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일시적 인터뷰 - 차지량과의 어떤 대화

2013. 3. 31. 04:36Feature

 @Paris

일시적 인터뷰

+ 차지량과의 어떤 대화

 

정리_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이 이야기는 파리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두 시간 여에 걸쳐 아주 느리게, 천천히 진행되었습니다. 녹음기에 담겨 있는 것 중에서 여기 정리되지 못한 것들 - 곰곰이 말을 끊어 가며 문장을 만들어 발음하던 사이사이의 침묵들, 중간에 보여준 몇몇 영상들, 거기 새겨져 있던 말들과 이미지들, 그 중 유일하게 녹음기에 기록된 전자음이 섞인 배경 음악들 – 만이 일시적이지 않은 것으로 남았으며, 여기에는 아주 일시적인 흔적들만을 재기록 하였음을 밝힙니다.

 

질문_개인적인 낭독회 <점점(..) 사라질거야>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들을 때는 늘 슬픔이라는 단어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는 그 사라짐을, 너무나 안타깝게 궁지에 몰려서 떠나는 어떤 ‘사람’의 슬픈 사라짐으로 상상했고요. 그런데 이후 차지량씨를 다른 자리에서 뵈었을 때는, ‘사람’이라기보다 한 명의 ‘예술가’로서, 또 하나의 프로젝트의 일환(그리 슬프지 않은,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으로 그 사라짐을 계획했을 뿐인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답_그걸 예측하는 게 우리가 흔히 관객이라고 하는 이들의 몫일 것 같아요. 전해 들으셨던 얘기들은 실제보다는 감상에 가까운 것이었고, 제가 당시 작업과 무관하게 누군가와 나누고 싶어서 했던 얘기들, 그 낭독회는 어떻게 보면 짧지도 길지도 않은, 지난 시간 동안 말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여과 없이 말한 순간이었거든요. 거기에는 슬픈 상황이나 슬픈 사건들도 있었지만, 내가 잘 얘기하지 않던 어떤 개인의 역사가 있었어요. 그 부분들을 작업적으로 혹은 예술 작품으로 읽어주기를 바라는 욕망도 없었고, 그저 나누고 싶다는 바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화법 안에서 표현을 했던 거였죠. 그리고 저는 그 낭독회를 하기 전까지는 개인적인 상황을 정말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어요. 사실 이후에 다시 공적인 자리에서 제가 제 작업이나 생각에 대해서 얘기했을 때는 그 부분들, 당시 낭독회에 나와 준 사람들과 제가 공유했던 얘기들을 드러낼 수는 없었던 거죠. 그렇다고 그게 꼭 슬퍼야 된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계속 그런 얘기들을 듣고 있는 중인 거예요, 아직도. 이건 프로젝트일 수 있는 것 같다, 하며 예술가로서 저에게 기대하는 것들, 혹은 그저 슬픈 감상으로써 저의 떠남 자체가 관심일 수도 있고, 혹은 어떤 위로의 말일 수도 있고. 저 스스로도 그 부분들을 떠남과 동시에 정리를 시작하게 된 것도 있어요. 솔직하게 얘기해서 그때 어떤 자극적인 이슈처럼 말을 하긴 했지만(떠남의 목적인 위장행위에 대해) 그건 굉장히 농담 같은 계획일 수도 있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런 면에서 저는 티켓을 살 때까지만 해도 사실은 굉장히 삶에 대한 의지가 없었어요. 그런 상황 속에서 떠나기 전부터 여러 가지 심리적 요인들이 발생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만일 이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읽힐 수 있다면 제 삶의 그런 부분들, 저에게 다가온 사건들과 경험들을 프로젝트화 또는 작업화하는 화법으로 사람들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떠남 직전에 하셨던 작업(<뉴홈>)이 공간을 점유하는 작업이었고, 그게 ‘집’이라는, 사라짐과 정반대되는 어떤 것과 연관이 있었잖아요. 아마 그때 그 자리에서는 <뉴홈>을 설명하신 뒤에 이제 다음으로는 떠나는 것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라는 식의, 어쨌든 제가 프로젝트라고 받아들일 법한 표현을 언급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 작업을 설명하는 말처럼 받아들였거든요.

