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8. 18:23ㆍFeature
봄: 온몸으로 바라보기
글_ 성지은
_ 1916년 스위스 취리히의 <캬바레 볼테르>라는 가게에서는 한 남자가 고깔모자를 쓰고 마분지로 만든 옷을 입고 이상한 시를 읊고 있었습니다. 그 어떤 언어도 아닌 그저 소리의 나열들로 이루어진 시는 아무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상한 옷을 입은 남자가 이상한 시를 소리내어 읽을 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벙쪄있거나, 야유하거나, 재미있어했을 것입니다. 이 어이없는 광경은 아방가르드 미술의 선구자였던 다다이스트 위고 발(Hugo Ball)이 ‘음향시’를 선보이는 순간이었습니다.
▲ 캬바레 볼테르에서 시를 낭송하는 위고 발
▲ 위고 발이 짓고 읽은 음향시
예술에는 여러 가지 장르가 있습니다. 이는 어떤 감각기관을 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나뉩니다. 눈으로는 그림을 보고, 귀로는 음악을 듣습니다. 머리로는 이야기를 읽고, 몸으로는 춤을 춥니다. 이렇게 미술, 음악, 문학, 무용이 서로 나뉘어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이들이 구분 없이 서로 합쳐져 있었다고 합니다. 나뉘고 합쳐지고 또 다시 나뉘고 합쳐지는 긴 역사를 지나 지금 우리는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던 예술 장르들이 서로 합쳐져야 한다며, ‘멀티’를 부르짖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아마도 20세기 초반의 아방가르드 운동이 그 선구자일 것입니다. 위고 발의 음향시는 음악이면서 시이고 동시에 미술이면서 퍼포먼스였습니다. 그리고 이 시낭송에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시의 이상한 내용뿐만 아니라 이상한 옷, 이상한 의도, 그 이상한 분위기 등 모든 것이었을 것입니다.
_ 요즈음 예술의 영역에서는 믹스, 경계, 멀티, 혼종 등등 여러 장르들을 섞고 아우르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미술과 무용이, 음악과 문학이 서로의 경계를 열고 상대방을 조금씩 불러 들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무언가 첨단을 걷는 것 같은, 마치 전위적인 아방가르드가 된 것 같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예술은 이렇게 섞여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기 전 각 분야의 예술들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으로 보는 미술이 그저 시각만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고, 귀로 듣는 음악이 그저 청각만을 필요로 한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좋은 공연장에서 보니까 더 잘 하는 것처럼 들려.” “아, 깔끔한 전시장에 놓여 있으니 더 멋있어 보이네.” 오늘의 예술이 자신만의 감각 영역뿐만 아니라 다른 감각까지 고려하게 된 것은 마냥 획기적인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 농악놀이
_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의 예술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예술작품을 ‘본다’는 것은 참 간단한 일입니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연극이든, 악기 연주든, 또는 그림이든지 간에 그저 앞에 있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고개 들어 쳐다보는 내 눈 앞에서 어떤 작품은 오로지 그림이기도 하고, 그림과 무언가 다른 장르가 섞여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만약 예술작품이 원래 여러 장르 또는 여러 감각이 혼합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본다’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가 멀티를 이야기하기 전의 예술과, 멀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 후의 예술은 서로 다른 ‘봄’을 필요로 하는 것일까요?
_ 요 근래 제가 보았던 여러 예술 작품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 중에는 소위 다장르 작품도 있었고, 전통적인 예술 형태를 고수하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또는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쪽이든지 간에 작품들은 그저 한 가지 감각으로만 집중해서 보는 것을 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작품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서는 온몸의 감각을 열고 작품의 모든 것을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저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보아야 했던 것입니다.
