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4. 12:39ㆍReview
15분연극제 단상: 지역에서 지역으로
<제8회 15분연극제> 리뷰
김민관(과정 관찰자)
연극제를 기획, 총괄하는 권근영 PD에게서 ‘과정 관찰자’라는 호명을 받고, 결과에 해당하는 공연만을 보고 글을 쓰는 대신, 공연 전 과정을 살피기로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로 인해 공연을 취소하고, 내부 촬영을 위한, 공연과 관객 없는 한 번의 공연으로 축제를 갈음하기로 결정되기까지는 예의 팬데믹 상황 속 신중함의 공적 태도가 작용했다. 그럼에도 공연 8팀과 진행팀, 공간 운영자들까지 처음이자 마지막 공연에서 그 내부 인원은 외부를 고스란히 시뮬레이션했다. 사실 관객이란 존재를 상정하지 않는 연극은 없다. 동시에 공연을 둘러싼 이들―객석을 점유한 이들―은 언제나 관객일 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21년의 15분 연극제는 해외 극작가를 조명하는 차원에서 그의 작업들을 각 연극팀이 선택해 공연으로 만들어 왔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인천이라는 지역과 만나는 작업부터 시작했다. 인천이라는 장소를 어떻게 연극으로 재현할지 이전에, 자신의 문제의식 혹은 작업 주제와 연결하게 할지가 각 연극팀, 그중에서도 극작가나 연출에게 주어진 숙제가 되었을 것이다―그에 대한 몇 가지 연극이 곧 이야기될 것이다. 스페이스 빔을 주축 공간으로 하며 배다리마을 곳곳에서 연극이 펼쳐진다는 전제는 같았다. 놀이터에서부터 배다리 육교로, 다시 새롭게 문을 연 창영당이나 동성한의원 건물에서 스페이스 빔으로 안착하기까지 마을 곳곳에 연극이 자리했다. 며칠 전부터 동네 집마다 수건을 돌리며 뭔가가 막연하게 발생할 것임을, 그렇지만 내년에 이 연극제를 볼 수 있을 것임을 기약함은 관객이 없는 사태를 연극(인)이 살아 있음을 알리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관객은 자신의 사망 신고를 연극과 양분되는 삶의 차이로 인지했을까. 연극(인)은 관객의 자리를 확인했으며 이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이 역시도 공연의 일종이었다.
대략 15분 정도의 연극은 10분보다는 조금 후한 소요 시간으로, 보통 연극의 한두 막 정도의 시간을 가정한 것일 것이다. 물론 그 안에서 끝을 맺어야 하는데, 연극은 쉬이 닫히기보다 또 다른 연극으로 이어지며 연결된다는 인상을 준다. 15분 연극제 진행팀의 오프닝과 피날레 공연은 그 연결들이 중요하다는 걸 전제한다. 장소와 장소의 연결적 차원도 그렇지만, 15분 연극제 자체를 하나의 생명력적인 장으로 설정하려 함은 배우의 이름 대신 “15분 연극제”로 자신들을 호명하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같은 주제를 공유한 것도 있겠지만, 각 연극들 사이에서 어떤 연결의 지점을 발견하는 것은 어떤 동시대의 공명이 발생한다는 인상을 준다.
연극인의 비루한 또는 초라한 삶에 대한 자의식을 세 명의 배우가 나눠 보여주는 〈나는 리어카가 싫어〉(/이면 작, 신태환 연출), 그리고 수녀와 여자 간의 ‘진화’로 표시되는 사랑이 이성애자 중심의 사회에서 굴절된 것임을 나타내는 극단 Y의 〈레인독스〉(장영 작, 강윤지 연출)를 제한다면, 나머지 작품들은 인천을 직간접적으로 호출한다.
