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2017 변방연극제 참가작 <연극의 3요소>

2017. 7. 14. 08:10Review

 

2017 변방연극제 참가작

<연극의 3요소>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을 때’ 

신재 연출 / 문영민 성수연 출연

 

글_이예은

 

인생에서 첫 경험의 감각을 선명하게 겪게 되는 시기가 몇 번 있다. 지금이 나에게는 그 몇 번의 시기 가운데 하나이다. 나와는 다른 또 다른 생명체를 나라는 하나의 신체 안에 가지게 된지, 그렇다 임신을 하게 된지 오 개월.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숱하게 거론되어 온 인류의 커다란 사건 가운데 하나인 임신이라는 사건이 나에게 왔을 때 나는 한동안 이것이 문화적, 사회적, 가정적, 개인적 카테고리 안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심지어는 어떤 운명 같은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했다. 오 개월이 지난 지금에 이르러서야 난 이 일이 어떠한 의미나 운명이라는 허울도 벗어버릴 때 가장 진실한 사건이 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말로 할 수 없는, 인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건. 말과 인식을 벗어버리는 그래서 의문과 가치 평가도 벗어버리는 그러한 사건. 이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겪은 탄생이라는 사건, 그리고 생명체라는 존재가 가지는 본래의 성질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처음으로 생생하게 대면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비루한 말과 인식이 형성되기 이전에 우리 모두가 가진 생명은 본디 말이나 인식보다 더욱 강력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그 생명에는 모든 차이의 가능성들이 공존한다.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라는 조야한 언어와 인식의 구분에 기댄 차이를 포함해서 정상과 정상, 그 모든 비정상과 비정상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민감한 차이들이 생명의 시작점에는 즐거이, 그리고 당연히 공존한다. 그래서 이렇게 탄생한 생명체들에게 ‘추후에’ 부여된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적 잣대는 (생명 그 자체의 성질과 비교해 볼 때) 사실 끔찍할 만큼 허약한 허위로 똘똘 뭉친 것이다. 그래서 그 구분은 참으로 허망하다. 그 구분에 입각한 것이라면 그것이 정상이든 비정상이든 동일하게 허망하다. 그럼에도 언어와 인식에 겹과 겹을 쌓고 우리는 발화한다.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라는 말을. 최근 자기네들의 동네에 장애인학교를 설립하겠다고 하자 반대에 나서는 비장애아 부모들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분명 그들에게도 어떠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장애와 비장애라는 경계적 상태에 있는 아이의 건강에 생생한 감각을 켠 채로 지낸 열 달 동안이라는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아이를 출산한 이후에는 과연 이러한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된 삶을 살 수 있을까?) 그들은 우연히도 비장애아의 부모가 되었고, 그리고는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사회인이 되었다. 이 두 사실 사이에 놓인 괴리는 너무도 허망하다. 생명체와 판단체 사이에 놓인 ‘인간’이라는 존재의 허약함과 허위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이 모든 구분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가 지극히 이상적이거나 이론적인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보다 사소한 범위로 이야기를 좁혀 ‘차이’에 관한 또 하나의 내 경험담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요즘 자꾸만 옛 친구를 잃어가는 중이다. 이유는 하나이다. 어린 시절에는 사소하게 보였던 너와 나의 차이가 점점 더 확고해지는 각자의 섬세한 가치관에 부딪쳐 우리 앞에 바위처럼 무겁고 커다란 차이로 존재하고 있는 걸 눈으로 함께 확인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그리워서 몇 번 더 만나보지만 뜨거운 우정을 나눈 친구들일수록 지난 시절의 뜨거움은 지금의 끔찍함이 되어 만나기만 하면 다시 쉽게 결별하게 된다. 특히 연극을 같이 했던 친구들일수록, 이상을 함께 이야기했던 친구들일수록 그렇다.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고, 또 헤어지고 나서 다시금 생각해 보면 지금도 꽤나 가까운 곳에 있는 그들이 막상 만나보면 너무도 먼 곳에 있는 존재들이 된다. 이 이상한 ‘차이’는 앞에서 말한 장애와 비장애라는 차이보다는 더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존재와 존재가 끝내 결별하게 된다는 사실을 놓고 본다면 이것은 결코 사소한 차이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장애와 비장애라는 구분, 너와 나라는 구분은 끝내 결별을 조장하는 괴리라는 점에서 동일하게 거대하면서도 사소한, 그리고 사소하면서도 거대한 ‘차이’이다.

