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24. 19:35ㆍReview
동시대 미학, 우리가 얘기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5 포럼 <올모스트 프린지> 中
세션5 <동시대 미학: 새로운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읽혀지는가>
글_김솔지
‘동시대 미학’이라는 주제를 떠올리면 어떠한 생각이 드는가? 예술가, 기획자, 연출가, 감상자, 학자 등이 모여서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해보고, 얘기 나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이라고 예상하는가? 본인은 미학을 전공하고 있고, 세 명의 토론자를 직간접적으로 접하고 있던 터라, 이 포럼에 대한 예상과 기대 모두를 안고 자리했다. 최근에 나타나는 독특한 예술의 양상들, 예컨대 무차별적인 홍보보다는 온·오프라인에 관계된 이들을 대상으로 홍보하고 초대하는 소규모 지인 중심의 홍보방식, 전시와 페어가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결합하는 형태, 이미 새로운 양상이라고 하기에는 만연해진 창작자가 직접 꾸리는 소규모 예술 공간 등등. 이런 변화들을 대놓고 꺼내볼 수 있는 자리가 될 거라 기대했다. 그리고 이 양상들에서 우리가 공통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 그 전과 다르게 여겨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리플렛을 살피면서 포럼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리플렛에서도 세션5에 대해 “급변하고 있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동시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다양한 주제적 접근을 통해 새로운 예술은 어떻게 생산 유통되며 해석되는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자.”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세션5의 사회를 맡은 박해성(서울프린지네트워크 운영위원·상상만발극장 연출)은 동시대 미학에 대해 규정에서부터 시작하지 말고 현상에서부터 얘기해보자고 강조하며 포럼을 안내했다. 먼저 차지량(아티스트·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4비주얼디렉터), 홍태림(생활평론가·자유문화웹진 ‘크리틱-칼’ 발행인), 양효실(미학자) 패널 순서로 주제에 대한 발언을 하였다. 이후에는 참여한 모든 이들이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총 2시간가량 진행되었다.
▲“내가,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전달할까? 청년실업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창작자들을 생각했다.” (양효실)
세 명의 패널은 모두 지금의 상황 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청년실업문제와 결부된 창작자에 관한 고민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홍태림은 이 문제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예술가의 창작 가능한 최소생계비 등의 문제를 언급하였다. 차지량은 자신이 청년실업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시대의 작가 본인이었다. 양효실은 자신이 기록하는 수많은 예술적, 문화적 사건들 중에서 무엇보다 지금 시대의 작가들의 상황을 떠올렸고, 그 작가들을 청자로 삼아 이야기하였다.
패널로 자리한 이들은 지금 이 곳에서 보고 만들고 기록하고 있는, 즉 동시대 미학을 꾸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동시대에 미학이 있다면 말이다. 이들에게서 우리가 들어야할, 이들과 함께 생각해야할,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주제는 지금 접하고 있는 세계의, 지형의, 상황의 미학은 어떻게 형성되고 그 양상을 달리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먼저 마이크를 잡은 자칭 방송인 차지량은 느긋한 어조이기는 했으나 아주 압축적으로 자신이 이 자리에서 무엇을 얘기하고자 하는지 분명히 전달하였다. 만약, 포럼이 차지량 작가가 구두로 정리한 길지 않은 말에 대해서, (사회자 말대로) 드러난 많은 현상들을 가지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게 되었다면, 참석자들은 세밀한 입장차이라든지 실경험담을 주고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가 미리 정리했던 내용을 한 차례 흩트려 보고, 다시금 함께 직조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우리가 도달해야 할 어떤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대 미학에 대해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생각을 보충하고, 교정하고, 과제를 설정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논의를 했을 수 있다. 그만큼 그의 말에는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봐야 할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의 발언을 일부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동시대 미학에 대한 주제 접근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어요. 요즘에 무기력한 시즌이라, ‘동시대의 폐허를 어떻게 지나쳐야할까’ 이 정도에 포커스를 맞추고 얘기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예술은 어떻게 읽혀지고 만들어지는 걸까에 대해 얘기 나누는 건데, 동시대 미적 논의에 대해 얘기하는 자리에 초대받았지만 동시대에 예술이 필요한지, 제가 이 자리에, 오늘이라는 현재에 예술가로서 필요한지가 고민이 되었어요. 하고 싶은 얘기는 그 정도인 것 같아요." (차지량)
▲홍태림 생활비평가의 발제문中 일부
이어서, 홍태림은 미학의 앞 글자인 ‘미(美)’에 대해서 얘기하고자 하였다. 특히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서 였다. 간략히 얘기하면 다음과 같은 주장이었다. 각자의 상이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저마다의 경험들로 건강하게 만들고, 밀도 높게 축적하고 다지면서 서로가 서로의 기준을 상호참조하자. 미학의 용어로 바꿔보면 그는 각자가 갖는 아름다움에 대한 판정의 기준, 즉 저마다의 ‘취미판단’의 기준을 강조한 셈이다. 나치즘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절대적 미적 기준의 위험성을 근거로 삼았다.
