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제20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7 축제리뷰-1

2017. 8. 4. 08:47Review

 

여행과 탐험의 경계에서

제20회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7

축제리뷰 @서울월드컵경기장

 

글_권혜린

 

 

▲서울프린지페스티벌이 열리는 서울월드컵경기장 계단입구

 

 

여름과 축제라는 말은 근사하게 잘 어울린다. 여기에 그 축제가 단순히 일상을 벗어난다는 비일상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곳에 여행을 가는 기분을 들게 한다면 축제를 누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축제 안에 속한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7월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 동안 열렸던 <서울프린지페스티벌 2017>은 올해에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작년에는 즉흥적인 여행을 하는 기분으로 월드컵경기장을 누비고 다니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나, 올해에는 보고 싶은 공연들을 미리 살펴보고 정한 뒤 동선도 짜 보았다. 올해의 테마도 마침 ‘프린지 여행’이라 곳곳을 여행할 수 있는 여행자 지도도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자유 여행은 계획을 세워도 늘 변수가 있고, 계획도 수시로 바뀌는 법이다. 그리고 사실 그 변수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그 즐거움은 장소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탐험으로까지 이어졌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축제공간, 장소 안내판

 

 

<역할놀이> (봄의주막)

연극을 보기 전부터 입구에서 가면을 쓴 채 가면들을 들고 돌아다니는 가면 장수를 보며 음습한 기운을 느꼈었다. 가면에 대한 공포는 그 안에 숨은 얼굴을 짐작할 수 없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는 표정과 감정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C-13 번 방에서 시작된 <역할놀이>는 장소의 특성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큰 창에 달린 커튼을 걷으면 경기장이 보이는 곳에서 배우들은 창의 안쪽과 바깥쪽을 넘나든다. 관객들도 의자에 놓인 가면을 자유롭게 썼다 벗을 수 있다. 게임이라는 틀 안에서 ‘맹목적대량자살사태’를 뜻하는 ‘롤리트’를 예방하는 방법은 가면을 쓰는 것이다. 가면을 쓰지 않는 이들은 타인에게 불안을 준다.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자살이 아닌 타인의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 의사에게서 가면을 쓰라는 처방을 받게 된다. 이는 확실하지도 않은 타인의 감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서 강요된 윤리를 보여 준다.

 

▲극단 봄의주막 <역할놀이> 공연사진

 

그러나 이 공연에서 잘 나타나는 것은 각각의 상황에서 강요된 표정을 눈, 코, 입을 다양하게 그린 포스트잇을 연속으로 붙이는 것으로 보여 주면서 일상이 이미 역할놀이이며, 가면 쓰기라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의사에게 상담을 받으러 온 감정 노동자는 자신의 표정이라는 가면 위에 처방받은 또 다른 가면을 덧써야 한다. 막간 게임인 마피아 게임에서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가 난 사람이 마땅히 죽어야 하는지를 인터넷 댓글에서 ‘좋아요/싫어요’라는 손가락 표시 하나로, 클릭 한 번과 타자 한 번으로 심판하려는 이들 역시 심판자라는 가면을 쓴 채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다. 으스스한 말투로 막간 게임을 진행하는 진행자조차 진행자라는 가면을 벗으면 어머니와 천진하게 통화를 하는 일상인이 된다. 또한 가면을 쓰는 것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새로운 연극은 차라리 가면을 벗는 것이며, 극단적으로 나아가 나체 연극을 해야 한다는 로봇의 말은 역할놀이를 하는 가면의 허위를 폭로하는 듯하다. 마지막에 결국 개인의 고통을 모두 무화시킨 채 “가면을 벗는 것이 문제”라고 하는 의사의 진단은 전체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이 개인에게 폭력적일 수 있음을 드러낸다. 중간중간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아 관객들의 반응도 좋고 좁은 공간을 다각도로 활용한 점도 흥미로웠지만, 짧은 시간 안에 인물들과 에피소드들이 쏟아지다 보니 ‘게임’이라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 들었다. 관객들마저 진짜 플레이어가 된 것처럼 한두 가지 에피소드를 집약적으로 끌고 나갔다면 더욱 게임 안에 있는 것처럼 몰입했을 것 같다.