한아름 연출의 〈사라지지마!〉(한아름 작)나 극단 동네풍경의 〈손 있는 날에 이사하는 방법〉(김규남 작·연출), 극단 바바서커스의 〈수다연극_안녕, 우리 동네〉(공동창작, 이은진 연출)는 모두 구도심 인천의 바깥을 상정하며, 구도심에 사는 존재들을 주체로 호명하는 작업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극단 작은방의 〈도래할 돌〉(김연재 작, 신재훈 연출)은 배다리공원의 경로 안의 사물을 묘사하는 즉물적 언어로 장소들의 감각을 시적으로 인계하며, 인천의 풍경과 그 풍경을 생산하던 사람의 경험을 언어화한다. 〈용동권번〉(백석현 구성작가, 연출)의 경우, 현재 동인천에 남아 있는 용동권번의 터와 같이 인천에 대한 역사를 기생의 눈을 통해 들려준다.
〈사라지지마!〉는 이사 간 친구와의 관계를 물리적 거리로 표시하는데(놀이터에 머문 친구와 육교로 올라간 친구는 각각 배다리마을과 그 바깥의 개발된 도시 어딘가를 상정한다), 현재의 나(수정_김수정 배우)는 과거의 나와 장소의 측면에서 동일선상에 있다면, 현재의 친구(하영_이하영 배우)는 과거 자신이 있던 장소이자 현재의 내가 있는 장소와 분리돼 있다. 따라서 친구로 말미암아 나에게 현재의 장소는 존재의 정체성을 순일하게 가리키지 않는 모순과 균열을 안기게 된다.
〈수다연극_안녕, 우리 동네〉는 구도시와 신도시 사이에서 관객은 선택해야 함으로써 그 근거와 자신의 기억과 나아가 욕망을 연결할 것을 주문하는데, 담론을 첨예화하거나 논쟁을 가속하는 대신에 개발―신도심―과 보존―구도심―사이에 위치한 개인의 자율성을 보전한다.
〈손 있는 날에 이사하는 방법〉은 헌책방을 하다 이사 가는 영순(김현아 배우)과 대화를 나누는 터주신 경옥(이정은 배우)과 만덕(임수빈 배우)의 존재 설정으로부터 전통이라는 타자를 전유한 전근대의 언어를 자연화하여, 장소의 문제를 인간 너머의 존재론적 연관으로 연장한다. 곧 터주신은 개발의 표층과 달리 그 심층에서 역사를 계승하는 소멸하지 않을 존재이며, 단지 이를 읽고 들을 수 있는 현존재가 없을 때 비가시화될 뿐인 존재임을 의미한다.
특히 세 개의 연극 〈사라지지마!〉, 〈수다연극_안녕, 우리 동네〉, 〈손 있는 날에 이사하는 방법〉은 배다리마을이라는 장소를 현상한다. 〈사라지지마!〉는 실제 배다리마을의 놀이터를 극장 공간으로 삼고, 배우들이 어린아이로 돌아가 긴 육신을 구부정하게 스스로에게로 구겨 넣는 가운데, 장소의 달라짐에 따른 주체의 위상―잘사는 집과 못 사는 집, 그리고 새롭게 개발된 장소와 바뀌지 않는 장소의 존재들―을 보여주는 데 이어 다시 두 아이는 중간 길, 곧 보도로 뛰쳐 나아가는 어떤 이상적 타협의 길을 만든다.
〈수다연극_안녕, 우리 동네〉는 현장에서 인천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을 패널로 섭외함으로써 현안에 관한 당사자성을 만드는 한편, 담론의 장소를 구체적 존재로 옮긴다. 반면 〈손 있는 날에 이사하는 방법〉은 인천의 지난 역사의 흔적을 재현하는데, 헌책방이라는 소재가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정체성을 희미하게 짐작하게 한다면, 항구 도시, 일제강점기의 인천 등의 언급을 통해 지역의 모습이 더 확실해진다. 나아가 한복을 입은 터주신과 현대인의 언어를 동일선상에 둠으로써 역사를 현상하는 정신적 존재가 오랜 마을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동시에 그 맞은편에 있는 도시의 표피를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러우며 생명과 거리가 먼 곳으로 기호화한다.
