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4 - 작품 경향 프리뷰 "절대반역을 위한 전술"

2014. 8. 11. 16:56Feature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4 - 작품 경향 프리뷰

절대반역을 위한 전술

 

글_전강희

 

예술가의 시선이 동시대를 예민하게 포착해내고, 다음 시대를 날카롭게 예견했던 시절이 있었다. 화폭과 무대 위에 풀어놓은 솜씨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때로는 예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어떤 감각을 만들어 내는데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렇게 불현듯 출현한 새로운 감각 중에서 유쾌하지 못한 것은 예술계를 넘어 사회 문제로 확대되었다. 더 나아가 몇몇 예술가들은 예술 선언을 통해 직접 정치활동을 펼쳤다. 역사 속에는, 예술가의 시선과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만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한다.

2014년 지금도 화이트 큐브에서, 블랙박스에서, 또는 음향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진 무대 위에서, 시선은 서로 부딪히고 있을 것이다. 대개는 제도권 안에서, 또는 자본이 모든 것을 삼켜버린 공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얌전한 예술이 역사 속에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아름답기만 한 것이 사람의 감각을 바꾸어 놓을 만큼 중요한 것이 될 수 있을까? 또, 동료의 작품은 시간이 흐르면 이곳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니, 그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모든 세대가 경쟁자인 세상에서 차례를 기다린다한들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기존 질서에 반대하는 것이 죽지 않는 비법이 될 수 있다. 17세가 된 프린지가 자신의 예술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절대반역’을 선포했다. 총 87개 팀에서 반역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극단 흰토끼’의 <앨리스, 학교가야지>는 B급 병맛 코미디를 지향한다. 프로덕션 구성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B급과 거리가 있으나, 이들은 의식적으로 막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라이브 인 소울(바람에 오르다)>을 준비하는 ‘국악밴드 소울’은 도제방식이 남아있어 선생님을 잘 만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장르에서, 다른 방식으로 승부를 걸어보기 위해 디지털 국악을 시도한다. <모멸감>을 만들고 있는 ‘무지몽매프로젝트’는 무지몽매와 HOLIN이라는 두 단체가 협업하여, 안드로메다로 떠나는 것 같은 무정형 극에 도전 중이다. ‘압도’는 공포스릴러물 <5월 15일>이 상업극을 지향한다고 당당히 밝힌다.

   

 

절대반역을 위한 몇 가지 전술을 소개하자면, 과정기록하기, 공간실험하기, 관객-배우 되기, 각색하기가 있다.

전술 하나. 과정기록하기

이번 페스티벌에는 ‘나’를 주제로 하는 공연이 유독 많다. 내 안에 공존하는 여러 자아, 분열하는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특히, 분열을 다루는 공연은 기승전결을 탈피한 형식 실험과 맞닿아있다. 이중에서도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 속 ‘나’의 모습을 무대 위에 그대로 시각화하려는 작업이 눈에 띤다.

‘고다운 프로젝트’의 <마마택시>는 영화하는 고운과 연극하는 다은이 만나 대본을 만드는 중에 나눈 대화들을 무대화한 공연이다.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모인 ‘꼬리달린 인간’의 <오늘의 연극>도 준비 과정 자체를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돈키호테 남극빙하’는 연극인으로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한 달 동안 스터디를 하면서 오고간 이야기를 정리한 다큐멘터리 연극 <돈키호테 남극빙하>를 준비하고 있다. 문래동의 요꼬스튜디오에서 12주 동안 매번 다른 창작물을 공연했던 ‘보여주는 사람들’은 그 과정 자체를 살려서 <한 여름 밤의 병신>을 월드컵경기장 워밍업실에서 선보인다. ‘모르는 사람들’은 죽음을 대하는 구성원의 태도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냥... 어쩌다... 우연히.>라는 제목처럼, 예술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극이다.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고자하는 이들의 욕망은 완결된 형식을 갖춘 결과물에 집중하기보다, 작업 과정에서 있었던 단편적인 사건을 나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가 ‘오늘’을 기록하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솔직한 태도다. 이런 공연을 만드는 팀은 대부분 공동창작 방식을 선택한다. 나의 이야기를 하기위해서 다른 이의 이야기도 듣고 고민해야 하는 시대임을 예술가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있다. 

  

 

전술 둘. 공간실험하기

프린지 사무국이 홍대에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으로 위치를 옮기면서 축제 공간도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경기장 건물 안쪽에 사무국이 위치하면서 실험해보고 싶은 장소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프린지와 뜻을 같이 하는 예술가들이 있다.

