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7. 12:08ㆍReview
사랑하라,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영화 <성덕> 리뷰
글_구슬
2021년 현재, 케이팝은 세계적인 문화 현상으로 보인다. 케이팝과 떼어놓고 논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팬덤’. 엄청난 조직력과 결속력을 자랑하는 이들은 언뜻 균질적인 집단인듯 보이지만,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모인 각기 다른 개인의 자발적인 모임이기도 하다. 케이팝의 모태인 한국 가요계에 팬덤 현상이 나타난 지도 어느덧 수십 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팬덤의 성격과, 구성원들의 연령대, 그리고 팬덤이 추종하는 대상 역시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해진 양상이지만, 기본적으로 이들을 표상하는 사회적 이미지의 원형은 여전히 ‘스타를 열정적으로 쫓아다니는 10대 소녀들’이다.
가왕 조용필의 위대한 탄생과 함께 등장한 ‘오빠부대’를 시작으로 ‘걸크러시’의 원조라 할 만한 이선희와 이상은을 지나, 문화대통령 서태지를 거쳐 H.O.T.와 젝스키스 양대 팬덤의 첨예한 대립, 그리고 SM, YG, JYP의 ‘3대 기획사’가 배출해낸 걸출한 K-POP 스타들, 그리고 억 단위의 유튜브 조회수를 자랑하는 BTS와 블랙핑크에 이르기까지. 스타의 활동 영역이 세계적으로 넓어지는 만큼 팬덤의 규모 역시 그에 비례해, 때로는 그 이상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리하여 바야흐로 한국어 단어 ‘오빠’를 넘어, 세계인이 부르는 ‘OPPA’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리뷰할 오세연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성덕>의 주제는 단 한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OPPA’의 몰락.
제 2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영화 <성덕>의 존재를 내가 처음 알게 된 날은, 부국제 예매일로부터 정확히 3일이 지난 10월 1일이었다. 웹서핑을 하다 우연히 이 영화에 대한 설명을 발견한 나는, 그 직후에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트윗을 남겼다.
이 트윗은 4000회가 넘게 리트윗되었으며, 각 연예 정보 커뮤니티에 퍼져 나가며 파장을 일으켰다. 내가 트윗을 작성한 시점에 이미 부국제 표는 매진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각종 범죄 및 사회상규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물의를 일으킨 스타들의 팬들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OPPA’들로부터 받은 막대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토로하며 ‘예매 특별 전형’을 요구했다. 부국제 <성덕> 영화 표를 간절하게 구하는 글이 물밀듯이 쏟아졌고, <성덕>은 단숨에 트위터 유저들 사이에서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수많은 케이팝, 아니 누군가, 혹은 무언가의 팬들은 ‘최애가 감옥간 덕후’의 선두주자가 된 ‘정준영 팬' 오세연 감독에게 아낌없는 공감과 연민을 보냈다.
나는 기적처럼 양도표를 구함으로써, 영화 <성덕>의 첫 상영에 참석한 성공한 덕후, ‘성덕’이 되었다. 상영 현장에서도 ‘팬덤’의 일원으로서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지지해본 적 있는 이들이 오세연 감독에게 보내는 공감의 물결은 계속됐다. 현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2010년대를 풍미했던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 방청석을 연상케 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누군가의 웃음이 피식하고 비어져나온 것이 시작이었다. 케이팝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이름들에 대한 거침없는 실명 비판이 이어지자 객석에서는 탄식이 쏟아졌고, 한 인터뷰이가 당사자성에 기반한 분노를 담은 욕설을 절절하게 쏟아낼 때는 박수를 치고 발을 구르며 통쾌해하기도 했다.
감독 자신의 흑역사를 까발리는 것으로 시작된 서사가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사회적 물의를 빚은 여러 스타들의 이름을 지나, 마침내 박근혜를 ‘최애’로 둔 서울역 앞 태극기부대에 이르렀을 때 이미 객석은 반쯤 울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웃겨서, 그리고 슬퍼서. 한 마디로 ‘웃퍼서’. 87분 동안의 러닝타임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잠시 잊고 있었던, 서사를 즐기는 공동체적인 관람 경험을 통렬하게 일깨웠다. ‘화장실 가느라 자기 영화 GV 시작 시간에 늦은’ 오세연 감독의 임팩트 넘치는 등장을 시작으로 진행된 GV 역시, 마치 ‘덕질’과 ‘OPPA’ 때문에 상처받은 관객들의 트라우마 치유 모임처럼 눈물과 웃음이 공존했다.