한편, 인천이라는 장소는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연극을 만드는 이들에게 돌려본다면, 그것은 창작자 자신을 향한 것으로 이러한 질문은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결국 관객으로 되돌려질 수 있을 것이다.
〈사라지지마!〉가 어린아이의 순전한 시간으로 자리하는 무한한 놀이의 시공으로서 놀이터를 상정하고, 기억과 장소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어른(=배우)이라는 표지로써 그것의 판타지성 역시 간직한다면, 그것이 주는 기억의 효과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장소와 상관없이 우리는 기억을 통해 장소를 현상할 수 있고 그 기억을 가진 이들과 유대를 맺을 수 있음을 의미하는가. 하지만 그 장소가 사라지면 그 기억 역시 온전할 수 있을까. 〈사라지지마!〉는 장소와 기억의 문제를 과거 우리의 경험과 연결 지어 볼 것을, 나아가 미래의 지형에서 그려볼 것을 제안하는 듯하다.
수정이 들은 바에 따르면, 구도심은 개발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고 따라서 계속 이전의 모습을 간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친구 하영의 “사라지지 마!”는 친구 수정의 존재에 대한 것이기도 하며, 나아가 장소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한 명밖에 남지 않은 놀이터는 사라질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이러한 외침에는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애도가 투영된다.
시간을 가진 장소의 중요성은 〈수다연극_안녕, 우리 동네〉에서 언급되기도 한다. 실제 토론 형식을 이명은과 이윤화 배우의 MZ 세대의 인터뷰 놀이로써 전유하여 토론의 날카로움과 논쟁의 면모를 지우는 이 연극은, 연출의 거리두기로서의 개입을 통해 급작스러운 결말로 이어진다―여기에 이전 세대의 입장을 대표하는 조윤화 배우가 온라인 접속을 통해 중간마다 개입한다. 자신에게 던지는 각각의/여러 질문이 뒤에 적힌 엽서를 관객에게 줌으로써 그러한 질문은 관객 내재적인 것으로 수렴한다. 여기서 연출은 관객이 사유하는 주체가 될 것을 요청하며 열린 결말을 수여하는 단독자적 권위를 갖는데(그 전에 두 배우의 현장 진행 속에 관객 참여의 시간을 수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연극이 처음부터 현실을 두 개의 입장으로 양분한다면, 연출은 사라지는 동시에 연극을 사라지게 하며 급격하게 관객의 시선을 현재로 돌린다. 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용동권번〉이 역사 속 존재의 언어와 관점을 도입한다면, 〈도래할 돌〉은 배다리마을의 장소를 더듬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자체가 문학적 언어의 증거들이 되며 그 안의 사물들은 집적된 감각의 덩어리로 살아난다. 미시적인 지표들은 문학적 언어로써 거시적인 역사 담론을 벗어나 세 세대의 특정한 개별자들(1950‧1980‧2013년생, 각각 윤일식·김소이·배윤범 배우가 연기한다.)의 언어를 시간 순서대로 보이게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역사가 어떻게 현재로 이어질 수 있는지의 경이를 여러 문장으로 숨 가쁘게 이어가며 질문한다. 이는 우리의 현존이 생생한 총기를 띠는 순간이라 하겠다. 바로 두 번째에서 세 번째로 이어지는 역사가 흔적으로 남은 시대에 던지는 질문은, 선연하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손 있는 날에 이사하는 방법〉은 동네를 유지하는 사람들의 존재의 사라짐을 비가시적인 존재의 입장에서 언어화하는 전략을 통해 근대를 전근대로써 뒤집는다. 비가시적인 존재의 순간적 기입은 근대 너머의 것, 곧 자신을 포함한 존재들을 애도하면서 어떤 대안적 출구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막막함을 준다.