 

이 작품은 바로 이 두 가지의 차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한다. 장애와 비(非)장애라는 거대하게 보이는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가 싶으면서도 너와 나의 사소한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 안에서 거대한 차이로 보이는 것과 사소한 차이로 보이는 것은 곧 동일한 것으로 합치된다. 삼십대를 사는 여자 둘이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친구가 되어 가는 이 연극의 과정은 장애와 비장애라는 크게 보이는 차이와 함께 너와 나라는 사소한 차이를 동시에 감당해 보려는 노력이다.

 

 

프롤로그_진입

관객들이 공간에 입장한다. 공간에는 벽과 벽 사이에 연결된 팽팽한 실로 짜여진 장애물이 있어 휠체어를 타지 않은 관객들은 허리를 숙여 공간에 입장해서 앉는다. 어떤 설명도 없이 놓여진 이 장애물은 휠체어를 타지 않은 관객들에게 생뚱맞다. 생뚱맞은 것이기는 하나 어쨌거나 ‘장애물은 장애물이므로’ 휠체어를 타지 않은 관객들은 불편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입장한다. 휠체어를 탄 관객들은 자연스레 걸어서 공간을 찾는다. 관객들에게 연극과 연극 공간에 대한 간단한 질문지를 작성하게 하고, 설문이 끝나면 세 개의 가벽이 열리고 새로운 공간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연극 공간으로 진입하기 전 거쳐야 했던 이 공간에 설정된 장애물은 휠체어를 탄 관객들이 일반적인 연극 공간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생뚱맞고, 불편한 그러나 당연한 장애물을 ‘소박하게’ 표현한 오브제였음을 알게 된다.)

 

자기소개_내레이션 1

영상으로 영민과 수연의 간단한 인터뷰 내용이 보여진다. 스트레스를 푸는 법, 종교,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 친구에 대한 이야기 등 자신이 느낄 수 있는 범위의 고독과 공감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듯하다.

무대 공간에 영민과 수연이 등장한다. 영민은 휠체어에 앉아 있고 수연은 서 있다. 이들은 각자 자기소개를 한다. 수연의 내레이션으로 영민이 자기소개를 하고 영민의 내레이션으로 수연이 자기소개를 한다. 상대방의 내레이션으로 소개를 받는 각자는 약간 마리오네트들처럼 보인다. 영민은 연극 제작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비루한 감정에 대해서 수연은 화(火)를 잘 내지 못하는 자신의 성격과 그 성격에 맞물린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들이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무대 뒤에는 실시간으로 이들의 독백이 어렵사리 타이핑된다. 몇 번이고 고쳐 쓰기를 하며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언어를 활자화하여 보여주는 행위는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지속된다. 이 행위로 인하여 끊임없이 불편한 노고가 동반된 누군가의 입김이 공연 내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느낌이다.

다시 영상으로 영민과 수연의 인터뷰가 보여진다. 수연은 해리포터, 초록색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영민은 수영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영민은 잠시라도 휠체어 없이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어서 수영을 좋아한다. 그 자유로움을 잠깐 동안 상상해 본다. 행복하다.

 

응시_같이 놀기

무대 위에서 영민과 수연이 나란히 서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 거리는 멀다. 서로가 서로를 따라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더 많이 접근한다. 거리가 가까워진다. 서로에게 서로의 몸이 닿는다. 손을 잡는다. 앉고 서고를 반복한다. 영민에게는 앉음과 섬이 같지만 수연에게는 앉음과 섬이 다르다. 함께 움직인다. 같이 달린다. 같이 논다. 서로에게 기댄다. 웃는다. 지친다.

 

 

외출_같이 놀기

다시 영상 속에 영민과 수연이 등장한다. 바로 앞 장에서 무대 위의 영민과 수연이 가까워지는 것을 다소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영상에서는 이 둘이 가까워지는 모습을 매우 일상적인 결로 보여준다. 영상은 영민과 수연이 같이 공연을 보고 나오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서로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신호등에 파란불이 켜지자 횡단보도를 급히 건넌다. 서두르다가 영민의 신발이 벗겨진다. 신발이 벗겨지는 장면에서 객석에서는 그러한 실수에 공감하며 웃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나도 저렇게 신발 벗겨진 적 있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휠체어에 앉은 이에게 신발은 무슨 의미일까?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서 이제까지 생각해 보지 못한 어떠한 타인의 사소한 일상적 감각, 그 기분을 상상해 본다.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의 차이가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는 순간이다. 사랑스럽다.