하지만 본인의 부족한 이해력으로는 - 각자가 가진 건강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라는 언급과 발제문에 제시된 여섯 개의 사례가 어떻게 함께 얘기될 수 있는지 - 쉽사리 파악되지 않았다. 포럼에서는 <아트스타코리아>(Story on, 2014)에 출연한 차지량 작가가 계약 내용의 불합리함을 폭로한 일, 하지만 방송사나 관계자는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사례6’에 대해서만 얘기되었다. 그에게서 건강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미의 기준은 표면적인 차원에서 제시되고 있었다. 사실 그 안에는 그의 경험을 토대로 한 사고의 과정이, 내적 논리가 구성되어 있었던 것이고, 그 내용은 친절하지 않게도 사례로만 제시된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홍태림 생활비평가는 우리가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해 얘기하기는 쉽지 않을지라도, 그보다 불행의 기준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은 용이할 텐데도, 우리는 불행의 기준에 대해서 역시 합의하지 않고, 그렇기에 불행을 퇴치할만한 어떤 움직임에도 쉽사리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답을 주었다. 사실 홍태림 패널이 실천의 결여까지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듣는 이의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렇다면 패널 스스로 나이브하다고 느끼며 언급한 ‘건강함’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가 건강한 아름다움의 기준과 예술을 어떤 연관 안에서 보고 있는지 아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즉 사례를 통해서 보여준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밀도가 낮아져 골다공증 상태에 빠”진 상태, 그 결과하고 예술은 어떠한 관계라는 것일까? 사회 성원으로서 수많은 개인의 삶들이 대면한 ‘불행’에서 예술은 무엇일지,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어야 했다.
뿐만 아니라 홍태림 패널이 말한, 나의 이번 애인이 아름다운지, 그 영화가 저 영화보다 더 나은지에 대한 기준이 우리가 소위 ‘예술(작품)’을 대할 때의 기준과 같은 선상에 있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가 이러한 예를 든 이유가 단지 청자에게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이러한 간편한 예와 생활비평가로서 그가 접하는 비평의 대상들이 가진 아름다움의 기준 사이의 차이를 언급해줘야만 했다고 본다. 포럼에서 이러한 부분을 명확히 설명해주지 않고 표면적인 논리 구조를 가져와서 ‘이럽시다.’라는 주장을 할 경우 그의 주장은 아무런 힘이 없거나, 청자에게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
물론 그는 생활비평가여서, ‘일상’에서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은 일들이 일어나는 사회에 대해서 얘기하기를 원하며, 여기서 예술이 필수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위의 질문은 무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생활비평가인 동시에 전시 기획자로 활동한다. 또 저시 서문을 쓰고, 작품에 대한 긴 글을 쓰기도 하며, 무엇보다 많은 예술과 예술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위의 질문들이 무효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창작할 공간도 여유도 없기에 LA의 거리를 점거한 아스코(ASCO), 그들은 히피도 펑크도 아니었다. (출처 LAtimes.com 검색)
마지막으로 발언을 한 양효실 미학자는 조금 더 긴 시간을 할애하였다. 그는 70년대 예술 운동 그룹 둘을 소개하였다. 하나는 EAST L.A에 살던 멕시코계 미국시민 ‘치카노(Chicano)’ 중에 20대 초반이었던 4명의 친구들이 만든 ‘아스코(ASCO, 스페인어로 ‘구토’라는 뜻)‘라는 그룹이다. 다른 하나는 68혁명의 영향이 77년까지 미친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진 ’M.I(메트로폴리탄 인디언)‘라는 그룹이다. 그가 했던 이야기들을 메모하고, 녹음하였지만 여기서 그 사실 하나하나를 굳이 전달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내용들을 축약해서 서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나열적인 설명 방식 사이사이에 터져 나온 욕 한마디, 표정, 어조를 생략한 채로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렵다.