동시에 역사의 문제를 환기케 하는데, 6·25 때 고향을 잃은 할머니를 두었던 경옥, 할아버지와 아버지 대대로 탔던 고깃배를 일본이 갯벌을 메울 때 매장당했던 만덕의 일화는, 역사의 상처를 증언한다. 사실상 터주신은 역사에 기입되지 않은 수많은 비체들인 것이다. 개발은 그런 삶 자체의 뿌리를 흔드는 것으로 연장되는 듯하다. 결국 이는 〈손 있는 날에 이사하는 방법〉이 인천의 바깥의 보이지 않는 역사의 사라짐과 그 폭력성을 보이지 않는 인간의 언어로 현상하는 방식을 택한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나는 리어카가 싫어〉는 젊은 연극인의 정체성을 가장 직접적 언어로 발신하는데, 기초수급자가 되기 위한 절차를 밟는 등의 과정을 표현한다거나(김주영 배우) 다른 연극인의 공연을 보고 나와 인사를 할 때 어떤 위치를 취할지를 고민하거나 택시를 탔을 때 공연이라는 것을 대중의 시각에서 매개된 언어로써 받아들여야 하는 등의 구체적인 현실 경험을 이야기한다(윤성우 배우).
소파에 앉아 심드렁하게 첫 시작을 알리는 한 여자(김윤하 배우)의 말에 따르면, ‘나는 리어카가 싫어’라는 제목은 한글 문서에서 처음 쓰인 문장으로 그 제목으로 저장된 탓에 ‘그냥’ 붙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은 왜 내가 리어카를 싫어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당장은 은폐하기도 한다. 동시에 이는 연극의 작동 방식을 미리 지시하는 것이기도 한데, 곧 폐지를 주워 사는 사람이 가진 생계의 어려움과 기초수급자의 일화를 연결하는 식으로, 연극은 두서없이 동시에 의식의 흐름으로 진행된다.
화자의 하소연은 삶의 기반이 되는 집이 없음에 대한 어려움, 곧 전전긍긍하며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녀야 하는 근본적인 사회 현실에 토대를 둔다. 따라서 집 없음의 세대의 보편성을 이야기하는 〈나는 리어카가 싫어〉는 인천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조금 더 큰 차원에서 삶의 현재성을 조각하는 장소를 이야기한다고도 볼 수 있다. 동시에 연극에서의 사적 발화에 대한 의구심을 문득문득 표현한다는 점에서, 〈나는 리어카가 싫어〉는 예술가의 자의식을 지시하면서 메타 연극의 특성을 가진다. 현실은 연극으로 연장되며, 다시 연극은 현실로 연장된다. 가령 엔딩에서 대본을 빨리 쓰지 못한 신태환 연출―“/이면”으로 명기돼 있는데, 이 부분 역시 연극과 현실을 교란하는 유희적 행위로 보인다.―을 책망하는 김윤하 배우의 말은 현실을 지시하면서, 연극이 현실을 침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신태환 연출이 기둥 옆 의자에 앉아 죄지은 듯 그 책망을 듣고 있는 연기를 하기 때문이다.
한편, 감각적으로 잘 수용되는 언어들은 공간의 특성을 잘 활용한 것과도 연관된다. 창영당이라는 공간을 유일하게 사용한 연극으로서, 중앙 기둥,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 각종 장식품 등 가에 있는 주변의 사물들이 있는 가운데, 문의 맞은편 가에 있는 긴 소파에서 시작해 배우들은 여러 곳으로 이동하며 관객 사이사이에 위치하는데, 이는 비좁은 공간에서 전환된 다른 장면임을 인지하게 하는 한편, 매번 다른 시점과 시야를 제공한다. 그에 반해 스페이스 빔의 1층 공간은 프로시니엄 아치의 연장선상에서 다소 평면적으로 활용되는데, 창영당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나는 리어카가 싫어〉의 배우들은 이동을 통해 정면성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며 관객 곳곳에서 시선을 형성한다.