작년 겨울 문화역서울에서 열렸던 전시 <Playtime>에서 극단 다페르튜토 스튜디오(홈페이지 http://www.dappertuttostudio.com)의 공연을 보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연극’으로 분류되지만 딱히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이 극단(?)은 연기 외에도 많은 장르의 예술 수행들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프로젝터로 비춘 스크린에는 이 극단 사람들이 퍼포먼스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 흘러나왔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글을 띄운 스크린을 뒤로 하고 몸짓을 했으며, 댄스음악과 함께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전구의 빛을 이용해 하나의 형상을 만드는 것은 마치 미술의 퍼포먼스와도 같았습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이들의 작업을 보기 위해서는 오감을 작동시켜야 했습니다. 끊임없이 눈과 귀를 긴장시키고, 배우가 어디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촉각을 곤두서야 했습니다. 더구나 이들의 작품은 작품이 공연되는 장소에 맞추어 만들어지는 장소특정적인 성격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작품을 보는 일은 곧 장소를 느끼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들의 작업은 관객이 예술작품을 온몸으로 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었던 것입니다.
▲ 다페르튜토 스튜디오의 공연 모습
작품을 온몸으로 보는 것을 그저 탈경계적인 작품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른 장르의 예술 수행을 끌어다 쓸 것이 없어 보이는 음악도 역시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온몸의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입니다. 몇 주 전 합정역 무대륙에서 열린 공연 <A Very Loud Dream>에서는 여자 보컬이 있는 슈게이징 밴드 네 팀이 모였습니다. 극초단파, 티어파크, 꿈에 카메라를 가져올걸, 비둘기우유. 슈게이징은 워낙에 시끄러운 노이즈를 내기 때문에, 듣고 있으면 그 진동 때문에 말 그대로 심장이 울립니다. 그러니 이들의 음악은 귀뿐만 아니라 피부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온몸으로 감상한다는 말이 아마 이들에게 가장 적절하겠지요. 더욱 더 중요한 것은 공연장과 그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관객들의 호흡입니다. 이들과 음악이 맞아 떨어질 때,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온몸으로 목격할 때 그 목격자는 음악이 주는 최대의 감동을 포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비둘기우유 공연 모습
얼마 전 찾았던 갤러리 팩토리에서의 사진작가 하시시 박의 개인전 <Casual Pieces 1 눈을 감고 마음을 감다>는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도 온몸으로 바라보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모든 작품은 온몸으로 껴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환상적이고 몽롱하면서 틈새를 포착하는 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하시시 박이 처음으로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보통의 미술 전시에서는 작품들이 보기 좋은 위치에 정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하시시 박의 전시는 공간 구석구석에 작품을 배치함으로써 공간을 더욱 리드미컬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든 미술 전시가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이 전시는 미술 작품을 ‘본다’는 것이 실은 작품이 걸려있는 공간 속에서 그 공간을 ‘느끼고 본다’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처럼 작품과 나는 같은 공간 안에서 온몸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 하시시 박 개인전 포스터
▲ 전시 전경
_ ‘봄’이라는 행위에 대해서 프랑스의 철학자인 메를로-퐁티는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시지각은 사물들의 한복판에서 생겨난다. 어느 쪽이 됐든, 보이는 것이 보기 시작하고, 느끼는 이와 느껴지는 것이 미분화 상태를 고수한다.” 이 말처럼 우리는 작품을 보고, 작품은 우리를 봅니다. 이 교차하는 시선들이 작품과 내가 있는 공간을 꽉 채우고 있고, 그럼으로써 우리는 작품을 온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그저 눈으로만 작품을 보는 것을 선택합니다. 온몸으로 보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해 보고 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고, 더구나 어느 한 가지 감각기관으로만 볼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을 텐데요. 그래서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예술을 온몸으로 보고 있습니까? 부디 그렇기를 바라며,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
**** 사진 출처
1, 2, 3 = 구글 이미지
4 = http://www.photowang.net/5992
5, 6 = 성지은
7, 8 = 강선영 (http://blog.naver.com/eueubox?Redirect=Log&logNo=100181751404)
9 = 하시시 박
10 = 구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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