충분히 그렇게 받아들였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전까지의 작업은 여러 개인들의 에너지들을 모아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많았으니까요. 하지만 <뉴홈>이 실제의 점유만을 위한 목적이거나, 생의 의지를 드러내는 작업이었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전체적으로 그 의지들이 점차 무력해지고, 힘이 없어지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낭독회 때는 그것이 더욱 짙게 드러났던 거였죠.

네, 원래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더 많이 슬펐다는 얘기들을 들었었어요.

그때 얘기를 하면서 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성격도 그렇고. 그런 면에서 예전과 다르게, 뭔가를 작업적으로 생각하고 구조를 짜고 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요즘엔 하고 싶은 대로 많이 하고 있는 편이기도 해요. 그러려고 더 많이 노력을 하게 됐어요.

그럼 지금은, 뭐랄까 조금 자유로운 상태인 건가요? 편하게 몸을 맡기다가,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하는?

네. 사실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을 법한 부분들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얘기하자면, 어떤 경험들이 있었고, 그걸로 인해 나라를 벗어나고 사라지는 선택을 했고, 그렇게 사라진 후에 어떤 행동들을 한다, 이렇게 나눌 수 있겠죠. 다른 나라에 도착하자 마자 말씀드린 행동을 진행했었어요. 그리고 그게 제가 예측했던 것들과 상당 부분 달랐고. 여러 과정들이 있었어요. 경험을 하고 나니까 느끼는 부분들도 있었고. 새롭게 떠오른 방향과 생겨난 어떤 삶의 의지도 있었고요. 떠나기 전에 미국행 티켓을 사며 남미 티켓을 샀었어요. 사실은 그게 삶의 의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끊은 티켓이었거든요. 그런데 남미에 가기 전까지 굉장히 드라마틱한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뭔가 더 생각해보자, 싶어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위장’의 행위를 통한 새 삶을 위해서 갔는데, 애초에 저와 그에 관해 이야기를 했던 사람의 현장을 마주하게 됐어요. 만일 낭독회에서 그 부분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아마 어떤 오픈 마인드인 사람이 우연찮게 했을 하나의 가볍고 흥미로운 제안쯤으로 여기셨을 테고, 저도 그렇게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사람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바가 이 행동을 통해 드러나지 않는 한 그 행위를 실현하기가 힘들겠다고 판단하게 됐어요. 그 사람은 자신이 했던 말 때문에 저를 마주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원치 않을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했고요. 그래서 처음 갔던 도시에서 일주일 정도를 머물다가, 거기에 더 머무는 것이 누군가한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죠. 도시를 이동하며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새롭게 만나게 된 사람들 속에서 저의 상황과 감정을 얘기할 수 있었고, 또 우연찮게 어떤 목적성이 맞아 떨어지는 사람을 찾게 됐어요. 그런데 목적의 무게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오히려, 의외로 두 번째로 벙 쪘던 것 같아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재차 물었어요. 당신은 왜 그걸 원해요?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그게 좀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느 누구도 상처 받지 않을 과정에 대해 떠올리고 싶었어요. 숙제를 머릿속에 남겨두고 남미를 가게 됐죠.

