자의든 타의든 미술 앞에 누군가의 충실한 “열정노예” 또는 “열정호구” 또는 “일회용품” 이었으나, 그런 위치에 있음을 알고도 스스로 벗어나지 못한 것, 재인용 하자면 “보수보다 값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건 아니다 싶은 상황은 확실히 거절 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 한다. 나의 작은 행동들이 미술계를 건강한 방식으로 존속케 할 힘이라 믿으며. 더불어 내가 선배들께 그리고 동료들과 나에게 가지는 기대가 지나친 기대감이 아니길 바란다.

좀 더 나은 환경에서 각자의 연구를 지속할 수 있도록 미술 내부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개선책을 고심하는 선배들께 앞으로 이에 연대할 동료들에 그리고 또한 이에 연대 할 “미술 앞에 스스로 식민주의적 의식을 내면화 해 왔.었.던. 분들”께 감사드린다.

구구절절 글은 길었지만 요지는 짧다.

한국 미술계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참고문헌

1) 신현진_[예술과 노동①] 사례비만 받을까 인건비도 받을까 그것이 문제로다./

똑똑_talktalk 커뮤니티와 아트 / 2014. 01. 24. >>> http://blog.naver.com/ggcfart/70183600410

 

2) “생산적인, 너무나 생산적인”은 제4회 공장미술제의 타이틀이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글과 반응들이 있어 아래에 링크를 공유한다.

홍태림_제4회 공장미술제의 심각한 문제점에 대하여/ 크리틱-칼/ 2014. 01. 14.

 

3) 신현진, 위의 글

 

4) 미술 생산자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misaengmo

미생모의 자료는 아래의 링크에서 pdf파일로 다운 가능하다.

https://docs.google.com/file/d/0B-QaXQRM4HWRVE5QQlF3eEhQZWM/edit?pli=1

 

5) 로스 펄린, 『청춘착취자들』, 안진환 역, 사월의책,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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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_예술가로 살기의 윤리학, 혹은 임노동 하기의 미학”/ 컨템포러리아트저널/ vol.8 2012.

한병철, 『피로사회』, 김태환 역, 문학과지성사, 2012.

 

 필자_권기예

 소개_내 나이 27세 07학번 한 달에 88만원도 못 버는 쌍팔년생. 밤낮없이 일 해도 매번 밀린 공과금이 독촉최고가 되고 공급중지가 되는 상황이지만 미술언저리에서 배회하며 작업한다. 젠장. 2012년엔 미술로 먹고살기를 꿈꿨고 학부를 졸업한 2013년엔 미술로 먹고살기를 실천해 보려 했다가 ‘소소한 경력들은 늘 빚을 수반한다.’는 진리(?)를 깨닫고 진로를 변경하려다 계획을 조금 수정하여 2014년의 목표는 미술하며 먹고 살기가 되었다. 이 마저 쉽지 않을 것이 뻔하다.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