영화 상영과 GV가 성황리에 종료된 다음, 나는 자연스럽게 <성덕> 감상을 메모했다. 그리고 영화에서 언급된 걸출한 ‘OPPA’들의 이름들을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여 트위터에 올렸다. 모두와 함께 웃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세연 감독 본인으로부터 트위터 쪽지를 받았다. 스포일러가 되니, 영화 속에 언급되는 연예인들에 대해서는 언급을 자제해 달라는 다급하고도 간곡한 부탁이었다.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 나는 죄송하다는 답장을 남긴 다음, 황급히 해당 트윗을 지우고 다른 분들도 스포일러를 자제해 달라는 당부의 글을 덧붙였다.
오세연 감독은 내게 스포일러를 지워달라고 부탁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가리켜 ‘모르고 봐야 재미있는 영화’ 라고 설명했다. ‘실명 노출’이 상당히 민감한 지점임은 분명하다. ‘OTT 배급과 정식 개봉 일정은 어떻게 되느냐’는 관객의 GV 질문에도(이 관객은 높은 확률로 덕질을 위한 ‘소장’과 ‘n차 관람’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오세연 감독은 아무래도 실명이 그대로 노출되는 지금의 수위는 영화제에서만 상영이 가능할 것 같다며, 관련하여 법률 자문도 받았음을 밝혔다. ‘이런 식의’ 영화가 처음이다 보니, 자문을 구했던 변호사들도 적이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확실히 일반적으로 스포일러는 영화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성덕>이 오로지 예상치 못하게 등장하는, 이제는 말할 수 없는 금지어가 되어버린 그 이름들 때문에만 재미있는 영화였을까? 물론 즉각적으로 튀어나오는 웃음의 총량 중 상당 부분을 각각의 이름들이 지니는 구체성에 빚지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나는 감독의 자전적인 서사를 이끄는 ‘정준영’이라는 이름을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이름을 ‘삐~’ 처리하더라도 이 영화가 빛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 <성덕>을 몰락한 스타, 그리고 스타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지부조화를 겪으며 비틀린 애정을 간직하고 있거나, 혹은 배신감과 분노를 불태우는 팬덤에 대한 풍자적인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인다. 실제로 일정 부분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한 시대의 일면에 대한 성실한 르포르타주이자, 자전적인 청춘 로드무비로 독해하고 싶다. 왜냐면 우리 사회에서 진짜로 언급할 수 없는 ‘금지어’가 된 것은 범죄를 저지르고 물의를 일으킨 스타들의 이름이 아닌, 그들을 열렬히 지지했던 소녀들이 보낸 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팬덤이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처절하게 배신했던 각계의 스타들은 ‘충분히 반성하였으며, 죗값을 본업(여기에는 연기, 음악, 야구 등… 수많은 단어들이 들어갈 수 있다.)으로 갚겠다’며 복귀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팬덤이 ‘덕질’이라는 형태로 보낸 막대한 애정은 그저 ‘흑역사’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흑역사는 두 층위의 의미를 지닌다. 말할 수 없거나, 아니면 말할 가치조차 없거나. 도입부에서 말했듯, 주류 케이팝 팬덤을 이끌어가는 주축은 대개 ‘10대 소녀들’로 표상된다. ‘덕질’과 ‘팬덤’으로 분출되는 10대 소녀들의 정념은 진지하게 사유하고 관찰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며 ‘역사’가 되지 못하고 ‘흑역사’에 머무른다. 문화적 생산자와 그 생산물의 적극적인 향유자인 ‘팬덤’의 구성원이 소외당하는 이 현상의 원인에 여성혐오와 청소년 혐오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성덕>에는 감독 자신을 비롯해, ‘10대 소녀’로서 팬덤 활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한다. 팬덤 활동 당시 10대가 아니었던 사례도 있지만, 10대가 아니라고 해서 소위 ‘빠순이’라는 표현으로 압축되는 적나라한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는 아니다. 영화 속에서 이 인터뷰이들은 냉정하게 회고하고, 솔직하게 쌍욕을 내뱉으며 분노하기도 하며, 한편으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심스레 털어놓기도 한다. 오세연 감독은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수많은 이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에 나서지만, 인터뷰이들의 반응을 특정한 프레임을 갖고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별처럼 빛났던 스타가 남겼던 짙은 그림자로 인해 충격받고 좌절한 사람들과 그들이 가졌던 다채로운 욕망을 성실하게 조명하고 기록할 뿐이다. ‘피차 같은 처지’라는 공감을 기반으로 하여.