대자연과 햇살, 이런 걸 마주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주로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었거든요. 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았는데, 이렇게 대낮에, 조금은 느슨한 태도를 가지고, 많이 걷고, 자연을 접하게 되면서 생태과정 같은 것들을 관찰하게 됐어요. 원래 사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막연한 이미지로 그려보기를, 자연적인 경관 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 어떤 자연사를 당하는 것, 그런 생각을 했었고 남미행을 계획할 때 일부러 여러 위험한 코스를 넣었었어요. 암벽등반 같은. 그런데 갑자기 남미에 도착하니 마추픽추가 보고 싶은 거예요. 그걸 보러 떠났죠. 그곳에서 접한 이미지들이 무언가 다른 생각을 머금게끔 하는 영향을 줬어요. 뭔가 아주 이상한 바람처럼. 페루는 '새'의 나라더군요. 절벽과 바다를 아슬아슬하게 걸으며 아찔한 상상을 하는데, 점차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어요. 그런 마음. 그걸 경험하고 다시 돌아왔어요, 미국으로. 즉흥적인 선택들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어요. 파리에 온 것도 갑작스럽게 티켓을 산거죠. 파리행을 결정하니 갑작스럽게 아랍권을 가고 싶어졌고 한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동하는 지역에 무언가 놓고 온 것은 아닌데 많은 것이 가벼워진 느낌이에요.

 

사진출처 : sphotos-h.ak.fbcdn.net/hphotos-ak-ash3/580527_3897248649984_1513999832_n.jpg

 

한국에 잠깐 갈 생각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건 아예 돌아가는 것과는 다른 의미인가요.

네. 뉴욕에 다시 갈 생각을 하고 있어요. 더 얘기를 하기 위해선지 혹은 그 행위를 하기 위해선지는 아직 확답할 수 없지만. 그리고 사실 필요한 것도 있고요. 떠날 때 서둘렀거든요. 대선도 저에게 영향이 컸어요. 투지가 생기더라고요. 어떤 변화의 기대감도 있었는데 한국 사회의 굉장히 느린 자생 같은 걸 상상하며 사라지려고 했던 것도 같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뭔가 이상하게 역행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 전 작업에서 주목했던 게 무언가 시스템 내부에서 생명력을 잃어가는 존재의 영역 같은 거였다면, 이제는 시스템 자체가 겉잡을 수 없이 기형이 됐구나, 하는 느낌. 그런 부분도 크게 작용했었어요. 여기 와서는 사람들의 감상 같은 걸 온라인으로 목격할 뿐이지만, 절망의 온도도 굉장히 높아 보였어요.

이런 부분들은 최근에 공지한 것(<보다 느리지만 좋은 소식> 개인을 위한 드라마)과 관련된 것이기도 해요. 뭔가 사람들에게 판타지가 전혀 없는 느낌을 받았고, 판타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시작하게 됐어요. 그리고 그것이 굉장히 느리게 다가오지만, 뭔가 미래의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미국을 경험하면서 느낀 부분이 많았는데, 제가 하려고 했던 그런 행위들을 하는 다른 사례들도 있잖아요. 그게 법률상으로 봤을 때는 범법 혹은 편법으로 자리하고 있는 일인데, 그런 일들을 자행하거나 시도하는 경우들에 있어서는 무슨 배경이 있을까, 생각해 봤어요. 그리고 그런 일이 만연한 사회는 왜 그런 사회로 자리하게 된 건지. 어떤 면에서는 그것도 저한테서는 판타지로 작용했는데, 뭔가 그런 판타지가 상황 별로 다르게 작동되는 이유는 뭘까, 그런 생각도 했고.

이를테면 이 나라도 그렇겠지만 자국민이 아닌 다른 타국적의 인류들이 커뮤니티를 만드는 경우. 인종적인 부분에서 차별을 받았다거나, 삶을 더 유지시키거나 확장시켜 나가기 위한 행동들을 주목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제가 미국에 가서 하려고 했던 행동에도 어떤 목적의식이 있었고, 그런 데서 공유될 만한 지점들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슷한 부분에서 다른 경험을 한 사례들을 만나는 게 제게는 좀 새로운 부분이었나 봐요. 그런 면에서 많은 상상을 하게 되더라고요. 위장 행위가 하나의 화법이었다면, 또 다른 편법의, 혹은 삶을 유지시키거나 삶을 다른 것으로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담긴 다른 여러 행동들의 층위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여기에는 어떤 삶의 의지나 판타지,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동반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부분이 개인에 관해 작성될 때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궁금하기도 해요.

