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6. 6. 15:08ㆍReview
누수라는 도돌이표 속에서
<누수공사>
작_윤성호 / 연출_이강욱
글_권혜린
<2017 차세대 연극인스튜디오 쇼케이스> 작품 중 하나인 <누수공사>는 일상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누수라는 현상을 통해 부조리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인물들의 얽힘과 어긋남을 보여주고 있다. 인물들의 말이 허공에서 부딪치면서 난장(亂場)을 이루는 것을 통해 대화와 소통이 불가능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분위기가 어둡고 진지할 것 같은 첫인상과 달리 개성 있는 인물들의 연기가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면서도 ‘누수’의 확장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방해꾼들
연극은 시작부터 불길하다. 조명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면서 끊임없이 깜박거리는 동안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남자는 마감에 쫓기고 있는데, ‘운명교향곡’ 벨 소리로 울리는 비장한 전화가 남자를 독촉한다. 남자는 작업을 끝내기도 전에 탈진한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일에만 집중하기에도 바쁜 와중에 아랫집에서 누수가 발생해 남자의 집에서 누수공사를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온다. 남자는 누수공사를 하는 날짜를 어떻게든 지연하려고 하지만 늘 그렇듯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곧 집주인, 누수공사를 하는 기술자와 조수, 아랫집 남자, 낯선 방문객, 옛 애인까지 수많은 방해꾼이 나타난다. 이들은 남자를 위한다는 이유로 남자의 일상에 침입한다. 무대 중앙에 있는 문이 벌컥벌컥 열릴 때마다 그 문을 등지고 책상에 앉아 있던 남자는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아랫집에 누수가 일어났다는 이유로 남자의 집은 ‘내 집인데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문제적인 공간이 되는 것이다. 남자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작업해야 하는데도 옆에서는 누수 공사를 진행하고, 집주인은 바닥의 장판을 손본답시고 남자의 일을 방해한다. 남자의 얼굴이 울상이 되어 갈수록 상황은 해결되기는커녕 더욱 악화된다. 문제는 이러한 방해꾼들이 스스로를 방해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남자를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어긋남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말들의 난장(亂場)
이렇게 남자의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결국 남자가 실패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 때, 연극이 무겁고 진지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때때로 관객들의 웃음을 이끌어낸다. 인물들의 개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개성은 인물들의 반복적인 말에 반영된다. 집주인은 이 집이 잘 지은 집이라고 끝없이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손재주를 자랑하기도 하고, 남자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기도 한다. 기술자는 조수를 구박하면서 추상적인 단어들을 남발하며 누수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찾고자 한다. 아랫집 남자는 운이 없다면서 끊임없이 자기비하를 한다. 게다가 다른 사람과의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남자를 찾아온 옛 애인은 과거에 남자가 했던 말을 기억해 내라고 반복해서 재촉한다. 최대한 좋게 말해야 관심이고 보통은 ‘오지랖’이라고 지칭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발생하자 남자는 점점 패닉 상태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화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유일하게 자신의 말을 내세우지 않고 가장 조용한 조수조차 자신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말을 반복한다. 그나마 말수가 적은 조수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기 때문에 이 역시 대화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대화의 기본이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이라고 할 때, 상대방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엇갈리는 말들은 그야말로 난장(亂場)이 되어 한데 뒤섞인다.
이렇게 반복들이 부딪치면서 불협화음을 낼 때, 이는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면서 입장들이 충돌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조용히 일하고 싶다는 남자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듯이 방해꾼들이 남자에게 하는 요구들 또한 튕겨 나간다. 옛 애인은 남자에게서 듣고 싶은 말을 들을 수 없고, 집주인은 남자에게서 감사 인사를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랫집 남자는 자신이 호의를 베풀어 시킨 음식들을 남자가 먹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 기술자와 조수가 아무리 밖에서 파이팅을 외치며 공사를 성공시키려고 해도 그들이 주장하는, 즉 ‘문제를 종합적으로 봐야 하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을 남자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찬송가를 배경으로 들어오는 낯선 방문객은 아예 입장조차 거절당한다. 자, 이렇게 이 작품은 말들이 뒤죽박죽 섞인 채 끝나 버릴 것인가?