만약 <성덕>의 결론이 단순히 “맞아. 그 새끼가 나쁜 거지, 좋아했던 우리가 무슨 죄야?” 같은 식의 단순하고 즉각적인 위무에 머물렀더라면 나는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작중에서 오세연 감독은 인터뷰를 위해 전국 각지를 방문한다. 묻는 사람이 찾아간 곳에서 답하는 사람들은 서로 비슷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각기 다른 서로의 사정을 들려준다. 답변을 통해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인터뷰이들은 미디어와 미디어 수용자에 대한 고찰,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등 다양한 사회적 주제들을 가로지르며 종횡무진 질주한다. 인터뷰를 마친 뒤, 기차 안에서 글을 쓰는 감독은 마침내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한다. “그래서, 나의 애정이 누군가에게 가해가 되지는 않았을까?”
감독은 특정한 결론을 내리는 대신, 개개인의 왜곡된 선택과 모순을 보다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자연인 오세연 감독이 이 영화를 찍으며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는, 제3자인 나로서는 알 수도 없고 말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마치 ‘팬덤’에 속한 우리가 스타의 ‘진짜 모습’을 모두 알 수는 없듯이. 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인 ‘인터뷰어 오세연’은 분명 인터뷰를 거치며 영화 초반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친구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마침내 성장하는 것. 그 자체가 충실한 청춘 로드무비 플롯이다. ‘덕질’과 ‘팬덤’을 넓은 의미의 사랑으로 봤을 때, 일종의 ‘로맨틱 로드트립 무비’라고 봐도 될 것 같다. 다소 비틀린 형태이긴 하지만.
오세연 감독은 <성덕> 본편과 GV, 그리고 여러 인터뷰를 통해 역설한다. 그럼에도 덕질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는 않겠노라고. 한 인터뷰에서 그는 “사랑을 줄 존재가 있다는 건 삶을 한층 풍부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 역시 공감한다. 그리고 이렇게 화답하고 싶다. 덕질은 곧 사랑이요, 무언가를 사랑하는 행위는 내가 사는 세계를 확장하는 행위라고. 불행한 이야기지만 언젠가 사랑은 변하고, 사람도 마찬가지로 변한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확장된 세계는 남는다고. 영화 <성덕>이야말로 그 증거라고.
오세연 감독의 주변인들이 이런 농담을 했다고 한다. 만약 정준영이 오세연 감독을 고소한다면, 그 사건을 소재로 <성덕2>를 만들라고. 나는 조금 다른 제안을 하고 싶다. ‘포스트 정준영’도 좋지만, 지금까지 ‘OPPA’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 ‘Unnie’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안 되겠냐고. 1950년대 여성국극 팬덤을 시작으로 이상은, 이선희를 거쳐 소녀시대 원더걸스 받고 현재의 여자배구 열풍에 이르는 ‘여덕’의 서사도 재미있을 것 같다고. 잠깐, 이 영화 설마 내가 만들어야 되는 거야?
평론가 정성일은 이렇게 말했다. 영화를 사랑하는 첫 번째 방법은 같은 영화를 두 번 보는 것이며, 두 번째 방법은 영화 평을 쓰는 것이고, 세 번째 방법은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영화 <성덕>이 최고의 영화는 아닐 지도 모른다. 분명 기술적으로 미숙한 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관객으로 하여금 입을 열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사랑이 넘치는 영화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분명 리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는데, 써 놓고 보니 길게 늘려 쓴 ‘<성덕> 영업글’이 된 것 같아 민망한 마음이다. 영화 <성덕>은 앞으로도 부산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상영이 예정되어 있다. 이미 입소문이 날 만큼 나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나 어지간한 콘서트 예매만큼 치열한 예매 전쟁이 더 치열해질까 걱정도 되지만 그럼에도 ‘좋은 건 함께 보자’는 마음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날것 그대로의 이름들과 함께 ‘OPPA’가 불러온 분노를 신랄한 유머로 승화시키고 싶다면, 당신도 예매 전쟁에 참여하길 바란다. 영화제로 가라! 펄떡이는 소녀-여성-덕후들의 살아 숨쉬는 정념이 역사가 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을 테니.
필자소개
구슬(필명)
고양이 꾸꾸의 사료값을 벌어야 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 어쩌다 보니 2020년 제 12회 한겨레21 손바닥문학상 가작에 당선되어 작가인 척하고 있는 직장인. 좋다고 느낀 것을 남들에게 영업하는 데 주저함이 없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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