<엄마와 남미>라는 곡의 리믹스 버전을 올리셨잖아요. 개인적으로 큰 위로와 즐거움이 된 곡인데요. 엄마라는 세계, 남미라는 공간이 뭐였을까, 그리고 원래 2008년 버전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가족주의 시선과 기대감, 그리고 낯선 것에 대한 편중된 목적의식 같은 것. 근데 아주 웃긴 버전이에요. 남미에 간 김에 뭔가 댄스 믹스 같은 걸 만들어볼까? 하는 간단한 생각으로 비행기에서 만들었고요. 거기 그런 가사가 나오거든요. “엄마는 남미가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른단다.” 어떤 캐릭터처럼 엄마의 행동을 그려본 것도 있었고. 사실 저는 가족이랑 떨어져 산지 굉장히 오래됐는데, 어렸을 때 어머니한테 받은 인상은 가족 구성원의, 혹은 가족이라는 어떤 카테고리의 컨트롤러 같은 거였어요. 그런 식으로 뭔가를 관장하는, 그런 캐릭터의 엄마같은 존재를 2008년 당시에 많이 활용했었어요. 저를 '주부'로 소개하기도 하고. 어디 갔을 때 “차지량씨 여기 옆에 괄호 치고 뭐라고 쓰면 되죠?” “주부라고 쓰시면 됩니다.”

그 주부도 컨트롤러를 말하는 건가요?

일종의, 제 삶에 있어서, 제 공간이나 제 영역 안에서의 컨트롤러였던 거죠.

<엄마와 남미>에서는 컨트롤러라는 느낌은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요. 이번 버전에서는 어떤 걸 바꾸신 거죠?

(링크) https://soundcloud.com/chajiryang/icyruyiuw2sr

그리하여 우리는 2008년 버전의 <엄마와 남미> 영상을 보았습니다. 컴퓨터를 켠 김에 다른 여러 영상도 보았습니다. 문제의 그 낭독회 텍스트를 가지고 이후에 만들었다는 영상 작업도 보았습니다.

 

 

이 작업은 투 채널 영상 설치 였는데, 부산 비엔날레에서 이 영상이랑 다른 영상을 같이 틀었었어요. 거기서 보셨던 P의 이야기와 다른 한 채널의 P를 좇는 어떤 캐릭터가 나왔거든요. 이때 비엔날레에서 받은 돈을 가지고 떠나는 티켓을 샀어요. 처음에는 티켓을 예산으로 집행을 안 해주는 거예요. 나는 새로운 작업을 할 의지가 없는데. 저게 사실 마지막으로 저한테 주어진 미션이었어요. 그 전시가 11월에 끝나는 거였고, 대선 다음날 떠나려고 했었죠. 어쨌든 낭독회에서 했던 얘기들은 저런 내용들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약간 우울해졌습니다. 인터뷰 이런 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둘 다 그래, 인터뷰 하지 말자, 하며 판을 엎을 기세였습니다. 그렇지만 자연히, 대화는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일시적인, 대화들.

저도 오늘의 만남이 인터뷰라기보다, 그냥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말 하는 사람과 뜬금없는 얘기를 하고 싶었거든요. 하나 던지자면, 저 오디션 프로그램 나갈 거예요.

진짜요? 어떤 오디션이요? 굉장히 많잖아요.

모르겠어요. 슈스케를 나갈까 싶기는 한데. 팀으로 나갈 거거든요. 댄스팀 만들어가지고. 근데 거기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할 생각이에요. 멤버들의 각자 개인의 삶에 대한. 그게 계획이에요. 뜬금없는. 갑자기 하고 싶은.

슈스케에서 편집이 돼도요?

사실 그래서 목표는 뭔가 높은 순위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전략을 짜고 있어요.

