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불행>의 시작에 대하여

2015. 12. 16. 11:55Review

 

<불행>의 시작에 대하여

김민정 연출, 무브먼트 당당

남산예술센터 2015.9.10-9.11

 

글_최수진

 

극단 <무브먼트 당당>

극단 무브먼트 당당의 공연 <불행>은 기존의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지는 공간, 시간성에 대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대다수 연극들이 무대와 객석의 분리를 당연한 전제로 여기며 공연을 이끌어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분리된 공간 안에서 관객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무대가 보여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하지만 <불행>은 이 모든 개념을 뒤집어 새로운 공연의 형식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관객의 모습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 나는 이 공연이 보여주고 있는 그 새로운 '시작'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 <불행>의 시작

공연 매표소에 티켓을 찾으러 가면 한 장의 종이를 티켓과 함께 준다. 관람 안내가 자세히 적혀있는 이 안내문은 조금 특이한 사항들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본 공연은 각각의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장면이 진행됩니다. 관객 여러분은 원하는 공간에 머무르거나 이동하며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이 극을 어떻게 보면 되는지, 말 그대로 관람 방법을 안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동시다발적그리고 이동하며 관람할 수 있다는 익숙하지 않은 문구는 이 공연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극의 형식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독특한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10분 이상 한 장소에서 머물기를 권장합니다.’, ‘한 인물을 따라 공연을 관람하셔도 좋습니다.’와 같이 직접 공연을 보지 않고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장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공연을 보기 위한 방법을 숙지함으로써 관객은 준비된 상태로 극장에 들어서게 된다. <불행>의 시작은 티켓과 함께 안내문을 받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관객 입장은 극장 밖에서부터 시작한다. 극장 밖에서 바로 무대로 통하는 문을 들어서면 극 중의 무대 장치들이 극장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기존의 무대와 관객석으로 분리되었던 경계는 사라지고 극장의 모든 곳이 무대가 되기도 하고 동시에 객석이 되기도 한다. 극은 안내문에 적혀있던 대로 관객이 공간을 둘러볼 수 있도록 시간을 제공한다. 출입구 가장 가까이에 불규칙적으로 쌓여진 의자가 보인다. 의자는 꽤 높게 쌓여있는데, 이 끝을 따라가 보면 무대 2층에 바(Bar)로 보이는 공간이 있다. 그 옆의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을 따라오다 보면 기이하게 세워져있는 침대가 보인다. 조금 더 무대 중앙으로 오면 비닐 막이 쌓여진 부스가 놓여있다. 그 안을 살펴보면 바닥에는 흙이 뿌려져 있는데 그 위에 인형인지 사람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엄청난 크기의 어떤 물체가 누워있다. 바로 그 옆의 비교적 작은 비닐 부스에는 세 명 정도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 그리고 이 앞으로는 아슬아슬하게 박스가 쌓여있다. 그 크기가 꽤 커서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바로 뒤의 비닐부스는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본래 객석으로 사용되는 공간까지 살펴보면, 곳곳에 컵이나 텐트, 철제 캐비닛, 상자와 같은 대소도구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공간 안의 대다수의 인물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있다.

극 중 공간을 형성하고 있는 의자나 침대, 박스와 같은 소품들을 살펴보면 그 공간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볼 수 없다. 각각의 공간들이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과 그 안에 자리한 인물들은 전체로서 하나의 견고한 미장센을 구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쓰러지기 직전의 위태로움, 끝이 없는 외로움과 고독함, 그리고 무기력함의 분위기를 형성해 극장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각각의 공간 속에 역사가 담겨있고, 그것이 느껴지는 듯하다. 이제 관객이 집중해야 할 것은 공간들이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 <불행>의 크기

공연이 시작될 것 같은 지점에서, 관객들은 극장 안에서 사용하는 본래의 객석을 찾아 하나둘 착석하기 시작한다. 공간을 둘러보던 관객들이 줄어들고 거의 모두가 객석에 앉았을 때, 한 남자가 관객들 사이를 지나 거대하게 쌓인 박스 앞으로 향한다. 관객들은 평소와 같이 그 인물의 움직임에 숨죽여 집중하고 사건이 어떻게 발생하고 진행될 것인지 지켜볼 준비를 한다. 하지만 공연은 곧 그 남자에게로 향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동시다발적이라는 안내문의 표현처럼 곳곳의 공간에서 극 중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다. 관객들은 다시 일어나 극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공간을 찾는다.

공간 속 인물들은 하나 둘 동물의 탈을 벗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게임에 집중하는 남자, 높게 쌓인 의자를 거침없이 올라가는 남자, 소변기를 들고 다니며 아무 곳에서나 볼일을 보는 여자, 자신만의 음악에 빠져 격렬하게 춤을 추는 남자 등 공연 속 이야기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사건의 질감과 속도 또한 사건마다 달라서 어떤 사건은 매우 격렬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어떤 사건의 경우 아주 느리게 진행되기도 한다. 또 둘 이상의 인물이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 사건도 있고, 한 인물이 사건 전체를 이끌어나가기도 한다.

이처럼 이 극은 공간의 개수만큼,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의 수만큼 새로운 사건이 생겨난다. 하지만 각 사건의 크기는 그것이 진행되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 각 공간에 자리한 관객의 수의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는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관객이 하나의 공간에 집중하다가도 다른 공간과 사건에 대한 호기심으로 인해 결국 다른 곳으로 자리를 이동하면 이전의 공간은 그 크기가 줄어들게 된다. 그리고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수의 관객들의 이목을 받는 큰 공간이 형성되기도 한다. 이처럼 극의 공간과 사건은 연계성 없이 진행되지만 관객의 수에 따라 그 크기가 정해진다. 때문에 극이 진행되는 내내 계속해서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다 소멸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 <불행>의 끝

<불행>은 극이 진행되어 나갈수록 처음의 그 새로움과 신선함이 주었던 힘을 잃어간다. 극 안의 모든 사건이 불행한 감정에 기대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했던 한 때에 무언가를 상실하기 시작하면서 슬픔을 겪고, 분노하고 좌절하는 감정의 일대기가 단편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 어떤 공간들은 사건의 서사구조 없이 불행하게 느껴지는 상황 그 자체를 그려내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모든 극 안의 표현방식이 불행이 주는 표면적인 느낌에만 치우쳐 부정적인 상황이나 감정을 드러내는데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각 공간들은 그들의 역사를 드러내지 못한 채, 단순히 극이 전개되는 무대 장치로 그리고 온갖 불행함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연은 주목할 만 한 '시작'을 지닌 연극이었다.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왔던 무대와 객석의 개념을 벗어나, 극이 진행되는 장소로서 극장 전체를 사용한 시도가 그러했다. 특히 공연을 보기 위해 관객이 스스로 자신의 공간을 찾아 나서도록 한 설정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관객이 직접적으로 극에 개입하지 않아도 어떤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에 따라 사건의 크기가 달라지도록 한 시도는 능동적인 관객의 개념을 더욱더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연극이라는 틀 안에서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시킬 수 있는 공연이 또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들의 시도는 신선했고 낯선 것이기도 했다. 이 시도가 깊이 있는 주제적 성찰을 담아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나는 이 공연의 끝이 또 다른 시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무브먼트 당당의 연극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과 그들에 행보에 기대를 걸어 보고 싶다.

 

*사진출처_베세토연극제 홈페이지 http://www.besetofestival.com/#!festival/cjg9
남산예술센터 홈페이지 http://www.nsartscenter.or.kr/Home/Perf/PerfDetail.aspx?IdPerf=1052

필자_최수진

소개_노래부르기를 좋아하는 예민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