 

자기소개_내레이션 2

수연의 내레이션으로 영민이 자기소개를 하고, 영민의 내레이션으로 수연이 자기소개를 했던 앞 장면의 변주 장면이다. 수연은 영민을 연기하고, 영민은 수연을 연기하며 앞선 장면에서 했던 대사를 다시 한 번 되풀이한다. 내레이션1 부분 이후에 ‘응시’와 ‘외출’이라는 같이 놀기 장면이 있어서 이 둘의 관계는 전보다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더욱 서로를 이해한다. 더욱 서로를 가깝게 느끼고 있다. 하여 서로가 서로를 연기하는 이 장면의 행위가 힘을 갖는다. 뒤늦게 내레이션1과 내레이션2 사이에 있었던 이들의 사교 장면이 이 장면의 힘을 만드는 노력들로 겹쳐 보인다.

 

에필로그_관객

프롤로그에서 관객이 작성한 설문 내용의 조각들을 수연과 영민이 읽는다. 설문 내용은 연극, 특히 연극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다. 에필로그인 이 장면은 수연과 영민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연극에 관해 운을 떼었던 작품의 프롤로그로 다시 돌아간다. 설문 내용은 연극을 보러 가기까지의 관객의 심리적 접근성, 그리고 극장까지 가는 관객의 물리적 접근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관객들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영민은 휠체어를 타고 연극을 보러 갔을 때 겪은 극장에 대한 경험 이야기를 한다. 이전 장까지 수연과 영민이 서로 먼 거리에서 보다 가까운 거리로 옮아져 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그래서 이 두 사람과 관객 사이의 거리 역시 보다 가까운 곳으로 옮아가게 하는 과정이었다면, 이 장은 전반부의 극중극이 끝나고 이제야 관객과 배우가 함께 연극, 그리고 현실을 바라보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제까지는 연극의 3요소 가운데 배우에 집중했다면, 이 장에서는 관객과 공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영민이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는 행위는 이 공연이 시작될 때 휠체어를 타지 않은 관객들이 암묵적으로 느꼈던 소박한 버전의 감정을 매번 감당해야 하는 행위이다. 프롤로그에 썼던 이 연극의 감상을 영민의 입장에서 다시 써 본다.

 

 

“관객들이 공간에 입장한다. 공간에는 턱들이 있다. 어떤 설명도 없이 놓여진 이 턱들은 휠체어를 탄 관객들에게 생뚱맞다. 생뚱맞은 것이기는 하나 어쨌거나 ‘장애물은 장애물이므로’ 휠체어를 탄 관객들은 불편하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턱을 넘어 입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턱을 넘지 못하고 입장하지 못한다.”

 

이 말은 물론 이 작품이 처음부터 집중해 온 연극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비단 극장에 대한 이야기, 연극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거대한 순간, 혹은 거대하다고 생각되는 사소한 순간에도 포진되어 있는, 생뚱맞지만 당연한 그 모든 장애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관객은 극장에서 경험한 영민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입술로 따라 읽는다. 영민과 수연의 관계를 보는 입장을 넘어서 이제 관객이 영민을 응시하며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연극에서 현실로. 차이의 표상에서 차이의 근원으로. 허망함에서 실재로.

 

이 작품은 단지 차이에 대한 것, 차별에 대한 것, 구별에 대한 것, 구분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들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허망함 이전에 존재하는 실재가 무엇인지, 너와 나의 구분 이전에 존재하는 진실이 무엇인지를 말한다. 이러한 작품의 뜻과 몫은 본 공연이 행해진 장애인노들야학의 건립 목표인 다음의 두 문장 속에서 정확하게 인지된다. “만약 당신이 나를 도우러 여기에 오셨다면, 당신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여기에 온 이유가 당신의 해방이 나의 해방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라면, 그렇다면 함께 일해 봅시다.”

 

▲서울 변방연극제 개막공연 <25시-극장전>에서 선보인 문영민과 성수연의 작품  

 

 

*사진출처_연극의 3요소 SNS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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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이예은

 소개_작품의 깊은 고독에 위안을 주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