 

 

▲극단 52HZ의 <P로봇> 공연사진

 

<P로봇> (극단 52HZ)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흥겨워 보이는 노랫소리에 이끌려 계단 위로 올라가 보게 된 공연이었다. 그러나 초반의 신나는 분위기와 달리 이 공연은 전반적으로 피로한 자들만 가득한 미래 도시에 있는 ‘P 로봇’들의 풍경을 보여 주고 있었다. 피로한 ‘P 로봇’들의 일상은 계단에 앉아 있던 몇몇 관객들을 소환하여 풍선으로 만든 시한폭탄을 넘기면서 관객들이 현재 피로한 이유들을 대게 한다. ‘피로 사회’라는 말이 익숙하듯이 당연히 이 시대에 피곤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터이기 때문에 관객들도 피로의 이유를 다양하게 댄다. 그러다가 말문이 막히고, 결국 마지막에 시한폭탄을 갖게 된 관객은 죽는 연기를 해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처형’된다는 법을 갖고 있으며 ‘움직임이 존재 증명’이 되는 이 도시는 역설적으로 피로 외에는 의미가 없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결국 마지막에 그냥 쉬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사실만 남았다고 말하는 것이 그대로 현대인의 초상이 되는 씁쓸함. 나이를 먹어도 피로한 삶이 반복된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얼굴에 밀가루를 묻히거나, 계단에 올라와서 절규하는 모습이 초반에 느꼈던 가벼움을 일시에 날려 버린다. 계단을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는 표정을 보고 있자니 계단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피로에 전염되는 듯했다. 한없이 무겁고, 무거운 피로들이 여름밤 공기에 떠다니는 공연이었다.

 

 

▲프로젝트xxy <젠더 트랜지션> 공연사진

 

<젠더 트랜지션> (프로젝트 xxy)

프린지 클럽에서 잠시 <노-닐다>(유어예 가야금 프로젝트)의 공연을 보며 가야금 소리에 취해 있다가 부랴부랴 달려갔던 <젠더 트랜지션> 공연에서는 약간의 당혹감을 경험했다. 바닥에 테트리스 블록들이 있고, 그 안에 성 정체성에 대한 다양한 단어들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한눈에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단어 중 자신이 속한 성 정체성에 해당하는 부분에 앉으라고 했을 때, 어떻게 한 자리를 고를 수 있겠는가? 자신의 위치를 단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프로젝트 xxy는 이렇게 ‘당신의 위치는 어디입니까?’를 주제로 좌표 형식을 이용해, 고정될 수 없는데도 ‘정상성’이라는 이름 아래 ‘올바른’ 위치를 규정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사고를 비판하고 있다. 커다란 끈과 나무 표지판으로 이루어진 대형 좌표에서 x축의 양 끝에는 ‘여자’와 ‘남자’가, y축의 양 끝에는 ‘여자를 좋아한다’와 ‘남자를 좋아한다’가 표시되어 있다. 배우들은 취업 면접과 가족과의 대화 등의 상황에서 강요받는 정체성들을 연기하고, 다양한 질문들에 따라 좌표들을 넘나들면서 ‘움직이는 정체성‘들’’을 보여 준다.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는 무수하고도 촘촘한 점들을 좌표에 찍으면서 정체성이 유동적이라는 것을 가시적으로 잘 보여 준 작품이었다.

 

 

▲서울프린지페스티벌 프린지클럽의 정경

 

더운 날씨였지만 밤이 깊어질수록 여행 또는 탐험을 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아니, 여행과 탐험의 경계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어느 장소에 가도 볼거리가 있고 새로운 것들이 반짝거린다. 화장실에는 시나브로의 전시가 있고, 곳곳에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아카이브 전시 : 1998~2017>가 있어 지난 페스티벌 사진이나 자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켜켜이 쌓인 프린지페스티벌의 역사를 여행해 보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면서 탐험하는 것도 즐거웠다. 팝카펠라 원달러의 신나는 공연을 듣는 것으로 여행/탐험을 마무리했다. 월드컵경기장을 걸어 다니면서 처음에는 낯설고 커 보이기만 했던 곳에 어느새 정이 들었다. 보통 경기나 공연을 보러 올 때는 내용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경기장이라는 형식은 생각할 틈이 없는데, 프린지페스티벌 덕분에 월드컵경기장에 대한 장소애가 생길 것 같다. 내년에도 또 새로운 여행, 혹은 탐험, 혹은 그 경계의 경험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제공_서울프린지페스티벌 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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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_ 권혜린

 소개_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http://blog.naver.com/grayhouse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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