떨어지는 삶
<누수공사>는 말들이 섞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더 극한으로 밀고 나가 부조리한 상황을 제대로 보여 준다. 이는 단순히 집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누수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로서 가시화되기는 하지만, 사실 더 근본적으로 누수되는 것은 인물들의 내부이다. 누수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인물 그 자체라는 뜻이다. 누수를 철저히 외부의 일로 취급하는 남자의 내부에서도 불안이 누수되어 남자를 더욱 막다른 곳으로 몰고 갔을지도 모른다. 집주인의 폭력적인 선의 또한 완벽하지 않다. 본인이 스스로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고 내세워도 상대방이 불편해한다면 좋은 의도가 새어나가는 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막무가내로 밀고 나가려는 인물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는 집주인의 말로 포장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상대방에게는 닿지 않은 진심이 증발된 잔여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들이 철저하게 자신의 일에 충실할수록 상황은 처절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누수공사가 잘못되어 암전이 되는 바람에 남자가 작업했던 자료들은 날아가 버린다. 남자가 작업물을 미리 저장하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의 누수겠지만, 그전에 남자는 이미 작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최대한의 절망을 맛보았었다. 심지어 남자의 전화를 대신 받은 조수와 옛 애인 때문에 일은 완전히 끝장나 버리고, 겨우 전기가 들어오기는 하지만 누수 지점을 발견하기는커녕 기술자들이 공사를 포기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쯤 되자 남자는 폭발하면서 “내 집에서 다 나가!”라고 외친다. 이제는 남자의 집이 아니라 남자의 인생에서 누수공사를 해야 할 판이다.
그때 기적적으로 아랫집의 누수가 멈춘다. 그리고 동시에 남자의 집에서 누수가 시작된다. 폭우라도 쏟아지는 것처럼 여기저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충격을 준다. 사람들은 남자의 집에서 누수가 시작되자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윗집으로 몰려간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똑같은 문제가 다시 시작되었을 뿐이다. 남자는 사람들이 했던 말을 반복하면서(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등) 사람들을 붙잡으려고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한다. 이제 남자의 집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남은 건 누수라는 도돌이표뿐이다.
불가능한 구원
남자의 눈물처럼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홀로 된 남자가 멍하니 서 있을 때, 초반에 찬송가를 배경으로 등장했던 낯선 방문객이 다시 나타난다. 보통 이러한 방문객은 교회에서 전도하기 위해 나왔다고 생각할 것이다. 방문객은 그러한 이미지에 걸맞게 온화한 목소리로 “폭풍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젖은 남자에게 외롭냐고 묻는다. 그리고 세상의 누수에 대해 설교하면서 물이 새는 것을 잊어버리고 물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이는 모든 것을 잃은 듯한 남자를 구원하려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그 방문객이 누수되고 있는 집에서 남자에게 우산을 팔았던 것이다. 방문객은 바로 우산 장수였다. 그러나 우산으로 누수를 막을 수는 없다. 잠깐 피할 수만 있을 뿐이다. 비를 안 맞는다고 해서 비가 안 오는 것은 아니다. 조수가 누수의 사전적인 의미를 이야기하지만 그 말 또한 공허했던 것처럼, 누수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다.
이렇게 구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남자에게는 끝없이 떨어지는 일만 있을 뿐이다. 우산 장수마저 자신도 힘이 없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한다면서 위층으로 가버린다. 결국 남은 것은 남자의 불행한 운명을 예고하는 ‘운명교향곡’의 전화벨 소리뿐이다. 처음에 남자가 혼자 작업을 하고 있을 때도 남자는 충만한 상태가 아니라 어딘가 결핍된 듯한 불안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러니, ‘이미 누수된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힘겹게 지탱하던 남자가 마지막에 누수된 집에서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모습은 ‘누수’라는 말 그 자체로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웃음기가 사라진 채 안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면 누수는 이미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무한한 도돌이표 같은, 혹은 악몽 같은 누수가.
*사진제공_국립극단 차세대 연극인스튜디오
필자_ 권혜린 소개_ 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 |
[쇼케이스] 누수공사 장소_소극장 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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