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26. 07:47ㆍReview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조각배들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글_김신록
● 조각배
작곡가 이상욱은 관객보다 먼저 문을 열고 사라졌다. 관객들의 무질서한 박수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4월 16일 일요일 저녁 7시, 문래동 4가 7-2번지 지하 1층의 간판 없는 카페인지 바인지 에서 공연된 연주회인지 작곡발표회인지는 1시간 반이 넘도록 이어지다 짧은 엔딩 곡 연주와 함께 무심하게 끝났다. 막을 내리거나 조명이 꺼지지도 않았고 작곡가들에 대한 개별 소개나 연주자들의 당당한 커튼콜이나 관객의 박수 ‘갈채’ 같은, 공연의 끝을 알리는 어떤 제대로 된 클리셰도 없는, 말 그대로 무심한 끝이었다. 심지어 의도된 무심함도 아닌, 그냥 무심함, 혹은 맥없음, 혹은 어리둥절함.
주섬주섬 밖으로 나와 보니 이번 공연의 기획자이자 작곡자이자 연주자였던 이상욱이 문래동의 어두운 골목 끝을 서성이며 마른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상욱씨 잘 봤어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엉망이었죠....특히 제 곡이 완전히 밀리고 엉망이 돼서....그냥 손 놔버렸어요.”
“흥미로웠어요.”
“네, 뭐.......엉망이죠, 뭐.....엉망이에요...”
● 조각배들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는 강대명, 손세민, 이상욱, 이용범, 이의경, 이택호, 임찬희 등 7인의 작곡가의 작품을 서로, 혹은 동료 연주자의 도움을 빌어 연주하는, 일종의 작곡 발표회로서의 공연이다. 이 공연은 총 두 개의 버전으로 기획되었는데, 첫 번째 버전은 3월 25일 플랫폼창동61에서 ‘피아노를 중심으로’라는 부제로, 두 번째 버전은 약 한 달 뒤 문래동의 J’s CAVE에서 ‘첼로와 리코더를 중심으로’라는 부제로 공연되었다.
원래 3월 공연만을 염두 해 두고 있다가 작품 마무리와 연주 준비가 미비하여 도저히 해당 날짜에 준비한 작품들을 발표할 수가 없어, 첫 무대에는 작곡가들의 과거 작품들을 시기와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모아 올렸고, 두 번째 무대에는 모두 최근에 완성한 곡들만을 모아 올렸다고 한다. 공연 당사자들은 애를 끓였을 이 사고 아닌 사고 덕분에 두 공연을 모두 본 관객들은 작곡가들이 20대 언저리에서부터 10여년의 세월을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통시적으로 엿볼 수 있고, 두 번째 공연만 본 관객들은 제목 그대로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이 어떤 사유와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지를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 되었다.
● 어두운 밤바다
총 7인의 작곡가의 최신작 7편으로 구성된 이번 무대는 내게 즉각적으로 아방가르드, 포스트 모던, 해체, 존 케이지 등의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곧 ‘이 모든 단어들은 현대인들에게 이미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단어는 식상하지만 경험으로서는 아직 낯선 것은 아닐까’ ‘작곡가들은 아직 존 케이지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우리는 왜 해체 하는가’ ‘왜 라는 질문은 여전히 실존적이지 못한가’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란 무엇일까’, ‘이 시대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들로 이어졌다.
음악적인 전문지식이 없는 탓에 개별 작품에 대한 세세한 이해와 비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품의 주제보다 행위자의 맥락을 드러내는 공연의 제목, 인디적인 느낌의 문래동과 클래식 악기의 믹스 앤 매치,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맥락 없는 소품들-소주병, 구둣솔, 호일, 밥그릇, 목장갑 등, 피아노 옆에 놓여있던 노트북과 컨트롤러, 그밖에 의도와 의도 아닌 것이 어수선하게 섞여있던 모든 기획 조건과 공간 환경이 이미 소위 ‘포스트모던’했다.
연주된 곡들은 하나같이 서사를 해체한 듯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진행을 거부하거나, 각자의 악기가 내는 ‘좋은 소리’를 거부하고 소음을 유발시키는 방식으로 연주되거나, 컨트롤러를 이용하여 소리의 볼륨과 울림과 질감을 변형시키거나, 아예 첼로 현에 호일을 감아 활로 켜고, 피아노 줄을 구둣솔로 문지르고, 리코더 몸통을 불고, 빈 소주병을 부는 식의 파격으로 치닫거나,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조합하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은 내게 몇 년 전 유투브에서 봤던 ‘존 케이지’의 “Water Walk”이라는 흑백의 비디오 클립을 떠오르게 했는데, 해당 영상에서 존 케이지는 피아노, 욕조, 압력밥솥, 믹서기 등 악기와 일상용품을 수평적으로 배치하고 모든 것이 악기가 될 수 있고, 모든 소리가 음악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한다.