‘아해프로젝트’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각색하여 한국의 혼혈 축구 선수 오데로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공이오데로 part. 1>라는 제목을 붙이고, 스포츠 연극답게 실제 선수대기실에서 공연을 진행시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럴싸한 복합체’는 경기장 3층에 있는 철창과 계단을 그대로 활용해서 감옥과 재판장을 구현해 낸다. 희곡 <아우슈비츠>를 특별한 무대장치를 이용하지 않고도 실외극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택이다. ‘오뜨몽쉘’은 인조잔디가 깔린 지하 워밍업실에서 <잔디무대: 우연히 만나다>를 선보인다. 처음 이들은 란제리썸머라는 제목으로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공연하기를 원했었다. 공간에 맞게 스타일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작품의 특성은 워밍업실에서도 유효했다. 20대의 찌질한 삶을 오디션 형식으로 구성했다. ‘극단 광’은 잡스러울 정도로 다원적인 공연을 지향한다고 선언한다. 인형극 <꼴까닭>에서 닭이 오늘날 최강자로 군림하면서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는 것을 보여준다. 경기장 3층 둘레길에서 닭을 만나볼 수 있다. 전통창작그룹 ‘이끌림’의 <이끌림, 유랑하다>의 무대도 둘레길이다. 창작음악, 넌버벌 퍼포먼스, 창작 연희극을 모두 선보일 수 있는 다재다능한 집단이다.

 

 

최근 예술계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여 다시 바라보게 하는 방식을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행하고 있다. 첫째, 연극이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아 극장 밖으로 뛰쳐나오고, 퍼포먼스가 갤러리 안으로 들어가 전시의 의미를 공고히 해주는 경우다. 전자로는 사이트 스페시픽 퍼포먼스가 있고, 후자로는 아트선재예술센터의 몇몇 퍼포먼스가 있다. 둘째, 낡은 건물을 본래 기능과 달리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키는 경우다. 문화역서울284를 떠올려 볼 수 있겠다. 낡은 한옥을 개조하여 공연이나 전시를 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준비 중인 체부동의 가찌와 일반주택 안에 만든 극장인 부암동의 소소한 극장도 있다.

월드컵경기장 예술정복프로젝트 ‘공간실험무대’는 이 두 가지 사이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밖으로 나왔으면서도 어딘가로 들어 가고자하는 욕망과, 본래 기능과는 다른 건물을 공연장으로 누리고자 하는 소망 모두를 경기장에서 실험해 보는 것도 절대반역을 향한 새로운 전술이라 할 수 있겠다.

 

 

전술 셋. 관객-배우 되기

관객이 참여하는 공연은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공간실험무대에 속하는 공연들은 거의가 관객 참여형 공연이다. 전통적인 프로시니엄 무대에서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변을 구하는 형식으로 관객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 참여 방식이 어떻건 간에 공통점을 찾자면, 둘 모두 예술가의 의도에 따라 기본적인 구조가 어느 정도 구축되어 있다는 점이다. 급진적인 형식을 취하는 공연일지라도 결말 부분만 관객의 의도에 따라 바뀌는 정도이다. 프린지 페스티벌에는 이런 예상을 뛰어넘는 작품이 있다. 관객이 적극적으로 함께 동참해야만 반역을 꾀할 수 있다. ‘예술장돌뱅이’의 <문을 두드리면>과 ‘도토리’의 <개밥의 도토리>이다.

예술장돌뱅이는 경기장 4층에 있는 12개의 스카이 박스에서 공연을 진행한다. 12개 공간을 배우 12명이 차지하고 있다. 추첨을 통해 방이 배정되면 관객은 문을 두드리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방에 따라, 배우와 함께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시놉시스를 만들기도 한다. 예술장돌뱅이는 우연한 만남이 작가와 참여자 모두의 삶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관객은 공연과정 속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발화 주체가 된다. 공연이 끝난 후에 기억을 반추하여, 삶 속에서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내는 것까지가 관객의 역할이다. <개밥의 도토리>에서 관객은 네 번째 도토리가 된다. 다른 도토리 세 개는 배우의 몫이다. 세 배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나면, 관객 차례가 온다. 그가 누구냐에 따라서 공연의 내용과 분위기가 결정된다. 일상의 이야기들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하는 도토리의 무대장치는 가볍게 수다를 떨 수 있는 포창마차이다. 두 공연에서 관객은 적극적으로 역할을 창조해내는 배우가 된다.