〈용동권번〉은 이영태의 『기예는 간데없고 욕정의 흔적만이 권번』(2015), 이승연·송지영의 「일제시대 인천권번에 대한 연구: ‘용동권번(龍洞券番)'’을 중심으로」(2007)를 일부 발췌해, 수정 및 극작한 작업이다. 연극은 일제강점기에 권번에 등록돼 보통 요릿집으로 가서 일했던 인천 기생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인천 용동에 “龍洞券番”이라는 한자가 음각돼 옛 용동권번 자리를 알려 주는 돌계단이 있는데, 백석현 연출은 이와 관련해 인천 역사의 한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연극은 역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에서 나아가, 등장하는 역할 스스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자신임을 나타냄으로써 역사를 현재로 중계하고 있음을 드러낸다―현재(역사)의 대사와 역사를 지시하는 현재의 대사는 구분되지 않고 혼재돼 있다. 그리고 가장 먼저 등장한 어린아이 역할의 배우(이재혁 배우)는 사이사이에서 해설을 보태는 역할을 맡는다. 네 명의 기생(변상아·양이배·이인영·장아름)이 등장하는 〈용동권번〉은 가무에 능했던 기생의 실제 모습을 연주나 춤 등으로 표현하며, 당시의 문법 역시 그대로 사용하는데, 익숙하지 않게 다가온다. 기생들은 첨예한 역사의 분위기를 살피고 이야기하는데, 거꾸로 불안정한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권번 기생의 삶 역시 닿아 있었음을 살필 수 있다.
〈레인독스〉는 두 사람으로 이뤄진 대화의 밀도가 높고 그 전달 역시 생생하며 여운을 안긴다. 이는 장영 극작가의 미발표 원고인 「lonely loners」 중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서로에게 깊은 추억을 간직하며 지금도 아릿한 감정으로 남아 있는 두 여자는 한 명은 수녀(라소영 배우)가 되었고, 다른 한 명(신윤지 배우)은 이성애자와 결혼한 상태인데, 수녀가 그 사랑으로부터 에둘러 삶을 살고 있음을 여자가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그 자신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성애자로서의 여자를 부정하기보다 다양한 사랑의 형식이 가능할 수 있음을(“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그게 뭐든”), 그것이 동시에 현실에서는 부정될 수밖에 없음을 〈레인독스〉가 드러내기 때문이다.
15분 연극제는 초기에 인천이라는 지역성을 조망하고 리서치하는 개별적인 시간과 이를 공유하는 내부 전체의 시간을 가져왔다. 주제 차원에서 지역과 연계한 동시대의 과제가 창작으로 연장되는 데 있어 15분은 적당한 길이를 제공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연극을 만드는 팀에서는 장면과 수행의 차원에서 또한 관객에게는 지루할 틈이 없다는 차원에서. 또한 배다리마을이라는 곳을 극장과 극장이 머무는 곳으로 전환하는 적극적인 행위, 가령 수건을 나누는 퍼포먼스와 같은 행위를 통해 마을은 창작의 자원으로서 위치하며 이후 이를 수용하고 환기하는 작용을 겪게 된다. 지역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번 15분 연극제의 실험은 다양한 인천의 이야기와 그 시각을 드러내며 지역에 대한 새로운 조망의 일면을 가져갔다면,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는 동시대의 젊은 연극 그룹들의 활동들을 보여준다는 의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활동들은 하나의 순간에 모여 반짝였다. 곧 같은 공간에서 하나의 그룹처럼 그들은 움직이며 서로를 보고 탐색하고 응원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반짝임을 보았다.
필자소개
김민관_아트신(artscene.co.kr)편집장. 예술을 체험하고 기록한다. 다양한 예술 아카이브에 관심을 갖고 실천하고자 한다. 좋은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탐문과 함께 비평적 관점으로 동시대 예술의 계보를 재구성해 나가려고 노력 중이다. 한편으로 예술(계)이 더 좋아질 수 있는 환경과 이를 위한 개인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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