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5. 18. 10:34ㆍReview
인간,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무거움
큰새 프로젝트 <호모 로보타쿠스>
글_권혜린
1920년에 체코 작가인 카렐 차페크가 쓴 "R.U.R(Rossum's Universal Robots)"은 보통명사인 ‘로봇’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작품이다. 체코어인 ‘Robota(노동)’에서 기원한 로봇이라는 말 자체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로봇의 존재를 상징하고 있다. SF적인 상상력을 바탕으로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를 통해 인간의 존재를 다시 ‘무겁게’ 묻는 이 작품을 각색한 <호모 로보타쿠스>는 원작을 따라가면서, 간결한 무대 구성과 영상을 이용한 무대 장치로 주제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인간을 닮은 로봇, 로봇을 닮은 인간
<호모 로보타쿠스>는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으며, 사방에서 영상이 나와서 마치 그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티켓이 ‘VISITOR’라고 적혀 있는 명찰로 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의도일 것이다. 관객 역시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신하는 세계의 방문자로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또한 영상에서 나오는 ‘Life is wonderful, buy it quickly’라는 문구는 기술 문명의 혜택이 유토피아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점을 광고 문구처럼 홍보한다. 이렇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호모 로보타쿠스이다. 늙은 로숨이 과학자로서 “새로운 인종”을 만들고자 하고 그의 아들인 젊은 로숨이 “노동 기계”를 만들고자 하여 탄생한 호모 로보타쿠스들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기계가 된다. 이때 바이올린을 연주하거나 산책하는 것 등 행복을 위한 활동들은 무익한 것이 되어 배제된다. 호모 로보타쿠스에게는 욕구를 제거하고 노동만 남게 하며, 반대로 인간에게는 노동을 제거하고 욕구만 남게 하는 것이다. 유년과 황혼은 시간 낭비라고 하면서 진보를 주장하는 R.H.C의 대표이사 해리 도민은 영혼이 없는 로봇이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호모 로보타쿠스들을 대량생산한다.
그러나 R.H.C(Rossum's Homo-robotacus Company) 공장에 방문한 총리의 딸 헬레나는 호모 로보타쿠스가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권연맹에서 나온 헬레나는 호모 로보타쿠스의 존엄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로봇을 선동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하는 그녀는 해리 도민과 생각이 다르지만 그의 반려자가 되어 그곳에 머무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호모 로보타쿠스들은 단순히 숫자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내적으로도 진보한다. 무감정한 로봇은 효율적·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과의 권력 관계를 형성하는 원인이 된다. 호모 로보타쿠스가 감정을 가지게 되면 권력을 뒤엎는 반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과 닮은 로봇을 인간으로 착각하고, 반대로 인간인 관리자들을 로봇으로 착각한 헬레나처럼 로봇과 인간의 경계는 점차 무너진다. 이는 겉모습뿐만 아니라 수잔 박사가 실험을 통해 호모 로보타쿠스에 감정을 불어넣으면서 내면까지 비슷해지게 된다. 처음에 호모 로보타쿠스에게 고통을 주는 이유가 자해를 막아서 생산성을 해치지 않게 한다는 것처럼 일종의 방어 수단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적극적으로 ‘인간다운’ 로봇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해리 도민처럼 산업의 입장에서 로봇을 수단화하는 것과 달리 헬레나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동정하면서 인간의 범위를 넓게 보고, 호모 로보타쿠스 자체를 목적으로 두고자 한다. 그러나 정작 호모 로보타쿠스가 스스로 인권을 주장할 때 인간은 로봇의 적이 된다.
인간의 적, 호모 로보타쿠스
호모 로보타쿠스는 인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닮아가면서 인간의 적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신인류인 호모 로보타쿠스는 우회적으로 인간을 비판한다. 반대로 인간 역시 호모 로보타쿠스가 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게 되면서 인간은 생산하지 않고, 출생률도 0%가 되기 때문이다. 극 중에 나오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이라는 말은 번식 능력을 상실한 인간/로봇에게 모두 적용될 것이다.
결국 호모 로보타쿠스가 진화하면서 인간은 종말을 맞이한다. 호모 로보타쿠스들은 단순히 제품만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기계군인으로 길러지고, 감정을 갖고 각성한 호모 로보타쿠스들은 로봇의 해방을 위해 반란을 일으켜 인간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인간처럼 살아가기 위해 인간을 닮으려고 하는데, 이때 닮고자 하는 속성이 ‘남을 지배하는 것’에 해당하는 것이다. R.H.C에서 로봇 외의 관리자들이 모두 인간이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반대로 로봇이 인간들의 주인이 되기 위해 건축업자인 알퀴스트만 제외하고 다른 인간들을 몰살한다. 고장으로 여겨져 압축 분쇄기로 보내는 원인이 되는 로봇의 경련은 이제 저항과 분노와 반란이 된다. 헬레나가 이러한 경련을 영혼이라고 이야기했던 것처럼, 호모 로보타쿠스는 스스로 자신의 의도를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로봇의 반란도 유한성을 갖는 것이다. 헬레나가 로봇 제조법이 적힌 종이를 모두 태워 버렸기 때문이다. 이는 호모 로보타쿠스를 계속 생산하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하지 않다는 판단에서 나온 행동이다. 이처럼 인간의 욕구를 원료로 하여 전 세계적인 수요가 폭주기관차처럼 로봇을 대량생산한 결과 인간/로봇 세계에 모두 파국이 오게 된다. 해리 도민의 이상처럼 모든 사람이 귀족처럼 사는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는 한 가닥의 희망, 한 가닥의 씨앗을 보여 준다. 남녀 로봇의 주례를 서주는 알퀴스트의 모습이 그것을 상징한다. 알퀴스트는 무조건적인 진보를 반대하면서 노동의 미덕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다. 이는 “꿈에는 잘못이 없다”면서 모든 사람을 노동에서 해방된 귀족으로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던 해리 도민과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귀족이 되려면 필연적으로 노예가 필요한데, 그 노예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최후의 인간으로 살아남은 알퀴스트는 호모 로보타쿠스에게서 제조법을 복원하라는 압박을 받으면서 호모 로보타쿠스를 해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것은 절망뿐이다.
그런 그의 앞에 해리와 헬렌 로봇이 나타난다. 두 로봇은 인간을 적으로 돌리고 인간의 주인이 되고자 했던 로봇과는 다르다. 그들은 오직 서로에게 집중하며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알퀴스트는 그들의 주례를 서주면서 새로운 인류, 새로운 시대를 축복한다. 이 점에서 로봇이 인간이 된다는 의미는 다른 인간을 지배하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간을 사랑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노동을 로봇에게 맡긴다고 해서 인간이 곧바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로봇을 완전하게 지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간은 그 정도로 단순하고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무거운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사랑의 감정을 간직한 로봇에 희망이라는 감정을 새로 불어넣은 것은, 이 작품이 포스트 휴머니즘이 아니라 다시 휴머니즘을 말하고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큰새프로젝트 SNS페이지 >>> https://www.facebook.com/ks7project/
필자_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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