아 그러면 편집될 일이 없겠군요. 팀은 벌써 구성이 됐나요?

지금 두 명 구했어요. 몰라요, 이러다 망하면 안 할지도 모르고.

<보다 느리지만 좋은 소식> 개인을 위한 드라마는 약속하신대로 2월에 하루에 하나씩 쓰고 계신 건가요?

네.

한 번도 날짜가 밀리거나 하지는 않고?

날짜는 물론 밀리죠. 어떻게 안 밀리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정말 긴 시간 투자하지 않고, 정말 하루만 투자하고 있어요.

하루의 얼마 정도?

느낌대로, 그냥. 사실 되게 안 풀리는 것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뭔가 판타지를 만들어준다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사실 저도 생각해보면 어떤 판타지를 기대해서 그걸 의뢰한 것 같고(네, 저는 드라마를 신청했습니다), 내가 스스로 마음껏 펼치지 못하지만 원하는 어떤 것을 기대한 거죠. 그래서 어떻게 보면 신청자들은 다, 이미 원하는 각자의 판타지가 있을 것도 같고요.

사실 저는 원래 온라인을 일상의 확장으로 읽지 않는 사람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의 확장으로 온라인을 사용하잖아요. 사회가 그렇게 되었기도 하고. 거기서 사실 상상력이나 판타지, 이런 것들은 굉장히 미비하게 발휘되고 있는 부분들이죠.

지량씨에게 원래 온라인은 어떤 거예요?

제가 온라인을 시작한 건 16년 전이었어요. 그 때는, 지금도 사실 비슷하게 하고 있는 게 있긴 한데, 대화명이 자주 바꾸고, 아이디가 여러 개고, 계정이 여러 개고, 내가 하고 있는 역할들 혹은 내가 하고자 하는 부분들에 관해서, 뭐랄까 온라인상의 저의 체형이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그런데 저 스스로도 그걸 어느덧 일상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건 포털사이트의 일방적 구조와 실명제 때문이라 생각해요.

근데 사실 온라인상에서 우리가 실험할 수 있는 건 굉장히 많아요. 어떻게 보면 연극하는 사람들이나 공연예술 하는 사람들과 코드가 잘 맞는 이유는, 자기 현장 안에서 연극성, 극적 요소들을 인식하고 그 구조를 인정하는 채로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인 것 같아요.

16년 전이라 함은 ‘천리안’ 같은 걸 할 때죠. 그때랑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때는 확실히 그게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세계였고, 나의 얼굴을 강요하지 않는 세계였고, 그래서 좀 더 가볍게 놀 수 있거나 아니면 전혀 다른 판타지를 즐길 수 있었다면, 지금 같은 경우는 오히려 반대죠. 제가 페이스북을 하게 된 계기도 그래요. 혼자 여행을 하다가 외국에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사실 여행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판타지잖아요, 그게 보장이 될 수 있어야 하는 거고. 만나는 사람들도 판타지 속 인물들처럼 안녕하고 헤어지면 그 뿐이고. 그런데 이들과 현실에서 뭔가 끈을 가지고 싶다, 라는 감정이 생기고, 그러려면 페이스북을 해야 했어요. 그렇게 치면 페이스북이라는 것은 굉장히 현실적인 매체인 거죠.

시대가 달라져서 그렇다기보다, 어떤 상황에 있어 몰입하는 패턴이 다양해진 것 같아요. 사실 그 시대가 그렇게 달랐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과거의 부분들이 좋았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저 가상성이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현재의 그 가능성이 없어지는 요소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또 약간, 있긴 있죠.

네. 그래서 그걸 더 발휘하려는 거예요.

그러면 주로 그런 부분을 보시나요?