관객을 배우가 직접 대면하는 공연에서 연출가의 역할은 기획자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배우는 스스로를 직접 연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경계선이 사라지니, 협업을 넘어 공동창작 방식으로 프로덕션이 운영된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 가는대로 작품 만들기는 쉬워 보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전략이기도 하다.

 

 

전술 넷. 각색하기

‘각색하기’가 지금까지 소개한 전략에 비해 무난해 보인다면, 이는 필자가 적절한 언어를 찾아내지 못한 탓이다. 작품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소설을 극화하는 작업이지만, 말과 몸이 거의 같은 비중으로 극을 이끌어가거나, 다양한 시청각 매체를 적극 활용하여 극 전개에 힘을 실어 준다. 말과 몸을 극 안에서 동등한 매체로 다루는 공연으로 ‘프로젝트414’의 <백의 그림자>와 ‘김란+박슬기+송성원’의 <사랑과 교육>이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를 섬세한 말과 몸짓으로 포착해낸 ‘나비플러스’의 <비둘기>도 눈여겨 볼만하다. ‘극단 청맥’은 해저 2만 리에 판타지 요소를 첨가한 <네모와 아로낙스 박사>를 무대에 올린다. 잠수함, 해저터널, 거대 오징어 등을 표현하기 위해 미디어아트적인 요소와 움직임을 강화했다. 다양한 오브제의 사용이 매력인 작품이다.

웹툰을 각색하여 연극으로 만드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극예술연구회 벽’은 네이버에 연재되는 웹툰 「S-line」을 각색하여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을 준비하고 있다. 각색은 아니지만,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라스 메나나스)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퍼포먼스로 만든 작품도 있다. 생활예술인 김이령과 종합예술인 박민선은 <라스 메니나스>를 통해 가식과 위선으로 둘러싸인 세상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각색자체가 반역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각색한 결과물을 무대에 구현하는 방법론에 새로움이 있다. 배우의 몸, 시청각 요소가 텍스트와 동등한 매체로서 무대 위에 존재할 때, 움직임, 소리, 이미지의 기능이 텍스트 전달을 넘어 공연예술장르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유한 자신의 물질성을 드러낸다. 각 매체의 특성이 최대한 드러나는 순간부터 기존의 것과 차별되는 지점이 생겨난다.

 

 

일상에서 반역을 꿈꾸는 이들도 있다. ‘하은혜’의 <달리는 독립책방>은 독립잡지를 자체 제작한 트레일러에 싣고 경기장과 홍대일대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본격로드다큐] 명랑탐색뎐>을 만든 ‘명랑여행자’는 마포의 한 마을을 여행하며 장소 곳곳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일상에서도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17세 프린지의 절대반역에 함께 동참 해준 노장들이 있다. 프린지가 독립예술제였을 때 참여했던 ‘어의실험극회’가 <좋은 사람들>로 다시 프린지를 찾았다. 20대부터 60대까지 배우 층이 탄탄한 극단이 되어 돌아왔다. 부천지역에 뿌리 내린 포크음악그룹 ‘낮은음자리’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프린지에 참여한다. 이번에는 드라마콘서트 <백 년 동안의 그녀>를 선보인다. 한 팀은 프린지 역사의 목격자로, 다른 한 팀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존재하며, 생활 속에서 예술을 지속해낸 시간의 힘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절대반역’이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이다. 학생이라서, 극단의 새내기라서, 또는 직장인이라서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보는 것, 이런 동료를 만나고 함께 하는 것이 반역의 시작이고, 마침내 전술이 된다. 

 

*사진제공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홈페이지 http://www.seoulfringefestival.net/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seoulfringe  

 

The 17th Seoul Fringe Festival

서울프린지페스티벌2014

■ 일정 2014. 8. 15 (금) ~ 8. 30 (토)

■ 장소 서울 홍대앞 창작공간 및 서울월드컵경기장 일대

■ 프로그램 개요

- 프로모션이벤트 <프리프린지>

- 독립예술가들의 자유참가작품 (90여팀)

- 철지난 예술 바캉스 <밤샘프린지>

- 서울월드컵경기장 예술정복프로젝트 <공간실험무대>

- 학술/포럼/창작워크숍

■ 규모 예술가 90여팀 / 스탭 150여명 / 관람객 10만여명

■ 주최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운영위원회

■ 주관_서울프린지네트워크

■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서울시, 서울문화재단,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폼텍웍스홀, 두산연강재단 두산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