‘후기’라는 글 안에서 전달의 어려움은 그렇다고 치고, 포럼장에서 양효실의 아스코이야기, M.I이야기는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갑자기 들은 70년대 맥시코계 미국인과 이탈리아의 메트로폴리탄 인디언의 이야기는 얼마나 이해될 수 있었을까? 본인이 생각하기로 포럼에 참여한 사람 대부분은 아스코와 M.I에 대해서 온전히 머리에 그림을 그리기도, 어떠한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본인은 미학자이자 비평가인 그가 우리에게 건넬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극소의 사례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양효실 패널이 말했듯이, 노조간부가 된 좌파, 즉 관료화된 좌파가 학생들에게 에이젠슈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을 보여주면서 ‘혁명하라, 희생하라’ 강요하자, 예술가들은 혁명은커녕 도리어 그 문구를 조롱하는데 썼다. 강요받은 불합리함을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저항한 것이다. 이미 젊지 않아서 청년세대들의 고민을 자기 문제로 가져올 수 없는 양효실은, 대신 노조간부가 된 좌파 역할만은 절대적으로 거부했다. 그는 미학자로서의 위치도 어느 정도 버리고 개인으로 앉아 있기를 바랐다. 그렇기 때문에 “상록수 어법”으로 가르치려 드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그에게 남은 것은 극한의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했던 예술 운동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뿐이다.
본인은 그 와중에 그가 간접적이고 매개적인 방식으로 미세하고 넓은 주장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들은 이는, 이를테면 ‘지금’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진지함과 같은 태도라기보다는 초현실주의적으로, 동성애적 코드를 가지고, 조롱 혹은 아이러니로서 대면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상황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는 굳이 어떤 주장을 만들어보자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양효실은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며 ‘비관주의를 조직하는 일(Organisierung des Pessimismus)’만을 주장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는 왜 두 개의 예술 운동에 대하여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이야기했을까. 우리는 이에 대해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착시로 가득한 폐허에서 ‘나’는 도통 무엇인가가 불가능하다. 불가능을 인정하는 일, 그리고 거기서 가능한 것들을 편재하는 일은 어떤가.
이제 포럼 전반에 대해 서술하고 글을 마치려 한다. 사회자가 말한 바대로, 이번 포럼은 미리 대본을 짜놓고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포럼에 참여한 이들, 특히 사회자와 패널들 사이에 합의되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았다. 아주 다양한 맥락에서 읽을 수 있는 ‘동시대 미학’이라는 주제에 대해 그 날 특히 얘기할 것은 대략 무엇이 되겠는지 한 차례 ‘상호참조’ 되었다면 낯선 이들 사이에서도 조금 더 익숙한 이야기가 오갔을 수도 있겠다.
▲올모스트 프린지 세션5 "동시대 미학" 의 패널과 청중들의 모습.
진행에 대해서 조금 더 덧붙이면, 사회자가 패널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관점과 맥락에 대해서 낯설어 하면서 진행이 어색했던 점이나, ‘동시대’에 대해서 르네상스와 같은 다른 시대의 동시대까지 범위를 확장할 수 있다고 한 점 등을 비추어볼 때 준비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참석자에게 이날 포럼이 프린지네트워크의 그간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열렸다는 점이 의식되었다면, 자리한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더 용이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독립예술제’에서 시작한 프린지가 18년에 이르기까지 활동을 이어오면서 기획한 포럼으로서 ‘동시대 미학’을 염두에 뒀다면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본인은 이번 자리에서 동시대 미학에 대하여 요즘 예술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읽히는지 얘기할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포럼장에서는 기대한 내용이 번개같이 지나가는가 하면, ‘동시대’, ‘미학’, ‘예술’에 대해서 서로가 아주 다른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논의 맥락이 다양한 방식으로 뻗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점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생각해보면 ‘동시대 미학’에 대해 합의된 맥락 안에서 의견을 나누는 일이 오히려 비현실적이고, 불가능하고, 더욱 의미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이때, 단지 서로 다른 이해에서 그치지 않고, 뒤집히거나 왜곡될 위험의 가능성 역시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둬야 할 것이다. 못다 가져온 차지량 작가의 발언을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의 예술은 소개할 대상인 관객을 설정하지 않거나, 설정하지 못하고, 관객을 모르고, 어떤 주변을 맴돌거나 예술가와 예술 관계자 및 비평가, 지인 등등과의 불필요한 관계를 형성하고 공기관의 일정과 공공기관의 수혜 및 기업의 전략적 상품으로 소비됨을 불허하거나, 쫓거나, 열등감 폭발하거나 무기력 하거나 하는 것 같아요. 그 복잡함 속에서 시대는 날로 산만해지고, 오래된 언어일 수 있는 예술이라는 지난 가치는 현재의 가치와 동시적으로 몰두를 하면서도 혼란을 겪는 것 같아요.”
필자_김솔지 소개_예술과 미학 사이를 오가며 이 사이에 놓인 것들을 말하고자 합니다 |
▲2015 서울프린지 페스티벌 <올모스트 프린지> 프로그램, 올해 축제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좌담회 방식으로 그 시작을 알렸다. 올모스트 시리즈는 본격적인 여름 축제기간에도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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