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4. 04:28ㆍFeature
천하제일탈공작소 # 3
<탈춤으로 철학하기3
– 우리는 짜라투스트라와 이렇게 싸우고 있다>
글_김서진
천하제일탈공작소는 현재와 공감하는 창작연희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젊은’ 탈춤 예인집단입니다.
요즘 천하제일탈공작소는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이라는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 신작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창작한다는 것은 할 때마다 매번 어려운 과정을 겪는다. 감각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며, 생각도 다른 개개인들이 서로의 뜻을 공유하고, 부딪히고, 설득하고, 설득당하는 조율이 막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그 과정은 때로는 우연처럼 잘 맞고, 때로는 짜증나게 어긋나고, 때로는 질리게 안통하고, 때로는 기적처럼 성사되기도 한다. 흩어지는 느낌으로 허덕일 때면, 이럴 바에야 차라리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부러워지다가도, 분위기가 좋아지면 그래도 역시 같이 작업하는 게 훨씬 즐겁다며 생각이 변덕을 부리는 것이다.
나의 경우는 같이 해서 다행이다 싶을 때가 훨씬 많은데, 어쩌면 이것은 무능의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부족한 만큼 누군가를 많이 의지할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는 민주적인 태도와 방식이라고 봐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럴 때 쓰이는 민주성은 무능력을 만회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미덕이랄까.
아무튼 역시나 이번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을 만드는 과정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기대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와 탈춤꾼들이 고난을 헤쳐 나가고자 끙끙대고 있을 때, 악사가 나타나 풍성한 분위기를 갖게 되었고, 디자이너가 나타나 구체성을 띄게 되었고, 마임이스트가 나타나 탈춤에 새로운 몸짓을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 하나 된 느낌의 황홀경에 다다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보폭을 잘 맞춰가며 함께 걸어가고 있다고 할까?
이현수씨와 마임 걸음마 중인 천하제일탈공작소
그런데 사실 고백하자면, 지겹게도 하나가 안 되고 있는 어려운 사람이 있다. 바로 작가다. 니체라고도 할 수도 있고, 혹은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을 쓴 원작자라고도 할 수 있다.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은 나의 철학 선생님의 미출판 원고이다.) 니체와 나의 철학 선생님, 이 두 명의 원작자는 우리 공연의 작가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스승이다. 스승님이 둘씩이나 마음 속에 버티고 있으니까 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국엔 이런 꿈까지 꾸었다.
“나는 어떤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아주 까마득하게 높은 계곡에 놓인 좁다란 형태의 다리였다. 얼마나 좁았냐면 말의 양쪽 옆구리에 난간이 닿을락 말락한 그야말로 외나무 다리였다. 그나마 난간 때문에 말이 다리 밑으로 떨어질 위험은 없었다. 물론 나는 안장도 얹고 고삐도 채워진 말 위에 균형을 잡고 있었다. 하지만 계곡의 깊이에서 느껴지는 아찔함과 좁은 다리에서 갇힌 채 앞으로만 걸어나가야 하는 답답함이 괴로웠다.
그리고 곧이어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아까와 같이 말을 타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이번에는 안장도 고삐도 없이 두 손으로 말갈기를 움켜잡고 있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말이 초원을 날뛰며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슬아슬함과 동시에 매우 시원함을 느꼈다.”
노래를 만들고 있는 황민왕씨와 이주원씨
이 두 개의 연달은 꿈이 흥미롭게 느껴져서 하루 종일 그 광경들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 꿈을 내 멋대로 해석해 내었다. 꿈에서의 말(馬)은 동음이의어인 말(言)이 형상화된 것 같다. 연출이라는 역할 상 니체의 언어를 올라 타 앉아 고삐를 잡은 체 하고 있지만, 실상은 니체의 말 안장에 얹힌 채 실려 가고 있었던 꼴이랄까.
“니체는 말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하고 니체는 말했다.”
나는 니체의 권위에 눌려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까마득했던 계곡은 내가 생각하는 그 권위의 높이였다. 난 그 계곡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전하게 나를 말에 붙들어 맨 채 답답하고 지루하게 다리를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순순히 권위를 따르는 길로.
그런데 나의 욕망은 두 번째 꿈처럼 그 말을 타고 달리고 싶어 했다. 안장도 필요 없고, 고삐도 필요 없이. 그리고 그 높은 다리? 오오, 아직 나에게 주어지지도 않은 깊이를 그렇게 ‘-체하며’ 가장해야만하나?
차라리 초원을 달리고 싶었던 거다. 나는! 비록 말에서 떨어질 지라도! 비록 높이도 깊이도 없을지라도!
짜라투스트라의 스피릿을 받아랏! <짜라투스트라의 하산 첫날>
2012년 12월 5일(수) 8시 / 6일(목) 4시 블루스퀘어 복합문화공간 NEMO (6호선 한강진역) 쇼케이스니까 FREE
공연 후, 유쾌한 멍석대담이 펼쳐집니다. 예약 : 070-8236-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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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0일 4시/8시 풍류극장에서 완결판 공연이 펼쳐집니다 ***)
필자_김서진
소개_ 목요일오후한시의 쉬고 있는 단원, 천하제일탈공작소의 명함 받은 연출, 연희집단 The광대의 명함 없는 연출, 山海철학의 공부하는 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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