네. 이를테면 제가 도시의 위치 정보를 노출시키면서 사진은 안 올리는 이유가, 나중에 그게 다 거짓처럼 느껴지게 하려는 생각도 있었어요. 얼굴이 드러난 사진은 현실로 인식되어 사진의 연속성을 가질 경우, 더욱 몰입된 현실패턴을 보일 것 같아요. 순간적인 트위터와는 다르게. 그런 면에서 오히려 위장이 쉬운 영역 같기도 해요. 페이크 북.

예를 들면 페이스북 같은 공간에 저 같은 경우 오히려 굉장히 우울하고 힘들기 때문에 전혀 다른 종류의 이야기를 올리거든요. 그러니까 그런 의미에서 가상성이라는 것은 여전히 담보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어쨌든 재밌을 것 같네요. 드라마가 굉장히 기대가 돼요. 그리고 어떻게 본다면 신청자의 의도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아예 내가 가지 못하는 쪽으로 더 가주는 판타지를 원하거나, 아니면 내가 사실은 진짜인 척하지만 진짜 얼굴을 가리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서 진짜를 봐주기를 원하거나.

맞아요, 그런 부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런 걸 감지할 수도 있었던 것 같고.

온라인상의 그런 것들로 작업을 많이 하셨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하시는데, 만약에 온라인이라는 공간이 아예 없었다면 지량씨는 어떤 것을 하셨을 것 같나요?

온라인은 제가 집에만 있고 뭔가 폐쇄적인 성향이었을 때 접하게 된 거였는데, 그게 없었다면 집에서 딴 거 무엇을 했을 까요? 그런 면에서 표현의 욕구는 어렸을 때부터 무척 컸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오덕 질, 이런 거 하지 않았을까요?

실제로 초창기 미술 작업은 그림이었죠?

공간을 다루는 설치미술에 흥미가 컸어요. 그런데 어딘가 여행을 가거나 군대에 있어서 사람들을 못 만날 때 그린 그림이나 편지 같은 게 있었죠. 그것들이 단서가 돼서 어떤 설치를 접목해 첫 개인전을 했었고요. 그러고 보면 그런 그림이 저한테 중요한 단서였어요. 그리고 새삼 다시 크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그때부터도 그렇고 사람들을 되게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 남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얘기들을 하면서,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을 마주쳤고 그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저 역시도. 매일 온라인을 보고 사람들 근황도 궁금해 하는 걸 보면. <세대독립클럽>을 진행했을 때도, 그걸 모아서 나중에 30년, 50년 지나서 다시 보면 웃기겠다, 하면서 만들기도 했었거든요.

저는 사실 전해지는 말들만 들었기 때문에, 지량씨가 정말로 사라지실 줄 알았어요. 완전히.

사라짐이라는 거에 대해 생각해볼 때, 사실 웹이라는 공간이 우리한테 커지면서 두 가지가 다 가능해진 것 같거든요. 완전한 소멸이 오히려 더 쉽거나, 혹은 어렵거나. 일단 완전한 소멸이 어려운 것은,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가상의 공간이 있고 거기서 서로의 흔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거고요, 완전한 소멸이 오히려 가능한 건, 왠지 진짜 끝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가 쉬운 것 같아서예요. 예를 들면 편지를 받는 것 외에는 서로 연락을 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는 편지가 오지 않을 경우에 그래도 여전히 편지를 기다리잖아요. 뭔가 편지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어딘가를 거쳐 올 수도 있고, 이런 식의 가능성들을 많이 열어둘 수 있는데, 웹이라는 공간은 누군가 주체가 사라지기로 마음만 먹으면 오히려 아무 흔적 없이 정말 끝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저는, 지량씨의 사라짐이 어떤 것일지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사라짐이라는 말 밖에는 저에게 전해진 게 없어서, 어떻게 보면 웹에 계속 계시는 것이 굉장히 반갑기도 했고요. 물론 거기서 지량씨도 깊은 데 있는 얘기가 아닌 표면적인 것들만 공유하시기도 하니까, 얼마간 사라진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실 우리가 익숙함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한데, 페이스북에 글을 쓸 때 가령 파리에서 뭔가를 올려도 우리는 어떤 한국어와 한국인의 인식이 지배적일 경우 국내에 있는 사람은 낯선 느낌을 받지 않죠. 그것은 언어와 사람으로 판단한 접촉되었다는 감정인 듯 해요. 저는 그런 면에서, 같은 언어를 쓰고는 있지만 언어의 사용처를 ‘한국’으로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번에 다수의 나라를 돌아다니며 국내와 외국에 대한 이미지에 대해 얘기 나누며 대한민국의 주변국과 정치적 상황이나 국가 간의 이동이 쉽지 않음을 통해 국가의 폐쇄성을 떠올릴 수 있었어요. 저에게 있어서의 사라짐은, 낭독회 말미에 얘기한 것처럼, 제가 속해 있었던 시스템 속에서의 역할, 행위, 그런 것들에서 존재감을 없애는 것, 이런 쪽에 더 가까웠던 거예요. 어찌보면 국가의 폐쇄성 극대화일 수 있어요. 제목이 <점점 사라질 거야>인데, 이것은 한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기 보다 모두가 사라질 수 있는 상상력을 갖는 것. <뉴홈>에서도 <일시적 기업>에서도 고립된 시스템의 유지는 모두를 점점 사라질 수 있게 하는 것이란 생각에 변함이 없어요.

