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 18. 12:47ㆍReview
“그 곳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
- 공감을 지켜주세요
EBS축소반대 릴레이 콘서트
글_나그네
얼마 전부터 공중파 주요 음악 프로그램들에선 비슷한 노래를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고 흔들며 불러대는 비슷하게 생긴 일명 '아이돌' 가수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아이돌 음악'의 홍수 속에 음악 자체에 충실한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음악 프로그램은 하나씩 축소되거나 폐지되어 왔다. 그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공중파 음악 프로그램으로 <유희열의 스케치북>이 있지만, 이 프로그램에도 정말 무명의 인디 가수가 출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한 회 당 출연자가 많아 최대 2~3곡 연주할 수 있는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어느 한 아티스트를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와 같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약 1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뮤지션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프로그램이 바로 <EBS 스페이스 공감>이다. <스페이스 공감>은 락, 재즈, 발라드 등 장르를 불문한 국내, 외 아티스트들을 그들의 외모도 아닌, 인지도나 소속사도 아닌, 오로지 '음악'에 포커스를 맞추어 대중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을 톡톡히 하여 왔고, 현재까지 약 2200회의 무료 공연과 1000회 분의 방송을 방영하였다.
뿐만 아니라 <스페이스 공감>은 "헬로 루키"라는 시스템을 도입하여 무명의 천재 뮤지션들을 발굴하는 역할도 해주었는데, 현재 인디씬에서 꽤 이름을 날리고 있는 국카스텐이나 장기하와 얼굴들 역시 이 헬로루키 출신이라는 점에서 그 위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스페이스 공감>을 통해 제대로 된 공연 인생을 시작하였고, 새 앨범을 내고 나면 꼭 <스페이스 공감>에서 무대를 가질 만큼 그들에게 공감 무대는 언제나 그들의 행보를 응원해주는 따뜻하고 정겨운 고향집과도 같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사측의 독단적인 판단 아래 <스페이스 공감>의 공연 횟수를 주 5회에서 2회로 줄이고 제작진을 축소 편성하겠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이에 수많은 아티스트들과 공감 무대를, 그리고 공감에서 알게 된 무수한 아티스트들을 사랑해 온 음악 팬들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오랜 시간 동안 음악계를, 그 중에서도 인디씬을 지탱해주었던 '클럽 쌤'이 문을 닫았던 2011년의 아픔이 되살아나는 듯한 분위기였다. 그로부터 시간은 이렇게나 흘렀는데,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면서 국가는 K-POP의 위용을 그렇게나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데. 여전히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은 진보하지 못 하고 있으며, 오히려 '진짜 음악을 하는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만 계속해서 한둘씩 빼앗기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에 아티스트와 음악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마땅치가 않았다. 어디까지나 <스페이스 공감>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EBS 내부의 일이고, 개개인이 SNS를 통해 아무리 의견을 표출한다고 해도 어려울 일이었다. 이에 재즈 베이시스트 최은창 씨는 좀 더 구체적인 행동을 위하여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만들고, 함께 뜻을 모을 아티스트들을 섭외하여 이번 "공감을 지켜주세요" 공연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공연을 기획한 최은창 씨가 재즈 뮤지션인 만큼 많은 쟁쟁한 재즈 아티스트를 필두로 싱어송라이터, 락밴드 등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가 개런티를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공연에 참여하였고, 카페 벨로주 역시 무료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다. 공연은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하였고, 이는 공감을 지키기 위한 아티스트와 팬들의 소리 없이 끈끈한 연대감을 보여주어 또 한 번 클럽 쌤 고별 공연 때의 그 분위기와 느낌을 떠올리게 하였다. 공연이 있었던 지난 일요일과 월요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벨로주 안은 하나의 꿈을 향한 열기로 가득 차있었다.
공연 중인 선우정아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40113184319)
공연 중인 나희경 (출처 : 텐아시아, http://tenasia.hankyung.com/archives/202745)
아티스트들은 저마다 <스페이스 공감>과의 인연을 소개하며, 공감이 아티스트들에게, 그리고 음악을 사랑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각별한 프로그램인지를 다시 한 번 강조하였고, 공연을 찾은 많은 이들은 이에 공감하며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호응을 보여주었다. 프로그램 폐지를 막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합쳐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일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적극적인 노력에 따라 하나의 희소식이 들려왔으니, 주 2회 편성으로 축소하려던 것을 주 4회까지만 축소하겠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물론 기존의 주 5회 공연에 비하면 이 역시 만족할 수 없는 결과이지만, 그래도 현재 상황으로서는 이마저도 꽤 나쁘지 않은 결과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스페이스 공감>의 현실적인 문제들, 낮은 시청률이나 안정적이지 못 한 재정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분명히 또 한 번 축소 편성에 대한 압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에 사측과 정부에서 한국 대중음악이 진보하기 위한 방안을 확보하고, 그 중심적인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공감의 중요성을 깨달아 줄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단기간 내에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따라서 이번 공연에서 보여준 것과 같이, 공감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아티스트와 음악 팬들의 자발적인 노력이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안정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제작진 및 우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할 것이며, 무엇보다 지금보다 좀 더 열심히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아껴야 할 것이다.
공감의 축소 편성 논란은 어느정도 마무리가 되었지만, 공감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공감을 지켜주세요" 공연에 이어 또 한 번 공감을 위한 공연 "공감하고 싶어요"가 오는 22일부터 열린다. 그 때에도 더 많은 관객들이 함께 뜻을 모을 수 있기를, <스페이스 공감>을 우리의 것으로 쭉 지켜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한국의 대중음악이 좀 더 질 높고 알맹이가 꽉 차 있는 음악들을 재조명 해 줄 수 있는 쪽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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