‘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아방가르드’를 지향하는가. 그들이 지향하는 아방가르드는 존 케이지의 세계에서 얼마만큼 멀어져 있는가, 혹은 여전히 그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나는 왜 이 공연을 보고 ‘이런 시도는 이미 올드 하지 않은가’라는 혐의를 품는가. 내가 이런 ‘아방가르드 한’ 음악 공연을 ‘실제로’ 본 건 거의 처음인데도 말이다. 나의 지식은 이렇게 진보적인데 나의 경험은 어쩌면 이리도 보수적인가. 앞서가는 의식과 여전히 구시대적인 실천이 혼재하는 시대 속에 현대는 너무 긴 시간을 한꺼번에 포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시대에 순수 예술은, 그리고 순수 예술가는 무엇을 지향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상욱은 공연의 기획의도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현재 서른 언저리의 세대는 기술과 매체의 끊임없는 혁신 속에서 성장하였다. 음악을 시작한 이래 지난 10여 년 동안 음악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방식은 급속하게 변했다. 과거에는 해외에서도 구경하기 힘들었던 자료들이 클릭 몇 번으로 쏟아진다. 풍요로운 정보 속에서 안목은 높아지고 테크닉은 조숙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많은 조급함과 과시를 부추기기도 하였다. 이들에게 기성의 권위는 너무나 후진적이기에 절망한다. 오늘날 습득해야 할 것은 너무나 다양하고 방대하며, 방황하는 자기 자신에게 더욱 절망한다. 힘든 수련과 검증의 과정을 이어가더라도 관심과 보상은 늘 보잘 것 없고, 그러한 결과물의 예술적 유의미함을 전혀 확신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되었다.....”
●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조각배들
어두운 밤바다 같은 막막한 환경 속에서도 시도는 계속된다. 그것이 현실적인 자립을 위한 것이든, 예술가로서의 생존을 위한 것이든, 미학적인 탐구를 위한 것이든, 그들은 안주하지 않고 돌파를 꿈꾼다. 20대처럼 무모하지도 40대처럼 안정적이지도 않은 위태로운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그래서 서로를 궁금해 했는지도 모른다.
문래동의 좁은 무대 위에서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연주해주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었다.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혹은 자신의 미학으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오선지 대신 ‘빈 소주병을 3초간 분다’라는 지령이 적혀있는 이상한 악보 아닌 악보를 받아들고, 목장갑을 끼고, 소주병을 불고, 구두 솔로 피아노 스트링을 긁는, 첼로 받침대를 활로 켜고, 리코더 몸통을 부는 작곡가와 연주자들. 진지하고도 어설픈 그 연주의 과정이 내게는, 서로의 세계를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는, 누군가에게 어떻게든 가 닿아보려는 절박함으로 다가왔다.
손세민, 이상욱 두 명의 작곡가가 임찬희 작곡가의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를 연주한다고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붙어 서서 각자 긴 악보를 펼쳐 놓고는 그랜드 피아노 스트링 위에 밥그릇을 올렸다, 플레잉 드럼을 올렸다, 구두 솔을 문질렀다, 소주병을 불었다, 건반 하나 눌렀다 하던 장면은 가장 우스꽝스럽고도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들은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조각배들 같다. 스스로 난파되거나 표류하지 않기 위해, 자신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 받기 위해 끊임없이 소리 지르는 작은 조각배들. 서로가 서로의 좌표가 되어, 위로가 되어 그렇게 나아가기를. 10년 뒤, 20년 뒤에 작곡을 전공한 마흔 언저리의, 쉰 언저리의 조각배들의 항로와 안위를 서로 궁금해 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연주를 누군가 또 들으며 ‘이것은 이미 올드하지 않은가’ 따위의 설익은 감상평을 늘어놓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다시금, 이상욱은 공연의 기획의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이 공연은 금전적 수익도 기대할 수 없고 변변한 이력이 되지도 못할 것이며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롭게 고립된 작업들이 조금이라도 세상과 조응할 수 있다면 열악한 기회라도 마다할 이유는 없다.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것은 존재 가치를 끝없이 의심하고 비판하는 과정이었다....(중략)....동료 연주자들은 악보를 보자마자 함께 할 수 없겠다고 통보했다. 나약한 희망으로 일군 프로젝트이기에 미약하고 부족한 점도 많을 것이다. 7인이 각자의 작업을 바라보는 시선도 매우 다를 것이며, 그 중에는 용납하기 어려운 결과물들도 있을지 모른다. 시행착오의 잔해들이라도 특정 시기와 분야의 기록으로서 오롯이 모아보고자 한다. 여기에 서슴없는 감상과 비평이 이어질 때 비로소 이 프로젝트의 의도는 유효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특정시기와 분야의 기록’이라는 말로 이미 그들이 흘러왔고 또 흘러갈 것임을 못 박고 있다. 마흔, 쉰, 예순이 돼서도 예술가로서 항해하고 있다면 지금 이 ‘서른 언저리의 기록’이 얼마나 아름답고 찬란할까. 그러므로 “문래동 지하에서 단 하루 연주된 작곡가 7인의 7작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서 이미 의미 있다”고 ‘서슴없는 감상과 비평’을 보태는 것으로 그들의 항해에 애정과 응원을 보낸다. ■
*사진출처_"작곡을 전공한 서른 언저리의 이들은 무엇을 하는가" 팀 제공
**손세민, 이상욱의 지난공연 리뷰 바로가기 >>> http://indienbob.tistory.com/903
필자_김신록 소개_연극하는 김신록입니다. 오늘부터 잘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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