저는 제가 가족주의적 강박에서 멀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어떤 상황이 왔을 때 그렇게 했던 행동들, 가족 안에서의 원조, 같은 거에 대해 내가 어떤 강박을 갖고 있었나를 여행 중에 많이 생각하기도 했어요. 인류애적인 연민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효자가 되고 싶었는지. 만나지 않고 계좌이체를 하며 1년을 보냈고 떠나며, 만약 다른 국적이 된다면 그건 정말 가족이 아닌 건가,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여러 선택지 중에서 아직 선택은 하지 않았지만 제 경우가 아니라도 그것은 어떤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것이 가능한 '개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현재는 제도가 단단한 국가에 대한 선택도 국적 취득 같은 것에 대해서도.

지량씨한테 가장 큰 것은 뭔가요?

작년에는 없었거든요. 작년에는 심지어 어떤 작가한테 꿈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되게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괴로웠던 시기가 있었고, 한동안 꿈이 없다고 느껴져서 기분이 그랬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런 면에서 일부러 아주 가벼운 것들을 주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심지어 슈스케 같은, 그런 농담 같은. 꿈, 아직은 그런 것들이 그렇게 선명하지는 않아요.

(드림위버)

https://soundcloud.com/#chajiryang/dream-weaver-edit_1

지금 이렇게 다니면서는요?

그냥 사람들, 보고 싶은 거, 그게 큰 거 같아요.

그 보고싶음은 정말 그냥 보고싶음인가요?

(현기증)

https://soundcloud.com/#chajiryang/mimi

저에게 가족이라고 생각됐던 사람들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그들과 멀어지며 떠남을 선택하게 된 건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스스로 정의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리고 그것은 내 스스로가 가정을 이루고자 했던 일의 상실감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곧 보고 싶은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슈스케 같은. 이라는 말이 모종의 관용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슈스케 같은, 이야기들을 하면서 계속해서 은밀히 피해가려 하였지만, 결국 아픔에 관한 이야기로 자꾸만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그가 아주 진실 되게 이 대화에 임해주었다는 증거이기에, 그의 아픔을 기록하며 저는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슈스케 같은, 그의 떠돌아다님을 유쾌하게 축복해 봅니다. 어떤 것에도 확답을 할 수 없는 날들이 꽤 오래 지속되겠지만, 행복한 선택을 하게 되기 바라며, 혹은 답이 없이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인디언빵(indie-n-braod)은 해외에서 보내온 인디언밥 필자들의 소식을 다루는 코너입니다. 첫 기사로 작년까지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지혜로운 늑대의 전사" 가 보내온 "차지량 인터뷰" 를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