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프린지페스티벌(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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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김정현 <길> ‘벽돌 가면 씨, 당신의 몸은 무엇을 찾아서 길을 나섰던 것입니까?’
김정현 글_이현수 검은 고무바닥의 무대, 천장에서 길게 내려온 백열전구가 선비의 갓을 쓰고 있다. 나는 포스트 극장의 딱딱한 의자에 기대어 앉아 공연을 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 객석 구석에서 공연자 등장. 의자를 붙잡고, 의자를 밀면서 백열전구 쪽으로 간다. 공연자는 척추가 휘었고 얼굴에는 벽돌 같이 붉은 가면을 썼다. 휜 척추, 벽돌 가면. 고무바닥의 저항. 벽돌 가면은 의자를 밀어 고무바닥의 저항을 밀며 앞으로 나아간다. 전등 아래 의자를 놓고 객석을 등지고 앉은 벽돌 가면. 숨을 쉰다. 입은 가면 안에서 숨을 쉬고 몸은 바깥을 향해 숨을 쉰다. 벽돌 가면은 의자에서 천천히 엉덩이를 떼어 사선으로 걸어 나아간다. 의자로부터 멀어질수록 척추가 서서히 펴진다. 다 펴진 척추가 직립하여 움직인다. 자..
2010.08.25 -
[리뷰] <플러스 원> 새로운 변수를 찾아서
플러스 원 - 새로운 변수를 찾아서 글_조원석 기술과 예술이 만나면 기예가 되는 걸까? 아닐 것이다. 기예는 예술로 승화된 기술을 말한다. 그렇다면 기술은 무엇을 만나야 예술로 승화되는 걸까?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콘텐츠 개발 시범사업팀의 ‘플러스 원’은 서로 다른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시도한 공연이다. 과거의 기예가 오랜 세월을 걸쳐 몸에 배인 숙련된 기술의 경지였다면, 지금의 기예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과학 기술에 대한 창조적인 활용이다. 과거의 기예가 예술로 승화할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세월을 걸친 사물에 대한 이해 때문이다. 흙을 다루면서 흙을 이해하게 되고, 자연의 빛을 다루면서 그 빛을 이해하고, 그래서 탄생한 것이 고려청자이고, 인상파의 그림이다. 반면, 오늘..
2010.08.23 -
[리뷰] 쌀롱드싸튀 <보트하우스>-사랑의 현실
쌀롱드싸튀 사랑의 현실 글_조원석 그림이든, 문학이든, 연극이든, 영화든 예술 작품은 나에겐 하나의 화두다. 화두는 단어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단어들을 통해 세상을 해부하는 것이 리뷰를 쓰는 고통이고 즐거움이다. 쌀롱 드 싸튀의 ‘보트하우스’도 일종의 해부 도구라고 할 수 있다. 해부 도구는 날카로울 수록 좋다. 간혹 둔한 해부 도구를 만나면 그만큼 세상을 해부하기가 힘들다. 다행이다. ‘보트하우스’는 날카로운 축에 속한다. 도구에 해당하는 단어들은 ‘상처’, ‘사랑’이다. 이 연극은 미국으로 망명한 유태인계 독일인 회계사 매트와 공장주의 딸로 공주처럼 살아온 간호사 샐리의 사랑 이야기다. 이 두 사람의 신분은 이 연극의 시대 배경을 드러내는 역할 뿐만 아니라 이 둘 앞에 펼쳐질 사랑의 모습도 암시..
2010.08.18 -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 우리는 오늘도 '연극을'한다
“보는 연극에서 하는 연극으로” 우리는 오늘도 ‘연극을’ 한다 글_생연네 2기 남궁소담 2010년 8월 20일, 연극문화운동단체 ‘생활연극네트워크’가 공동창작극 로 제13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참가한다. #1. 수상한 문자가 도착하다 2010년 2월 8일. 생활연극네트워크(이하 ‘생연네’)로부터 ‘수상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등장인물을 만들어올 것. ①이름 ②나이 ③직업 ④성격 ⑤특이사항을 고민하기.”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공연예술가들의 전유물로 전락한 연극을 본래의 주인인 대중들(관객)에게 되돌려주자는 취지의 연극문화운동을 하고 있는 생연네에서는 종종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프로젝트 공연을 시작하곤 한다. 모두가 대본을 쓰고, 모두가 배우나 스탭이 되어 공동으로 연극을 만든다. 우리는 회사원이나 ..
2010.08.16 -
[고재경의 마임워크숍]-20. "5년 후에는 누가 거리에 서있을지도 모른다."
고재경의 마임 워크샵 - 스무 번째 기록 "우리의 수업은 무언가를 발견하는 관점에 대한 수업이었다. 그것이 내가 얻은 가장 귀한 것이다" 글| 강말금 * 들어가는 말 오늘 수업에서는 우리가 처음 만나서 했던 놀이 - 제자리 준비 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를 다시 했다. 별 생각 없이 만났던 놀이에 많은 비밀이 숨어있었음을 재확인했다. 이것이 다예요, 하고 선생님은 말했다. 마지막 시간인 만큼, 내가 알아듣고 행할 수 있는 것, 알아들을 듯 말 듯 한 것, 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행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그러나 마지막 시간의 포인트는, 하나하나의 기술이 아닌 ‘호흡’이다. 1. 제자리 - 준비 - 땅 - 출발 - 달리기(슬로우) - 도착 우리는 첫 시간에, 100미터 달리기의 제자리..
2010.08.10 -
[리뷰] 1/12, 유다 -쓰러져가는 사람, 가롯 유다에게 귀를 기울이다
글 개쏭 1/12, 유다 -쓰러져가는 사람, 가롯 유다에게 귀를 기울이다 ‘제 이름이 뭐냐고요?’ 유다...입니다. 예수에 실망했던 유다입니다. 아니, 예수를 질투했던 유다입니다. 아니, 예수를 증오했던 유다입니다. 아니...예수를 사랑했던 유다입니다. 아니, ‘가롯 유다. 장사꾼 유다입니다.’ 이 연극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인 가롯 유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다자이 오사무의 ‘직소’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은 다자이 특유의 자괴적 시선이 시각화되어 드러난다. 신약성서에서 유다는 세속적이며 돈계산이 밝고, 결국 예수를 팔아넘기는 사람으로 나온다. 그 어디에도 유다가 왜 예수를 팔아넘기게 됐는지에 대한 해명은 없이, 그저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게 나았을’ 죄인으로 표현된다. 오랜 시간동안 구, 신교를 포..
2009.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